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경리단길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낡은 구옥들이 즐비하다. 빨간 벽돌집들을 구경하다가 만나게 되는 커다란 나무 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 비하우스의 김지영 대표가 만든 취향의 공간이다.
디자이너가 구옥을 선택한 이유
이전까지는 사람들이 패션이나 자동차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면 지금은 그 관심이 ‘집’으로 집중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워진 리빙의 세계. 그럴수록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비하우스 김지영 대표의 고민은 깊어졌다. “SNS가 사람들의 관심을 주거 공간으로 옮겨온 것은 맞지만 트렌드라는 명목하에 모두 다 비슷한 자재로 베이스를 만들고, 똑같은 빈티지 가구나 아트 피스로 내부를 채우는 것에 대한 회의가 느껴졌어요. 디자이너로서 좀 더 다양한 주거 공간의 모습들을 제시해야 하는 게 아닐까, 늘 숙제처럼 마음 한구석이 묵직했습니다.”
이제까지 그녀는 어떤 스타일에도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스타일의 인테리어를 전개해왔다. 과감한 레이아웃이나 마감재를 제안하면서 선택의 폭을 넓혀온 것도 사실. 그렇지만 ‘아파트’라는 한정된 주거 공간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눈을 돌리게 된 것이 구옥이다. “레이아웃이 자유로워지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지잖아요. 한계를 두지 않고 공간의 쓸모와 스타일을 제안해보고 싶어서 구옥을 제 스타일로 꾸며보고 싶었어요.”
구옥으로 이사를 결심하고 알아보던 중 만나게 된 것이 이태원 경리단길에 있는 40년 된 주택이다. 1970~80년대에 지어진 주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빨간 벽돌의 이층집. 정말 낡고 오래된 건물이지만 구불구불 골목골목을 찾아 들어왔을 때 발견할 수 있는 숨은 보물 같은 느낌이 좋았다. 그녀가 선택한 구옥은 지하층과 지상 2층으로 구성된 총 3개 층으로, 앞뒤에 2개의 문이 나 있는 재미있는 구조다.
처음에는 증축을 해서 드라마틱하게 바꿔보고 싶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한계에 부딪혀 업사이클링을 하기로 결정했다. 공사는 내부 철거만 한 달, 총 세 달에 걸쳐 진행됐다. “건물을 하나의 콘셉트로 통일하기 위해 지붕과 외벽을 아이보리 컬러의 외장 페인트를 칠했어요. 외부의 골목과 건물 안쪽의 경계를 분명하게 나누기 위해 임팩트 있는 문을 구해 달았고요. 디자인블럭과 질감이 있는 타일, 흙 미장 등 평소 좋아하던 다양한 마감재를 사용해 빈티지한 유럽의 무드를 구현했습니다.”
문 뒤에 숨겨진 많은 이야기
그녀의 손길로 탈바꿈한 구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신경 써서 달았다는 빈티지 나무 문이다. 비좁은 골목을 뒤로하고 나무 문을 여는 순간 그녀의 의도대로 마치 다른 세상으로 순간 이동한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아름다운 문양의 디자인블럭, 작은 테라스, 어닝을 대신해 무심하게 펼쳐진 패브릭까지 마치 유럽의 어느 오래된 주택에 와 있는 느낌이다.
지하층은 그녀가 운영하는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 비하우스의 사무실, 2층은 그녀의 개인 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그녀는 1층의 용도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하다가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간을 경험하는 재미를 나누고 싶어 카페 ‘비욘드문’을 열었다. “제가 구옥을 리모델링하게 된 계기는 정형화된 스타일에서 벗어나 다양한 스타일을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방문할 수 있으려면 카페가 제격이라고 생각했어요. 공간은 백번 설명하는 것보다 한 번 경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그녀가 공간의 스타일을 디렉팅했다면 카페의 콘셉트를 정하고 운영하는 것은 비즈니스 파트너인 최명락 대표가 맡았다. 일본에서 패션을 전공한 최명락 대표는 이미 소소취향이라는 카페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콘텐츠를 전개하고 있던 터. 그가 카페 비욘드문을 위한 콘셉트로 정한 것은 ‘여행자의 오아시스’다. “디자이너로서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여행지를 다녔어요. 낯선 여행지에서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다 발견한 의외의 장소들은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 같더라고요. 저희 건물도 마음 먹고 찾아와야 하는 골목 깊숙한 곳에 있으니 문을 열고 들어서면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한 감동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금속으로 난간을 만들어서 입구 옆에 조성한 작은 테라스에서는 마치 지중해 어느 한적한 마을 어디쯤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타일과 대리석을 이용해 만든 바와 테이블도 이국적이다. 바닥의 돌 하나, 화분 하나까지도 디자이너의 미감으로 고른 공간은, 개성과 취향을 제대로 담는다면 트렌드를 좇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울 수 있다고 말해준다.
아파트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스타일을 제안해보고 싶어 구옥을 리모델링했어요. 디자인블럭과 테라코타 타일, 흙 미장 등 기존 주거 공간에서는 잘 쓰지 않았던 다양한 자재들의 매력과 활용법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태원 경리단길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낡은 구옥들이 즐비하다. 빨간 벽돌집들을 구경하다가 만나게 되는 커다란 나무 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 비하우스의 김지영 대표가 만든 취향의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