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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OR MOMENT

붓으로 달항아리를 빗는 최영욱 작가의 순간들

On September 13, 2022

자리에 있는 듯 없는 듯, 자신의 존재감을 내세우지 않는 가만한 달항아리. 20여 년간 줄곧 ‘카르마(Karma)’ 연작을 그려온 최영욱 작가는 여전히 달항아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 수수하고 검박하나 그 안에 당당함을 품은 달항아리처럼 살리라는 그의 다짐이 붓질로 옮겨가는 적막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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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00년대 초반,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한국관에는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외롭게 놓인 달항아리가 있었다. 어리숙해 보이는 백자에 유일하게 눈길을 준 이는 그 안에 숨겨진 당당한 품위를 발견하고, 이내 한번 끝까지 그려보리라 결심했다. 오늘날 ‘달항아리 작가’로 잘 알려진 최영욱 작가의 ‘카르마’ 연작이 시작된 순간이다.

젯소와 백색 돌가루를 섞어 캔버스에 올리고 사포로 갈아내는 과정을 수십, 수백 번 반복하면 달항아리의 형태감이 서서히 드러나고, 여기에 미세한 균열(크랙)을 붓으로 하나씩 그려나간다. 얽히고설키는 복잡한 인생길, 스치고 엇갈리는 저마다의 만남과 인연을 표현한 크랙은 작품 제목 ‘카르마’가 뜻하는 ‘업보’처럼 각자의 인생을 말없이 돌아보게 만든다. 매일같이 10시간 이상씩 작업에 매진해온 최영욱 작가의 업보(카르마)는 그 옛날 달항아리를 빚던 조선시대 도공은 아니었을까.

파주 출판단지에 있는 최영욱 작가의 작업실 벽면에는 과연 크고 작은 하얀색 캔버스가 빼곡히 줄지어 서 있다. 비어 있는 화면인 듯하지만, 한 걸음씩 가까이 다가가면 담백한 달항아리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수한 실선으로 교차되는 도자의 빙열이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는 그 실타래 속에서 고향의 산과 바다를, 하늘의 별자리를 떠올리기도 한다. 감상자의 기억 속 풍경과 합치되는 그 순간, 두둥실 떠 있는 환한 달이 우리의 기쁨과 애환을 조용히 달래주는 것이다. 붓으로 달항아리를 빚는 일이 곧 욕심을 비우는 수양의 과정이라 말하는 최영욱 작가는 오늘도 오직 달항아리처럼 살고 싶다. 겉은 화려하지 않지만 내면의 겸손과 힘을 겸비한, 바로 미술관 안의 그 달항아리처럼.

최영욱 작가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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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비우는 순간
욕심이 앞서거나 어깨에 힘이 조금만 들어가도 선이 잘 그려지지 않아요. 답답할 때는 작업실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오기도 하고, 가만히 멍하게 앉아 쉬기도 하죠. 온전히 혼자 몰입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달항아리처럼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하게, 그렇지만 속으로는
당당함을 잃지 않고 싶어요.

 

#옛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작업실 한쪽에는 그간 제가 구입해서 소장하고
있던 달항아리들을 진열해놓았어요. 결혼한 해에
아내와 인사동을 걸으며 조그마한 노점상에서
구입한 것도 있죠. 그때만 해도 10여 년이 흘러
제가 달항아리를 그리게 될 거라곤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는데, 운명 같아요.

#옛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작업실 한쪽에는 그간 제가 구입해서 소장하고 있던 달항아리들을 진열해놓았어요. 결혼한 해에 아내와 인사동을 걸으며 조그마한 노점상에서 구입한 것도 있죠. 그때만 해도 10여 년이 흘러 제가 달항아리를 그리게 될 거라곤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는데, 운명 같아요.

#옛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작업실 한쪽에는 그간 제가 구입해서 소장하고 있던 달항아리들을 진열해놓았어요. 결혼한 해에 아내와 인사동을 걸으며 조그마한 노점상에서 구입한 것도 있죠. 그때만 해도 10여 년이 흘러 제가 달항아리를 그리게 될 거라곤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는데, 운명 같아요.

#자연을 느끼는 순간
오후 5~6시쯤 되면 회사원들이 퇴근하고 이 동네가
고요해져요. 가볍게 산책길에 나서거나 석양이 아름답게
물들 즈음이면 가만히 바라보기도 해요.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은 작품에 새로운 영감을 주기도 하죠.

#자연을 느끼는 순간 오후 5~6시쯤 되면 회사원들이 퇴근하고 이 동네가 고요해져요. 가볍게 산책길에 나서거나 석양이 아름답게 물들 즈음이면 가만히 바라보기도 해요.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은 작품에 새로운 영감을 주기도 하죠.

#자연을 느끼는 순간
오후 5~6시쯤 되면 회사원들이 퇴근하고 이 동네가 고요해져요. 가볍게 산책길에 나서거나 석양이 아름답게 물들 즈음이면 가만히 바라보기도 해요.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은 작품에 새로운 영감을 주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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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 안에 그은 선은 나만고 헤어졌다가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는 우리의 인생길,
카르마를 표현한 것이에요.

최영욱 작가의 작업에 대한 담담한 술회

Q 이곳 파주 작업실에는 언제부터 계셨나요?
미국에서 돌아온 2010년 작업실을 찾아 다니다가 파주 출판단지에 오게 되었습니다. 건축가들의 감각적인 건물과 정돈된 환경, 주변의 푸른 자연에 마음이 편안했지요.

Q 보통 하루 10시간 이상씩 작업에 매진하신다고 들었어요.
오전 10시에 출근하고, 밤 10시에 퇴근합니다. 마치 고3처럼 치열하게 하루를 보내지요(웃음).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Q 고독하진 않으신가요? 작가님은 SNS도 안 하시잖아요.
흔히들 쓰는 카톡도 안 하고 SNS 계정도 없지요. 요즘엔 작가분들이 그런 활동도 많이 해서 자신을 알리는 시대가 온 것 같아 나도 개설을 해야 하나 고민되기도 하네요(웃음). 그런데 이 그림이 그렇게 드러내고 잘난 척하는 것과 잘 안 맞아요. 그래서 일부러 알리려고는 하지 않게 되네요.

Q ‘카르마’ 연작을 20여 년 동안 그리시다 보면 작업에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처음에 달항아리를 소재로 그렸을 때는 실제 달항아리처럼 보이려고 사실적인 표현에 주력했어요. “나 달항아리야, 잘 그렸지?” 하고 드러나 보이게 말이죠. 시간이 지나면서 명암도 조금 더 빼고 묘사를 덜하려고 자제해요. 조금 심심해 보일 수도 있는데, 그림이 비록 강하지 않아도 부드럽게 이야기를 건네는 것 같아요. 최근에는 카르마를 표현한 선에 의미를 두어 조형적으로 확장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실선이 무한 우주처럼 캔버스 외곽으로 나가버리는 거죠.

Q 그 선들을 그려나갈 때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나요?
달항아리 안에 그은 선은 만나고 헤어졌다가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는 우리의 인생길, 카르마를 표현한 것이에요. 저 역시 카르마를 그리며 살아온 내 인생의 수많은 기억들을 떠올리죠. 저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감사하게도 선을 그으며 떠올리는 많은 기억과 사람들은 행복한 순간들의 기억이 더 많네요.

Q 달항아리에 대한 강력한 첫 기억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한국관에서였다고 들었어요.
초라한 전시 공간 안에 놓인 그 모습이 마치 제 자신을 보는 것 같았죠. 당시 저는 달항아리를 그리고는 있었지만 작품의 틀을 잡지 못해 완전히 매달리지는 못했거든요. 전시 공간에 사람이 없다 보니 앉아서도 보고 옆으로 누워서도 볼 수 있었는데, 밑에서 올려봤을 때 이 달항아리가 당당함을 숨겨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마치 광화문 광장에 서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처럼요. 그 시선으로부터 작품의 구도를 잡게 되었죠.

Q 모든 작업 과정이 고도의 체력과 집중력을 필요로 하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부분이 있나요?
감정을 조절하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특히 선을 그릴 때 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거든요. 힘을 완전히 빼고 긋지 않으면 날카롭게 깨진 유리 파편처럼 보일 때도 있어요. 그럴 땐 산책을 하거나 차를 마시면서 마음을 가라앉히죠.

Q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려주세요.
일본과 프랑스 등 해외 전시를 준비하고 있고, 오는 9월 15일에는 프린트베이커리 더현대서울점에서 개인전을 엽니다. 최근에 작업한 원화 작품을 비롯해 신작 에디션 3종을 선보이는 자리이지요. 저의 소장품과 함께 재미 있게 공간을 연출한다고 하니 기대하셔도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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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푸른 녹음이 드리운 작업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자연 풍경과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창밖으로 푸른 녹음이 드리운 작업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자연 풍경과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3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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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줄 수 있는 대형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최영욱 작가. 달항아리를 향한 탐구심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달항아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줄 수 있는 대형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최영욱 작가. 달항아리를 향한 탐구심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자리에 있는 듯 없는 듯, 자신의 존재감을 내세우지 않는 가만한 달항아리. 20여 년간 줄곧 ‘카르마(Karma)’ 연작을 그려온 최영욱 작가는 여전히 달항아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 수수하고 검박하나 그 안에 당당함을 품은 달항아리처럼 살리라는 그의 다짐이 붓질로 옮겨가는 적막의 순간이다.

CREDIT INFO

에디터
이승민
사진
정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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