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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테토의 아트스페이스 19탄

한지로 창조하는 세계 김민정 작가

On March 10, 2021

한지의 물성에 다양한 기법을 더하며 철학적으로 사유해온 김민정 작가가 오랜만에 고국을 찾아 전시를 연다. 평소 김민정 작가의 ‘찐팬’을 자처한 마크 테토가 작가가 서울에 마련한 작업실과 전시관을 찾아 함께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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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칠과 말리는 과정을 반복해서 만들어내는 ‘mountains’ 시리즈.

먹칠과 말리는 과정을 반복해서 만들어내는 ‘mountains’ 시리즈.

너무나 익숙해서 가치를 못 알아보는 것들이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한지가 그런 대상은 아닐까? 일상에서 쓸모를 잃은 한지에 숨결을 불어넣어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은 작품으로 탄생시킨 김민정 작가. 한지에 먹으로 그림을 그리고, 다양한 색의 한지 가장자리를 촛불이나 향불로 조심스럽게 태워 겹겹이 쌓아 올리는 콜라주 작품은 반복되는 패턴과 농담의 차이로 무한한 시간을 표현한다. 태우고 붙이는 일을 반복하는 작업 과정은 수행하듯 그리는 단색화처럼 동양과 서양의 철학을 함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홍익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이탈리아로 건너간 작가는 밀라노 브레라 국립미술원에서 순수미술을 공부하며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작가는 영국 런던의 화이트 큐브, 독일 노이스의 랑겐 파운데이션, 미국 뉴욕의 힐 아트 파운데이션에서 연이어 개인전을 열고 최근 <뉴욕타임스>의 주목을 받으며 국제적 명성을 쌓았다. 김민정 작가에게 한지는 어떤 재료일까?  

작업실에 쌓인 한지 재료들. 컬러, 두께별로 모아두었다.

작업실에 쌓인 한지 재료들. 컬러, 두께별로 모아두었다.

작업실에 쌓인 한지 재료들. 컬러, 두께별로 모아두었다.

한지를 원하는 두께로 잘라 가장자리를 촛불로 그을리면 자연스러운 무늬가 만들어진다.

한지를 원하는 두께로 잘라 가장자리를 촛불로 그을리면 자연스러운 무늬가 만들어진다.

한지를 원하는 두께로 잘라 가장자리를 촛불로 그을리면 자연스러운 무늬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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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대표작인 ‘street’ 시리즈가 완성되어가는 과정.

작가의 대표작인 ‘street’ 시리즈가 완성되어가는 과정.

작업실에 쌓인 한지 재료들. 컬러, 두께별로 모아두었다.

작업실에 쌓인 한지 재료들. 컬러, 두께별로 모아두었다.

작업실에 쌓인 한지 재료들. 컬러, 두께별로 모아두었다.

풀을 바르고 한지를 덧대면서 ‘street’ 시리즈를 작업하는 김민정 작가.

풀을 바르고 한지를 덧대면서 ‘street’ 시리즈를 작업하는 김민정 작가.

풀을 바르고 한지를 덧대면서 ‘street’ 시리즈를 작업하는 김민정 작가.

M 안녕하세요! 예전부터 팬이었는데 해외에서 활동하셔서 만나기 어려웠어요. 이렇게 인터뷰하게 돼서 정말 반갑습니다. 제 작품을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근엔 프랑스에서 머물다 간만에 전시를 하게 돼서 한국에 왔어요.

M 한지에 수묵화 작업을 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독특한 방식이더라고요. 처음부터 이런 스타일의 작업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한국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는데 거기는 동양화, 서양화로 나누지 않고 그림을 그리면 무조건 ‘드로잉’으로 구분했어요. 저 역시 동양화라는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좀 더 새로운 작업을 하고 싶어 유학을 떠난 거였는데 잘된 일이었죠. 창의적으로 작업할 수 있게 도와주신 선생님들 덕분에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어요.

M 유학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채색을 하다가 유학을 갔는데 이탈리아는 장르도 중요하지 않고, 당시에는 벌써 비디오 사진 작품을 다들 하더라고요. 그때가 1990년대 초반이었는데 나이도 많은 편이었고 말도 잘 못해서 처음엔 좀 힘들었어요. 제가 한국에서 잘하던 걸 해보려고 했는데 선생님이 저보고 멀리 유학까지 와서 왜 같은 재료를 쓰냐고, 좀 더 새로운 도전을 해보라고 하셨죠. 그 덕분에 종이는 계속 썼지만 좀 더 다른 방식을 시도해봤어요. 4학년이 된 후에는 선생님들께 칭찬도 많이 받았고, 졸업 작품을 전시할 때는 갤러리의 지목을 받아서 바로 활동할 수 있었고요.  

현대 갤러리에 전시된 김민정 작가의 작품들.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한지를 재료로 색다른 결과물을 탄생시킨다.

현대 갤러리에 전시된 김민정 작가의 작품들.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한지를 재료로 색다른 결과물을 탄생시킨다.

현대 갤러리에 전시된 김민정 작가의 작품들.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한지를 재료로 색다른 결과물을 탄생시킨다.

김민정 작가는 다양한 색의 한지를 구입해서 사용하기도 하며, 시중에 없는 색을 입혀 만들기도 한다.

김민정 작가는 다양한 색의 한지를 구입해서 사용하기도 하며, 시중에 없는 색을 입혀 만들기도 한다.

김민정 작가는 다양한 색의 한지를 구입해서 사용하기도 하며, 시중에 없는 색을 입혀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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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갤러리에 전시된 김민정 작가의 작품들.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한지를 재료로 색다른 결과물을 탄생시킨다.

현대 갤러리에 전시된 김민정 작가의 작품들.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한지를 재료로 색다른 결과물을 탄생시킨다.

김민정 작가와 함께 한지를 태우는 과정을 함께 시도해보는 마크 테토.

김민정 작가와 함께 한지를 태우는 과정을 함께 시도해보는 마크 테토.

김민정 작가와 함께 한지를 태우는 과정을 함께 시도해보는 마크 테토.

M 그 이후 계속 유럽에 계신 거예요? 금융위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간 친구들도 많았는데, 저는 다행히 졸업하자마자 바로 활동할 수 있었고 당시 이탈리아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계속 지내게 됐죠. 맛있는 음식, 멋있는 사람들, 굉장히 여유로운 분위기가 저를 사로잡았거든요. 마크 씨가 이탈리아계 미국인이라니 옛날 생각도 나고 많이 반갑네요!

M 어릴 때는 어떤 그림을 좋아하셨어요? 저는 전라도 광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당시만 해도 완전히 시골이었어요. 어른들에게 배운 게 서예였고요. 붓으로 글도 쓰고 난초, 대나무, 산 같은 것들을 그렸어요. 제가 자랄 때는 아주 흔한 일이었죠.

M 조선시대 그림에서 보던 그런 스타일인 거죠? 지금까지 하는 작업에 영향을 주었겠네요? 네, 제 작품은 어릴 때 배웠던 서예에서 출발한 것 같아요. 그리고 항상 썼기 때문에 그런 재료를 떠나기도 힘들었고요. 게다가 저희 아버지가 인쇄소를 하셔서 집에 자투리 종이가 정말 많았거든요. 그것들을 자르고 붙이고, 딱지도 만들어서 놀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종이가 친근한 소재인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어요.

M 한지를 사용하는 것도 히스토리가 있을 것 같은데 지금처럼 종이 가장자리를 불로 태워서 붙이는 형식은 언제부터 시작하셨어요? 2000년대 들어서면서 시작했어요. 종이가 불에 타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무늬와 색이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거기서부터 제가 뭘 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면서 지금의 작품들이 만들어진 거죠.

M 저도 작가님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좋았던 부분이 한지를 태워서 만들어낸 무늬였거든요. 혁신적으로 느껴졌어요. 루초 폰타나 작가의 작품을 보고 영감을 받은 거예요. 그분이 칼로 캔버스를 찢는 것이 너무 멋있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잘라봤고, 그걸 다시 붙여서 작품을 만들어보게 된 거죠. 처음엔 제 작품의 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폰타나로부터 영감을 받은 덕분에 이런 작품도 나왔다고 생각해요. 한국에 있었으면 그런 경험은 할 수 없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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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방콕의 비 오는 거리를 떠올리며 작업한 ‘The street’ 시리즈.

태국 방콕의 비 오는 거리를 떠올리며 작업한 ‘The street’ 시리즈.

이번 전시의 제목은 ‘Timeless'다. 미세한 차이로 켜켜이 쌓인 같은 모양의 한지 조각들이 만들어내는 무늬는 음과 양, 윤회사상들을 표현한다고. 전시는 2월 19일부터 3월 28일까지 갤러리 현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Timeless'다. 미세한 차이로 켜켜이 쌓인 같은 모양의 한지 조각들이 만들어내는 무늬는 음과 양, 윤회사상들을 표현한다고. 전시는 2월 19일부터 3월 28일까지 갤러리 현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Timeless'다. 미세한 차이로 켜켜이 쌓인 같은 모양의 한지 조각들이 만들어내는 무늬는 음과 양, 윤회사상들을 표현한다고. 전시는 2월 19일부터 3월 28일까지 갤러리 현대에서 열린다.

M 한국 밖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재료를 새롭게 혁신할 수 있었던 걸까요? 아무래도 지금의 작품은 유럽에서 살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릴 때 한국에서 보고 배운 것과 그 후 해외에서 살았던 경험이 모두 다 담긴 게 아니었을까요? 일부러 한국적인 걸 추구한 건 아니고 자연스럽게 표출된 거라고 생각해요.

M 수묵화처럼 보이는 작품을 보면 작가님께서 산을 좋아하시는 것 같기도 해요. 산은 언제나 좋아하는 소재죠. 제 작품을 보고 어떤 분은 지리산 같다고 하세요. 하지만 사실 저는 지리산에서 오래 지내본 적이 없어요. 생각해보니 저의 어머니가 6.25전쟁 때 오빠를 찾으러 나섰다가 빨치산으로 지리산에서 3년 동안 살았던 적이 있거든요. 어머니의 그 시절 기억이 유전자를 통해 저에게 내려온 것 같아요. 외국에 살며 ‘내가 왜 아직도 이렇게 종이와 먹을 붙들고 있지?’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요. 나의 뿌리와 근원 덕분이 아닐까 해요.

M 외국에서 사는 이방인으로서 작가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네요. 타지 생활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감정일 거예요. 그런데 마크 씨가 산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은 사실 처음엔 물결을 그린 거예요. 그런데 많은 분들에게 산을 그린 것처럼 보여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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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no di vuoto’ 시리즈를 감상하는 마크 테토.

‘Pieno di vuoto’ 시리즈를 감상하는 마크 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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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 제작한 ‘The Street’ 시리즈.

2020년에 제작한 ‘The Street’ 시리즈.

붉은색 물감의 농담을 달리해 제작한 ‘Red Mountain’ 시리즈.

붉은색 물감의 농담을 달리해 제작한 ‘Red Mountain’ 시리즈.

붉은색 물감의 농담을 달리해 제작한 ‘Red Mountain’ 시리즈.

M 정말요? 다시 보니까 정말 물결처럼 보이네요. 나폴리 여행을 하다가 근처에 라벨로라는 곳에 갔는데 아주 오래된 집에서 며칠 지낸 적이 있어요. 바로 코앞에 낭떠러지가 있고 파도 소리가 들리는 곳이었죠. 물소리가 참 듣기 좋았는데 예전에 허백련 작가께서 물소리를 그리고 싶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저 역시 그런 욕망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먹물로 농담을 달리해 파도를 표현했던 거예요. 하지만 요즘은 산을 생각하고 그리고 있어요. 작품명도 ‘mountains’이고요.

M 자연의 재료인 종이를 활용하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는 재료를 쓰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유학 초반에 저도 이 재료 저 재료 써보다가 결국엔 해로운 걸 멀리하게 되더라고요. 아티스트가 만드는 게 결국은 어떤 물건인데 그 안에 유해한 물질을 쌓아놓는 것도 경계해야 할 것 같아요.

M 저도 대학교 때 화학을 전공했는데 사용하는 약품들이 건강에 해로울 것 같아서 오래 공부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맞아요. 재료가 건강하지 않으면 작업도 불안해질 수밖에 없죠. 그런 것 때문에 예술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M 종이는 유해하지 않고 따뜻한 느낌을 전달하는 소재인 것 같아요. 작가에게 재료는 50% 이상의 역할을 하지요. 한지에 색칠을 하고 말리면서 나오는 무늬는 종이가 알아서 만들어내는 거예요. 저하고 종이하고 같이 합작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얇은 종이 한 장의 힘이 대단한 거예요.

M 그런 에너지 덕분에 오랫동안 작업하실 수 있었나 봐요. 제 나이 또래만 돼도 여성 작가가 이렇게 미술 작업을 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결혼하고 육아를 하느라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거든요. 대학교 동창들이 참 많았는데 지금 활동하는 작가를 찾기가 어려워요. 그런 점들이 좀 안타깝죠.

M 이번 전시에서 작가님의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돼서 정말 기쁩니다. 처음 접하는 것들도 있는데 작가님의 스타일이 잘 드러나서 더 애정이 가요. 이번 전시는 처음으로 ‘Timeless’라는 주제로 진행해봤어요. 예전의 작업에 비해 육체적으로 훨씬 고됐지만 제가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다룰 수 있어서 저도 마음에 들어요. 마크 씨에게도 좋은 작품으로 기억되었다니 정말 기뻐요. 다음 작품들도 더 힘내서 작업할 수 있겠어요!

마크 테토(Mark Tetto)

마크 테토(Mark Tetto)

JTBC 〈비정상회담〉의 훈남 패널로 이름을 알렸다. 한국 생활 11년 차, 북촌의 한옥 마을에 거주하며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매일 누리고 있다. 경복궁 명예 수문장을 역임하고, 한국 공예품과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그는 한국을 가장 사랑하는 외국인 중 한 명. 매달 〈리빙센스〉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만나 그들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한지의 물성에 다양한 기법을 더하며 철학적으로 사유해온 김민정 작가가 오랜만에 고국을 찾아 전시를 연다. 평소 김민정 작가의 ‘찐팬’을 자처한 마크 테토가 작가가 서울에 마련한 작업실과 전시관을 찾아 함께 시간을 보냈다.

CREDIT INFO

기획
심효진 기자
사진
김덕창
취재협조
갤러리 현대 (02-2287-3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