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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테토의 아트스페이스

사물의 본질을 탐구해온 조각가 정광호

On September 14, 2022

사물의 본질을 집요하게 탐구해온 조각가 정광호. 조각의 형식을 벗어난 조각으로 쌓아 올린 그의 작업들은 ‘보는 가치’를 갖춘 기이하고도 아름다운 물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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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호(1959~)

정광호(1959~)

서울대학교 조소과 졸업. 현재 공주대학교 예술대학 만화애니메이션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구리 선을 용접해서 완성한 그의 작품은 회화처럼 보이기도 하고 조각처럼 보이기도 해 ‘비조각적 조각(Non-Sculpture)’으로 불리며, 최근에는 ‘시간 회화’라는 개념으로 움직이는 영상을 통해 새로운 감각의 사물을 만드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금호미술관, 조현화랑, 네덜란드 스테데릭 뮤지엄, 독일 갤러리 토마스, 프랑스 뤼멘 갤러리 등 국내외에서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개한 이건희 컬렉션에서도 그의 작품 ‘나뭇잎’을 만날 수 있다.

마음에 새겨두는 잠언을 구리선을 녹여 조각한 ‘무제’.

마음에 새겨두는 잠언을 구리선을 녹여 조각한 ‘무제’.

마음에 새겨두는 잠언을 구리선을 녹여 조각한 ‘무제’.

구리선으로 천자문을 써 내려간 ‘The Letters.’

구리선으로 천자문을 써 내려간 ‘The Letters.’

구리선으로 천자문을 써 내려간 ‘The Let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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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용접 기구가 가득한 정광호 작가의 작업실에서 만난 마크 테토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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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호 작가는 구리 선을 잘라 이어 형태를 만들고 저온 용접으로 선과 선 사이를 이어 붙이는 기법으로 작품을 만든다.

정광호 작가는 구리 선을 잘라 이어 형태를 만들고 저온 용접으로 선과 선 사이를 이어 붙이는 기법으로 작품을 만든다.

일상의 기물을 표현한 ‘Still Life’와 ‘Pot’이 어울려 서 있는 작업실의 한쪽.

일상의 기물을 표현한 ‘Still Life’와 ‘Pot’이 어울려 서 있는 작업실의 한쪽.

일상의 기물을 표현한 ‘Still Life’와 ‘Pot’이 어울려 서 있는 작업실의 한쪽.

예술이 사물을 감각하는 법

8mm 두께의 구리 선은 작가의 손길에 의해 시적이고도 서정적인 미감을 품은 나뭇잎으로, 꽃잎으로, 또 항아리가 된다. 가느다란 구리 선은 공중에서 은은하게 부유하며 만들어진 사물의 표면을 시적으로 그려낸다. 회화처럼 보이기도 하는 정광호 작가의 작품은 조각의 형식을 벗어난 ‘비조각적 조각’으로 불린다.

오래전부터 조각의 본질에 대해 고민해온 작가는 작품이 보이는 방식에 대해 주목했다. ‘본다’라는 행위는 신체 감각기관의 기능을 통해 이루어지고, 실제로 보이는 것은 감각과 물질이 만나는 지점인 ‘표면’으로, 작가는 이 표면을 재건하는 작업에 주력해왔다. 그가 구리 선으로 만들어내는 작품은 사물의 표면으로, 실제 본질과 보이는 것의 간극을 작품으로 표현해왔다.

하지만 구리 선은 작품의 움직이는 감각을 표현하기엔 한계가 있었고 작가는 운동성, 즉 리듬을 구현하기 위해 디지털 도구를 활용하여 움직이는 표면을 만들기 시작했다. 인상파 화가 모네와 시슬리의 작품을 차용해 이른바 ‘운동 텍스처’를 만들고 ‘운동 회화’를 선보인 것. 작가는 이를 ‘시간 회화’라고 부르며 운동을 통해 감각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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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의 표면을 이루는 비늘을 구리 선으로 표현해 제작한 작품 ‘The F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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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상상하면 안 됩니다.
뭘 해야 할지 모르고 

앞이 캄캄하게 막혔을 때가
바로 작업을 시작해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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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한적한 마을에 자리 잡은 정광호 작가의 작업실 풍경.

대전의 한적한 마을에 자리 잡은 정광호 작가의 작업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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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작가는 움직이는 이미지, 즉 ‘시간 회화’ 작업에 매진 중으로, 사진 속 작품은 모네의 그림을 차용해 제작 중인 ‘위드 모네(with Mone)’.

최근 작가는 움직이는 이미지, 즉 ‘시간 회화’ 작업에 매진 중으로, 사진 속 작품은 모네의 그림을 차용해 제작 중인 ‘위드 모네(with Mone)’.

M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자리 잡은 작업실이 정말 멋있네요. 대전은 작가님의 고향인가요?
대전에서 태어나 자랐고,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 이후에 타지에서 생활하다가 이곳에 자리 잡은 지는 한 15년 정도 되었어요. 제 작업은 규모가 좀 크기도 하고, 널찍한 흰색 벽면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용도에 맞게 지었어요.

M 작가님의 작품을 지난해 아트부산에서 처음 만났고, 이번 국립중앙박물관 이건희 컬렉션 전시에서도 보았는데 볼 때마다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구리 선을 이용한 조각품의 서정성에 반했습니다. 구리 작업은 어떻게 탄생했는지 궁금해요.
학생 때부터 조각가로서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오랫동안 방황했어요.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별로 유익하게 느껴지지 않았고요. 졸업 후에도 부조나 설치로 여러 시도를 하다가 결국 ‘조각’이라는 건 일종의 예술적 배치의 문제라는 걸 깨달았고, 세상으로 넓게 확장할 게 아니라 내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물건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고, 아마 폴 세잔이 사과를 그리던 마음하고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M 물건을 작품화하려는 시도였나요?
제가 만드는 물건은 이미지입니다. 볼 때 쾌감이 있어야 해요. 제가 만약 자동차를 만들려고 했다면 자동차 회사에 들어가면 될 일이죠. 하지만 제가 만드는 물건은 예술적인 행위여야 했기에 어떤 물건을 목표로 정해놓고 만드는 것은 적합한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저 ‘만드는 것’에 집중해보고 싶었어요. 앙리 베르그송이 인간을 ‘호모 파베르’라고 정의했듯이 저는 무언가를 조작하고 만드는 것에서 제 존재의 이유를 찾았고요.

M 만드는 행위에 집중하신 거였군요?
맞아요. 솔직히 소재나 완성품이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멋있는 물건을 완성할 수 있는 방식이 있어야 했죠. 그런 생각들이 떠올랐을 때 마침 작업실에 용접기와 구리 선이 있었고, 그것으로 뭐라도 시작해보자는 생각으로 구리 선을 가지고 그림을 만들듯이 작업을 해봤어요. 그렇게 처음 만들어진 게 나뭇잎이에요.

M 처음부터 나뭇잎을 생각하고 만든 게 아니었나요?
그저 마음 가는 대로 구리 선을 이렇게 저렇게 엮고 나서 그 아우트라인을 이어보니까 감나무 잎이 되더라고요. 나의 방법이 사물의 정체성을 표현한 거죠. 사물을 보고 인지한다는 것은 바라보는 사람의 감각과 물질이 만나는 것인데, 그 지점은 바로 표면입니다. 눈 망막의 표면과 사물의 표면. 제가 만들어낸 것도 그 표면이죠. 저는 그것을 최대한 멋지게 만들어서 보는 가치를 부여했죠.

M 목적지를 모르지만 방법을 따라가면 결과까지 도달한다는 게 정말 새롭게 느껴져요.
제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항상 얘기하지만, 다들 아이디어를 가지고 만들어낼 작품을 상상하려고 하는데 저는 그게 좋은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예술은 상상하면 안 됩니다. 뭘 해야 할지 모르고 앞이 캄캄하게 막혔을 때가 바로 작업을 시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만드는 것'에 집중해보고 싶었어요.
앙리 베르그송이 인간을 ‘호모 파베르’라고
정의했듯이 저는 무언가를
조작하고 만드는 것에서
제 존재의 이유를 찾았어요.

 

M 항아리나 물고기 같은 형태도 무척 아름답더라고요.
방법을 찾았으니 확장할 수 있는 길도 자연스럽게 따라왔습니다. 항아리의 유약 겉면에 금이 간 것을 보고 그 선들을 따라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완성됐어요. 물고기도 표면의 비늘을 따라 선을 만든 것이죠. 이런 작품들도 항아리나 물고기가 목표는 아니고 금을 따라 간 것이에요. 파울 클레의 작품에서 선이 번식하듯이요.

M ‘선’이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네요.
파울 클레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선으로 돌파했습니다. 사실 제가 구리 선 작업으로 추구했던 것들을 이미 그가 다 해놓은 것이지요. 저 역시 선으로 보여줄 수 있는 세계의 한계를 느꼈고요. 제 작업의 다른 뼈대를 찾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찾았고 그게 바로 ‘터치’였어요. 붓의 터치. 그런데 캔버스 위에서 물감을 다루는 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다른 화가들이 수없이 많은 업적을 이뤘던 분야였기에 저는 좀 더 진보한 방식을 찾아야 했어요. 그게 바로 움직이는 회화예요.

M 바로 최근작들인 ‘위드 세잔’, ‘위드 시슬리’ 같은 작품이네요.
회화의 핵심은 반복되는 터치의 흔적들입니다. 저는 그동안 철사로 표면을 만들어왔으니 이번에도 표면에 주목해보자고 생각했고, 회화의 표면이 움직여서 리듬을 갖게 되면 새로운 뼈대가 만들어질 거라고 봤죠. 그래서 컴퓨터 작업을 통해 회화를 움직이도록 제작했는데, 저는 이 작업을 ‘시간 회화’라고 부릅니다.

M 시간 회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리듬인가요?
리듬은 그 그림 안에서 보이는 핵심이자 뼈대라고 보면 돼요. 그렇다면 리듬은 무엇이냐? 저는 아침에 눈뜨고 일어나면 바로 밥 먹고 작업실로 오거든요. 이런 게 리듬이에요. 삶의 자세, 반복 속에서 나오는 차이에서 행복이 만들어지고요. 예술 작품에서도 그런 미세한 차이와 움직임이 미학을 만들어낸다고 봐요.

MARK TETTO

MARK TETTO

마크 테토는 JTBC〈비정상회담〉의 훈남 패널로 이름을 알렸다. 한국 생활 12년 차, 북촌의 한옥 마을에 거주하며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매일 누리고 있다. 경복궁 명예 수문장을 역임하고, 한국 공예품과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그는 한국을 사랑하는 외국인 중 한 명. 매달〈리빙센스〉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만나 그들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사물의 본질을 집요하게 탐구해온 조각가 정광호. 조각의 형식을 벗어난 조각으로 쌓아 올린 그의 작업들은 ‘보는 가치’를 갖춘 기이하고도 아름다운 물건들이다.

CREDIT INFO

에디터
심효진
사진
김덕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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