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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 Cultural Vacance

Trip to MUSEUM! 세계 곳곳 뮤지엄으로 떠난 사람들

On August 03, 2022

아름다운 건축물과 영감을 주는 전시 속에서 여름을 나는 일은 얼마나 멋진가. 세계 곳곳의 뮤지엄으로 여행을 떠난 사람들의 특별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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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GYPT

태양의 도시, 박물관이 되다

어쩌면 우리의 일상은 나의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나의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많은 경우 타인에 의해 흔들리기도 하고, 외부 환경에 의해 그 계획이 틀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여행은 어떠한가. 오롯이 나의 뜻을 반영해 계획을 세워볼 수 있다. 내가 이집트를 찾은 이유도 그렇다. 사람들은 “굳이 거길 왜 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나만을 위한 시간을 만들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했다. 뜨거운 태양이 나를 반기고,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나 다름없이 고대의 유물로 가득한 곳!

그렇게 무작정 떠난 이집트는 정말 놀라운 곳이었다. 사람들에게 예술과 문화를 가르치고 있지만 그 동안 무관심했던 피라미드를 실제로 마주하니 그 크기와 위엄이 형언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피라미드가 뿜어내는 묘한 에너지를 느끼고 있자니 5000년이라는 세월 동안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게 하는 힘이 이것이구나 싶었다. 고대 건축물의 매력은 너무나 치명적이어서 나는 아침에도, 저녁에도 피라미드를 찾아가 바라볼 정도였다. 피라미드에 빠져버린 나의 이야기를 듣던 지인이 ‘룩소르’를 추천해주었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비행기로 1시간 거리로, 공항에 도착하니 “The World’s Largest Open Museum”이라는 문구가 나를 반겼다. 그렇다. 이곳은 고대 이집트의 수도로 도시 자체가 하나의 박물관으로 지정된 곳이다.

현재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에 비해 그 이름이 다소 낯설게 느껴지지만 파라오의 위엄은 이곳에서 제대로 만나볼 수 있었다. 대한민국 서울에 경복궁이 있다면, 이집트 룩소르엔 ‘룩소르 신전’과 ‘카르나크 신전’이 있다고나 할까. 세계에서 제일 오래되고, 제일 큰 규모의 신전으로 수백 년에 걸쳐 수십 명의 왕이 신전 건설에 참여했기에 그 규모가 어마어마한데, 현재는 당시 신전의 10분의 1 정도만 복원되어 공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전 전체를 둘러보는 데 꼬박 2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하나의 신전이지만 다양한 건축양식을 만나볼 수 있고, 수세기에 걸쳐 번성한 이집트의 위엄을 만나볼 수 있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로 탐험을 온 여행가처럼, 파라오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이곳 룩소르는 나일강을 중심으로 동안과 서안으로 나뉘는데, 해가 뜨는 동쪽은 왕들이 살았던 곳으로 앞에 말한 룩소르 신전과 카르나크 신전이 자리하고, 해가 지는 서쪽은 왕들이 죽은 후 묻히는 무덤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서쪽엔 고대 이집트 왕들의 무덤, 람세스와 투탕카멘이 묻힌 ‘왕가의 계곡’이 자리하고 있다. 왕가의 계곡은 사막 골짜기 사이사이 지하 깊숙하게 파라오의 무덤이 자리한 곳으로, 지금도 하늘에서 보면 전혀 무덤인 것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은밀하게 만들어져 있다. 이집트 고왕국 시대에 만들어진 거대한 피라미드와 달리 꽁꽁 숨겨진 무덤들은 더 이상 도굴되고 파헤쳐지는 것을 막기 위한 신왕국 시대 이집트인의 지혜로 여겨진다고 한다.

여름이면 시원한 산과 바다로 으레 떠나던 내가 5000년 전에 지어진 피라미드를 보며 감동받게 될 줄이야. 작열하는 태양 아래 투탕카멘의 무덤과 나일강을 바라본 경험은 무척 생경했으나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 중 하나로 영원히 남을 듯하다. 이집트 룩소르의 뜨거운 태양으로 인해 현실에서 지친 마음은 녹아내렸으나, 사막의 건조하고 시원한 바람은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어주었다. 현실과 동떨어진 곳에서, 가장 생경한 그곳에서 나는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끼고 경험했다. 진정한 여행을 떠나고 싶어서, 조금 더 특별한 여름을 만나고 싶어서 떠났던 이집트 뮤지엄 여행은, 그렇게 내 인생에 한 획을 그었다. 오그림(아트살롱 오그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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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MARK

덴마크의 여름이 알려준 것

아들이 어느 정도 크고부터는 여름이 오기 한두 달 전부터 고민에 잠긴다. ‘이번엔 어디로 갈까?’ 아내와 나 둘 다 미술을 전공한 영향도 있겠지만, 주말이면 빠짐없이 국내 어디든 미술관을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됐다. 이렇게 멀리 떠날 계획을 세울 때에도 미술관이 빠지지 않으리란 걸 이젠 아들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다녔던 여름휴가의 기억 중에서 덴마크를 방문했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덴마크 여행에서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이라 불리는 루이지애나 뮤지엄. 코펜하겐에서 40km 정도 떨어진 거리라 이른 아침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코펜하겐을 빠져나오며 기차의 넓은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덴마크의 시골 풍경은 모든 장면들을 기억해 화폭에 담고 싶을 정도로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했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며 늘상 대화를 하던 것처럼, 아들에게 창밖의 풍경에 대해 말을 붙였다.

“저기, 오래된 나무가 부러져 있네”, “기차 아래 풀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어!”, “아빠 저기! 축구장이 지나갔다!” 그런 이야길 하던 중 뒤쪽 칸의 어떤 여인이 다가와 이 칸은 사일런트 객실이라며 조용히 해달라고 했다. 덴마크의 기차는 칸칸이 용도가 다양하다. 자전거를 싣는 곳과 유모차를 싣는 곳 등등. 그런데 이렇게 사일런트 객실까지 있는 줄은 몰랐다. 보통의 객실이라면 아들과의 조곤조곤한 대화에 승객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았겠지만…. 어쨌거나 이후엔 조용히 행선지로 향했다.

역에 도착해서도 소담한 풍경의 골목골목을 지나 10여 분을 더 걸어가서야 루이지애나 뮤지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목성이나 토성 같은 행성을 사람 크기만 한 지름으로 구현한 구조물로 듬성듬성 채운 녹지를 발견했다. 그것으로 이번 전시의 주제를 가늠할 수 있었다. 전시의 주제는 달(Moon)! 작품 사이사이 의자들이 꽤나 많이 배치되어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작품을 보는 위치에 따라 대화를 할 수 있도록 각도까지 신경 쓴 모습이 놀라웠다.

전시도 전시지만, 주제와 관련해 여러 참여 프로그램이 눈에 띄었다. 우주복을 입고 달에 착륙해보고, 점토로 행성을 만들고, 나뭇조각들을 실리콘으로 붙여 로켓을 만들어 발사하고, 미리 준비해둔 페인팅 옷을 입고 붓을 든 채 마음껏 그림을 그려 전시하기까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아이들에게 이렇게나 많은 기억을 담아가도록 하는 전시는 여지껏 경험한 기억이 없다.

이후 덴마크 선생님을 만나 들은 얘기지만, 덴마크에서는 미술관을 완성된 작품만 보는 곳이라 생각하지 않는단다. 아이들이 미술관에 와서 어떻게 생각을 펼칠 수 있을지 고민하고 환경을 꾸며주는 곳이라 여긴다. 공간이 주는 영감에 대해 주요하게 생각하는 덴마크 사람들의 철학이 미술관 곳곳에 묻어난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물론, 이번엔 사일런트 객실에 타지 않았다.) 열 살 전후의 아이들과 선생님도 함께 기차역에 도착했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했는지 한 아이가 바닥에 누웠다. 그러자 또 다른 아이도 누워 팔다리로 노를 저으며 장난을 쳤다. 선생님도 주저앉더니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길 하며 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손 모양으로 보아 미술관에서 본 것들에 대한 이야길 하는 것 같았다. 누가 학생인지 선생님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한 아이가 일어나 한참을 설명하기도 했다. 선생님이 일어나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순간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온 느낌을 받았다.

덴마크 교육의 특징 중 하나는 아이들이 집에 와서 부모에게 얘기하고 싶은 수업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술관 방문길에 이런 모습까지 담게 된 건 어쩌면 행운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들 역시 코펜하겐 숙소로 돌아와 달나라를 체험한 이야길 잠들 때까지 끊이지 않고 했다. 문득, 덴마크의 디자이너들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려서부터 이런 환경에서 디자인을 만나고 소비한 사람들로부터 선택을 받으려면 보통 감각으로는 힘들 테니. 혹자는 다섯 살의 여행에 대한 기억이 얼마나 갈까, 반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어린 시절 이렇게 여행을 했던 기억들, 그리고 미술관에서의 수많은 에피소드는 성인이 되었을 때 자연스레 어딘가로 떠날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번 여름, 캠핑을 통해서건 미술관에서건 새로운 공간에서 자녀와 함께 낯선 이야기들을 하길 바란다. 그렇게 새로운 영감을 주는 것만으로도 함께 여행을 다녀야 할 이유는 충분할 테다. 심재원(그림에다 작가, 유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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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

내가 사랑하는 도쿄의 여름, 그리고 미술관

긴 장마가 끝난 여름의 도쿄는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습하고 뜨겁다. 이럴 때는 집에서 에어컨이나 빵빵하게 틀어놓고 시원한 녹차를 마시며 히사이시 조의 ‘Summer’를 듣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가끔 몸이 근질근질할 때는 이른 아침 서둘러 집을 나선다. 행선지는 평화롭고 특유의 한적한 멋이 있는 세타가야 지역의 세타가야 미술관. 개인적으로 여름의 눈부신 도쿄를 즐기기에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 아닐까 싶다.

언젠가 이곳에서는 <작품이 없는 미술관>이라는 타이틀의 전시가 열렸다. 팬데믹으로 인해 모든 전시 계획이 어긋나버린 기간 중에 태어난 기획으로, 이름 그대로 작품이 없는 미술관 자체를 있는 그대로 내어 보여준 것이다. 사실 하얗게 텅 빈 캔버스로서의 미술관을 오롯이 마주한다는 건 기묘한 경험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유명 작가의 작품 전시보다 더 잔잔한 감동과 여운이 있었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지역사회 시민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어떤 역할과 가치를 지니는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처음으로 진지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비워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연스레 디자이너 하라 켄야가 말하는 ‘공(Emptiness)’ 개념이 떠올랐다. 비우기 때문에 많은 것을 자유롭게 담을 수 있다는 것. 그건 미술관의 역할을 관람객에게 작품을 ‘보여주는’ 일방적 발신의 기능에 한정 짓는 것이 아니라, 빈 그릇을 꾸밈없이 내보이며 관람객에게 자신만의 무수한 의미를 담아보라는 소통의 제안이다. 비어 있는 미술관을 보니 그제야 건축물의 디테일과 포인트가 천천히 눈에 들어왔다. 빛과 그늘을 절묘하게 계산한 전시실, 면과 선을 음악처럼 율동적으로 배치한 입구, 시퀀스(Sequence)가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통로와 더불어 담백한 컬러의 타일과 의자의 조화 하나하나가 근사한 작품이다. 동선에 따라 전시실 벽 곳곳에서는 미술관을 설계한 우치이 쇼조의 이야기가 깨알 같은 글씨로 붙여져 있었다.

“미술관은 미술을 전시하는 공간뿐 아니라 생활과의 관련성을 파악하고 보여주는 자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생활 공간화야말로 오늘날 공공 건축에 요구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건축이 매력 없는 것은 건축에서 자연의 이미지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건물 등지를 방문할 때 우리는 마음에 평온을 느낀다. 모진 풍상을 견딘 건축물이 자연 속에서 풍화된 모습을 보면 건축이 자연의 일부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로맨틱한 추억뿐만 아니라 그 건축이 자연의 질서에 깊게 관련 있는 상태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건축의 목적이나 기능으로 생활을 채운다. 하지만 건축과 사람과의 관계는 목적이나 기능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각 건축이 가진 독자적인 공간을 공유하며, 그 정신을 공감함으로써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상호 관계를 맺는다. 정신의 전달에 관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미술관은 3가지 콘셉트를 특징으로 한다고 한다. 생활 공간, 오픈된 시스템, 공원 미술관으로서 미술관이다. 특히 많은 창문이 있는데 이는 이 건물이 추구하는 방향성을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부분이다. 안이면서도 밖이고, 밖이면서도 안일 수 있는 열린 개방성. 실내의 차경을 통해 우리는 가슴속에 호젓한 공원의 여름을 들일 수 있고, 반대로 밖에서 공원을 산책하다 문득 고개를 돌리면 공원 속에 고이 잠들어 있는 것 같은 신비롭고 단아한 모습의 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여름의 한가운데, 미술관을 나오면 울창한 숲이 우리를 맞이한다. 꽃들 사이 커다란 나무 그늘 밑에 앉아 잠시 쉬어가길. 코모레비(木漏れ日, 싱그러운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에 눈을 맞출 수 있기를. 지극히 일상적이지만 소중한 한낮의 여유, 잠깐의 여백이 소중하다는 것을 이 풍요로운 공원 안의 미술관이 말해준다. 세타가야 동네가 주는 이토록 애틋하고 넉넉한 품에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 건강히 살아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우리 생의 충만한 기쁨을 맛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민경(에디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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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ALY

단 하루의 베로나

유럽의 여름은 더디게 찾아오지만, 일단 태양이 그 기세를 펼치면 몸은 금세 뜨거운 햇살에 휘감긴다. 차가운 리슬링 와인을 음미하는 밤, 반짝이는 샐러드 한 접시, 슬리브리스 드레스로 자신을 맘껏 드러내는 이탈리아 여인들, 기어이 테라스에서 밤을 새우는 청춘들. 여름의 풍경은 그 순간의 소리들만큼 멀찍이 퍼져간다. 오랜만에 멀리 떠나온 여행이다. 엄마와 단둘이서 말이다. 지난 두 주 동안 밀라노와 피렌체, 베네치아를 지나왔다. 한껏 관능적인 이탈리아의 미감에 심취한 엄마는 더 이상 만끽할 아름다움은 없을 것이라고 믿는 눈치였다. 북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우리는 이탈리아의 마지막 여정지인 베로나에 도착했다.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의 아디제강 가에 위치한 중세 도시, 이곳엔 2000년 전에 지어진 로마시대 원형경기장이 있고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단 하루의 여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로나에 온 이유는 거대한 성안의 뮤지엄 때문이었다.

카스텔 베키오. 14세기에 지어진 성채로 베로나 도심 동쪽과 아디제강을 연결하는 다리를 포함한 거대한 요새 건축물이다. 깊은 해자를 건너 성으로 들어선다. 붉은 벽돌의 성채는 너무나 강렬해서 유적이라기보다 오래전 폭발해버린 화산처럼 다가온다. 성과 벽, 탑과 그것들을 잇는 다리들의 과감한 직선, 고딕 시대 벽돌의 묵직한 아름다움은 강렬하다 못해 미스터리하게 다가온다. 이 성채 안에 뮤지엄이 생긴 건 1926년, 이후 여러 번의 침공과 손상으로 1950년대에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탈리아 건축가 카를로 스카르파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카스텔 베키오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다. ‘콘크리트의 시인’이라 불린 건축가답게 그는 또 한 번 특유의 디테일과 장인적인 공법을 구사한다.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스카르파의 콘크리트 부조, 미니멀한 분수가 긴장감을 자아낸다. 내부의 창과 문, 바닥, 구조 일부, 그리고 유물들을 위한 패널과 진열장, 좌대까지도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 듯하다. 가느다란 메탈 패널에 매달린 성화, 베로나의 석재 패치워크, 미니멀한 창으로 끌어들인 빛, 콘크리트의 음영들. 화석처럼 건물의 일부였던 유물들이 공간에 가벼이 떠 있기를 시도한다. 만테냐, 피사넬로, 루벤스와 틴토레토의 묵직한 그림들이 전례 없던 감각의 가벼움을 얻은 듯하다. 고딕의 외피 안에 담긴 스카르파의 모던한 감각과 아이디어. 과연 스카르파에게도 불가능한 것이 있었을까? 카스텔 베키오 안에서 스카르파 찾기. 숨은그림찾기처럼 진귀한 건축적 경험이다. 이곳이 1000년의 유적지에서 더 경이로운 건축적 베뉴로 거듭난 까닭이다.

좁은 계단을 지나 망루로 나간다. 성벽을 따라 걸으며 옛 도시 베로나의 풍경을 내려다본다. 온통 벽돌로 지어진 붉은 도시의 향연. 거기에 카스텔 베키오의 웅장한 벽에서 잠시 넋을 잃는다. 성의 다리를 건너 강으로 향하는 사람들, 이곳을 통과해 학교를 오가는 학생들의 일상은 어떤 색채로 채워질까? 1000년 전과 오늘을 아무렇지 않게 교차하는 감각. 뮌헨으로 가는 도중의 단 하루짜리 베로나는 베니스나 피렌체의 완벽한 고색창연함과는 다른 대체 불가능한 인상을, 추억을 남겼다. 아쉬우면서도 애틋했다. “베로나는 예상치 못한 선물이야. 이탈리아 여행의 조용한 마침표 같달까?” 카페에 앉아 엄마가 말했다. 예상치 못한 감흥은 더 큰 울림을 준다. 그리고 그 감흥을 만나기 위해서는 더욱 부지런히 몸과 마음을 움직어야 한다는 사실. 그건 여행하는 자의 묵직한 몫이기도 하다. 박선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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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ITZERLAND

스위스 적십자 박물관에서 느낀 것들

4년 전 그날, 하나만 어긋났어도 그곳에 갈 리가 없었다. 제네바 출장 뒷날 하루 휴가를 안 냈다면, 그날 박물관이 모여 있던 레만호에 안 갔다면, 하필 그날 내린 비를 피하지 않아도 되었다면, 그때 하필 도보 5분 이내에 적십자 박물관이 없었다면 나는 그곳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삶의 여러 우연처럼 나는 이런 과정을 거쳐 그 박물관에 갔다. 그곳은 이후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에 약간은 영향을 미쳤다.

적십자 박물관은 우리가 아는 국제적십자가 만든 상설 박물관이다. 제네바 공항과 구도심 사이 UN 본부 근처에 있다. UN 본부 근처에는 제네바 식물원과 스위스 자연사 박물관, 아리아나 박물관 등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무료로 개방하는 멋진 박물관이 많다. 이 세 박물관도 아주 멋지다. 소장품과 건축 모두 규모는 작으나 기획이 지적이며 내용은 충실하고 비례감이 탁월하다. 스위스 특유의 멋이다. 반면 적십자 박물관은 보통 건물 안에 있어 바로 앞에 가도 감흥이 없다. 입장료도 15스위스프랑이니 싸지 않다. ‘이 돈을 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 ‘언제 또 가 보겠어’ 싶어 들어갔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자마자 나는 이곳에 오길 잘했다고 확신했다. 일단 정보를 보여주는 방식이 굉장히 창의적이고 세련되었다. 실내 건축, 조명, 각종 전시물 등 모든 게 한 방향을 가리키며 세련되게 주제를 전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전시장 초입은 어두운 방으로 의자들이 놓여 있고, 그 의자 맞은편에 세로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다. 의자에 앉아 헤드폰을 끼면 전 세계 난민들이 자기가 겪은 전쟁과 망명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와 사람들의 표정이 박물관의 주제 그 자체다. 전쟁의 참혹함. 적십자의 긍정적 역할.

창의적인 주제 표현은 전시장 곳곳에서 계속된다. 전시장 한쪽은 종이로 만들었다. 2014년 프리츠커건축상을 받은 건축가 반 시게루의 종이 건축이다. 종이 건축은 목재 이상으로 튼튼하고 저렴하며 수급이 쉬운 지관통을 이용해 쉽고 튼튼하고 빠르게 재난 현장에서 건축물을 짓는 방법론이다. 전시장 한 부분이 바로 그 종이 건축이었다. 다른 한쪽에는 독일 홀로코스트 당시 희생된 유태인들의 문서가 아크릴 박스 안에 전시되어 있었다. 도서관 서가만 한 대형 아크릴 박스가 방 하나에 가득 찬다. 문서 뭉치만 보고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전쟁통에 죽었구나’를 깨닫게 된다. (기획 면에서) 효율적이면서 (관람 면에서) 숙연해진다. ‘이게 뭐지’ 하고 들여다봤다가 설명을 읽고 ‘이거구나’ 하고 깨닫는 과정들이 반복된다.

훌륭한 문장은 독자에게 스며든 뒤 그를 조금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좋은 박물관, 더 나아가 좋은 정보도 같다. 이 박물관이 내게 미친 영향도 그랬다. 일단 나는 이때의 경험 이후로 내가 정보를 다루는 직업을 가진 한 박물관에 가보게 됐다. 진귀하거나 값나가는 것이 없어도 가치 있고 아름다운 정보를 만들 수 있었다. 좋은 것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건 제대로 된 태도와 확고한 관점이지 상황이나 여건이 아니었다. 스위스 적십자 박물관에서 그런 것을 배웠다. 서유럽의 여름은 무척 멋진 대신 조금 덥다. 낮에 시원한 박물관 건물에서 고요히 감상을 즐길 수 있는 그 시간을 그려본다. 박찬용(앤초비 북 클럽 에디터)

아름다운 건축물과 영감을 주는 전시 속에서 여름을 나는 일은 얼마나 멋진가. 세계 곳곳의 뮤지엄으로 여행을 떠난 사람들의 특별한 시간.

CREDIT INFO

에디터
편집부
일러스트레이터
박다솜(@s0m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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