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투브 네이버포스트

통합 검색

인기검색어

HOME > Fashion

그때의 미학

On February 18, 2016 0

두고두고 바라보고 싶은 사진 한 장의 힘을 느껴본 적이 언제였던가? 그때가 그립다.

 


 

‘비언어적 이미지, 특정 제품을 판매하려는 목적이 아닌 브랜드의 이미지를 어필하기 위한 사진 한 컷’. 패션 광고의 본질을 축약하면 이렇다.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면 뉴스레터로 날아드는 패션하우스의 광고 캠페인 컷을 가장 먼저 접하지만 근래 사진들 대부분은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인공적인 톤앤매너,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거대한 스케일, 브랜드의 정체성보다는 이슈몰이를 위한 패션 인플루언서를 모델로 내세우는 마케팅적 접근 방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인지 한참을 바라보게 되는, 호기심을 자극 하는,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사진 한 장이 유독 그리워지는 시점이다. 또 사진 한 장을 통해 패션 판타지를 갖게 되는 일이 점점 줄어드는 것도 사실. 과거의 하이패션 브랜드의 광고 사진은 그것을 직접 입고 살 수 있는 소수의 계층을 노린(?) 상업적 사진이었지만, 그래서인지 패션에 대한 판타지가 녹아 있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얘기가 다르다. 누구나 하이패션을 누릴 수 있도록 친근하고 대중적인 요소를 더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뿐 아니라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같은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것의 비주얼보다 일상적인 톤앤매너의 사진이 대중에게 어필되면서 패션 광고 역시 그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실제로 패션 시장이 호황기를 누린 1990년대와 2000년대 포토그래퍼 마리오 테스티노, 스티븐 마이젤, 피터 린드버그, 팀 워커 같은 스타 포토그래퍼가 당대의 슈퍼모델과 호흡을 맞춘 글래머러스한 광고 비주얼을 만들었던 흐름에서 현재는 자연광과 그 어떤 인공적인 세팅 없이 필름카메라나 라이카 하나로 자연스러운 사진을 담는 유르겐 텔러, 테리 리처드슨, 라이언 맥긴리의 이름이 하이패션계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듯 자신만의 감성과 취향을 담은 풋풋하고 일상적인 사진을 ‘플리커(Fliker)’에 올리며 주목받기 시작한 SNS 세대인 1995년생 포토그래퍼 올리비아 비는 패션계뿐 아니라 디지털 세대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나이 11세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 소녀는 14세에 컨버스 광고 캠페인을 시작으로 나이키, 아디다스, 에르메스, 로저비비에의 광고 비주얼을 촬영하며 패션 광고의 경계를 허무는 중이다. 이처럼 패션 광고는 대중의 취향에 기민하게 반응해야 하고, 라이프스타일과 시대 흐름을 적극 반영해야 하는 상업성과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감성으로 어필해야 하는 예술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에도 대중의 시선을 끌기 위한 상업적인 비주얼과 그렇지 않은 예술성 짙은 비주얼의 패션 광고가 평행선을 이루며 공존하고 있다. 에디 슬리먼은 생로랑의 광고 캠페인을 위해 길거리 캐스팅을 마다하지 않으며, 비주류의 인물을 캠페인 모델로 내세우며 생로랑의 노선을 확고히 하고 있고, 피비 파일로는 노 메이크업의 다리아 워보이, 백발과 주름에서 풍기는 카리스마가 인상적인 80세의 작가 조앤 디디온을 광고 캠페인에 등장시켰고, 아크네 스튜디오는 옷의 일부분을 확대해 보여주는 식의 아티스틱한 비주얼을 고집한다.

시대가 급변하는 만큼 다양성과 뚜렷한 정체성을 지닌 광고 비주얼이 눈을 즐겁게 하지만, 몇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들춰본 광고 비주얼은 당시만의 미학을 분명하게 지니고 있다. 1980년대와 90년대에도 상업성을 좇는 트렌드가 존재했고, 당대의 스타 포토그래퍼와 톱모델의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사진 톤이 주류로 불리던 때였다. 하지만 분명 지금의 것과는 다른 멋이 담겨 있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시선을 분산시키는 방해 요소가 없으며 부연 설명 없이도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정확히 드러나는 무언가가 있다는 거다. 또 어떤 비주얼은 비언어적 메시지를 통해 호기심을 유발하는 광고의 형태도 참신해 보인다.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1990년대 헬무트 랭 광고 비주얼. 포토그래퍼 유르겐 텔러가 작업한 포트레이트 컷을 지면 한쪽 코너에 몰아넣고 브랜드의 로고를 한가운데 노출시키는 과감한 레이아웃은 단순하지만 힘이 있다. 또 상업성보다는 에디토리얼 페이지의 경계 중간쯤에 있는 비주얼은 실용주의를 우선으로 하는 미니멀리스트로 불린 디자이너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91년에 등장한 캘빈 클라인 진의 흑백 비주얼은 불안하고 반항적인 그 시절 청춘의 모습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았다. 낡은 가죽 재킷을 입은 무리 사이에서 슬쩍 얼굴을 내밀고 있는 모델의 눈빛과 시선 처리는 청바지 없이도 시선을 압도한다. 특히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까지의 꼼데가르송 광고 비주얼은 상업성을 탈피하고 패션·아트·문화적 코드를 아우르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예술성을 추구한다.

디자이너 레이 가와쿠보는 패션 사진가는 물론, 아티스트의 작업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협업한 캠페인 컷을 지향했고, 결코 뻔하지 않은, 갤러리 한쪽에 걸려 있을 법한 아트 피스다운 광고 비주얼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 사진들을 단순히 옛날 앨범을 들춰보며 당시의 향수를 느끼듯 회상하기 좋은 비주얼로 치부하기에는 아쉽고 아깝다. 당시의 것들에는 지금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정서와 취향이라는 것이 담겨 있어서다. 취향은, 곧 멋이다. 무색무취의 것에 아무런 매력을 못 느끼듯 사진에도 사진을 찍는 사람과 피사체의 취향이 묻어나야 매력적으로 어필된다고 믿는다. 그 취향은 크게는 브랜드의 정체성일 수도, 디자이너 개인의 미적 감각일 수도 있다. 한가운데 잇 백과 잇 슈즈가 이유 불문으로 대문짝만 하게 찍힌 사진, 모든 미디어에 등장했던 화려한 셀러브리티가 옷만 갈아입은 채 등장하고 있는 컷, 이유 없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포즈는 광고 사진이 갖춰야 할 요소를 모두 집어삼켜버린다. 물론 지금의 광고 비주얼과 과거의 것을 비교했을 때 어떤 것이 더 훌륭한 비주얼인지 아닌지 우위를 따질 수는 없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 패션 광고의 속성이다. 또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중의 태도 역시 바뀌기 마련이니까. 다만 순간을 캐치하고 시간을 기록하는 순수 사진이 아닌 상업적인 패션 광고 사진에는 적어도 그때의 미학 그리고 누군가의 취향이 스며 패셔너블한 멋이 담겨 있었으면 한다. 결국 패션이라는 것이 취향과 아름다움을 무시하고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니까.
 

두고두고 바라보고 싶은 사진 한 장의 힘을 느껴본 적이 언제였던가? 그때가 그립다.

Credit Info

EDITOR
KIM YOUNG GEUL
DESIGNER
JEONG HYE RIM

2016년 02월호

이달의 목차
EDITOR
KIM YOUNG GEUL
DESIGNER
JEONG HYE RIM

0 Comment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