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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OR MOMENT

검고 우아한 빛과 결, 작가 문채훈의 하루

On May 09, 2022

문채훈 작가는 유기에 옻칠을 여러 차례 덧입힌다. 그의 작품에는 우리의 삶만큼이나 다채롭고 많은 결이 있다. 그녀의 작품이 탄생하는 일상 속 시간을 함께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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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문채훈의 순간들

문채훈 작가의 하루는 아이의 웃음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남편과 아이가 각각 출근과 등원하기까지 순식간에 오전 시간이 지나간다. 그런 후에야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정신없이 보낸 아침에서 벗어나 그날 해야 할 작업을 구상하고 계획한다. 집의 1층에 작업실이 있는데, 늘 작업실과 집이 먼 곳에 위치해 ‘더 이상 길에 시간을 버리고 싶지 않아!’ 하는 마음으로 지금의 집을 지었다.

라이프스타일에 딱 맞춰 지어 올린 터라 모든 곳에 정성이 깃들어 있고, 한적한 곳에서 자연을 더 가까이하며 삶과 작업에 더 집중하게 됐다. 일상에서 작업의 영감을 얻곤 하는 그녀에게 매 순간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지금의 집은 지내면 지낼수록 애정이 생기는 최적의 공간이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문채훈 작가는 졸업 후 회사에 다니던 시절 취미로 배우게 된 옻칠의 매력에 푹 빠져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떤 소재와도 만날 수 있고, 어떤 형태도 될 수 있는 ‘마감재’라는 점에서 옻칠은 배우면 배울수록 더 깊이 빠지는 매력을 지닌 소재였다. 옻칠과 함께할 수 있는 전통 소재를 공부하다 찾은 것이 유기였고, 밝고 우아한 금빛 유기와 검고 깊은 매력의 옻칠이 만난 지금의 작업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나라의 다양한 전통 소재와 제작 기법들을 공부하며 앞으로 나아갈 작업 세계를 위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중이다.


작가 문채훈의 순간들

  • # 일상의 소중한 순간

    요즘은 일상의 모든 순간 그 자체가 정말 소중하다는 생각을 해요.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이를테면 여행지에서의 순간처럼 특별한 시간들만이 소중하다 여겼었거든요. 바쁘고 정신없이 흘러가는 와중에도 매일이 새롭고 소중해요. 어제는 피지 않았던 꽃이 오늘은 피어 있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요.

  • # 작업의 희열을 느끼는 순간

    작업에 깊이 몰입해 있을 때. 무언가에 깊이 몰입해 있을 때만큼 행복한 때는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작업에 푹 빠져 있는 시간을 가장 좋아하죠. 몰입하다 보면 시간도,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잊게 되는 기분이 들기도 해요. 매번 작업을 할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아니기에 더 특별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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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영감이 번뜩이는 순간

    손을 움직이고 있을 때나 무언가를 만들고 있을 때요. 저는 머리로만 구상하기보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 때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요. 어떤 소재든 이렇게도 만져보고 저렇게도 만져보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조형이나 개념을 떠올릴 수 있게 되더라고요.

  • #마음의 환기가 필요한 순간

    작업을 하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거나 막막한 마음이 들 때면 잠시 산책을 하곤 해요. 집 가까이에 좋아하는 호수가 있어 그 길을 걷기도 하고요. 반려견 ‘보로’를 산책시키며 마음을 환기시키기도 해요.

  • # 작가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

    작품을 통해 누군가를 만나고, 그 누군가가 나의 작품을 사랑해줄 때. 특히 전시를 할 때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되는데 작품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때 행복한 기분이 들어요. 나만의 생각과 고민, 철학과 취향 등 많은 걸 담아낸, 저에겐 물건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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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금속에선 볼 수 없는 유기만의 독특한 색감과 빛,

 검고 깊은 느낌의 옻칠과 밝고 우아한 금빛의 유기가 함께할 때
 느껴지는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대비감이 정말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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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문채훈에게 묻고 답을 들었다

작업실을 찾아오면서 이런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름다운 호수와 산이 가까워서 정말 좋아 보여요.
집과 작업실이 자리하기에 정말 딱인데요. 처음부터 계획한 건 아니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무모했던 덕분에 이곳에 자리 잡을 수 있었어요. 우연히 이 동네를 알게 되자마자 신혼집을 팔아버렸거든요. 남편과 막연하게 “우리 나중에 1층엔 작업실이 있는 집 지어서 살자” 하곤 했는데, 몇십 년 뒤에나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설계와 시공까지 힘든 점도 많았지만 모든 면에서 작업에 더 집중하며 지낼 수 있어 소중한 공간이에요.

집과 작업실이 함께하는 공간에서의 하루가 궁금해요.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아침 7시쯤이면 일어나 아침을 준비해요. 그러는 동안 아이와 남편이 일어나고, 다 같이 식사를 하고 나면 남편이 아이를 등원시키고 출근하죠. 그때부터 저만의 하루가 시작돼요. 작업을 구상하는 시간을 갖다가 1층 작업실로 내려가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하죠. 작업을 마칠 때까지 몰입하는 것을 좋아해서 서류 작업 등의 일들은 한 번에 몰아서 하곤 해요. 그렇게 작업에 몰입하다 보면 금세 하루가 가고, 저녁이 되면 작업을 마무리하고 아이를 데리러 가요.  

쉴 새 없이 흘러가는 하루네요. 말씀해주신 일과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편인가요?
그렇죠. 학기마다 다르지만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 시간도 이미 저에겐 일상이라 생각해보면 정말 규칙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요.

작가님의 작품도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탄생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긴 과정이긴 하지만 알기 쉽게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우선 스케치를 하며 생각과 형태를 정리해요. 단번에 떠오를 때도 있지만 몇 주를 고민하기도 하죠. 형태가 구체화되면 종이나 플라스틱처럼 다루기 쉬운 소재로 실제 사이즈를 만들어 형태의 여러 가지 면을 점검해요. 유기를 제작해주시는 장인 선생님들과 상의하며 문제가 되는 지점은 없을지도 살피고요. 그렇게 제작된 유기 표면에 옻칠을 시작해요. 제 작업의 옻칠은 독특한 결을 갖고 있어요. 옻과 흙을 혼합해 섬세한 결을 표현할 수 있는 점도를 만들어 붓의 결로 텍스처를 만들거든요. 초칠부터 마감을 하기까지 다섯 번의 옻칠, 그사이 네 번의 고온 경화 과정을 거쳐 완성해요.

많은 정성을 쏟아부어야 하는 긴 과정이네요. 작업의 도구로 옻과 유기를 선택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많은 분이 제가 당연히 공예를 전공했을 거라 생각하시는데 저는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다 옻칠을 우연히 접하게 됐죠. 취미로 시작했던 건데 정말 즐거웠어요. 컴퓨터 앞에만 있다 실제 소재를 만지며 뭔가를 만든다는 게 자유로운 기분이 들게 해줬거든요. 고민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옻칠을 배우기 시작했죠. 전통 소재는 계승되는 과정에서 소재 간의 조합이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전 비교적 그런 부분에서 자유롭다 보니 여러 전통 소재를 함께 사용해보자 하는 생각을 한 거죠. 다른 금속에서 느낄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유기와 검고 우아한 옻칠의 극적인 대비에 점점 빠져들 수밖에 없었어요.

작가님의 작품들, 특히 유기 그릇 작품들을 볼 때마다 이런 그릇에 식사를 하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전통의 가치와 손으로 만든 것의 가치를 내세우는 것,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기 위해선 동시대적 가치를 지닐 수 있어야 하고, 그 가치는 쓰임새에서 나온다고 보거든요. 그래야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고,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다고 믿으니까요. 솔직히 제가 만든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는 일이 편하진 않잖아요. 무겁고, 세척도 번거롭고, 전자레인지에 넣을 수도 없고요. 하지만 이런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는 일은 심리적인 면에서 다른 종류의 만족감을 준다고 생각해요. 대량생산 된 제품들에서 느낄 수 없는 제작자의 철학과 영혼이 담긴 작업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작품에 들이는 정성만큼 많은 철학을 담고자 하시는 게 느껴져요.
제가 작업을 통해 담아내고 싶은 건 이 3가지예요. 실험적일 것, 영속적일 것, 아름다울 것. 실험적인 것을 위해 소재를 사용하는 방법이나 조합, 미감 같은 것들을 계속 찾아내려고 노력해요. 또 영속적이기 위해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것, 변하지 않을 것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요. 마지막으로 만드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아름다움을 추구해요. 정성을 들였을 때만 나오는 섬세함, 그 소재만의 아름다운 빛 같은 것들이요.

평소 작업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무래도 소재인 것 같아요. 옻칠이라는 소재에 빠져 작업을 시작했고, 그러다 유기를 만나고, 그 작업이 오늘까지 이어졌으니까요. 요즘은 우리나라의 다양한 소재와 제작 기법들을 보며 또 다른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중이에요. 최근 2년 동안에는 육아에 집중하느라 작업에 소홀했던 것 같아요. 올해부터는 머릿속에만 담아뒀던 다양한 소재를 저만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표현하는 것에 몰입하려고 합니다.

문채훈 작가는 유기에 옻칠을 여러 차례 덧입힌다. 그의 작품에는 우리의 삶만큼이나 다채롭고 많은 결이 있다. 그녀의 작품이 탄생하는 일상 속 시간을 함께 보냈다.

CREDIT INFO

에디터
장세현
포토그래퍼
김덕창
헤어,메이크업
최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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