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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희의 건축탐방

자연과 건축의 유기적 공존: 사유원

On August 08, 2022

건축의 시인으로 불리는 포르투갈의 노장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사유원의 건축물로 떠난 두 번째 건축 탐방. 건축물이 자연 안에서 풍경이 되는 관계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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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작은 오두막’을 닮은 내심낙원. 육중한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면 검박한 묵상용 가구와 십자가가 있다.

포르투갈의 포르투로 여행을 떠난 이유는 한 가지였다. 이곳에 사무실을 두고 설계 작업을 이어온 알바로 시자의 작품 중에서도 초기작을 보고 싶다는 것. 알바로 시자의 고향이기도 한 포르투갈 북부 포르투주의 마토지뉴스(Matosinhos)는 포르투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해안가의 항구 도시로,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레카 수영장(Leça Swimming Pools, 1966)이 있다. 자연과 건축이 서로를 너그럽게 포용하고 있는 이 수영장은 놀랍게도 알바로 시자가 청년 시절에 설계한 초기 작품이다.

보아노바 티 하우스(Boa Nova Tea House, 1963)도 비슷한 시기에 완공되었다. 거센 파도가 치는 바다와 거대한 바위, 암석 절벽을 수용하며 겸손하게 자연의 일부처럼 자리한 보아노바 티 하우스를 실제로 눈에 담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뛰었다.

그러나 막상 포르투에 도착하자 설레고 분주했던 마음과는 다르게 암울한 상황이 닥쳤다. 수화물 분실이었다. 같은 비행기를 탄 모든 사람들이 공항을 빠져나간 후에도 나의 짐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경유지인 포르투 공항의 수화물 센터에서는 뾰족한 답변을 해주지 못했고, 초조한 마음에 매일 아침 공항의 수화물 센터로 출근했다.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되면서 그마저도 포기하게 되어 마침내 알바로 시자의 건축 유산인 보아노바 티 하우스로 향했다.

공간이 주는 안도감을 그때 처음 알았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이곳은 주차장에서 별도의 진입로를 통해 낮은 입구로 들어서게 되어 있다. 가느다랗고 긴 창문을 가득 채운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하얀 돌길을 따라 계단 아래로 내려가 실내에 앉게 되면 커다란 바위 너머로 광활한 대서양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

공간 안에 들어와서 걷는 사이에도 여러 차례 풍경이 바뀌고 햇살이 바뀐다. 자신이 태어나고 살아온 동네의 바다와 암석 해안에 대한 이해가 뛰어난 건축가가 진행한 프로젝트는 건축물 안에서 극적인 효과를 연출했다. 그 공간 안에서 나는 마음을 내려놓고 극적으로 변화하는 마토지뉴스 해안의 풍경을 만끽했다. 이미 분실한 수화물과 공항 출근에 대한 걱정은 잊은 상태였다.

이 장소가 1966년에 만들어진 곳이라니! 감탄을 거듭하며 레카 수영장과 시내에 있는 세랄베스(Serralvese) 현대 미술관을 보았다. 이미 지적인 포만감이 컸기 때문에 나머지 시간은 포르투의 한적한 거리를 걸으며 일정을 마무리해도 좋을 것 같았다. 마음을 바꾸자 짐이 없는 가벼운 몸과 마음이 얼마나 자유로운지 더 많이 보겠다는 욕심도, 카메라로 담는 행위도 없이 유유히 며칠을 보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에게 포르투는 그러한 도시였다(결국에 짐은 귀국 후에 서울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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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군위 깊은 산속의 아름다운 풍경을 액자처럼 담아내는 전망대 소대.

서울에 돌아와 디자인 작업을 이어가는 동안에도 생각의 흐름이 막혔을 때 포르투에서 느낀 감각의 기억은 나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디자인에 욕심이 생겨서 마음이 복잡할 때에는 간혹 그가 설계한 파주에 있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 가기도 했는데, 그러고 나면 욕심을 조금 더 내려놓고 공간의 본질을 바라볼 수 있었다.

국내에서 알바로 시자의 가장 최근작을 볼 수 있는 사유원은 경상북도 군위에 위치한 10만 평 규모의 수목원이다. 이곳에는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건물이 세 군데나 되는데 수평적인 공간인 소요헌, 수직적인 공간인 소대, 그리고 작은 오두막 같은 내심낙원이 바로 그것이다.

서양의 건축과 동양의 건축을 구분하는 여러 가지 관점 중에서도 자연에 대한 태도를 알면 둘 사이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자연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온 서양에 비해, 동양은 한자어의 해석처럼 ‘스스로 그러한 것’을 자연이라 보고 자연에 가장 침해되지 않는 건축물을 만들어왔다. 알바로 시자의 건물은 한국의 자연 속에서 어떻게 자리 잡았을까?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은 자연과 건축물과의 관계였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압도적인
공간으로 변화하는 소요헌. 빛과
바람, 눈과 비가 들이치는
하늘의 창이 공간을 더욱
드라마틱하고 입체감 있게
만들어준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압도적인 공간으로 변화하는 소요헌. 빛과 바람, 눈과 비가 들이치는 하늘의 창이 공간을 더욱 드라마틱하고 입체감 있게 만들어준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압도적인 공간으로 변화하는 소요헌. 빛과 바람, 눈과 비가 들이치는 하늘의 창이 공간을 더욱 드라마틱하고 입체감 있게 만들어준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연상시키는
조형물 앞에서 알바로 시자의
건축물을 메모패드에 담고 있는
임태희 소장.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연상시키는 조형물 앞에서 알바로 시자의 건축물을 메모패드에 담고 있는 임태희 소장.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연상시키는 조형물 앞에서 알바로 시자의 건축물을 메모패드에 담고 있는 임태희 소장.

지난겨울 찾았던 사유원에서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건축물은 자연을 존중하고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자연과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여름의 계절에 다시 만난 알바로 시자의 소요헌은 자연 안에 풍경으로 자리 잡은 관계성은 여전하되,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와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하늘을 향해 자란 소나무 군락이 인상적인 숲길을 한참 걷다 보면 자연스레 소요헌과 만나게 된다. Y자 형태의 건축물인 소요헌의 제법 긴 콘크리트 진입로를 걸어가면 공간은 양 갈래로 나뉜다. 조금 더 밝은 왼쪽 공간을 따라 걸으면 낮은 창문처럼 자리한 중정이 나타난다. 그때까지 공간은 어둡고 고요한 침묵으로 가득하다. 중정을 따라 건물 깊숙이 들어갈수록 공간은 압도적인 느낌으로 변화하며 그제야 비로소 이 공간이 갈수록 깊어지는 경사로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연상시키는 조형물을 바라보며 공간을 거니는 사이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정원의 작은 자갈에 부딪히는 소리, 맑은 새소리, 나무 사이를 휘이 돌아 나오는 바람 소리까지 다채로운 자연의 음악이 건물 안을 가득 채운다. 마치 오케스트라처럼.

깊은 감동을 안고 막다른 공간을 돌아가면 공간이 끊기고, 갑작스레 외부 공간과 마주친다. 공간의 끝까지 걸어서 가본 사람만이 이 공간 너머로 깊은 산속의 숲이 활짝 열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과의 경계가 모호하고 건축물 자체는 단순해 보이나 그 안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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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로 시자의 건축물은 자연을 존중하며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간다.

소대는 작은 전망대다. 여기에 오르면 산과 산의 중첩, 푸르게 펼쳐진 소나무 군락, 낮게 내려앉은 구름까지 인적이 드문 사유원의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실감하게 된다. 소대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내심낙원은 아주 작은 오두막 같은 채플인데 멀리서도 삼각형의 고깔 같은 지붕을 이고 있는 하얀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내심낙원으로 향하는 길, 흙바닥에 듬성듬성 자라난 토끼풀을 보며 내내 현실감각을 잃은 듯했다.

내심낙원의 육중한 나무문 너머로는 검박한 묵상용 가구와 나무 십자가가 전부지만 내심낙원의 조용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떠올리며 걸어가는 길은 마치 나를 수행하고 성찰하는 순례길 같기도 했다. 꾸밈없는 순수함으로 마음을 편하게 해주며 솔직한 내면의 나와 마주하게 하는 공간, 이미 그것만으로도 내심낙원은 건축물이 가져야 할 가치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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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대에서 바라보는 소나무 군락 사이 소요헌의 모습.

디자이너로서 나는 시각을 지배하는 공간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공간을 만들 수 있기를 꿈꾼다. 꾸미지 않을 것, 압도하지 않을 것, 공간이 존재하는 대지와 주위 자연환경에 대한 감사를 표할 것. 힘 주는 것보다 힘을 빼는 여유로움, 관용적인 태도가 만들어내는 공간의 여운을 포르투에서 경북 군위로 이어지는 알바로 시자 건축 탐방의 여정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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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헌의 낮은 중정은 회랑처럼 천장이 있는 작은 길로 이어진다. Y자 형태로 갈라진 두 공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며, 나무 벤치에 앉으면 시시각각 달라지는 자연의 풍경과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임태희는

임태희디자인스튜디오의 수장으로 공간 디자인이라는 작업을 통해 삶을 관찰하며 그 행위를 통해 배움과 깨달음을 얻고 있다. 가시적인 것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중시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어른스러운 미학을 탐구하며 대표 작업으로 북촌의 한지문화산업센터, 앨리웨이 광교의 두수고방, 고창의 상하농원, 온양민속박물관의 카페 등을 디자인했다.

건축의 시인으로 불리는 포르투갈의 노장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사유원의 건축물로 떠난 두 번째 건축 탐방. 건축물이 자연 안에서 풍경이 되는 관계성에 대하여.

CREDIT INFO

에디터
정수윤
임태희
사진
홍기웅(C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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