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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욕망과 연대에 주목하다 <정숙한 과부들을 위한 발칙한 야설 클럽>

On August 04, 2022

여성의 욕망과 연대에 관한 이토록 매혹적인 이야기, 소설 《정숙한 과부들을 위한 발칙한 야설 클럽》.


쿨빈더는 사원 쪽으로 돌아서서 재빨리 이 모든 행복에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다.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키스를 기대하는 마음, 벗은 허벅지를 쓰다듬는 사람의 손길,

때로 아주 작게 느껴지는 그 짧은 순간들이 모여 평생의 행복을 이루리라

《정숙한 과부들을 위한 발칙한 야설 클럽》

출판사 들녘
지은이 발리 카우르 자스월(Balli Kaur Jaswal)
번역 작은미미, 박원희
장르 소설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일이다. 어느 날 동생이 불쑥 물어왔다.
“누나, 여자들도 야한 걸 좋아해?” 가족과 텔레비전을 보다가 키스 신만 나와도 일부러 부산하게 굴며 못 본 척 딴청을 피우던 나이였다. 연년생 남동생의 갑작스런 질문은 기껍지 않았다. 나는 당황스런 마음을 감추려 되레 짜증스럽다는 듯이 목소리를 다듬었다. “뭐야, 갑자기. 그런 걸 왜 물어보는데?” 돌아온 동생의 대답은 나를 더 불편하게 했다.

“오늘 우리 반 여자애들이 팬픽인지, 야설인지 그런 소설을 돌려보다가 걸렸거든.” “걔네가 이상한 거지. 보통은 안 그래. 이제 나한테 그런 거 물어보지 마.” 여기서 대화가 마무리되었으면 좋았을 걸, 동생은 한 마디를 더 보탰다. “그치? 나는 너무 밝히는 여자애들은 좀 불편해.”

그 순간 무엇인가가 내 마음 깊은 곳을 날카롭게 찌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스스로를 부정한 것 같다는 비참함이었을까? 아니면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이었을까? 나 역시 팬픽션을 좋아하고 성적 호기심이 많은 여자 청소년이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섹스가 금기어로 여겨지던 때, 아이들에게 순결 서약을 시키며 은장도 책갈피를 나눠주던 시절이었다. 동생과의 대화는 그렇게 일단락되었지만, 어쩐지 스스로를 부정한 것만 같은 비참함이 꽤 오래 남았다. 그렇다면 왜 나는 떳떳하지 못한 짓을 하는가, 라는 자책감도.

당시 내가 다녔던 여자 중학교는 여자 고등학교 2개와 나란히 붙어 있었다. 여학교 3개가 모여 있는 까닭에 일명 ‘바바리맨’으로 통칭되는 몰지각한 남성들이 자주 출몰했다. 우리 교실 창문가에 서면 그들이 즐겨 찾는 학교 뒷골목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들은 ‘순수하고 가녀린 여학생’들이 그 길을 지나다 자신의 ‘우람한 물건’을 보고 깜짝 놀라 울며 달아나기를 바라며, 그렇게 한 주에도 두어 번씩 그리로 모여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앞에 놓인 현실은 냉혹했으니. “어, 왔다!” 누군가 소리치면 40명이 넘는 우리 반 친구들은 물론 옆 반과 그 옆 반 애들까지 죄다 몰려와 냅다 고함을 질렀다. 하늘에서 천벌 같은 소리들이 내려치니 그는 깜짝 놀라 허둥지둥 바지춤을 추키고 골목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그가 이제라도 깨달았기를. 그 편협하고 비뚤어진 사고방식은 더 이상 여성들을 두렵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 나 화장실 갔다 왔는데 벌써 갔어? 넌 봤냐?”
“난 봤지롱.”
“진짜? 어땠어?”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고, 소리 내어 씩씩하게 웃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무서울 것, 거리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런 에피소드도 이제 옛날 얘기이길.

시간이 흐르고 사회가 변한 만큼 여성의 욕망은 결코 부끄럽거나 불편한 것이 아님이 명백하지만, 아직도 원하는 것을 원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억압적인 현실이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숙한 과부들을 위한 발칙한 야설 클럽》은 완벽하게 발칙한 소설이다. ‘남편과 사별한 여성들이 모여 섹스 판타지를 나누는 이야기’라니.

“이게 바로 제가 찾던 이야기예요!”

저자인 발리 카우르 자스월은 최근 문단의 주목을 받으며 떠오르는 여성 작가다. 인도계 싱가포르인이며, 영어로 글을 쓴다. 복합적인 문화 정체성을 가진 만큼 다양한 문화권에 사는 여성들의 삶에 관심이 많고, 그들의 이야기를 써나간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영국에 사는 인도 펀자브 지역 출신 이민자들이다. 이들은 대외적으로는 ‘이방인’, 대내적으로는 ‘여성’이라는 이중 억압을 겪어야 했다. 자아실현은 애초에 허락되지 않았기에, 글자조차 배우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반면 주인공 니키는 스물두 살 여성으로, 영국에서 태어나 영국인으로서 자란 인도 교민 2세대다. 니키는 이 여성들에게 작문을 가르치려다가 그들이 글자조차 쓰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충격 받는다. 그런데 이 여자들, 당당하게 말한다.

“선생님, 우리가 글은 못 쓰지만 마음속에 품은 판타지들이 있거든요? 들어보실래요?” 그리하여 작문 수업은 ‘야설 클럽’으로 거듭난다.
“우리 남편은 시도 잘 짓고 잠자리에서도 환상적이었어.”
“말도 마. 우리는 섹스리스였어.”

적게는 40대, 많게는 80대에 이르는 여성들이 섹스 경험담을 나누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성적 판타지를 공유하며 유대감을 쌓는다. 맨 처음 이들에게 거리감을 느꼈던 니키 역시 살아온 세월과 배경 차이를 뛰어넘어 이들과 동화되어간다. 여기까지만으로도 이 여성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사랑스럽고 매력적이지만, 가장 감동적인 대목은 역시 위기를 함께 극복해나가는 모습에 있다. 소설 후반부에 이르면 여성들에 대한 억압은 차별과 무시의 차원을 넘어 생명과 안전에 대한 실질적인 위협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때부터 소설의 전개는 급물살을 타고 여성들은 서로를 딸과 엄마처럼 보듬으며 있는 힘을 다해 서로를 지켜낸다. 어떤 사람들은 “딸 같아서 그랬다”는 말을 누군가를 해치고 변명을 위해 사용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들은 그런 이유로 목숨을 걸기도 한다.

이 책은 욕망과 연대에 대해 다시 묻는다. 나 역시 편집 과정에서 ‘우리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을 부정하면서 건강한 인격의 토대를 다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졌다. 우리에게도 성을 터부시해온 역사가 길다. 이 책은 역설한다. 건강한 욕망은 아무것도 망치지 않으며, 오히려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놓인 세상에 멋진 변화를 일으킨다고. 이 책이 더 많은 이가 욕망의 순기능을 경험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편집하는 내내 가슴에 여운 있게 남았던 문장을 인용하며 글을 맺겠다.

“음란하면 뭐 어때요? 우리가 언어를 배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요!”

WORDS 이수연
출판사 들녘의 편집팀장.《 정숙한 과부들을 위한 발칙한 야설 클럽》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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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욕망과 연대에 관한 이토록 매혹적인 이야기, 소설 《정숙한 과부들을 위한 발칙한 야설 클럽》.

CREDIT INFO

에디터
심효진
사진
엄승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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