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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안의 용감한 라이프11

바닷가살이 의외의 이득

On September 2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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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령 너머 강릉은 바람에도 벌써 가을 냄새가 난다. 얼떨결에 집을 구했던 강릉에서 올해 처음으로 긴 여름을 지냈다. 코로나19 시국이라 불러주는 이도, 불러주는 곳도 없는 것이 다행이랄까? 아침에 일어나면 인파를 피해 집 근처의 작은 해변들을 찾아다녔다.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소돌, 사천, 순포, 순긋 같은 해변들이 익숙해질 무렵 2가지를 얻게 됐다. 바닷가 사람처럼 까맣게 탄 피부와 째복의 맛이다. 정확히는 ‘째복이를 채취하는 맛’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째복은 민들조개의 일종으로 강원도 방언으로 ‘째복’이라고 부른다. 바지락보다 조금 큰 사이즈로 비단조개와도 비슷하게 생겼다. 보잘것없고 쩨쩨해서 째복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나 뭐라나. 잡는 방법도 쩨쩨하기 이를 데 없다. 허리춤 되는 깊이에서 엉거주춤 고개를 숙이고 발가락으로 모래를 살살 긁으면 단단하고 맨들맨들한 뭔가가 밟히는데 그것이 바로 째복이다. 속초에서 강릉으로 이어지는 해안가의 토속 음식점에서는 째복이로 ‘째복탕’, ‘째복전’, ‘째복무침’ 같은 다양한 메뉴를 내놓는다. 예전에는 동해안 어디서나 발로 비비기만 하면 쉽게 채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여름의 초입쯤 양양의 어느 해변에서 나보다 먼저 강원도 생활을 시작한 지인을 만난 적이 있다. 특이사항이 있다면 그녀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커다란 반찬통을 들고 나타났다는 점이다. 째복을 채취하기 위해서였다. 바닷가에 들어가는 모양새도 어쩐지 전문적이었다. 시선은 아래로 고정하고 발가락으로 모래를 한참 젓더니 째복을 발견할 때마다 어린아이처럼 기쁘게 소리를 질렀다. 요즘 말로 치면 ‘째복에 진심’이라고 해야 하나. 그녀의 가족은 째복을 잡아서 다음 날 저녁으로 탕을 끓여 먹을 생각을 하면 바다에서부터 군침이 돈다고 했다.

이 소식을 전하자 남편이 강릉으로 해루질 도구를 배달시켰다. 그는 자신의 두 번째 직업으로 프리다이빙 강사를 염두에 둘 만큼 ‘바다에 진심’인 남자이다. 조업 장소는 집 앞 작은 해변으로 정했다. 관광객이 많지 않아 조금만 들어가도 째복 천지이기도 했다. 사실 째복을 잡는 것은 해루질 도구마저 필요 없을 만큼 원시적이다. 숨을 참고 맨몸으로 잠수한 다음 미역 같은 해초류에 붙어 있는 째복을 낚아채면 끝. 째복의 크기가 클수록 어찌나 미역을 꽉 물고 있는지, 싫은 사람 머리채를 잡는 기분으로 확 잡아채야 성공할 수 있다. 우리는 매일매일 바다에 나가 째복을 잡는 재미에 빠졌다. 락앤락 반찬통을 가득 채운 째복을 보며 나도 어느새 째복의 맛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해가 어둑어둑하게 지면 화이트 와인을 휘리릭 두르고 마늘과 버터, 페페론치노를 넣어서 조개 술찜을 만들었다. 살은 쫄깃했고 국물로 끓이면 맑은 맛이 일품이었다. 마지막엔 카펠리니 같은 얇은 면을 투하해서 세 식구의 한 끼를 해결했다. 낮에 잡아온 째복을 밤에 바로 먹을 순 없어서 릴레이 해감 시스템도 만들었다. 어제 잡은 째복은 오늘 먹고 오늘 잡은 째복은 내일 먹는 식이다. 며칠이 지나자 우리의 냉장고에는 ‘해감 중인 째복’, ‘해감이 완료된 째복’, ‘남아서 냉동된 째복’이 쌓여갔다. 자연스레 외식이 줄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자급자족의 삶이 여기 있었다. 째복으로 해 먹는 메뉴도 다양해졌다. 째복파스타, 째복찜, 째복볶음, 째복라면까지…. 그러다 해감을 깜빡하는 바람에 베란다에서 폐사한 째복 한 통을 발견한 날 이제는 채취에 욕심을 내지 않기로 결심했다. 먹고 싶은 날엔 바다에 가서 또 잡으면 되니까 말이다. 올여름은 첨벙거리며 째복을 잡았던 분주하고 쩨쩨한 날들로 기억될 것 같다.

또 하나 기억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바다이다. 지금까지 나에게 바다는 신나게 뛰어들어 놀거나 멋진 사진을 찍거나 하는 여가의 장소로서 의미가 있었는데 째복을 채취해서 먹게 된 이후의 바다는 다르다. 더 아끼고 싶고 보호해야 하며 감사한 장소가 되었다. 캠페인을 한다면 “바다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라는 것보다 “쓰레기를 버리면 째복을 먹을 수 없어!”라는 구호를 외치고 싶다. 발로 살살 긁어서 째복을 잡는 맛을 우리 아이의 아이들도 알아야 하지 않겠어?

 

글쓴이_이홍안
오랫동안 패브릭 브랜드의 마케터로 일했고, 지금은 마케팅 컴퍼니를 운영하며 현재 잘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고 있다. 여덟 살짜리 아이의 엄마로 여행과 캠핑을 좋아하는 그녀는 지난해 아이와 단둘이 남미 캠핑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제주에서 1년씩 살아보기도 하면서 용감한 일상을 꾸려나가는 중이다.

 

CREDIT INFO

기획
심효진 기자
글·사진
이홍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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