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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하의 꽃터뷰7

정원가 김봉찬과 베케에서

On August 24, 2021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는 ‘베케(Veke)’의 정원을 밟았다. 크기보다는 깊이, 모든 땅은 아름답다, 풍경은 점, 선, 면으로 이루어진다는 정원가 김봉찬의 말을 곱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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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는 조경가 #1’, 백은하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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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하 작가와 김봉찬 대표가 앉은 자리가 베케의 명당이다. 창밖으로 돌무더기 베케와 이끼 정원이 펼쳐진다. 땅을 깊이 파내 카페 자리를 만들고 사람들의 시선이 정원의 가장 낮은 곳까지 닿도록 했다.

어여쁜 청춘들이 정원 곳곳에서, 카페에서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제주에 가면 꼭 방문하고 싶은 핫플로 손꼽히는 베케. 김봉찬 대표는 자기만의 이 오롯한 정원 외에도 평강식물원, 제주 비오토피아 생태공원,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아모레 성수 등 우리시대 정원 역작들을 만들어낸 이다. 그는 보기 좋은 식물들, 그때마다 유행하는 식물들을 여기에도 저기에도 심는 장식적 정원이 아니라, 땅과 생태에 맞는 식물들을 모아 자연적으로 생존하는 자연주의 정원을 만들었다.

모든 땅은 아름답고, 다만 그 땅과 어울리는 정원을 디자인해야 한다는 철학은 그가 만든 정원들을 통해 실현돼왔다. 그렇게 주목받는 정원들을 만들어오던 그가 드디어 자신만의 정원을 만들었다. 4년 전이다. 의뢰받은 개인 정원이나 식물원 등은 결국 자기 정원이 아니더라는 것. 보고 싶어도 자유롭게 볼 수 없고, 주인이 바뀌면 들어가지도 못하니, 내 정원이 아닌 거다. 소싯적 영국에서 생태공원을 탐방할 때, 곳곳에 작가 정원들이 있는 것을 보며 ‘언젠가 나도…’ 하며 품었던 소망은 결국 ‘제주 토박이스럽게’ 시작됐고, 모던하게 디자인되어 나타났다. 정원 철학자의 손길로 만들어진 신비한 덩어리, 베케.

그는 그간 여러 정원 만들기를 통해 많은 경험을 쌓고, 어버이가 귤 농사짓던 땅 옆에 연이어 있는 밭을 더 샀다. 사고 나서 보니 귤나무들이 막아서 밖에선 안 보이던 풍경, 저 안쪽 풍경이 나왔는데, 세상에, 그 돌무더기 ‘베케’가 있었다(베케는 밭에서 나온 돌들을 쌓아놓은 것을 뜻하는 순제주말이다). 그게 너무 아름다워서, 이 정원의 콘셉트는 그 순간 정해졌다. 베케가 이 정원의 주인공이 되어 모든 이야기의 출발이 돼주었다. 정원 내부 카페에 앉으면 눈앞 큰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주연배우, 커다란 돌무더기,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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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과 빛이 공존하는 베케의 이끼 정원. 이곳에서는 땅이 발하는 빛도 관찰할 수 있다.

어둠과 빛이 공존하는 베케의 이끼 정원. 이곳에서는 땅이 발하는 빛도 관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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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하 ‘철학하는 조경가 #2’, 백은하 作.

©백은하 ‘철학하는 조경가 #2’, 백은하 作.


뭐 하나 들여놓는다고 정원이 아름다워지는 게 아니에요.
하나의 조화로운 덩어리를 이룬다면 돌이랑 잡초로 만든 정원도 아름다울 수 있어요.

요즘 거제에서 남의 정원을 만드느라 바쁘다는 그가 2주 만에 제주에 내려와 정원을 돌본다.

요즘 거제에서 남의 정원을 만드느라 바쁘다는 그가 2주 만에 제주에 내려와 정원을 돌본다.

요즘 거제에서 남의 정원을 만드느라 바쁘다는 그가 2주 만에 제주에 내려와 정원을 돌본다.

김봉찬 대표가 직접 수첩에 그림을 그려 점, 선, 면의 중첩으로 아름다워지는 정원의 원리를 해설하는 중.

김봉찬 대표가 직접 수첩에 그림을 그려 점, 선, 면의 중첩으로 아름다워지는 정원의 원리를 해설하는 중.

김봉찬 대표가 직접 수첩에 그림을 그려 점, 선, 면의 중첩으로 아름다워지는 정원의 원리를 해설하는 중.

이곳에 오면서 옛날 저희 집을 생각했어요. 시골집에 꽃나무가 많았는데, 그냥 수더분한 집에 아버지가 꽃과 나무를 엄청 많이 키우셨거든요. 그래서 우리 집은 마당인가, 정원인가 하고 질문을 하며 왔어요. 정원이라는 말엔 뭔가 호사스러움이 들어 있는 것 같아서요. 선생님, 정원의 본질은 뭔가요? 정원은 누구에게나, 어느 시대에나 있었어요. 꽃 하나, 배추 한 덩이 심어놓고, 돌멩이 하나만 가져다 놓아도 거기서 사유나 힐링, 여유를 누릴 수 있다면 그건 정원이에요. 세상에 작은 정원이란 건 없어요. 사실 대지면적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죠. 하지만 위를 보세요. 하늘이 있죠? 하늘까지 포함해 생각해보면 정원의 범위는 무한해요. 정원의 규모가 넓으면 넓은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깊이감을 만들 수가 있고, 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중요합니다.

깊이감을 주는 요소들은 어떤 게 있죠? 선과 여백. 빛과 어둠을 디자인하는 거죠. 가려진 부분도 있고 어둠도 있고.

그래서 베케가 실제 사이즈보다 훨씬 크고 풍성한 느낌이 들었나 봐요. 베케는 대규모 정원이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지난해 처음 정원을 돌아봤을 때 야생적이고 무한정한 느낌이었어요. 좁은 공간에서 숲을 느끼게 하려면, 그것도 보잘것없는 얕은 숲이 아니고 깊은 숲이 되기 위해선, 집과 내가 앉아 있는 공간과 정원을 모두 하나의 신비한 덩어리로 만들어야 해요. 내가 앉아 있는 집 건축과 정원이 혼연일체가 된 신비한 덩어리!

신비로운 덩어리… 베케 정원은 뭔가 입체적이고 스토리가 이어지는 느낌이에요. 진입할 때마다 시퀀스가 이어지도록 디자인을 했어요. 입구엔 작은 꽃밭 같은 풀들의 정원이 등장하고, 뒤이어 우람한 벽이 세워진 좁고 어두운 길이 나타나요. 여기가 맞나? 뭘까? 호기심이 생기고 의아하던 찰나에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서면 순간 숲속으로 이동한 것처럼 예상치 못한 경관이 등장해요. 깊은 숲을 마주하는 거죠. 극장처럼 어두운 공간에 ‘베케ʼ라는 제주의 전통 돌무더기 주위로 정원이 조성되어 있고, 그래서 문을 열었을 때 ‘와!’ 하는 탄성이 나오는 거예요. 공간을 이동하면서 몰입감을 주고, 감정을 극대화하는 연출로 시퀀스를 구성하는 것까지 정원 디자인에 포함됩니다.

다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구성하셨네요. 시퀀스라는 게 공간의 밀도를 만드는 것 같아요. ‘밀도’라는 단어가 나왔으니 제가 자주 언급하는 ‘눈’에 대해 이야기해볼게요. 눈이 오는데 왜 사람들이 좋아할까요? 그렇담 눈이 항상 오면 즐거울 텐데, 그걸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해봤더니 눈은 ‘점’이에요. 눈은 공간에 없었던, 가볍고 나풀거리는 점이 생기는 거예요. 눈이 내리면 공간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고, 눈이 내리고 중첩되면서 대지의 면과 만나 공간에 깊이감이 풍부해져요. 점과 면의 만남! 이 즐거움을 매일 느낄 수 없을까? 생각해보니 눈 대신 꽃잎이 휘날려도 같은 감정이 생겨요. 사람들이 눈만큼이나 벚꽃을 좋아하는 것처럼요. 정원에 심어진 나무는 공간의 중첩을 느끼게 합니다. 나무에 잎과 꽃이 매달리기도 하고, 흔들리다가 떨어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매일 눈이 오는 경관을 보여주는 게 나무예요. 제가 생각하는 정원 디자인의 본질은 여기서 출발했습니다.

정원을 만들 때 또 무엇이 중요한가요? 빛! 빛과 어둠을 조율해야 사람들이 진짜 공간을 느껴요. 땅에 굴곡과 높낮이를 만들면 낮게 내려앉은 부분이 어둠을 품게 되죠. 그 어둠과 동시에 땅에선 빛이 나요. 땅과 하늘이 만나서 빛나는 그 빛. 빛이 이끼에 머물기도 하고, 풀이나 나무에도 있어요. 그것을 온전히 볼 수 있도록 만들면 정원에 부는 작은 바람도 느낄 수 있습니다.

선생님, 베케가 큰 돌무더기를 부르는 말이라고요? 처음엔 신비로운 북유럽 단어인가 했어요. 제주엔 돌이 많잖아요. 돌들을 치워야 씨를 뿌릴 밭을 만들고 집을 지을 수 있으니까요. 그 돌을 한쪽에 모은 걸 ‘베케ʼ라고 했어요. 여름에 베케에 올라가면 참 시원해서 점심도 먹고, 앉아서 쉬기도 했어요. 어렸을 적 우리 놀이터, 추억의 장소였죠.

베케는 제주 도민에게 생활이었네요! 그걸 정원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주인공으로 활용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저는 베케의 생태적 가치를 높이 사는데, 그 가치는 베케의 ‘엉성함ʼ에서 비롯되었다고 봐요. 돌을 잘 쌓은 게 아니라 대충 내버려두다 보니 틈이 있었고, 그 안에 생명의 다양성이 생겼어요. 곤충과 뱀이 살고, 야생화도 곳곳에 피고! 그렇게 엉성하게 쌓아 올린 베케의 모습이 제주도의 오래된 풍경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돌담도 세계문화유산이자 제주의 상징인 만큼, 돌무더기 역시 잘 보존하고 정원을 만들면 여러모로 가치가 높아지니까요.

말씀하셨던 ‘엉성함ʼ이 한국 문화의 독특한 미학인 거 같아요. 제가 설치미술을 하는 최정화 작가와 참 잘 맞고, 요즘도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중이에요. 한번은 그분에게 물어봤어요. “한국의 아름다움이 뭡니까?” 그 대답이, “치밀하게 엉성하게!” 도자기든 한옥이든 어떤 작품이든 잘 만들었는데 똑떨어지지 않고, 뭔가 엉성하기도 하죠? 이게 다른 말로 투박함이거든요. 투박하면서도 거친 아름다움이 있어요. 엉성한 걸 치밀하게 만들면 한국의 아름다움과 투박함이 표현되겠구나! 싶었죠. ‘한국 정원ʼ이라 하면 ‘정자, 연못이 있어야 한다’가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 정서적인 느낌을 주는 게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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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케 안에 조성된 폐허 정원. 김봉찬 대표는 귤 농사를 지었던 아버지의 창고 자리에 자연주의 정원 베케를 조성했다. 이곳에는 시든 것과 시들지 않은 식물이 공존하며 계절마다 다른 경관이 펼쳐진다.

베케 안에 조성된 폐허 정원. 김봉찬 대표는 귤 농사를 지었던 아버지의 창고 자리에 자연주의 정원 베케를 조성했다. 이곳에는 시든 것과 시들지 않은 식물이 공존하며 계절마다 다른 경관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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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케에서 채집한 루드베키아 퍼플레아, 아미초, 버베나, 니포피아, 아가판투스를 펼쳐놓고 설명하는 김봉찬 대표.

베케에서 채집한 루드베키아 퍼플레아, 아미초, 버베나, 니포피아, 아가판투스를 펼쳐놓고 설명하는 김봉찬 대표.


생태주의, 자연주의 정원은 식물끼리 섞여서 경쟁하고, 공생도 하는 정원이에요.
자생성을 충분히 살려준 정원은 그 자체로 힘을 가지고 있어요.
 

베케에서 채집한 루드베키아 퍼플레아, 아미초, 버베나, 니포피아, 아가판투스를 펼쳐놓고 설명하는 김봉찬 대표.

베케에서 채집한 루드베키아 퍼플레아, 아미초, 버베나, 니포피아, 아가판투스를 펼쳐놓고 설명하는 김봉찬 대표.

베케에서 채집한 루드베키아 퍼플레아, 아미초, 버베나, 니포피아, 아가판투스를 펼쳐놓고 설명하는 김봉찬 대표.

예년보다 일찍, 6월 초부터 수국이 핀 여름의 정원.

예년보다 일찍, 6월 초부터 수국이 핀 여름의 정원.

예년보다 일찍, 6월 초부터 수국이 핀 여름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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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도 식물과 한 덩어리가 되면 아름다운 정원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폐허도 식물과 한 덩어리가 되면 아름다운 정원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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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과 식물이 혼연일체가 돼 빛과 어둠이 있는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었다.

전통 정원, 한국의 정원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으시죠? 제가 서양의 옷을 입고 있어도 한국 사람이잖아요. 정자와 같은 사물을 놓는다고 해서 전통 정원이 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정신! 우리는 서양보다 선과 여백, 깊이감을 더 고려하는 경향이 있어요. 깊이감이 있는 아름다운 덩어리를 만들어내면 외국 식물로도 한국 정원을 만들 수 있어요. 베케에 있는 식물의 대부분은 제가 싹을 틔워서 심은 것들인데, 90% 이상이 외국 식물입니다. 토종 종자를 보존하고 개발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더불어 ‘한국적ʼ인 것에서 벗어나 ‘지구적ʼ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지구가 이렇게 아픈데, 어떻게 야생을 복원하고 생명을 지속할 수 있을까를 중시해야 하지 않을까요?

‘꽃보다 분위기’라는 말씀을 아까 언뜻 하셨는데요.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주시면 정원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꽃을 하나 가져다놔서 예쁜 게 아니거든요. 전체 덩어리가,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해요. 그러면 돌멩이 하나만 놓아도 아름다워요. 정원은 기술이 아니라 정신이고, 사유와 철학이 먼저예요. 정원을 만들고자 한다면, 먼저 그 땅의 성격부터 봐야 돼요. 아까 말했듯 모든 땅은 아름다워요. 크든 작든 어디든. 토양과 주변 환경을 보며 그 땅만의 성격을 파악한 다음 자신의 취향과 합하면, 자기만의 아름다운 정원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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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케 땅의 굴곡이 생기도록 지형을 조작해 깊이감이 느껴지는 베케의 정원.

©베케 땅의 굴곡이 생기도록 지형을 조작해 깊이감이 느껴지는 베케의 정원.

선생님, 식물을 특히 잘 키우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선생님은 원래 뭐만 키우면 쑥쑥 자라는, 금손을 가지셨던 거죠? 아니에요. 처음 20대 첫 직장이었던 식물원에서는 스스로 재능이 전혀 없나 보다 했어요. 뭘 키우든 다 잘 안 됐어요. 이런 걸 ‘똥손ʼ이라고 하죠?

엄청난 정원들을 만드셨는데, 그런 과거가 있으셨다고요? 직장에서는 획일화된 분위기가 있어서 뭐 하나를 잘못하면 그냥 못하는 사람이 돼버리곤 하잖아요. 그래서 재능이 없는 줄 알았어요. 제주 촌사람이라 어렸을 때부터 식물을 좋아해서 전공까지 했었는데요. 일을 하면서도 호기심이 발동하면 혼자 공부하고, 실험도 많이 했어요. 식물원에 방치된 수조가 있으면 나름대로 생태연못도 만들어보고, 식물분류학이 전공이었지만 생태학에 관심이 많아서 저마다 다른 토양과 식물을 많이 연구했어요.

그러면 언제부터 자신감이 생기고 정원 만들기에 자유로워지셨어요? 평강식물원을 만들면서부터요. 토양층의 구조에 따라 식생을 달리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죠. 보람도 크고 자신감을 얻었어요.

지금 이 여름의 정원이 풍성하고 아름다운데, 겨울이 오면 어쩌나 고민하잖아요. 다 떨어지고 아무것도 없다고. 선생님에게 겨울 정원은 어떤 세계인가요?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이 겨울 정원이에요. 그간 우리는 겨울에도 보기 좋아야 한다며 상록수를 심어왔잖아요. 상록수를 많이 심어서 겨울 아닌 것처럼 푸르게 하려고요. 하지만 겨울은 겨울다워야지요. 정원이 비로소 아름다워지는 때가 겨울이에요. 이파리들이 다 떨어지고 나뭇가지만 남으면 평평한 대지 위의 선들이 드러나요. 이파리, 무수한 점들이 다 떨어지고 나무의 라인만 남았을 때 공간에 더욱 몰입할 수 있어요. 선과 면의 아름다움, 나무의 형상과 그 바깥 부분에서 여백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죠. 결국 땅과 하늘을 연결시키는 게 낙엽수예요. 잎을 다 떨구고 나야 비로소 하늘과 땅이 연결되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시적인가요.

정원 이야기로 시작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까지 얻어가네요, 선생님. 인생의 본질이 들어 있는 듯해요. 자연을 살피다 보면 결국 본질적이 되지요. ‘나는 어떤 덩어리인가?’ 질문하게 되거든요.

“어떻게 보면 농사를 짓다가 약간의 풍류를 느끼는 거, 여유를 갖게 만드는 공간이 사실은 정원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해요.” 김봉찬 대표는 마지막에 이런 말을, 산들바람에 슬쩍 춤을 추는 갈대풀처럼 던졌다. 치열하게 살다가도 약간의 쉼을 갖는 나만의 정원은 무엇일까? “크기보다 깊이”, “꽃보다 분위기”, “전체가 신비로운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등등, 툭툭 던진 말들은 많은 것을 온몸과 손으로 체득하고서 자연스레 나오는 시구(詩句) 같다. 이 말뜻을 정말 이해한다면 이제 내 마당도 달라지고, 아파트 베란다들도 달라지고, 우리나라 곳곳의 정원들도 저마다의 땅에 저마다의 이야기를 갖게 될 것 같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묻게 된다. 크기보다 깊이, 꽃보다 분위기… 나는 어떤 덩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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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하 ‘철학하는 조경가 #3’, 백은하 作.

©백은하 ‘철학하는 조경가 #3’, 백은하 作.

백은하와 꽃터뷰
백은하 작가(@baekeunha_flower)의 꽃다운 시선에 담긴 콜라주 인터뷰. 꽃잎에 펜 드로잉을 더해 서정적인 꽃 그림을 그리던 작가가 사진기를 들었다. 제주의 크리에이터들을 만나 사진 위에 꽃, 식물, 때론 또 다른 촬영 사진을 오려 붙이는 작업을 선보인다.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는 ‘베케(Veke)’의 정원을 밟았다. 크기보다는 깊이, 모든 땅은 아름답다, 풍경은 점, 선, 면으로 이루어진다는 정원가 김봉찬의 말을 곱씹으며.

CREDIT INFO

기획
김의미 기자
글·콜라주 사진
백은하
사진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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