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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집과 낭만

그림을 집에 걸어두는 일

On June 0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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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샀다. 내가 구입한 가장 큰 그림이었다. 2016년 여름이었다. 홍대 앞의 작은 갤러리에서 열린 전나환 작가의 전시 오프닝에는 사람이 많았다. 작가의 세 번째 전시였다. 당시 나와 약간의 친분이 있던 전나환 작가는 커밍아웃한 게이 아티스트로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던 시기였다. ‘이름이 알려지는 시기’라는 것은 참 미묘한 의미다. 그건 다른 말로 하자면 ‘조금씩 알려지기는 시작했지만 아직 부유한 컬렉터들에게까지 인기가 있는 건 아니어서 물감과 캔버스를 마음껏 사고 홀로 커다란 작업실을 사용할 만큼 작품이 팔리지는 않는 시기’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건 다시 말하자면 컬렉터가 되고 싶지만 아직 그만한 벌이는 없는 초보 컬렉터 지망생들에게는 절호의 기회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오프닝 파티에는 서울의 모든 힙스터들이 다 모여 있었다. 힙스터들이란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속도가 빠른 사람들이다. 그들이 모여 있는 곳은 그 시점 서울에서 가장 힙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장소다. 나는 어차피 그림을 하나 살 생각이었다. 20평 남짓 아파트에 살고 있던 시절이라 큰 그림을 살 생각은 아니었다. 전동 드릴로 벽에 구멍을 뚫을 생각까지도 없었다. 가벼운 캔버스에 그려진 작은 그림이라면 벽지와 벽면 사이에 꽂아서 사용하는 ‘꼭꼬핀’(이 잡지를 읽는 당신은 이 핀의 존재를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으로 충분히 벽에 고정시킬 수 있다. 한국의 집은 층고가 높지 않기 때문에 1m가 넘는 큰 그림을 사서 걸 용기를 내기는 쉽지 않다. 

전시회를 돌아보다가 한 그림 앞에서 발이 멈췄다. 제법 사이즈가 큰 그림이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은 선이 명확했다. 그 그림은 유독 선이 불명확했다. 전시의 제목은 ‘BIGGER THAN THE MOUNTAINS’였다. 제목에 어울리는 거대한 외눈박이 남자들의 나신이 가득했다. 분명 작가가 더 애호하는 그림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더 갈구하는 그림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가장 빨리 그려낸 듯 선이 모호한 그 그림이 좋았다. 20평 아파트 벽에 걸기에는 조금 큰 사이즈였지만 도무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작가가 반가운 얼굴로 다가왔다. 가장 마지막 순간에 그려낸 작품들 중 하나라고 했다. 다른 그림들과는 확실히 뉘앙스가 조금 달랐다. 작가가 말했다. “옆에 있는 그림도 같은 시기에 그린 거예요.” 함께 있던 큐레이터가 말했다. “옆에 있는 그림은 이미 사시겠다는 분이 계셔요.”

그 말은 신호였다. 일종의 달리기 신호였다. 큐레이터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은 올림픽 육상 종목에서 총성이 울리는 순간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가격을 물었다. 180만원이었다. 180만원이라는 건 미묘한 가격이다. 그림을 한 번도 구입한 적 없는 사람에게는 조금 비싸게 들리는 가격이다. 하지만 컬렉팅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는 지나친 고민 없이 오케이를 외칠 수도 있을 정도의 가격이다. 나는 말했다. “이 그림을 사야겠어요. 이걸 살게요.” 그림 위에 판매됐다는 딱지가 붙자 에코백을 든 젊은 힙스터들의 부러워하는 눈빛이 꽂혔다. 아니, 사실 그들은 그냥 쳐다봤을 뿐이다. 마음에 드는 작가의 가장 비싼 작품 중 하나를 구입했다는 나의 의기양양함에 그렇게 느꼈을 따름이다. 그래도 기뻤다. 그전에는 100만원이 넘는 그림을 구입한 적은 없었다. 처음으로 마음의 금전적 한계선이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마침내 나는 ‘초보 컬렉터’로서의 데뷔전을 훌륭하게 치러낸 것이다. 

몇 년 뒤 나는 새로운 그림을 샀다. 한국에서 활동 중인 일본인 작가 에이메이 카네야마의 그림이다. 친구 인스타그램에서 그의 그림을 보고 감탄했다. 에이메이 카네야마는 폭발하는 색채의 향연을 캔버스에 그리는 사람이다. 그건 구상화이기도 하고 추상화이기도 하다. 어떤 그림은 물감을 덩어리째 집어서 캔버스에 던진 것 같기도 하다. 어떤 그림은 물감을 쓱쓱 발라서 무언가 알듯 모를 듯한 구조를 만들어낸다. 운이 좋게도 나는 친구의 소개로 에이메이 카네야마의 작업실에 놀러 갈 기회를 얻었다. 한남동의 작은 작업실에는 10점 남짓한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그중 한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고요한 그림이었다. 나는 그 고요함이 좋았다. 하얀 캔버스 위에 녹색과 더 진한 녹색이 중첩되며 만들어내는 구조가 마치 산인 것 같기도 하고 해변에 밀려드는 파도인 것 같기도 했다. 평화였다. 작업실을 나서는 내 손에는 그 그림이 들려 있었다. 가격은 200만원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가장 처음으로 산 그림은 나의 자화상이다. 아니, 사실 그건 내 자화상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건 역시 내 자화상이다. 한국의 가장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 중 한 명일 아티스트 이강훈의 전시회에 갔다가 그 그림을 보았다. 2014년에 열린 그의 개인전은 일러스트와 아트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기묘하고 뒤틀린 아름다움으로 가득했다. 뭐라도 사고 싶었다. 사야 했다. 다만 그림의 사이즈가 지나치게 커서 다른 작품들은 도무지 구입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전시회 구석에 흑백으로 그린 자화상 시리즈가 서너 점 걸려 있었다. 그중 하나는 분명히 나였다. 마른 얼굴에 퀭한 눈빛에 뿔테 안경을 쓴 남자의 자화상은 당시의 나와 지나치게 닮아 있었다. 지금 나는 75kg의 육중한 중년이지만 당시 내 몸무게는 50kg가 채 나가질 않았다. 누가 몸무게를 물어보면 “케이트 모스 전성기 몸무게예요” 하며 웃고 말던 시절이다. 그 그림은 나였다. 동시에 나는 진실을 알고 있다. 그 그림은 이강훈 작가의 자화상이었다. 우리 둘은 약간 닮은 데가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그림은 누구예요?”라고 묻지 않았다. 그냥 나의 자화상이라고 착각하고 싶었다. 계속 착각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림을 샀다. 가격은 80만원이었다. 나는 여전히 이강훈 작가에게 그림 속 인물이 누구인지 묻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거실 벽에 걸려 있는 그 그림은 여전히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아티스트에게 문의해서 만든 자화상으로 남아 있다. 행복한 자기기만이다. 

여기까지가 나의 초보 컬렉터로서의 역사다. 나는 운이 좋았다. 아티스트 친구가 있었다. 아티스트를 아는 친구가 있었다. 그 덕에 발빠르게 신진 작가들의 전시회에 가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었다. 아는 작가들의 그림을 산다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다. 벽에 걸린 그림을 그린 사람과 나 사이에 인간적인 케미스트리가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에 컬렉터로서 느끼는 자부심은 글로 설명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그림을 언젠가는 한 번 사볼까 고민하고 있는 당신에게 아티스트와의 내밀한 친분이 있어야 할 필요는 전혀 없다는 이야기는 꼭 하고 넘어가야겠다. 오히려 당신에게 필요한 건 그제 갤러리아백화점에서 본 셀린느의 200만원짜리 재킷을 포기하고 첫 번째 그림을 살 수 있는 자본적 용기다. 

몇 년 전부터 한국 미술 시장은 베수비오 화산처럼 폭발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그림을 사고 싶어 한다. 모두가 아트를 자신의 공간과 삶 속으로 들이고 싶어 한다. 그래서 당신은 KTX 표를 끊어서 평소에는 잘 가지도 않던 부산에 한 번 가볼까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아트 부산’에 참가해 유명한 작가들의 그림을 열망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꼭 거대한 아트 페어에 가야 할 의무는 없다. 서울에는 수많은 작은 갤러리들이 있다. 작은 갤러리에서 첫 번째 전시를 계획하고 있는 수많은 작은 작가들이 있다. 북촌이나 인사동, 한남동의 길을 걷다가 작은 갤러리를 발견하면 그냥 들어가 보시라. 분명히 당신의 마음을 흔드는 그림이 있을 것이다.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십시일반 NFT로 구입하는 것과 당신의 마음에 쏙 드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젊은 작가의 작은 작품을 화장실 옆 벽에 거는 것은 완벽하게 다른 행위다. 가로세로 50cm에 불과한 그림이 당신의 공간에 들어오는 순간 느끼게 될 예술적 고양감은 생각보다 훨씬 충만하다. 나를 믿어도 좋다. 

마지막으로 나는 전나환 작가에게 애도를 바치며 이 글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고 있다. 전나환은 지난 2021년 12월 7일 세상을 떠났다. ‘오픈리 퀴어’로서 스스로의 성적 지향을 예술로 승화하는 동시에 다양한 성소수자 활동에 자신의 그림을 굿즈나 일러스트의 형태로 헌사했던 그는 많은 위대한 젊은 천재들처럼 지나치게 빨리 떠나버렸다. 작품들이 온당 받아야 할 조명과 가격을 제대로 받지도 못한 채 가버렸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사후 전시회라는 슬픈 이름으로 언젠가는 다시 공개가 될 것이다. 지금 내 거실 벽에는 전나환이 걸려 있다. 나는 180만원으로 이르게 떠난 작가의 가장 눈부시던 순간을 구입했다. 그건 내 인생의 가장 근사한 쇼핑이었다고 확신한다.

글쓴이 김도훈

오랫동안〈씨네21〉에서 영화기자로 일했고,〈GEEK〉의 패션 디렉터와
〈허핑턴포스트〉편집장을 거쳐《이제 우리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라는 책을 썼다. 평생(?)에 걸쳐 수집한 물건들과 아름다운 물건들이 공존하는 그의 아파트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김도훈 나라다.

CREDIT INFO

에디터
심효진
김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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