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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학교

On March 30, 2016 0

졸린 눈을 비비며 등교를 하고, 쉬는 시간이면 운동장과 매점을 뛰어다니고, 친구들과 손잡고 다닌 우리 학교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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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찍어도 근사하게 나오는 학교의 고풍스러운 건물들.

어떻게 찍어도 근사하게 나오는 학교의 고풍스러운 건물들.

  • 어떻게 찍어도 근사하게 나오는 학교의 고풍스러운 건물들. 어떻게 찍어도 근사하게 나오는 학교의 고풍스러운 건물들.
  • 학교에는 유독 큰 창이 많은 덕분에 이유 없이 사색을 하기도 했다.학교에는 유독 큰 창이 많은 덕분에 이유 없이 사색을 하기도 했다.
  • 쉬는 시간만 되면 굳이 넓은 운동장을 두고 복도 끝에서 끝까지 가열하게 뛰어다녔다. 쉬는 시간만 되면 굳이 넓은 운동장을 두고 복도 끝에서 끝까지 가열하게 뛰어다녔다.
  • 드라마 &lt;겨울연가&gt; 때문에 생긴 한류 스타들의 사진 가게는 나름 우리 학교만의 명물이다. 드라마 <겨울연가> 때문에 생긴 한류 스타들의 사진 가게는 나름 우리 학교만의 명물이다.

중앙고등학교

우리 학교가 1백 년이 넘게 이어진 대단한 명문인 데다가 빼어난 외관을 자랑하는 북촌의 명물임은 졸업하고 나서야 자랑할 만한 거리가 되었다. 막상 학교를 다니는 동안은 불만인 점이 더 많았다. 창덕궁 앞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것도, 나는 보지도 않은 드라마 <겨울연가> 때문에 등하굣길에 관광객의 원숭이가 되는 것도, 성한 문이 하나 없는 화장실까지.

그 와중에 좋았던 건 미에 대해서 한 치도 알지 못했던 투박한 남고생의 입에서 아름답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멋들어진 학교 건물이었다. 시대극에서나 볼 수 있는 고딕 양식의 건물 외관을 세월을 간직한 넝쿨식물이 감싸고 있는데, 여름이면 푸른 잎이 자라 온통 초록색이 되었다가 겨울에는 가는 가지만 남아 서늘한 기운을 풍겼다. 2학년 즈음부터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구석구석을 찍었다. 그다음 해 축제 때는 그 사진을 교실을 갤러리 삼아 전시도 했다. 내 방에는 아직도 그때의 사진 중 하나가 붙어 있다. 이명준(그래픽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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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반, 텅 빈 운동장을 가로지르던 풍경과 닮았다.

오후반, 텅 빈 운동장을 가로지르던 풍경과 닮았다.

  • 오후반, 텅 빈 운동장을 가로지르던 풍경과 닮았다.오후반, 텅 빈 운동장을 가로지르던 풍경과 닮았다.
  • 경사도 별로 없는데 높게만 느껴졌던 등굣길.경사도 별로 없는데 높게만 느껴졌던 등굣길.
  • 학생이 많아 50번까지 출석을 불렀다.학생이 많아 50번까지 출석을 불렀다.
  • 손잡이만 고친 낡은 계단.손잡이만 고친 낡은 계단.
  • 유독 많던 교실이 이어지던 복도.유독 많던 교실이 이어지던 복도.
  • 20년 넘게 한자리를 지키는 문구점.20년 넘게 한자리를 지키는 문구점.

화계초등학교

이 학교를 다닌 건 사실 2년뿐이다. 3학년이 되자마자 이사를 했다. 새로 간 학교와 비교할 것이 너무 많았다.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 야외 수영장이 있었다. 아직 어려서였는지 수영장을 이용할 기회는 없었다. 수영장 안에 직원용 화장실이 있었는데, 수업 도중 거짓말을 하고 아무도 없는 그곳에 가는 일을 즐겼다. 운동장이 정말 넓었다. 걸스카우트와 아람단 단원이 운동장을 가득 메울 만큼 많기도 했다.

나는 전 학년이 배울 수 있는 태권도 교실 활동을 했는데 재미있었지만 키가 잘 자라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바로 그만뒀다. 중앙 건물 앞, 정원은 디오라마로 꾸며져 있었다. 정원 속의 작은 연못, 철로와 작은 기차들 말이다. 교실은 거의 모든 학년이 14반, 16반까지 있었다. 특수반이 있었고, 받아쓰기 장려 지정을 받았는지 아침마다 받아쓰기 시험을 치렀다. 2부제라서 오후에 학교를 가는 날도 있었다. 그리고 ‘호랑나비’를 부른 김흥국이 가장 유명한 선배라는 사실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박의령(피처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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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아서 운동회조차 할 수 없었지만, 어린 나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이곳에서 뛰어놀았다.

작아서 운동회조차 할 수 없었지만, 어린 나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이곳에서 뛰어놀았다.

  • 작아서 운동회조차 할 수 없었지만, 어린 나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이곳에서 뛰어놀았다. 작아서 운동회조차 할 수 없었지만, 어린 나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이곳에서 뛰어놀았다.
  • 내가 다니던 때는 망원국민학교였던 우리 학교.내가 다니던 때는 망원국민학교였던 우리 학교.
  • 부끄러운 마음에 괜스레 건물 뒤 큰 나무 아래에 숨어 첫사랑에게 고백한 적이 있다. 부끄러운 마음에 괜스레 건물 뒤 큰 나무 아래에 숨어 첫사랑에게 고백한 적이 있다.
  • 그때는 정수기가 없었다. 그래서 아침마다 물을 받아 보리차를 끓이는 게 주번의 임무 중 하나였다. 그때는 정수기가 없었다. 그래서 아침마다 물을 받아 보리차를 끓이는 게 주번의 임무 중 하나였다.
  • 2개 이상의 반이 체육시간을 같이 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아담한 학교의 운동장.2개 이상의 반이 체육시간을 같이 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아담한 학교의 운동장.

망원초등학교

내가 태어난 해에 생긴 우리학교는 걸어서 30초, 뛰면 10초면 가는 거리에 있었다. 작고 어린 내 눈에도 작아 보일 정도로 유명한 소규모 학교였다. 그때는 그게 너무 서러웠다. 운동장이 너무 작아 100m 달리기를 맞은편 학교를 빌려서 했는데, 그때마다 그 학교 애들이 우리를 깔보는 듯 놀려댔다.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놀거리는 철봉이었다. 우리 학교는 교실도 적었다.

한 학년에 겨우 3반밖에 없는데, 그나마 우리 학년은 동네로 이사 오는 아이들이 많아져 4반이었다. 그 덕분에 학교를 다니는 6년 동안 한 번도 같은 반을 해보지 못한 친구는 없었다. 전교생이 서로의 이름을 알고, 다 같이 놀았다. 그래서 다른 학교의 아이들보다 돈독했지만 한편으로는 더 심하게 왕따를 당하는 친구도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작은 학교에서 조그만한 아이들이 뭘 그렇게 치열했나 싶다. 김연제(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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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꽤 커서 앞문 근처에 사는 애들과 뒷문이 가까운 애들로 나뉘었다. 나는 뒷문으로  다녔다. 집에 갈 때는 꼭 뒷문 근처의 불량식품을 파는 가게에 들렀다.

학교가 꽤 커서 앞문 근처에 사는 애들과 뒷문이 가까운 애들로 나뉘었다. 나는 뒷문으로 다녔다. 집에 갈 때는 꼭 뒷문 근처의 불량식품을 파는 가게에 들렀다.

  • 학교가 꽤 커서 앞문 근처에 사는 애들과 뒷문이 가까운 애들로 나뉘었다. 나는 뒷문으로  다녔다. 집에 갈 때는 꼭 뒷문 근처의 불량식품을 파는 가게에 들렀다.학교가 꽤 커서 앞문 근처에 사는 애들과 뒷문이 가까운 애들로 나뉘었다. 나는 뒷문으로 다녔다. 집에 갈 때는 꼭 뒷문 근처의 불량식품을 파는 가게에 들렀다.
  • 흙먼지가 날리는 운동장이 좋다. 마냥 즐겁기만 했던 기억이 여기에 다 있다. 흙먼지가 날리는 운동장이 좋다. 마냥 즐겁기만 했던 기억이 여기에 다 있다.
  • 한 학년 위에 전교생이 좋아하는 오빠가 있었다. 그 오빠가 농구를 할 때면 모든 여자애들이 허름한 농구대 주변으로 몰려들었다.한 학년 위에 전교생이 좋아하는 오빠가 있었다. 그 오빠가 농구를 할 때면 모든 여자애들이 허름한 농구대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 대운동장은 동네 사람이 다 모여도 될 만큼 거대했다. 그 스탠드에서 나는 친구와 참 많이 울기도, 웃기도 했다.대운동장은 동네 사람이 다 모여도 될 만큼 거대했다. 그 스탠드에서 나는 친구와 참 많이 울기도, 웃기도 했다.
  •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이면 급식실에 있는 물컵으로 수돗가에서 물싸움을 벌였다.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이면 급식실에 있는 물컵으로 수돗가에서 물싸움을 벌였다.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거창한 이름에 비해 학구열이 대단하지는 못했다. 11반까지 있었는데, 공부를 열심히 하는 친구는 반마다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그 대신 우리는 열심히 뛰고, 놀고, 먹고, 좋아했다. 소운동장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운동장까지 있어 하염없이 뛰어놀기 바빴고, 매점과 후문에 즐비한 영양가 없이 맛만 있는 간식을 늘 입에 달고 살았다. 그보다 제일인 건 남녀 공학인 것도 모자라 바로 옆에는 경계선도 없이 같은 이름의 남고가 있다는 거였다.

그 덕분에 학교 이곳저곳에서 유치한 로맨스가 꽃피었다. 초등학생만큼 어린 장난을 거는 같은 반 남자애들에 비하면 고등학교 오빠들은 굉장한 어른처럼 보였다. 결국 그 오빠들과 왠지 어른스러울 것 같은 연애에 성공하는 애들은 드물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학교를 다니는 것은 사춘기 소녀들에게는 설레는 일이었다. 사실 그 오빠들도 채 스무 살이 되지 못한 철없는 소년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고우리(웹매거진 <스텔라> 패션 에디터)

졸린 눈을 비비며 등교를 하고, 쉬는 시간이면 운동장과 매점을 뛰어다니고, 친구들과 손잡고 다닌 우리 학교에 대한 이야기.

Credit Info

EDITOR
KANG YE SOL
PHOTOGRAPHER
KIM JAN DEE
DESIGNER
JEONG HYE RIM

2016년 03월호

이달의 목차
EDITOR
KANG YE SOL
PHOTOGRAPHER
KIM JAN DEE
DESIGNER
JEONG HYE R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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