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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테토의 아트스페이스 21탄

방황해도 괜찮아, 최랄라 작가

On April 30, 2021

사진가 최랄라가 3년 만에 선보이는 개인전 <FEEL LOST>가 장안의 화제다. 60년 된 교회 건물을 개조한 감각적인 공간에서 바흐의 선율과 니치 향수의 향이 어우러지는 전시는 봄 타는 마음을 전시장으로 이끄는 마력이 있다. 마크 테토가 전시장을 찾은 날도 봄 햇살이 전시장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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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플러스준 스튜디오에서 열리는 최랄라 작가의 <FEEL LOST> 전시를 찾은 마크 테토와 최랄라 작가.

용산 플러스준 스튜디오에서 열리는 최랄라 작가의 <FEEL LOST> 전시를 찾은 마크 테토와 최랄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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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랄라 작가의 2018년도 작 ‘her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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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작은 수납장에 카메라들을 모아두었다.

필름카메라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회화적인 색채로 담아내는 사진작가이자 자이언티, 지코, 윤하 등 핫한 뮤지션의 앨범 재킷 작업, 젠틀몬스터의 캠페인 시리즈, 레스케이프호텔 라망시크레 레스토랑과의 협업 등으로 이름을 알린 최랄라 작가. 매혹적인 색감과 몽환적인 감성은 최랄라만의 독보적인 작품 스타일이다. 최한솔이라는 본명 대신 룰루랄라 오늘을 신나게 살고 싶어 자신에게 ‘랄라’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지만, 지난 3년은 그리 신나지 않았다고 한다. 필름카메라로 자신과 세상,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온 작가는 단시간에 상업 작가로 성공을 거두었으나 유명해질수록 왠지 모를 공허함과 외로움을 느꼈다고. 지난 3년간 삶의 방향과 정체성을 찾아 방황한 작가는 그 고민의 흔적을 이번 전시로 풀어냈다. 가시밭길을 묵묵히 걸어 자신만의 길을 찾아낸 사람의 앞에는 꽃길이 펼쳐지는 법. 그의 전시는 요즘 문전성시를 이루며 이번 봄 가장 핫한 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죽을 것처럼 힘든 시기를 겪은 작가의 솔직한 이야기는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주로 필름카메라를 사용하는 최랄라 작가가 요즘 사용하는 기종은 지나P2.

주로 필름카메라를 사용하는 최랄라 작가가 요즘 사용하는 기종은 지나P2.

주로 필름카메라를 사용하는 최랄라 작가가 요즘 사용하는 기종은 지나P2.

검프린트 작업에 푹 빠져 있다는 최랄라 작가. 19세기 유행했던 회화주의 사진 기법으로, 사진과 회화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검프린트 작업에 푹 빠져 있다는 최랄라 작가. 19세기 유행했던 회화주의 사진 기법으로, 사진과 회화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검프린트 작업에 푹 빠져 있다는 최랄라 작가. 19세기 유행했던 회화주의 사진 기법으로, 사진과 회화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M 안녕하세요! 아름다운 전시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간과 작품이 정말 멋진 조화를 이루는 전시네요.
잘 봐주셔서 감사해요. 오래간만에 준비한 전시라 고민도 많이 하고 좀 더 새로운 방식으로 작품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다행히 반응이 좋아서 안도하는 중이에요.

M 사진에서 보이는 색감과 분위기가 정말 특별한데요, 이런 색감의 원천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궁금했어요.
저는 경남 김해 시골 출신이에요. 여덟 가구가 살던 작은 동네에서 스무 살까지 살았어요. 놀 거리가 자연밖에 없던 곳이었는데, 동네에 가장 흔한 게 포도밭이었어요. 굉장히 넓은 농장이 있었는데 어린 시절 포도나무 덩굴 밑에서 동생하고 술래잡기하고 놀다 보면 포도나무 잎에 햇살이 비쳐서 온 세상이 녹색으로 보였어요. 그 색감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을 정도로 제가 지금 표현하는 색감들의 근원은 과거 자연에서 뛰놀 때 풍경에서 온 것 같아요.

M 자연 속에서 뛰놀던 장난꾸러기 소년이었군요.
사실은 굉장히 예민한 아이었어요. 아버지가 오랫동안 집에 안 계셨고, 집 분위기가 좀 우울했거든요. 성격도 소심하고 말수도 적은 편이었죠. 친구들 사귀는 것도 어려워하는 그런 성격이었는데 고등학교에서 밴드부를 시작하면서 완전히 바뀌었어요.

M 소심한 성격이었는데 밴드부를 지원했다고요?
원래 만화 그리는 걸 좋아해서 학교 클럽 활동으로 미술부를 신청했는데 인원이 다 차서 못 들어갔어요. 할 수 없이 자리가 남은 밴드부에 가입했는데 그게 제 삶을 바꾼 거죠. 기타를 연주하고 공연하면서 타인에 대한 겁이 없어졌어요. 좀 더 당당하게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됐어요.

M 고등학교 때부터 예술가가 되고 싶었나 봐요.
아뇨. 그때는 꿈이 없었어요. 그림도 좋고 음악도 좋아하는 상태로 그냥 군대를 갔고, 제대한 후에도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창원에 있는 냉장고 공장에 들어가서 일했어요. 부품 조립하는 일을 했는데 하루 종일 같은 동작만 반복하니까 저 역시 기계의 부품이 된 것 같더라고요. 사람이 사는 것 같지 않았어요. 2년 정도 일하고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어서 그동안 모은 돈을 가지고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어요.

M 계획도 없이 올라온 거예요?
네, 특별히 할 일이 없었어요. 신림동에 작은 방 하나 얻어서 지냈는데, 밤에 할 일이 없으니 ‘싸이월드’에 감성적인 글을 올리는 카페를 만들어서 운영했어요. 그냥 그날의 감성 같은 걸 끼적이는 정도였는데 그 카페를 통해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죠. 감수성 있는 글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였는데 희한하게 대부분 모델이나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꿈꾸는 친구들이었어요. 메이크업 키트를 들고 다니거나 모델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니까 저도 그 친구들과 뭔가 해보고 싶더라고요. 할 줄 아는 건 없었는데, 저는 사람을 모으는 힘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친구들을 모아서 사진을 찍어봐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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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작업한 검프린트 작품들.

최랄라 작가의 집 겸 작업실 모습. 한쪽 벽에 베이지 톤 페인트를 아무렇게나(!) 발라두었다는 작가. 과거 전시 소품으로 사용한 콘트라베이스는 팔려다가 연주를 해보고 싶어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최랄라 작가의 집 겸 작업실 모습. 한쪽 벽에 베이지 톤 페인트를 아무렇게나(!) 발라두었다는 작가. 과거 전시 소품으로 사용한 콘트라베이스는 팔려다가 연주를 해보고 싶어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최랄라 작가의 집 겸 작업실 모습. 한쪽 벽에 베이지 톤 페인트를 아무렇게나(!) 발라두었다는 작가. 과거 전시 소품으로 사용한 콘트라베이스는 팔려다가 연주를 해보고 싶어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검프린트는 아라비아고무와 중크로산염, 수채화 물감을 혼합해 종이에 도포한 후 자외선 노광기나 햇빛에 감광시켜 이미지를 만든다.

검프린트는 아라비아고무와 중크로산염, 수채화 물감을 혼합해 종이에 도포한 후 자외선 노광기나 햇빛에 감광시켜 이미지를 만든다.

검프린트는 아라비아고무와 중크로산염, 수채화 물감을 혼합해 종이에 도포한 후 자외선 노광기나 햇빛에 감광시켜 이미지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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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마저 예술이 된 <FEEL LOST>展. 이번 전시 덕분에 새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는 최랄라 작가다.


누구라도 타인을 완벽히 이해하려고 시간을 내는 건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 일은 촬영할 때만큼은 그런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죠. 정말 마음에 들었던 작업 속 모델이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도 내가 잘 하는 방식으로 그 사람이 있었다는 걸 열심히 들여다봤구나, 뒷모습 찍기를 잘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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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의 백미는 큰 창으로 비치는 햇살과 작품이 어우러지는 풍경이다.

이번 전시의 백미는 큰 창으로 비치는 햇살과 작품이 어우러지는 풍경이다.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의 공간과 잘 어울리는 작품들.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의 공간과 잘 어울리는 작품들.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의 공간과 잘 어울리는 작품들.

두꺼운 크래프트지에 인화하는 검프린트는  깊이감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두꺼운 크래프트지에 인화하는 검프린트는 깊이감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두꺼운 크래프트지에 인화하는 검프린트는 깊이감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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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self’ 시리즈가 전시되어 있는 공간. 햇살과 그림자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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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작업실을 재현한 전시장 2층의 공간.

작가의 작업실을 재현한 전시장 2층의 공간.

작가의 작업실을 재현한 전시장 2층의 공간.

작가의 작업실을 재현한 전시장 2층의 공간.

작가의 작업실을 재현한 전시장 2층의 공간.

작가가 벽에 연필로 작품명을 메모해두었다.

작가가 벽에 연필로 작품명을 메모해두었다.

작가가 벽에 연필로 작품명을 메모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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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사진을 비추는 각도와 조도에 따라 작품의 분위기와 느낌이 달라진다. 전시된 사진은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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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프린트 작업물을 보여주며 과정을 설명하는 최랄라 작가.

검프린트 작업물을 보여주며 과정을 설명하는 최랄라 작가.

M 사진을 원래 좋아했던 게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어서 선택한 거군요?
아버지가 어렸을 때 사진관을 운영해서 사진이 익숙하긴 했지만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해양경찰로 군복무를 했을 때는 물에 빠져 죽은 시신을 촬영하는 게 제 일 중 하나였어요. 고된 일이었지만 나중에 사진만 보면 굉장히 몽환적으로 보였어요. 그런 경험들이 사진을 하게 만든 요인이 된 것 같기도 해요.

M 친구들을 모아서는 어떤 사진을 촬영했어요?
친구들 사이에서 제 자리를 찾고 싶어 무엇이든 다 찍고 싶다는 욕망이 강했어요. 클라이언트가 없으니까 제 마음대로 인물을 모델로 예술 사진을 찍었어요. 아름답기보다는 굉장히 어둡고 징그럽게 보이는 사진들이었죠. 저도 제가 왜 그런 사진들을 많이 찍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때 제가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M 사진의 반응은 어땠어요?
별로였죠(웃음). 그런데 그런 걸 좋아하는 분들도 가끔 있었어요. 그때 좋아해주셨던 분들은 지금까지도 전시를 찾아주더라고요.

M 그때 촬영한 사진들을 전시하거나 매체에 소개한 적은 있나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보니 소개할 만한 방법이 별로 없었고, 자신 있게 저를 소개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갤러리도 기웃거리긴 했는데 잘 안 됐고요. 그래서 해외로 눈을 돌렸어요. 해외의 갤러리나 사진전에 작품을 출품했는데 좋다는 반응이 좀 있었어요. 한국에서는 학벌이 없어서 무시당했지만 작품만으로 인정받으니까 정말 좋더라고요. 뉴욕에서 열린 사진 공모전에서 우승을 한 적도 있어요.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제 가능성을 본 것 같아요.

M 사진으로 수입이 생긴 건 언제부터였어요?
서울 올라올 때 가지고 온 돈도 떨어지고 빚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예술보다는 돈을 좀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클럽에서 홍보용 사진을 찍었어요. 사람들이 놀고 먹고 마시는 사진을 찍는 거예요. 당시 일당이 15만원이었고 친구들하고 놀면서 해보자는 생각으로 했는데 취한 사람들 사이에서 무시당하며 사진 찍는 것도 못할 일이더라고요. 1년 정도 하다가 친구가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모델 사진을 찍었는데 그것도 아니었어요. 결혼식장에서 웨딩 스냅사진도 찍었는데 역시나 안 맞더라고요. 개인 작업을 해보고 싶은 욕망만 점점 커졌던 것 같아요.

M 그 시기를 어떻게 극복한 거예요?
잘되는 게 없으니까 모든 걸 내려놓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려고 했어요. 그런데 출발 일주일 전 자이언티를 만났고 뭔가 같이 해보자고 했어요. 그때 고민이 많았죠. 다 포기하려고 했는데 다시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사진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한국에 남기로 했고, 자이언티와 앨범 커버 작업을 하고 함께 전시도 하면서 제 이름이 알려진 거예요. 그때가 첫 전시였고, 이후 연예인들과 함께 여러가지 작업을 하고 패션 매거진 일도 많이 했죠.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몰랐는데 겉멋만 들었던 시절이었어요(웃음).

M 그 덕에 작가님의 작품이 인정받게 되었네요.
정말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도 컸던 시절이었어요. 전공자들만큼 카메라 기종이나 필름에 대해 잘 몰랐거든요. 주변에서 사진하는 친구들이 모르는 용어들로 이야기를 하는데 몰라도 아는 척하느라 괴로웠어요. 결국 하나씩 다시 공부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러다가 필름카메라에 빠지게 되었고, 요즘 하는 검프린트 작업까지 오게 되었죠.

M 이번 전시가 몇 번째 개인전이죠?
그동안의 회화적인 색채도 인상적이었는데, 저는 말씀하신 검프린트 작업도 참 좋더라고요. 2016년 첫 개인전을 하고 이번이 세 번째예요. 검프린트는 파리 사진 박람회에서 우연히 보고 반한 작업 방식이에요. 이것도 사진인가 하고 다시 들여다봤는데 너무 멋있더라고요. 필름사진의 오래된 인화 방식이에요.

M 이번 전시에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뭔가요?
몇 번의 전시를 통해 과분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았어요. 그런데 저는 뭔가 허탈하고 쓸쓸한 마음이 들었어요. 사람들은 다음 행보를 궁금해하는데, 저는 아무것도 찍을 수가 없게 되었고요. 2018년부터 3년 동안 여기저기 방황했어요. 그러다 유럽에서 사람의 뒷모습을 촬영한 적이 있는데 가장 좋아하는 작품의 주인공이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충격이 컸어요. 사진은 이렇게 잘 있는데 주인공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저를 힘들게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내가 왜 사진을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고, 나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결론을 내렸어요. 저는 피사체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인생을 사진으로 표현하는 일을 해왔던 거였고, 앞으로도 잘 해내고 싶어요.

M 이번 전시는 공간, 음악, 향기의 조화가 너무 아름다워서 여러 번 오고 싶을 정도예요. 그래서 작가님의 다음 작업도 기대가 돼요.
저도 이번 전시의 반응이 좋아서 정말 행복해요. 지금의 파트너인 오수경 대표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작품을 통해 저만의 고민을 많은 분들께 털어놓았어요. 그리고 요즘은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은 게 머릿속에 가득하네요(웃음). 인간의 ‘욕망’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붙잡고 늘어지고 싶어요.

M 작가님도 이제 시작하는 젊은 작가이지만, 후배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한참을 고민하다) 정말 솔직할 수 있냐고 물어보고 싶어요. 뭔가 뜨끔한 게 있다면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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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비치는 전시 공간에서 관람하는 경험이 무척이나 감동적이었다는 마크 테토.​

햇살이 비치는 전시 공간에서 관람하는 경험이 무척이나 감동적이었다는 마크 테토.​

마크 테토(Mark Tetto)

마크 테토(Mark Tetto)

JTBC 〈비정상회담〉의 훈남 패널로 이름을 알렸다. 한국 생활 11년 차, 북촌의 한옥 마을에 거주하며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매일 누리고 있다. 경복궁 명예 수문장을 역임하고, 한국 공예품과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그는 한국을 가장 사랑하는 외국인 중 한 명. 매달 〈리빙센스〉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만나 그들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가 최랄라가 3년 만에 선보이는 개인전 <FEEL LOST>가 장안의 화제다. 60년 된 교회 건물을 개조한 감각적인 공간에서 바흐의 선율과 니치 향수의 향이 어우러지는 전시는 봄 타는 마음을 전시장으로 이끄는 마력이 있다. 마크 테토가 전시장을 찾은 날도 봄 햇살이 전시장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CREDIT INFO

기획
심효진 기자
사진
김덕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