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퀼트 작가이자 인생의 대부분을 꽃과 함께 보낸 안홍선 씨. 40여 년 세월 동안 공들여 가꿔온 정원은 그녀의 인생처럼 아름답다.
유년의 기억으로 들꽃을 피우다
잔잔한 호숫가의 작은 마을, 담벼락에 난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이곳은 스토리 퀼트 작가이자, 40여 년간 정원 생활자로 살아온 안홍선 씨의 들꽃 정원. 40년 넘게 들꽃 정원을 가꿔온 그녀의 꽃 사랑은 유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함경남도에 있던 그녀의 고향 집 뒤뜰은 이름 모를 들꽃들이 가득했다. 바쁜 엄마와 개구쟁이 오빠들을 대신해 뒤뜰에서 풀을 뽑고 나물을 캐는 일을 도맡았던 때가 그녀의 나이 겨우 일곱 살 즈음. 왕래하는 이가 드문 외진 곳에 살아 친구가 없던 그녀에게 뜨락에 핀 꽃은 유일한 동무가 되어줬다. 살면서 외롭고 힘들 때마다 수많은 들꽃들이 흐드러지게 피던 고향 집 뜨락이 떠올랐다.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하면서 그녀는 어린 시절 보았던 아름다운 꽃들을 손수 심고 가꾸기로 마음 먹었다. 처음에는 농원에서 구입한 꽃을 트럭 한가득 실어와 마당 한쪽에 심었는데 추운 겨울이 되니 모두 죽고 말았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뒤뜰의 꽃은 분명 겨우내 기운을 모았다가 이른 봄에 다시 싹을 틔웠거든요. 그런데 농원에서 구입한 꽃들은 그렇지 않은 거예요. 크게 실망하고 뒷산으로 올라가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들꽃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산에서 자란 들꽃 한 뿌리를 조심스럽게 캐어 와 마당에 심었는데, 무사히 겨울을 나고 튼튼하게 자랐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자생화들을 찾아 심기 시작했다. “우리 땅에서 자라는 자생화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더라고요. 물을 주고 주변의 잡초를 뽑아주며 사랑으로 가꾸니 노력한 것의 몇 배 이상으로 기쁨을 주더군요. 사람들의 권유로 1987년 내무부에서 주최하는 전국토공원화대회에서 저의 첫 번째 정원을 선보였는데 ‘가정조경대상’을 받게 돼 더욱 감동스러웠죠.”
자연과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것
지금의 정원은 노후에 살려고 마련한 땅에 첫 번째 정원에서 꽃을 조금씩 옮겨다 심으면서 만들어졌다. 이 또한 1977년 시작했으니 벌써 40년이 훌쩍 넘었다. 그녀의 정원은 800여 종이 넘는 꽃과 나무가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축복이 아닌 계절이 없어요. 계절이 바뀌면 다음에 필 꽃들의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꽃대를 정리해요. 그럼 금세 그 계절의 꽃들이 빈 자리를 채우죠. 자연이 만드는 것은 인간이 따라갈 수가 없는 것 같아요.”
그녀의 아침은 꽃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으로 시작한다. 밤새 꽃들이 무사히 지냈는지 궁금하고 애틋한 마음이 들어 잠옷 바람으로 꽃들을 보러 나간다. 꽃가지 하나하나에 눈을 맞춰 인사하고 그날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담는 귀한 시간이다. 아침 식사 후에는 본격적으로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다. 정원 일로 인해 손에 굳은살이 박이고 얼굴에는 기미가 내려앉았지만 그녀에게는 영광의 상처일 뿐이다.
“이 시골집에 내려올 때만 해도 10년밖에 살지 못할 거라는 말을 들을 만큼 건강이 안 좋았어요. 하지만 꽃과 함께한 덕분에 20여 년이 넘도록 건강하게 살고 있죠. 제가 정원을 가꾼 줄 알았는데, 정원이 제 인생을 건강하게 가꿔준 셈이에요.” 저녁이 되면 그녀는 20여 년 전부터 쓰기 시작한 정원 일기를 펼쳐 든다. 정원에서 있었던 하루의 일상과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 하루를 곱씹으면서 끊임없이 떠오르는 단상들을 정리하고, 꽃들의 생육과 감상 평을 적거나 시를 쓰면서 빼곡하게 정원 일기를 채워나간다. 올해는 이것들을 모아 책으로 펼쳐낼 계획.
“꽃들과 함께한 덕분에 제 인생이 아름다웠어요. 그래서 제 인생의 스승이 된 정원을 가꾸는 즐거움과 행복을 다른 이들과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풀밭에서 노는 것이 가장 좋은 인생이라고 말하는 그녀, 한평생을 담은 정원 속에서 그녀의 인생도 아름답게 물들어간다.

스토리 퀼트 작가이자 인생의 대부분을 꽃과 함께 보낸 안홍선 씨. 40여 년 세월 동안 공들여 가꿔온 정원은 그녀의 인생처럼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