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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에 진심인 디자이너 부부의 2층 집

On September 08, 2021

취향이 분명한 사람은 말과 행동이 단단하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장착한 것처럼 주변의 요동에도 아랑곳 않는 듯 보인다. 실은 부지런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 자신을 부단히 연구하고 관찰해, 마침내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찾아내는 일은 일종의 성취. 성공 경험이 여러 겹 포개질 때 비로소 단단한 태도로 세상을 대할 수 있는 듯하다. 윤지영, 오정희 씨 부부는 그런 태도를 지니고 산다. 중심에는 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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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디자인 가구와 고가구, 원목마루가 어우러져 포근한 느낌을 자아내는 2층 거실.

오리지널 디자인 가구와 고가구, 원목마루가 어우러져 포근한 느낌을 자아내는 2층 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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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구매하기 시작한 사기그릇은 주방에 모아두었다. 요즘은 제작 연도를 명확히 알 수 있는 옥션에서 수집품을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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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에 위치한 홈 바. 마당을 향해 나 있는 창을 마주 보고 LC2, LCW, 베르토이아 체어 등을 두었고, 벽면에는 밴드 아도이 1집의 커버 이미지로 쓰인 옥승철 작가의 작품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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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거실과 마주 보는 주방. 컬러를 최소화하고 우드 소재 벽면과 가구를 배치했다.

2층 거실과 마주 보는 주방. 컬러를 최소화하고 우드 소재 벽면과 가구를 배치했다.

윤지영, 오정희 씨는 부부 디자이너다. 딱히 무엇을 디자인한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부부가 2010년대 초반 신사동 가로수길에 만든 편집숍 ‘스토어앤스토리지’는 그야말로 가장 힙한 도서와 스테이셔너리, 룸 프레이그런스와 피규어를 파는 상점이었고, 이후 론칭한 패브릭 브랜드 ‘Space2place’는 아직 미드센추리 모던 디자인이 국내에 알려지기 전 당대를 대표하는 컬러와 패턴을 제작해 주목을 받았다. 입소문을 타고 감각 좋은 이들에게 먼저 알려지기 시작한 빈티지 오리지널 가구 편집숍 ‘디폿 서울’, 가죽 가방 브랜드 ‘프루베’ 역시 이들이 만들었다. 어떻게 이런 경력을 가질 수 있었느냐는 물음에 부부는 웃었다.

“사실 10월에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컨베이’라는 브랜드인데요. 그 단어의 의미 그대로 무언가를 담는 모든 것을 만드는 브랜드죠. 기본적으로는 데스크웨어와 스테이셔너리를 다루고요.” 굳이 이들을 정의하자면, 패션과 리빙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험 디자이너에 가깝지 않을까? “지칠 줄 모르는 창작열은 어디에서 오나요?”라는 물음에 부부는 대답 대신 초대의 말을 건넸다.

부부는 5년 전 남양주의 한갓진 강변에 단독주택을 지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잔디가 깔린 마당이 있고, 이를 가로지르면 흰 외벽을 두른 미니멀한 형태의 주택이 있다. 부부는 이곳에서 고양이 4마리와 함께 산다. “서울과 멀지는 않지만 완전히 시골 같아요. 길고양이들이 자주 집에 놀러 오고, 큰 벌레도 꽤 많아요.” 윤지영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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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게스트룸 입구. 사나와 프랑프랑이 협업한 체어와 디자이너 에로 사리넨의 움체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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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나카시마가 디자인한 캡틴 체어에 앉아 있는 반려묘 나루. 올해 13살인 나루는 고양이 4남매 중 첫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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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현관에 들어서면 홈 바로 향하는 복도와 2층으로 오르는 층계가 나타난다. 벽면에 걸린 작품은 옥승철 작가의 ‘Mimic’ 시리즈로, 부부가 구매한 첫 번째 아트피스.

디자이너 부부의 취향 놀이터

현관문을 열면 가로세로 2m의 거대한 화폭이 곧바로 눈에 들어온다. 옥승철 작가의 ‘Deadlock’이다 시리즈 중 하나이다. “최근 몇 년간 아트 컬렉팅에 빠져 있어요. 이 작품이 그 시작이죠.” 1층에 위치한 홈 바에는 LP와 오디오테이프, 위스키도 즐비하다. “저희 부부가 워낙 음악을 좋아해요. 또 요즘은 위스키 취향을 찾기 위해 이것저것 마셔보는 중이에요.” 윤지영 대표의 설명이 이어졌다. 복도에는 게리트 리트벨트의 지그재그 체어, 사나(SANAA) 디자인의 목재 체어, 에로 사리넨의 움 체어, 프리츠한센의 빈티지 세븐 체어가 무심히 놓여 있다. 가구를 좋아하는 취향 덕분이라고 설명하는 윤지영 대표는 <리빙센스> 팀을 2층으로 안내했다.

“지대가 높아서 한강 뷰를 즐길 수 있는 집이라, 설계를 할 때 2층에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구획했죠. 1층에는 남편을 위한 취미 방과 게스트 베드룸, 홈 바가 있어요.” 먼발치서 한강이 보이는 넓은 창을 병풍처럼 두른 거실은 포근해 보였다. 기물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르 코르뷔지에와 샬로트 페리앙이 디자인한 LC2 소파와 LC1이 놓여 있고, 간결한 디자인의 세르주 무이 3구 플로어 조명도 보인다. 거실과 마주 보는 주방 곁에 있는 다이닝 테이블에도 전설적 디자이너 조지 나카시마의 캡틴 체어와 텐도와 오리주루 체어도 있다.

이토록 압도적이고 가치 있는 디자인 가구들 사이에 서면 주눅이 들 수도 있으련만, 외려 편안해지는 이유는 뭘까? 부부는 아마도 사이사이를 채운 것이 우리 고가구와 전통 기물들이기 때문일 것이라 설명한다. 소박한 멋을 간직한 사기그릇과 도자기, 반닫이장과 유럽에서 온 디자인 가구의 조화가 이 집을 평형한 공간으로 만든다. “아름다운 것들 간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나 봐요. 그 옛날 동양인과 서양인의 생활과 사고방식이 완전히 달랐는데도, 결국은 미감을 좇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한데 두어도 어색하지 않고 각각의 아름다움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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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희 씨의 취미 방. 어린 시절부터 모아 온 장난감과 게임기를 포함해 최근 구매한 레이싱 게임기까지 즐비하다.

오정희 씨의 취미 방. 어린 시절부터 모아 온 장난감과 게임기를 포함해 최근 구매한 레이싱 게임기까지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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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오정희 씨가 수집을 시작한 요괴 피규어 시리즈.

부부는 취향을 공유한다. 아내 덕에 알게 된 만화책의 매력에 푹 빠진 오정희 씨는 일본 작가 우라사와 나오키의 순정 만화 <Happy!>를 추천했다. “제발 읽어보세요!”라고.

부부는 취향을 공유한다. 아내 덕에 알게 된 만화책의 매력에 푹 빠진 오정희 씨는 일본 작가 우라사와 나오키의 순정 만화 <Happy!>를 추천했다. “제발 읽어보세요!”라고.

부부는 취향을 공유한다. 아내 덕에 알게 된 만화책의 매력에 푹 빠진 오정희 씨는 일본 작가 우라사와 나오키의 순정 만화 <Happy!>를 추천했다. “제발 읽어보세요!”라고.

이토록 뜨거운 수집

“오리지널 빈티지 디자인 의자를 워낙 좋아해요. 190여 점 정도를 소장하고 있죠.” 15년 전 90만원의 월급을 쪼개 20만원짜리 의자를 사고야 마는 청년이었던 오정희 씨(당시에는 이베이에서 10만원대에 임스 파이버글래스 체어를 구할 수 있었다). 지금은 의자를 1000개 수집하는 게 목표이다.

부부는 소장하고 있는 디자인 의자나 요즘 ‘살까 말까’ 고민 중이라는 고가구의 사진을 보여주며 각 시대의 디자인 역사를 술술 풀어냈다. 가히 수집가적 면모의 부부. 특히 오정희 씨의 취향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건 1층의 취미 방이다. 사면의 벽 가득 차 있는 오래된 비디오테이프와 게임기, 포스터와 피규어는 하나씩 나열하기가 벅찰 정도다.

“가구건 술이건 장난감이건 처음부터 ‘끝판대장’이라고 불리는 제품을 사지 않아요. 처음엔 보급판을 사서 즐겨 보고,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서 조금 더 좋은 걸 사용해보는 식으로 끝까지 가죠. 그 과정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뭔가를 찾아낼 거고, 결국은 그것에만 집중하게 되고, 비로소 제 취향이 될 거예요. 그 과정이 참 지난하지만 재미있어요.”

아내 윤지영 대표도 만만치 않은 수집가이다. “저는 만화를 좋아해요. 특히 순정만화요. 저만의 컬렉션을 별도 공간에 보관 중이죠. 만화를 공부하고 싶어서 학교를 더 다니기도 했어요. 컬렉션을 위해서 폐업 예정인 만화방에도 자주 다녀요. 그때면 커다란 가방을 들고 가서 잔뜩 실어 오죠. 거기선 제가 VIP 고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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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덕에 카세트 테이프의 매력에 빠진 건 윤지영 씨도 마찬가지다. 특히 록스타인 ‘미트로프’가 그녀의 취향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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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침실 한쪽 벽에 건 275c의 작품. 송치가죽으로 만든 LC4, 루이스폴센의 플로어 조명과 조화롭게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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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복도에는 이우환 작가의 원화, 반닫이장, 이규한 작가의 나이키 보드 암체어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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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는 대부분 조선시대에 제작된 작품들.

도자기는 대부분 조선시대에 제작된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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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하게 정돈된 부부의 침실.

단정하게 정돈된 부부의 침실.

취향 해적단의 종착지

디자인 가구, 위스키, 칵테일, 와인, 만화, 게임, 아트피스까지. 층위가 같지 않은 취향이 여러 갈래로 뻗어 있는 이 부부는 취향 탐사에 10여 년을 쏟았다. 그러는 동안 그들이 만든 브랜드는 더욱 깊어졌고, 스스로가 어떤 모양을 지닌 사람인지도 알게 됐다. 결과보다는 과정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이들이기에 탐험에 대한 열정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특히 비교적 최근 시작한 아트 컬렉팅은 이들 삶의 공간을 더욱 풍요롭게 채워주고 있다고.

“10년 전쯤 아트 포스터에 꽂혔어요. 그다음엔 작가가 직접 사인을 한 아트 포스터, 그다음에는 원화의 에디션 판화에 욕심을 냈죠. 조금씩 만족도가 높아지더군요. 마침내 옥승철 작가의 첫 번째 원화를 만났을 때엔 결심을 했죠.” 만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강렬한 컬러의 옥승철 작가의 작품을 시작으로 부부는 요즘 정상화, 이우환, 275c 작가의 원화 등 미술작품을 수집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혹자는 수집이 인간적 본능의 하나라고도 하고, 실제로 그들이 모은 것 하나하나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열정의 산물이다. 그러나 마지막에 드는 의문은 결국 ‘개인이 이 많은 수집품을 대체 어디에 쓸까?’였다. 부부는 40대가 되고부터 이 여행의 종착점에 대한 생각도 깊어졌다고 대답했다.

“이 집도 좋기는 하지만, 더 외곽에서 땅을 보고 있어요. 언젠가는 평당 10만원쯤 하는 임야를 1만 평 정도 구매하고 싶어요. 한쪽에는 길고양이들을 돌볼 수 있는 고양이 공원, 한쪽에는 의자 박물관, 한쪽에는 커피숍, 또 한쪽에는 만화방을 지을래요.” 요 몇 년간은 그야말로 눈을 감았다 뜨면 금요일이었다는 부부. 삶의 속도를 늦추고 싶지만 지금 열심히 일할 이유가 충분하다. “이 꿈을 더 빨리 이루고 싶어요. 천천히 가는 시간을 즐기면서, 우리가 단련한 취향과 수집품을 사람들과 나누며 노년을 보내는 게 목표죠.” 이 부부의 취향 탐사는 드디어 목적지를 찾았다. 나의 취향을 처음으로 발견했던 그때, 그 설렘 그대로 부부는 천천히 함께 걸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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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식으로 설계한 넓은 욕실.

취향이 분명한 사람은 말과 행동이 단단하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장착한 것처럼 주변의 요동에도 아랑곳 않는 듯 보인다. 실은 부지런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 자신을 부단히 연구하고 관찰해, 마침내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찾아내는 일은 일종의 성취. 성공 경험이 여러 겹 포개질 때 비로소 단단한 태도로 세상을 대할 수 있는 듯하다. 윤지영, 오정희 씨 부부는 그런 태도를 지니고 산다. 중심에는 집이 있다.

CREDIT INFO

기획
박민정 기자
사진
김덕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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