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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거식증

패션 블로거의 거식증 극복기

On July 07, 2016 0

날씬해지면 더 행복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숟가락을 내려놓았지만 불행의 연속이었다. 한 패션 블로거의 거식증 극복기.

영국 런던 남동쪽 턴브리지 웰스의 한적한 어느 날 오후였다. 나는 식탁에 앉아 식사 대용의 콤플란(미숫가루 같은 음료)을 앞에 뒀다. 어머니는 맞은편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매일 반복되던 이 상황은 마치 내가 얼마나 오래 먹지 않으려 버티는지와 그녀가 얼마나 오래 참는지를 겨루는 일종의 게임 같았다. 3년간 반복된 싸움 끝에 얻은 결과는 우리 모두 지쳐간다는 것.

얼마나 많이 소리쳤고 콤플란이 바닥에 뿌려졌는지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다. 거식증이 사람을 어떻게 괴롭히는지, 얼마나 참혹한 병인지 자세히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일반인의 시각에서 거식증은 많이 먹고 구토를 하는 것 정도로 알지만, 음식과 체중을 비정상적으로 연결시켜 비정상적 식이 요법을 나타내는 모든 것을 말한다. 나의 경우 모든 음식을 거부하는 방법으로 찾아왔고, 거식증은 상상 이상으로 끔찍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15세였던 나는 불현듯 음식 칼로리 계산에 목을 매기 시작했다. 혹여 외식이라도 하는 날에는 몇 시간 동안 인터넷으로 칼로리를 계산했고, 마침내 나는 더 이상 먹지 않기로 했다. 순식간의 결정이었다. 아무런 계획도, 목표도 없었다. 분명한 것은 더 날씬하면 삶이 훨씬 나아질 것이란 생각뿐이었다. 기숙 학교를 다녔기에 주중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다가 주말에는 집에 돌아와 평소처럼 식사를 하는 시늉을 했다. 학생이 많은 학교에서는 당연히 선생님들에게 눈에 띌 일이 없었다. 적당한 양의 음식을 접시에 담아 주변 아이들과 떠들면서 잘게 자른 뒤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면 그만이었다. 다행히 살이 빠지는 것은 살인적인 교양 활동 스케줄 때문이라고 둘러댈 수 있었다. 매일 두 번의 운동과 합창단 연습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내게 있었다. 집에서 먹는 연기를 하는 데 신물이 난 것. 마침내 주말에 나를 데리러 학교에 오신 부모님은 내가 지난 3개월간 하루에 과일 2조각 외에는 먹지 않았다는 걸 알고 교장실로 쳐들어갔고, 학교 측은 내게 집에서 등하교할 것을 명령했다. 그 뒤 장장 2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통학했고, 그 고통에 체력은 물론, 정신력까지 남아나질 않았다. 학교는 결국 내 문제가 더 나아지기 전에는 학교에 나오지 말 것을 반강제로 권유했고, 나는 학교에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 아픈 내게 정신적 ‘영웅’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던 남자친구들도 하나 둘 떠나갔고, 내가 왜 먹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는 친구들과도 우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한 친구의 어머니는 딸에게 미칠 나쁜 영향을 우려해 날 멀리하라고 하기도 했다. 가장 심각한 건 가족 관계였다.

부모님은 이혼 직전까지 갔고 오빠는 5년간 거의 집에 오지 않았다. 식사 시간은 전쟁이나 마찬가지였다. 소리치는 건 일상이었고, 접시를 집어 던지는 일도 빈번했다. 이 시련의 기간 동안 내 곁에 있어준 친구는 단 한 명뿐이었다. 그녀는 얼마 전 “그때의 너는 어떤 일을 해도 재미있게 즐길 에너지 자체가 없었어”라고 그 당시의 나를 설명했다. 거식증은 신경적 식이장애, 즉 정신장애다.
 

첫 끼니를 거른 지 10개월이 지난 뒤 결국 청소년 정신 병동에서 진료를 받았다. 클리닉에서는 갑작스럽게 먹을 때 생길 수 있는 탈을 피하기 위해 1인분 음식의 1/4 분량부터 먹도록 치료를 시작했다. 하지만 내 앞에 음식이 놓이자마자 나는 간호사와 다퉜다. 그녀가 내게는 1인분 정량에 해당하는 음식을 주고 다른 환자에게만 1/4 분량을 줬다고 혼자 망상에 빠졌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받은 음식은 정확히 25%의 양이었다. 처음에는 하루에 먹어야 할 칼로리를 일주일간 나눠 먹었는데, 따로 엄청난 운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살이 찌지 않았다.

의사도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는데, 내 생각에는 당시 내 의지가 신체에 극렬하게 저항한 게 아닌가 추측해본다. 한 달이 됐을 때는 5kg 정도 살이 쪘는데, 문제는 정신은 전혀 안정적으로 변할 기미가 없었다. 오히려 몸무게가 늘어남에 따라 자살 충동의 경계로 가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부모님은 내 상황이 호전되었다 느꼈고, 이때부터는 통원 치료를 시작했다. 근데 정신이 온전치 않으니 치료를 열심히 받을 리 만무했다. 매일 남의 몸무게 차트를 훔쳐 기록하고, 물을 많이 마셔 급격히 살을 찌워 무게 측정을 하는 등 겉으로만 성실한 환자로 둔갑한 채 매일 식사를 거르고 윗몸 일으키기를 수백 번씩 했다.

먹는다는 건 본능적 행동이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오랫동안 누군가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스스로 뭔가를 삼키지 않았다. 결국 수년간 싸운 끝에 부모님마저 나를 포기했다. 그리고 다시 정신과 병동에 돌려보낸다는 위협 아닌 위협만 남아 있었다. 그곳에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다. 내게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와 같았기에 결국 내가 온전하게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전문가는 회복기에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깨달음이 있다고 얘기한다.

나는 내가 먹는 것보다 신생아가 먹는 식사량이 더 많았을 때 그 깨달음이 찾아왔다. 두 살배기 아기가 파스타를 주저 없이 먹는 것을 봤을 때의 충격이란. 너무도 쉽게 삼켜서 더 놀랐다. 그리고 정상적이지 않은, 피폐한 삶이 반복되면서 보통의 일상생활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하게 찾아왔다. 기절하지 않고 더블 보드카 소다를 마시기, 친구와의 여행, 테이블 위에서 춤추며 처음 만난 남자와 키스하기 등. 집을 떠나 대학에도 가보고 싶었다.

음식물을 먹지 않고는 이 모든 게 불가능하다는 걸 수개월 만에 깨달은 거다. 먹는 걸 무시하고 살면서 일상생활의 의미를 잊고 살았던 것. 그렇게 다시 치료를 시작한 뒤 ‘적정 체중’이라는 진단을 받는 데 4년이 걸렸다. 신체와 정신이 모두 건강하다는 것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거식증에서 회복한 뒤로 나는 그 누구보다 내 몸과 음식을 잘 알게 됐고, 늘 최고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요즘은 경험을 토대로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블로그(itsaldnthing.com)를 운영하고 있다. 6년 전이라면 결코 이렇게 얘기할 수 없었겠지만, 지금은 원하는 음식을 언제든지 어디서나 먹어도 패셔너블할 수 있고, 운동을 즐기는 데 식이 요법이 문제되지 않음을 자신한다. 물론 어떤 날은 많이 먹고, 또 어떤 날은 음식을 거의 먹지 않을 때도 있다. 그렇게 몸이 원하는 대로 두는 게 좋다고 믿는다. 그럼 몸이 알아서 ‘운동 좀 해야지’ ‘좀 쉬어야지’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렇게 또 신호에 맞춰 살아가다 보면 몸은 자연스럽게 좋은 방향으로 변해 있을 거다.

날씬해지면 더 행복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숟가락을 내려놓았지만 불행의 연속이었다. 한 패션 블로거의 거식증 극복기.

Credit Info

EDITOR
kim yeo jin
writer
millie cotton
illustrator
liz riccardi

2016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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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kim yeo jin
writer
millie cotton
illustrator
liz riccar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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