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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승효상의 사유와 명상을 위한 '수도원의 가구'

On August 03, 2021

때로는 화려한 수사와 장식보다 담담한 선이 큰 감동을 줄 때가 있다. 많은 것을 버렸기에 가능한 단순함. 꼭 필요한 것만을 취하는 수도사의 삶과 닮은 승효상 건축가의 가구는 소란한 시대에 위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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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재의 대표이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축가인 승효상. 얼마 전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진행됐던 전시 <결구와 수직의 풍경>에서 그를 만나 시대를 위한 건축과 좋은 삶에 머무는 가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로재의 대표이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축가인 승효상. 얼마 전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진행됐던 전시 <결구와 수직의 풍경>에서 그를 만나 시대를 위한 건축과 좋은 삶에 머무는 가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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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사의 작업대와 의자, 측장으로 꾸민 공간. 간결한 형태의 가구들은 사유와 명상을 위한 가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수도원의 가구’라는 부차적인 이름을 붙였다.

수도사의 작업대와 의자, 측장으로 꾸민 공간. 간결한 형태의 가구들은 사유와 명상을 위한 가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수도원의 가구’라는 부차적인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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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많은 것을 버리면서 단순함의 힘을 전하는 그의 가구들.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롭지만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내적 투쟁을 겪는 가구들은 흡사 수도사의 삶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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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와 조각보, 고촉등까지. 골격의 단순함(결구)과 노동의 치열함(수직)을 담은 이들은 아름다운 풍경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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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땀 한땀’ 진지함을 바탕으로 한 조각보와 얼개를 만들어 형태를 이루는 가구. 노동 집약적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아름다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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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건축물과 좋은 가구들로 채워진 이로운 공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승효상 건축가.

좋은 건축물과 좋은 가구들로 채워진 이로운 공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승효상 건축가.


건축은 목적이 아니라 삶의 배경으로 존재해야 하는 까닭에 침묵할수록 아름답습니다. 가구의 본질 역시 인간의 삶을 위한 도구죠. 다만 가구는 공간 속에서 오브제로서의 기능도 수행하는데요. 가구를 통해 건축물은 입체성을 띠게 됩니다. 가구야말로 건축의 본질에 가장 부합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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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한 형태를 가진 첫 번째 버전의 수도사 의자. 균형감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는 그 형태가 수도사의 삶과 닮았다.

간결한 형태를 가진 첫 번째 버전의 수도사 의자. 균형감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는 그 형태가 수도사의 삶과 닮았다. 

  • 간결한 형태를 가진 첫 번째 버전의 수도사 의자. 균형감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는 그 형태가 수도사의 삶과 닮았다.
간결한 형태를 가진 첫 번째 버전의 수도사 의자. 균형감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는 그 형태가 수도사의 삶과 닮았다.
  • 좋은 목재로 만들어진 가구는 공간을 따뜻하게 채운다. 
좋은 목재로 만들어진 가구는 공간을 따뜻하게 채운다.
  • 그가 디자인한 가구는 결구 또한 목재로만 만든다.그가 디자인한 가구는 결구 또한 목재로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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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함께한 아내 최덕주 작가의 조각보. 투시성 있는 조각보는 공간을 입체적으로 만들어 관람객들에게 공간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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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사의 의자 두 번째 버전인 사제 의자. 기존의 미니멀한 형태에서 수직적인 아름다움을 더욱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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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효상 건축가가 사랑하는 문방구들. 왼쪽부터 문진, 사이즈와 모양이 각각 다른 문구통.

승효상 건축가가 사랑하는 문방구들. 왼쪽부터 문진, 사이즈와 모양이 각각 다른 문구통.

말 그대로 소란한 시대다. 이런 때일수록 단순한 것들이 큰 위안을 주기도 한다. ‘빈자의 미학’을 바탕으로 비움의 건축을 선보여 시대를 위로했던 승효상 건축가는 ‘건축의 본질에 가장 부합하는 도구’인 가구를 통해 조용한 위로를 건넨다. 단순하고 정직한 형태의 가구를 통해 사유와 명상을 유도하는 그는 얼마 전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전시를 열기도 했다. 화려한 수사와 장식을 멀리한 그의 가구와 함께 전시된 최덕주 작가의 조각보가 빚어낸 단순한 풍경들은 혼란의 시대를 건너는 우리에게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듯했다. 가구를 통해 그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옳게 닿은 것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선생님께서 얼마 전 요즘의 혼란에 대해 기고하신 글을 읽었습니다. 건축에서 해법을 찾으시는 것이 흥미로웠는데요. 불과 100여 년 전 스페인 독감으로 인해 지금보다 더 큰 위기를 겪었습니다. 세계 인구 16억 명 중 3분의 1에 가까운 인구가 감염되고, 무려 5000만 명이 사망할 정도로 무시무시했던 질병은 전쟁을 종식시키고 도시 구조를 바꿨죠. 기능과 효율이 집약된 현대도시가 바로 그것인데요. 하지만 이로 인해 빈부격차와 계층 갈등, 환경파괴, 대기오염, 해양오염 등 숱한 문제들이 생겼습니다. 결국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우리는 잘못된 도시와 건축의 문제에 대해 살펴보아야 해요. 코로나19 시대에는 나 혼자 잘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잘해야 하죠. 즉 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 대안이 윤리 건축입니다.

윤리 건축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요? 마스크로 신분을 감추고 거리두기로 단절된 삶을 사는 요즘은 관계 또한 단절된 상태입니다. 사회가 유지되려면 관계가 중요한데 말이죠. 따라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안전한 공공의 장소가 많아져야 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연결되어야 하고요. 서울에서 산책을 해보세요. 차도로 인해 끊임없이 방해를 받습니다. 거대한 랜드마크들은 마치 하나의 섬같이 단절되어 있고요. 20세기 후반 들어 서구 도시들은 보행 중심의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오스트리아 빈 같은 경우 중앙역과 시내를 잇는 중요한 간선도로를 보행자 도로로 바꿨죠.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요? 도시에 차가 없어지고, 사람들이 걷기 시작하면서 관계가 형성되고 상권이 살아났습니다.

집에 윤리 건축을 반영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예전 우리의 집을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안방, 건넌방 등 관계를 기반으로 공간의 이름을 지칭했는데, 서구 문화가 들어오면서 침실, 거실, 주방 등 공간의 기능적인 측면만을 강조하게 됐습니다. 여기에는 모든 공간을 획일적으로 만든 아파트도 큰 몫을 했고요. 집은 거주하는 사람을 위하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어 쓰임에 맞게 공간을 유기적으로 재배치하고 가치 있게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비워지고, 쓰임새를 부여하는 것이 윤리 건축인 셈이네요. 선생님의 건축과 가구들도 이와 결을 같이한다고 보이는데요. 건축은 거주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니 삶의 형태가 잘 보여야 합니다. 장식이 많고 현란하면 사람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단순해야 하죠. 가구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구라는 것은 우리의 신체를 받아주는 1차적인 장치이니 아주 간결한 형태여야 합니다. 장식이 많은 가구는 그저 예술품으로 존재할 뿐이지 다가가기가 힘들거든요. 단순할수록 가구가 가지는 시각적, 심리적인 힘과 진정성이 있습니다. 마치 가구가 “다가오세요”, “앉으세요”라고 말을 건네는 것처럼요.

그래서인지 선생님의 가구는 담담하게 위로를 전하는 것 같아요. 제 가구가 단순함을 유지하는 것은 많은 것을 버린 덕분입니다. 그리고 남은 것들끼리 서로 지지하고 균형을 이루면서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합니다. 무엇 하나 과하거나 부족하면 무너지는 긴박함 속에서 끊임없는 투쟁을 벌이죠. 이는 벽체와 천장, 기둥들이 서로 지지하면서 안전한 상태를 유지하는 건축물과 닮은 점이기도 한데요. 건축가의 시각에서 보면 경외심마저 들죠. 스스로 많은 것을 버린 단순함의 힘은 생각보다 큽니다.

얼마 전 진행된 선생님의 전시 부제가 ‘수도사의 삶’인 것은 가구 자체에 수도사의 삶을 투영했기 때문인가요? 첫 번째 버전의 수도사의 의자는 목수조차 부러지지 않을까 우려할 정도로 아주 간결한 형태입니다. 높이와 폭 등에서 약간의 오차만 있어도 균형이 무너질 수 있어 몹시 절박한 상태이지만 겉으로는 평온하죠. 군더더기를 버리고 많은 것을 비워내기 위해서 겪는 내적 투쟁, 그 자체가 수도사의 삶과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시를 최덕주 작가님의 조각보와 함께하셨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7년 전 가구 전시를 했을 때 가구 사이에 그 가구들에 대한 설명을 적은 천을 늘어뜨렸는데 느낌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작업하는 조각보와의 컬래버레이션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죠. 사실 가구와 조각보는 여러모로 닮았어요. 결과물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하고, 그 형상을 만들기 위해 면밀한 계획이 있어야 하며, 막대한 노동이 뒤따릅니다. 이런 과정에서 원칙에 충실하면 단순한 형태만으로도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점도 마찬가지고요. 이 둘의 조합을 통해 하나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결국 선생님은 건축과 가구를 통해 대중에게 늘 좋은 공간을 소개하시는 거네요. 건축은 보이지 않는 공간입니다.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죠. 좋은 공간을 설명할 때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해 설명을 하지 못하니 벽이나 천장의 생김, 바닥 등 가시적인 부분만을 설명하게 됩니다. 하지만 가구가 놓이면 달라집니다. 비어 있는 큰 공간에 가구 하나만 놓아도 공간의 크기와 느낌을 가늠할 수 있거든요. 즉 가구는 공간의 입체성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도구인 셈입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좋은 건축물, 좋은 가구를 통해 공간에 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결국 좋은 삶은 좋은 공간에서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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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사의 의자 두 번째 버전인 사제 의자. 기존의 미니멀한 형태에서 수직적인 아름다움을 더욱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때로는 화려한 수사와 장식보다 담담한 선이 큰 감동을 줄 때가 있다. 많은 것을 버렸기에 가능한 단순함. 꼭 필요한 것만을 취하는 수도사의 삶과 닮은 승효상 건축가의 가구는 소란한 시대에 위로를 전한다.

CREDIT INFO

기획
한정은 기자
사진
정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