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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시스템으로 꾸민 거실

북한산 아래 오래된 빌라를 고치다

On May 17, 2021

북한산 아래 오래된 빌라를 고쳐 사는 가원 씨는 바란다. 내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이 자리에서 벚꽃을 맞이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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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벚꽃나무가 창밖 풍경으로 펼쳐진 응접실. 공간의 중심에 놓인 빨간 테두리의 조명은 1960년대 독일 빈티지 제품으로 엣시(Etsy)에서 직구했다.

거실 창가에 자리 잡은 반려묘 담이. 창문 아래 그림은 파라다이스를 찾아 떠나는 치타를 표현한 백향목 작가의 2020년 작품 ‘Savanna’.

거실 창가에 자리 잡은 반려묘 담이. 창문 아래 그림은 파라다이스를 찾아 떠나는 치타를 표현한 백향목 작가의 2020년 작품 ‘Savanna’.

거실 창가에 자리 잡은 반려묘 담이. 창문 아래 그림은 파라다이스를 찾아 떠나는 치타를 표현한 백향목 작가의 2020년 작품 ‘Savanna’.

가원 씨의 침실 입구에 걸어둔 그림은 정은혜 작가의 작품. 아래쪽엔 작품과의 컬러 매치를 고려해 홍대 앞 어느 카페에서 10만원에 샀던 빈티지 체어를 배치했다.

가원 씨의 침실 입구에 걸어둔 그림은 정은혜 작가의 작품. 아래쪽엔 작품과의 컬러 매치를 고려해 홍대 앞 어느 카페에서 10만원에 샀던 빈티지 체어를 배치했다.

가원 씨의 침실 입구에 걸어둔 그림은 정은혜 작가의 작품. 아래쪽엔 작품과의 컬러 매치를 고려해 홍대 앞 어느 카페에서 10만원에 샀던 빈티지 체어를 배치했다.


인테리어는 저를 표현하는 일이자 창작 욕구를 성취로 전환하는 활동 같아요. 내가 가진 자원 안에서 나를 매개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 결심해서 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일상을 저답게 영위하기 위한 삶의 방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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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을 많이 받고 환금성이 떨어지는 빌라를 사서 고치는 바람에 “분수를 모른다”는 타박을 들었다는 가원 씨. 그래서 이 집을 ‘분수를 모르는 집’으로 부르기로 했다. 살 만한 집에 사는 게 분수에 넘치는 일이라면, 그 분수쯤 모르고 살 테다.

대출을 많이 받고 환금성이 떨어지는 빌라를 사서 고치는 바람에 “분수를 모른다”는 타박을 들었다는 가원 씨. 그래서 이 집을 ‘분수를 모르는 집’으로 부르기로 했다. 살 만한 집에 사는 게 분수에 넘치는 일이라면, 그 분수쯤 모르고 살 테다.

응접실에서 거실로 가는 길목.

응접실에서 거실로 가는 길목.

응접실에서 거실로 가는 길목.

주방이었던 널찍한 공간에 가벽을 세우고 문을 달아 서재와 드레스 룸으로 개조했다. 네덜란드 디자이너가 1960년대에 디자인한 월 시스템 선반 PILASTRO를 설치했다.

주방이었던 널찍한 공간에 가벽을 세우고 문을 달아 서재와 드레스 룸으로 개조했다. 네덜란드 디자이너가 1960년대에 디자인한 월 시스템 선반 PILASTRO를 설치했다.

주방이었던 널찍한 공간에 가벽을 세우고 문을 달아 서재와 드레스 룸으로 개조했다. 네덜란드 디자이너가 1960년대에 디자인한 월 시스템 선반 PILASTRO를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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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원 씨는 동거인과 비혼 커플이다. 또 다른 침실은 동거인의 공간으로 침대 맡에 지인의 어린 아들이 그린 그림을 구매해 액자로 만들어놓았다.

가원 씨는 동거인과 비혼 커플이다. 또 다른 침실은 동거인의 공간으로 침대 맡에 지인의 어린 아들이 그린 그림을 구매해 액자로 만들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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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초에의 영국 본사에 직접 주문해서 받은 월 시스템을 거실 한쪽 벽에 설치했다. 소파와 테이블에 이어 그림, TV까지 연결된 이곳의 포인트 컬러는 블랙이다.

비초에의 영국 본사에 직접 주문해서 받은 월 시스템을 거실 한쪽 벽에 설치했다. 소파와 테이블에 이어 그림, TV까지 연결된 이곳의 포인트 컬러는 블랙이다.


동남향의 집이라 아침에 빛이 한꺼번에 쏟아져요. 그 빛 속에서 집의 사물들은 더욱 아름다워지죠. 그래서 빛을 품은 집은 지루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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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밤나무 합판으로 천장을 마감한 욕실은 건식으로 사용 중이다. 세면대의 거울과 가구는 모두 이케아 제품.

블루 컬러를 테마로 꾸민 가원 씨의 침실. 침구는 꼬또네, 스탠드는 이케아.

블루 컬러를 테마로 꾸민 가원 씨의 침실. 침구는 꼬또네, 스탠드는 이케아.

블루 컬러를 테마로 꾸민 가원 씨의 침실. 침구는 꼬또네, 스탠드는 이케아.

창고처럼 쓰이던 작은 방을 주방으로 개조했다. 단출한 살림이라 ㄱ자형 싱크대에 상부장 대신 이케아 선반만 설치해도 충분하다고.

창고처럼 쓰이던 작은 방을 주방으로 개조했다. 단출한 살림이라 ㄱ자형 싱크대에 상부장 대신 이케아 선반만 설치해도 충분하다고.

창고처럼 쓰이던 작은 방을 주방으로 개조했다. 단출한 살림이라 ㄱ자형 싱크대에 상부장 대신 이케아 선반만 설치해도 충분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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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접실의 큰 창과 주방의 작은 창에서 들어오는 빛들이 만나니 공간의 무드가 한층 밝고 풍성해진 느낌.

응접실의 큰 창과 주방의 작은 창에서 들어오는 빛들이 만나니 공간의 무드가 한층 밝고 풍성해진 느낌.

천장, 벽면, 슬라이딩도어의 일부를 너도밤나무 합판으로 마감했다. 거실 천장의 조명은 1970년대에 생산된 
JT Kalmar 빈티지.

천장, 벽면, 슬라이딩도어의 일부를 너도밤나무 합판으로 마감했다. 거실 천장의 조명은 1970년대에 생산된 JT Kalmar 빈티지.

천장, 벽면, 슬라이딩도어의 일부를 너도밤나무 합판으로 마감했다. 거실 천장의 조명은 1970년대에 생산된 JT Kalmar 빈티지.

집을 매매할 때엔 그만한 동기와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집을 사야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하셨어요? 집을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제게도 꽤 놀라운 변화였어요. 살아보고 싶은 공간은 있어도 집을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러다 3년 전 우연히 연식이 오래된 연립주택을 개조해 사는 커플의 집을 알게 됐어요. 샛노란 은행나무의 빛과 그림자가 집 안으로 반사되는 동남향에 17평 정도의 작은 집이었는데, 그렇게 멋진 광경은 태어나서 처음 본 것 같아요.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 나도 저런 집에서 살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쳤어요. 낡고 오래된 것과 나뭇가지가 드리운 넓은 창, 그리고 획일적이지 않고 감각적인 인테리어, 이 삼박자의 궁합이 매력적이더라고요. 그때 처음 ‘집을 사서 완전히 뜯어 고치고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한국에서 집을 사지 않고는 그런 공간을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껴졌죠. 그 집주인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알게 돼서 종종 소통도 하고 지냈는데, 그 집이 매물로 나온 거예요. 사야겠다! 마음을 먹은 채 1년이 지났어요. 그 집이 내내 공실이었는데 대출을 받기로 결심한 날, 그새 팔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눈을 감아도 그 집으로 들어가는 길목이 떠오를 정도로 자주 가보고 그곳에 사는 저를 상상했었는데. 당시엔 말도 못 하게 상심이 컸어요.

은행나무 대신 벚꽃이 만발한 멋진 집을 구하셨네요? 잠깐 절망했지만,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집을 찾아다니게 되었죠. 주말이면 빨간 벽돌로 지어진 낡고 오래된 연립주택이 있는 정취 좋은 동네를 ‘도장 깨기’ 하듯 다녔어요. 서울 시내 녹지가 많은 곳을 찾아다니고, 구글 맵으로 위성사진도 많이 봤죠(웃음). 연희동, 정릉, 구기동 쪽이 후보로 추려졌는데, 그러던 중 이 집을 발견했어요. 집 앞에 계곡물이 흐르고 건물 사이에 중정이 있는 40년 가까이 된 빌라예요. 작년 6월에 입주해 이 집에서 첫 봄을 맞이했는데, 창밖의 근사한 뷰가 집을 완성해주는 것 같아요.

꿈꾸던 인테리어를 실현해줄 디자이너를 잘 만나는 것도 중요하더라고요. 어떻게 결정하셨어요? 제가 처음 말씀드린, 맘에 들었던 집이 서촌의 ‘옥인연립’에 있었어요. 40년도 넘은 오래된 빌라인데, 집집마다 개성 있게 고쳐서 사는 분들이 유독 많아요. 저도 오래된 집을 고치게 된 만큼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 의뢰하고 싶어서 구글에 ‘옥인연립 인테리어’를 검색해서 업체들을 둘러봤어요. 그중에 나무로 마감한 사례가 많았던 업체가 눈에 들어왔는데, 결정적으로는 업체의 정체성을 소개하는 짧은 글이 와 닿아서 마음을 굳히게 됐어요.

평소 좋아하던 인테리어 스타일, 소재가 있나요? 특별히 고집하는 스타일은 없어요. 가장 좋아하는 소재는 나무고, 공간을 색으로 표현하는 일을 좋아해요. 보시다시피 저희 집에는 공간을 지배하는 색이 각각 달라요. 응접실은 레드, 저의 침실은 블루, 거실은 블랙과 옐로입니다. 색을 자유롭게 써서 공간에 생동감을 불어넣도록 집 안의 바탕색은 가장 단조로운 화이트와 연한 우드 계열을 쓴 거예요.

언제부터 인테리어와 집에 관심을 가지셨어요? 취재를 다니다 보니 주로 외국 생활을 하셨거나 예술 관련 일을 하는 분들이 인테리어에 눈을 일찍 뜨시더라고요. 저는 인권단체에서 일하는 인권활동가이고, 외국 생활은 짧게 했어요. 요즘은 빈티지 편집숍 운영자로의 전환을 자주 꿈꿉니다(웃음).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어릴 때부터 색깔, 패션, 아름다움에 늘 현혹되어 있었던 거 같아요. 집 안 가구 배치에도 관심이 높아 적극적으로 의사를 피력하곤 했고요. 어릴 때부터 내가 가진 자원 안에서 아름다움을 만들고, 꾸미는 재미를 터득했던 거 같아요.

곳곳에 애정을 담았지만 그중에서도 아끼는 가구, 소품이 있으신가요? 집 안 인테리어에서는 조명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볼품없는 공간도 멋들어진 조명을 하나 달면 분위기가 반전돼요. 조명은 소품이지만 몸집이 큰 가구처럼 전체 무드를 결정하는 힘이 있어요. 응접실엔 독일에서 공수한 1960년대 빈티지 조명을 달기로 하고, 조명에 맞춰서 다른 가구들을 결정했을 정도예요. 응접실에 붉은색 카펫을 깔게 된 것도 조명의 빨간색 라인과 어울렸기 때문이에요. 거실은 검은색 소파와 비초에 선반이 놓인 모던한 공간인데, 고전적인 느낌의 글라스 조명을 매치시켰습니다. 불을 켰을 때도 근사하지만 오후 무렵, 불이 꺼진 채 자연광이 통과된 형상도 무척 아름다워요.

새로운 집에서 가장 맘에 드는 점은 무엇인가요? 자연을 가까이 두고 산다는 점이요. 이전까지 홍대 앞, 상수동, 망원동 같은 교통이 편하고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동네에서 주로 살았어요. 변화가 흐르고 에너지가 넘쳐서 거리를 걷기만 해도 감각이 갱신되는 기분이 들 때가 많았어요. 집 밖에 무엇이 펼쳐지느냐는 여전히 중요하죠. 하지만 지금은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더욱 중시하게 됐고, 상대적으로 인프라는 취약한 곳이지만 창밖의 나무를 보고 살 수 있어 아쉽지 않아요. 저희 집에선 도시 소음 대신 새소리나 집 앞 계곡물 흐르는 소리, 바람과 비가 나뭇잎 사이를 헤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요. 서울에서 오래 살았지만, 이 경험은 실로 놀랍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원하는 공간에서 살게 되신 걸 축하드려요. 나에게 집이란?
일단 집은 투자 상품이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웃음) 누구나 원하는 만큼 안정적으로 점유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 집에선 말 그대로 몸과 마음이 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최근 단지에서 벌어지는 재건축 논의가 솔직히 걱정입니다. 세월의 아름다움을 잘 보존하고 가꾸면서 살아갈 순 없을까요?

북한산 아래 오래된 빌라를 고쳐 사는 가원 씨는 바란다. 내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이 자리에서 벚꽃을 맞이하기를.

CREDIT INFO

기획
김의미 기자
사진
김덕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