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가구박람회(Salone del Mobile)’가 올해로 60주년을 맞이했다. 이 기념비적인 해에 코로나19 팬데믹마저 종식되면서 어느 때보다 뜨거울 것으로 기대되었던 밀라노의 6월. 박람회장인 로 피에라부터 압도적인 몰입감의 장외 전시가 열리는 밀라노 도시 곳곳을 밀도 있게 취재했다.
밀라노디자인위크가 돌아왔다! 아, 감격스럽다. ‘밀라노가구박람회’ 역사상 최다 업체가 전시에 참가했던 2019년 이후 갑작스러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며 이례적으로 전시를 열지 못했던 2020년을 지나 2021년에는 규모를 축소하고 시기도 9월로 옮겨 ‘슈퍼살로네(SuperSalone)’로 명맥을 이어갔던 터다. 주최 측의 추산에 따르면 올해는 팬데믹 이전 규모에 가까운 2000여 개가 넘는 업체가 로 피에라에서 열리는 전시에 참가 신청을 했고, 전 세계에서 한달음에 달려온 바이어와 딜러, 프레스, 건축가와 디자이너를 포함해 일반 관람객들은 우버와 공유 자전거 또는 퀵보드를 타고 바쁘게 전시장들을 오갔다. 브레라 거리의 유서 깊은 궁전부터 예술대학교의 7세기 정원, 개장을 앞둔 역의 터널, 교외 지역의 병원과 공장 건물까지 밀라노 도시 곳곳 다채로운 공간에서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와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일 수 있는 설치형 전시가 열렸다. 브레라 디자인 디스트릭트에 자리 잡은 에르메스는 나무 구조물 위에 가볍지만 질긴 색한지로 마감한 4개의 파빌리온을 세웠고, 이 아름다운 파빌리온 안에서 에르메스홈 장인들이 만든 컬렉션을 공개했다(오프닝 당일 에르메스 전시장은 화려하게 차려 입은 밀라노 멋쟁이들로 매우 혼잡했다). 올해 처음으로 밀라노디자인위크에 참여한 포르쉐의 <아트 오브 드림스(Art of Dreams)>전은 플로럴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환상적인 비주얼을 선사했다. 세계적인 아티스트 다니엘 아샴의 초대형 조형물로 밀라노디자인위크 최고의 포토존으로 꼽힌 콜러(Kohler)의 전시장은 건물 밖까지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의 대기 줄이 늘어설 정도로 특히 인기였다. 토르토나에서는 이케아의 <IKEA FESTIVAL>전, 슈퍼스튜디오의 <SUPER DESIGN SHOW>전 등 대형 전시가 나란히 열렸으며, 디자이너 토크를 비롯한 여러 이벤트가 진행됐다.
SUSTAINABLE
지속 가능성, 디자인 신념으로 자리 잡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인류 최대의 위기를 겪으며 자연과 환경의 중요성을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구의 환경을 우선하며 제품 과잉을 경계하자는 공감대 속에서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은 ‘지속 가능한(Sustainable) 디자인’을 고민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밀라노디자인위크를 통해 모두의 디자인 신념으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플라스틱 가구의 명가 카르텔은 일리 커피 캡슐을 분쇄한 재료로 새로운 의자를 만들어냈으며, 나니 마르퀴나 역시 과잉 생산과 소비를 경계하여 쓰고 남은 원사로 만든 리러그(Rerug)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케아는 2030년까지 전 제품에 재생 가능하거나 재활용된 소재만을 사용한다는 목표를 밀라노디자인위크를 통해 공개하며 새로운 컬렉션과 지속 가능한 재료로 교체한 제품들을 소개했다. 전시에 참가한 많은 브랜드가 유해한 본드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재료들끼리 수월하게 분리돼 재활용이 용이한 가구를 선보이기도 했다.
MINI INTERVIEW
일세 크로포드
일상 속에서 편안하고 아름답게 가꿀 수 있는 공간을 제안하는 그녀에게 지속 가능한 디자인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최근 제작한 이케아 향초는 재활용 가능한 유리용기로 만들어 초를 다 태운 뒤에는 식기나 연필꽂이 등으로 사용할 수 있다. 뚜껑도 따로 디자인해두었다. “기업의 목표는 낮은 비용으로 제작해 많이 판매하는 것이지만 그러한 현실 안에서도 ‘잘’ 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실행하는 게 중요합니다.”
CRAFT & FASHION
패션 하우스들의 감각적인 시선과 공예적 접근
헤리티지가 있는 브랜드가 로컬의 장인들과 협업하는 방식은 이제 흔한 일이 됐다. 스페인의 패션 하우스 로에베는 아름다운 이심바르디 궁전(Palazzo Isimbardi)에서 <Weave, Restore, Renew>라는 설치형 전시를 열었는데, 높은 회랑을 감싼 목재 구조물에는 전 세계에서 수집해 로에베의 가죽으로 보강, 수리해 공예적으로 재탄생한 240개의 바구니를 전시했다. 또한 로에베 재단 공예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한국의 이영순이 전통 지승 기법으로 만든 항아리 모양의 토트백도 선보였다. 루이 비통은 쟁쟁한 디자이너들과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을 소개했으며, 늘 기대 이상의 프레젠테이션을 보여주었던 디젤은 박람회장 부스에서 주거 환경에 대한 감각적인 시선을 보여주었다. 그뿐 아니라 미로처럼 꾸며진 디스퀘어드의 부스는 강렬하고 과감한 패턴의 벽지로 꾸며져 유니크한 인테리어를 계획할 때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어필했다.
OUTDOOR
섬세하고 시적인 아웃도어 가구의 등장
아웃도어 가구가 갖추어야 하는 미덕은 무엇일까? 올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첫선을 보인 포르나세티의 아웃도어 컬렉션은 그리스 사원의 기둥을 연상시키는 하부 디자인의 테이블과 창의적이며 예술적인 영감의 아카이브에서 꺼내온 포르나세티 고유의 패턴을 야외용 패브릭에 프린트함으로써 가구가 놓인 곳의 분위기가 일변하는 마법을 부렸다. 또 폴트로나 프라우 그룹에 합류한 미국의 야누스 에 시에(Janus et Cie)는 로 피에라의 전시장에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 앙드레 푸가 디자인한 아웃도어 가구들을 소개하기 위해 실제로 작은 수영장을 만들어 수영장 사이드에 가구를 디스플레이한 점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또한 트리뷰(Tribù)는 촬영 장비로 사용하는 조명을 부스 천장에 설치해 섬세한 빛과 그림자를 연출했는데, 가벼우면서도 고급스러운 컬러 팔레트의 제품들은 마치 하얀 사막 위, 회벽 사원 앞에 놓인 아웃도어 가구를 구경하는 듯한 기분을 선사했다.
KITCHEN
기술을 품은 디자인 주방의 약진
올해는 격년으로 전개하는 주방 가구 및 가전 전시, ‘유로쿠치나(EuroCucina)’가 열리는 해로 81개의 브랜드가 참가했으며 팬데믹 이후 집과 가족 중심으로 변화한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주방 가구와 공간 및 소재의 한계를 뛰어넘는 디자인의 약진이 돋보였다. 물과 불을 사용하기에 필히 수반되는 제약, 음식물로 인한 오염 걱정에서 자유로워지기라도 한 듯 자연에서 채집한 대리석을 과감하게 사용한 싱크 볼과 심미성을 높인 나무 소재의 상하부장, 오픈형 선반이 인상적. 하이엔드 주방 가구 브랜드 다다(DADA)는 디자이너 빈센트 반 두이센과 천연대리석 단일 재료로 주방 아일랜드 전체를 제작해 건축미가 돋보이는 주방을, 알페스(Alpes)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꾸밀 수 있는 솔리드 스테인리스 스틸 유닛 주방을 소개해 이목을 끌었다. 보피(Boffi)는 수납력을 강화한 대형 아일랜드 시스템 주방을 공개했는데, 상판과 화구가 일체형인 심플한 아일랜드도 돋보였다.
‘밀라노가구박람회(Salone del Mobile)’가 올해로 60주년을 맞이했다. 이 기념비적인 해에 코로나19 팬데믹마저 종식되면서 어느 때보다 뜨거울 것으로 기대되었던 밀라노의 6월. 박람회장인 로 피에라부터 압도적인 몰입감의 장외 전시가 열리는 밀라노 도시 곳곳을 밀도 있게 취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