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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안의 용감한 라이프8

돗자리 러버의 무한도전

On June 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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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빠른 속도로 사업자등록을 했다. 피크닉 매트, 일명 돗자리를 만들어 팔기 위해서다. 나는 캠핑에서뿐 아니라 세계 어디를 다니든 백팩 안에 돗자리를 꼭 넣어 다닌다. 10여 년간 다양한 돗자리를 만들면서 적당한 모양과 쓰임새 좋은 사이즈도 발견했다. 돗자리는 비단 풀밭 위에서만 유용한 것이 아니다. 가방 안에 돗자리 한 장이 있다는 것은 풀밭뿐 아니라 낯선 숙소, 비행기를 놓친 공항, 앉기가 꺼려지는 기타 등등의 장소에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지인들에게 돗자리를 선물하는 것은 나의 낙이기도 했다. 어디서든 활용할 수 있을 ‘돗자리의 유용함’을 설파하는 재미로 말이다.

돗자리를 만들어서 판다는 생각을 그동안 안 해본 것은 아니다. 그 누구보다 수십 번을 더한 것 같다. A라는 가상의 제품을 상상해보자. 제품을 기획하고 만드는 수고는 차치하고서라도 생산, 온라인 스토어 구축, 촬영, 포장, CS, 배송, 홍보에 이르기까지 사업자 1인이 해야 할 일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복잡해 보이는 위의 과정을 상쇄하는 것은 사업 초기의 설레임과 열정일 것이다. 이 기간 내에 일과 육아와 개인 생활의 밸런스 같은 것은 없다. 오로지 일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운이 좋다면 SNS의 도움을 받아 초기에 준비한 물량을 소진할 수도 있을 것이나, 잠자는 시간까지 쪼개어 SNS를 들여다보며 살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팔로엔 맞팔을, 방문엔 답방을, 덧글엔 정성스러운 답글을 달아주는 게 진정한 사업자의 덕목일 터. 준비된 물량이 소진되었다고 좋아하기엔 이르다. 단기간 택배 발송을 위해서는 손가락 열 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가족과 이웃을 동원해 발송을 마쳤다고 치자. 한 번의 판매에 고무돼서는 곤란하다. 부지런히 재화를 투입해 다음 아이템을 준비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두 명이라도 직원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직원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의 물량이라면 애석하게도 판매가 썩 잘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직원을 구했다면 사업은 가욋일이 아니라 본격적인 시작이 된다. 매달 임대료와 직원의 월급을 줘야 하는 입장이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작 사업을 시작한 사업자는 시간이 없어져, 좋아했던 A라는 제품을 누릴 시간이 없어진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지난 몇 년간 위와 같은 과정을 수없이 상상했고, 상상만으로 수십 개의 브랜드를 론칭하고 접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돗자리 장사는 안 되겠다” 중얼거리며 말이다. 

하지만 올해도 여지없이 봄이 왔다. 어느 날 제주도에 있는 각별한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건물을 오픈하며 마켓을 연다고 했다. 해변의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을 돗자리가 꼭 필요하니 돗자리 마니아인 나에게 제작을 부탁한 것이다. 돗자리 장사라니! 진즉에 비극적인 결말을 그리며 포기했던 일 아닌가. 그러나 계기란 중요한 법이다. 누군가 내게 “너의 그 돗자리가 필요해!”라고 외치니 나의 쓸모를 증명하고 싶은 마음인지, 돗자리의 쓸모를 증명하고 싶은 마음인지 모를 열정이 솟았다. 지난 몇 년간 돗자리 장사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열 개쯤 만들어놨었는데 하루 아침에 안 할 이유가 없는 일이 된 것이다. 뭘 하기도 전부터 김칫국을 마시는 버릇은 여전하다. 제주 해변마다 내가 만든 돗자리를 깔고 누워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그냥 돗자리를 사랑하는 걸까? 10여 일 만에 로고를 만들고 공장을 돌아다니며 손으로 핸드 스티치를 떠서 샘플을 만들었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아이를 뒷바라지하고, 미용 학원에 다니느라 바삐 지내던 삶에 돗자리 제작자로서 역할이 추가되었고,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지만 우선 만들어보기로 했다. 아마도 내가 원하는 것은 돗자리를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니라, ‘돗자리를 자주 쓰는 삶은 좋더라’ 같은 캠페인일지도 모르겠다.  

 

 

글쓴이_이홍안
오랫동안 패브릭 브랜드의 마케터로 일했고, 지금은 마케팅 컴퍼니를 운영하며 현재 잘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고 있다. 여덟 살짜리 아이의 엄마로 여행과 캠핑을 좋아하는 그녀는 아이와 단둘이 남미 캠핑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제주에서 1년씩 살아보기도 하면서 용감한 일상을 꾸려나가는 중이다.

 

CREDIT INFO

기획
심효진 기자
글·사진
이홍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