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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가 쌓여가는 숍과 문화공간

대전 소제동 거리 골목 여행

On July 28, 2021

호수가 있던 자리,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골목에서 느끼는 아름다운 옛 정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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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건축물의 골조를 그대로 살리고, 지역의 산물을 활용해 공간을 조성했다.

오래된 건축물의 골조를 그대로 살리고, 지역의 산물을 활용해 공간을 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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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공간의 아름다움과 현대적 디자인이 조화를 이루는 카페 베리도넛의 내부.

사라져가는 것들에 숨결을

대전역 뒤편으로 5분 정도 걸어가면 오래된 적산 가옥이 모여 있는 소제동 거리를 만날 수 있다. 지은 지 족히 100년은 되어 보이는 건물들이 줄을 맞춰 서 있고, 길고양이들이 유유자적 왕래하는 좁은 골목은 오래된 동네 특유의 정겨움이 묻어난다. 대전 소제동은 원래 ‘소제호’라는 호수가 있던 자리다. 중국의 아름다운 도시 소주(蘇州)만큼이나 풍광이 아름다워 소제호로 불렸지만 일제강점기 철도 건설을 이유로 호수가 메워지고, 철도 기술자들이 거주하던 철도 관사촌이 형성됐다. 이후 6.25전쟁과 도시화를 거쳐 소제동은 점점 생기를 잃고 사람들이 떠나면서 거의 폐허와 같은 모습으로 남게 됐다.

격동의 근현대를 관통하며 세월의 풍파를 간직한 소제동의 집과 마을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은 익선다다의 박한아 대표다. ‘익선다다’는 2014년 서울 종로에서 유일하게 개발되지 않고 침체되어 있던 익선동에 공공시설과 숍을 기획해 문화가 넘치는 지금의 익선거리를 만들어낸 프로젝트 그룹. 박한아 대표는 우연히 소제동을 접하고 충분히 아름답고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마을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으로 소제동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처음 소제동을 방문했던 날이 잊히지 않아요. 철도 기술자들의 주거 공간으로 지어졌고, 광복 이후 몇십 년 동안 일반인들이 살며 세월의 흔적들이 쌓인 스토리가 너무 흥미로웠고요. 건축물들 역시 재개발을 이유로 그냥 밀어버리기 정말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곳이 재개발로 모두 철거된다는 소식을 듣고는 대전시청 앞에서 시위해가며 소제동 거리 몇 블록을 지킬 수 있었어요. 백지 상태에서의 재개발이 아니라 마을이 지닌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살리고 우리 모두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거리로 태어나기를 바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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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가옥의 내부 서까래와 목조 골조를 살린 풍뉴가의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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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사촌커피에서 커피를 내리는 익선다다의 박한아 대표. 1900년대 초 관사촌이 지어질 때의 커피 문화를 재해석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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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뉴가의 대나무 정원과 관사촌커피의 처마가 어우러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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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동 골목을 거닐다 보면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길고양이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소제동 골목을 거닐다 보면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길고양이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소제동에 대해 아무도 몰랐을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저희가 모든 걸 기획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했어요. 동네를 분석하고 동선을 고려해서 숍의 콘셉트를 만들고, 건물 리모델링, 매장 운영까지 직접 해야 했죠. 동네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고 스토리를 쌓아가는 숍들을 몇 곳 오픈했더니 소제동에 관심 있는 분들이 서로 어우러지게 숍과 문화 공간들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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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큰 나무가 서 있는 외갓집 뒷마당 같은 풍경 속에서 즐기는 베리도넛의 메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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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뉴가의 대나무 정원은 이곳을 찾는 이들의 힐링 스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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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추럴한 소재의 가구를 배치해 고재와 잘 어울리는 인테리어를 완성한 베리도넛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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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겸 갤러리로 운영되는 관사 16호. 옛 내부 인테리어를 복원한 갤러리에서 젊은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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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사촌커피의 앞마당. 외형을 옛 모습을 살려 외부 인테리어를 완성했다.

관사촌커피의 앞마당. 외형을 옛 모습을 살려 외부 인테리어를 완성했다.

계절별로 다양한 풍미의 차 음료를 선보이는 풍뉴가.

계절별로 다양한 풍미의 차 음료를 선보이는 풍뉴가.

계절별로 다양한 풍미의 차 음료를 선보이는 풍뉴가.

이야기와 문화가 넘치는 마을

남겨진 것들 중에 지켜나갈 것을 고르고 새로운 것들을 더하면서 소제동은 다시 태어났다. 사람들이 떠나고 길고양이들만 가득했던 폐허 같은 골목은 불과 2~3년 사이에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핫한 문화 공간으로 거듭났다. 박한아 대표는 이곳을 새로운 것들로만 채우기보다 지역에 기반한 공동체로서 자생력을 가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면, 파운드라는 이탤리언 레스토랑은 충청도 지역 기반의 농수산물로 요리를 선보이고, 이 지역에서 생산한 제품들도 소개하고 판매합니다. 베리도넛이라는 도넛 가게에서도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베리로 도넛을 만들고요. 그런가 하면 갤러리에서는 서울에서만 즐길 수 있던 문화생활을 이곳에서도 즐길 수 있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대전 소제동이 폐허에서 매력적인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공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브랜딩, 그리고 그 노력을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소제동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처음부터 핫한 곳으로 소문난 건 아니었어요. 첫 카페였던 ‘볕’을 오픈했을 때 이틀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서 걱정도 많이 했고요. 하지만 지역 주민센터 직원이었던 첫 손님이 오시고 그분들이 SNS에 저희 매장에 대한 이야기를 올리고부터는 손님이 늘었어요. 별다른 홍보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입소문으로만 사람들이 모이고, 이런 공간들이 점점 늘어나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더라고요.”

지금까지 소제동에 새로 문을 연 숍 및 문화공간은 20여 곳. 익선다다의 프로젝트로 탄생한 곳도 있지만, 지역 단체나 개인이 문을 연 공간도 하나 둘씩 늘고 있다. 조금씩 천천히 변해가는 소제동은 이제 젊은이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대전의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소제동을 재미있게 즐기는 비법은 바로 보물찾기 하는 기분으로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것. 골목마다 저마다의 개성을 품고 있는 멋진 공간들이 보물처럼 하나, 둘씩 등장한다.

호수가 있던 자리,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골목에서 느끼는 아름다운 옛 정취.

CREDIT INFO

기획
심효진 기자
사진
정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