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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에서 살아남은 이야기 <영원한 우정으로>

On September 05, 2022

평범한 중년 여성이 전 세계를 뒤흔든 미스터리 소설의 작가가 되기까지.


하지만 저는 베르시가 쓰레기통에 던진 책을 언제나 더 재밌게 읽었어요.”

“잠깐만, 쓰레기통은 무슨 얘기지?”

“비평가에게 모욕을 당한 작가가, 그 비평가가 자기 책을 다룬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비평가를 처리하는 거죠!

《영원한 우정으로》

출판사 북로드
저자 넬레 노이하우스(Balli Kaur Jaswal)
번역 전은경
장르 추리/미스터리 소설

 

“하지만 저는 베르시가 쓰레기통에 던진 책을 언제나 더 재밌게 읽었어요.”
“잠깐만, 쓰레기통은 무슨 얘기지?”
“비평가에게 모욕을 당한 작가가, 그 비평가가 자기 책을 다룬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비평가를 처리하는 거죠!”

일단 이 인용구를 기억해두자. 그리고 이 문구도.
“2000년, 넬레는 드디어 《상어의 도시》를 탈고했다. 그녀는 원고를 예닐곱 개 출판사에 보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 타우누스 시리즈 완벽 가이드북》 중에서)

‘넬레’라는 이름과 언급된 책의 제목에서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위의 스토리는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의 무명 시절 이야기다. 넬레 노이하우스가 누구냐고? ‘독일 미스터리의 여왕’이라 불려왔고 지금은 ‘유럽 미스터리의 대가’로도 알려진 작가다.

2010년, 독일의 무명작가가 내놓은 한 권의 추리소설이 전 세계에 열풍을 일으켰다. 바로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다. 독일에서만 350만 부가 넘게 팔린 이 책은 30여 개국에 출간되어 총 1000만 부 이상이 판매되면서 초대형 월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듬해인 2011년 한국의 북로드에서 내놓은 번역서도 50만 부 이상 팔리며 ‘넬레 노이하우스’와 그녀의 추리소설 시리즈인 ‘타우누스 시리즈’라는 이름을 무수한 독자의 뇌리에 아로새겼다. 재야에 숨어 있던 고수의 등장은 사실 뻔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무명 작가가 훗날 자신의 대표작이 될 작품과 함께 혜성처럼 등장해 세계적인 거장이 되었다는, 꽤 놀랍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천재 이야기. 하지만 넬레 노이 하우스의 경우는 다르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출간 당시 그녀는 자비로 자신의 책을 꾸준히 출판한 지 벌써 5년이 넘은 시점이었다.

이제 저 앞의, 두 번째 인용구로 돌아갈 때가 됐다. “2000년, 넬레는 드디어…”라는 구절. 그 2000년에 넬레 노이하우스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흔한 클리셰들을 떠올려보자. 초췌한 모습과 허름한 차림으로 어두컴컴한 방구석 책상머리에 앉아 창작의 고통과 가난의 숙취에 시달리는 무명작가? 이번엔 조금 다른 장면. 너른 공간에 들어찬 냉기와 열기, 육중한 기계 소리, 악취에 가까운 생육의 냄새와 식욕을 자극하는 가공육의 냄새, 파괴와 생산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야만적 문명의 현장…. 언뜻 모순적인 것들로 그득해 보이는 이곳은 다름 아닌 소시지 공장이다. 200여 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그곳의 얇은 벽 너머, 사무실 책상에 한 여인이 앉아 있다. 서류 작업과 전화 통화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공장주의 아내. 격무에 시달리는 그녀의 유일한 낙은 틈틈이 쓰는 소설이다.

역시 넬레 노이하우스의 이야기다. 어릴 때부터 소설가를 꿈꿨던 그녀는 광고 회사에서 일하다 결혼 후 남편이 운영하는 소시지 공장에서 근무했는데, 당시를 힘들었던 시절로 묘사하는 것을 보면 아마 본인이 원해서 한 일은 아니었고 배우자의 사업을 돕기 위한 부득이한 상황이었던 듯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넬레 노이하우스는 그 지루한 시간을 한참 전에 식어버린 꿈의 불꽃을 거대한 불길로 키워내는 계기로 활용했다. 하지만 결과는… “2000년, 넬레는… 모두 거절당했다.”

맨 처음 인용구의 대화를 다시 보자. 대화가 달리 보이는가? 투고한 원고를 형편없다고 혹평하는 야멸찬 편집자(비평가)의 손에 의해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두툼한 종이 뭉치가 눈앞에 생생히 그려진다. 넬레 노이하우스가 소시지 공장의 소음에 갇혀 펜으로 종이를 열심히 긁어대며, 사각대는 미약한 소리로 운명에 치열하게 저항해왔을 그 결과물들이 말이다(사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맞겠지만, 그냥 넘어가자). 과장을 보태 말하면, 기약 없이 거듭해서 거절당한 작가로서는 살의(!)를 느낄 만도 하다.

아쉽지만 위의 인용은 넬레 노이하우스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녀의 최신작 《영원한 우정으로》 속의 한 장면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유명 출판 편집자가 시체로 발견되고, 주인공 피아와 보덴슈타인 콤비는 타우누스 지역에 드리운 어두운 살인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 프랑크푸르트의 대형 출판사를 배경으로 여러 인물의 뒤틀린 욕망이 뒤엉켜 낳은 범죄를 다룬 이 작품에서 ‘살인’을 거둬내고 보면, 넬레 노이하우스의 자전적 요소가 듬뿍 담긴 소설로도 보인다. 앞서 ‘쓰레기통’ 관련 내용을 작가의 과거와 연관 지으려 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작가가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을 비롯한 시리즈 전작들에서 피아 산더라는 형사의 캐릭터에 자신을 투영하고 있다는 의혹(?)은 팬들로부터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말을 좋아한다는 소소한 취향의 유사성도 그렇고, 그녀가 소시지 공장 근무 시절에 썼던 작품 속의 피아가 행복하지 않은 결혼 생활을 마침내 청산하고 형사로 복직하여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는 설정도 이제는 예사로이 볼 수 없다. 실제로 넬레 노이하우스는 소설가가 된 뒤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남편과 이혼했고, 이후 피아처럼 새로운 인생의 반려자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런 작가가 출판계의 현실을 소재로 끌어와 보다 노골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는 욕망이 이번 작 《영원한 우정으로》에서 강하게 풍긴다. 그녀 스스로 이번 작품을 시리즈의 반환점, 혹은 얼마 전 심장 수술을 받은 자신의 삶의 전환점으로 여기며 초심으로 돌아가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덕분에 이번 책은 시리즈의 열 번째 작품임에도, 타우누스 시리즈를 접하지 못한 독자들을 위한 훌륭한 입문작이 되었다. 기존 팬들에게도 읽는 동안 입가에 미소를 띠게 만드는, 위트가 넘쳐난 독특한 작품임은 분명하다.

작가의 히트작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 곧 한국에서 드라마로 상영될 예정이다. 책도 작가도 알지 못하는데 저 제목이 익숙하다면, 그래서일 테다. 독일 시골의 한 소시지 공장에서 야금야금 은근하게 시작된 전설이 10년 뒤 한국의 안방까지 파고들게 되다니, 무수한 원고를 게걸스레 먹어 치워온 출판사의 쓰레기통이나 소시지 공장 사무실의 쓰레기통은 과연 이런 미래를 예상이나 했을까? 쓰레기통은 죄가 없다.

마지막 여담 하나. 《영원한 우정으로》에서 주인공 피아 산더의 전남편이 쓴 소설들의 제목이 타우누스 시리즈의 전작들 제목과 같다. 소설가 아내를 진지하게 여기지 않았던 소시지 공장주에 대한 복수일까, 아니면 최소한의 환경을 제공해준 전남편을 향한 감사와 헌정의 표시일까.

WORDS 최장욱
출판사 북로드의 편집팀장. 《영원한 우정으로》의 책임 편집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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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중년 여성이 전 세계를 뒤흔든 미스터리 소설의 작가가 되기까지.

CREDIT INFO

에디터
심효진
사진
엄승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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