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상업 공간의 감각적인 인테리어로 주목받고 있는 판지스튜디오의 강금이 실장이 5개월 전 유엔빌리지의 빌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전셋집 인테리어가 이렇게 멋질 일인가?
상업 공간 인테리어의 슈퍼스타, 판지스튜디오
아우어베이커리, 도산분식, 나이스웨더 등 최근 몇 년 새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상업 공간들의 뒤에는 판지스튜디오가 있다. 각각 분위기는 다르지만 장르를 넘어서는 과감한 디자인, 어딘지 모르게 따뜻하고 오래 머물고 싶은 분위기가 공통된 특징. 이 공간들을 디자인한 판지스튜디오는 디자이너 양재윤, 강금이 부부가 2005년 설립한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로, 순수 미술을 전공한 부부가 아티스틱한 연출이 돋보이는 프로젝트를 전개해오고 있다.
양재윤 대표는 ‘플라잉시티’라는 크리에이티브 그룹에서 공공건축과 에르메스 등 명품 브랜드의 쇼윈도 작업을 통해 업계에서 주목받은 주인공이며, 미대 재학 중 플라잉시티의 프로젝트를 보조하면서 인테리어 업계에 뛰어든 강금이 실장은 양 대표와 함께 판지스튜디오를 이끌고 있다. ‘인테리어로 자본력을 키워 재미있는 미술 작업을 하자’는 결의를 다지며 시작한 판지스튜디오는 어느덧 설립 17년 차의 잔뼈가 굵은 중견 업체로 성장했고, 다양한 공간의 브랜딩과 인테리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돋보이는 작업물로 주목받는 판지스튜디오를 이끄는 부부의 집, 어떤 공간일지 궁금했다.

취향은 언제든지 변한다고 생각해요. 주변 사람들이나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죠. 저 역시 지금까지 좋아하며 모아온 가구들이 언제 싫증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지금까지의 결론은 오래전에 만들어진 물건일수록 덜 질린다는 거예요.
가구를 쉽게 사는 건 아니지만 취향이 확고하다 보니 정말 마음에 드는 물건은 바로 사는 편이에요. 다이닝 식탁과 의자는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 구입했는데 가구의 카리스마에 반했어요. 아이들이 의자의 가죽 부분을 긁어놨지만 가구도 저희 집에 맞게 적응하고 자연스럽게 색이 변해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상업 공간에서의 인테리어가 돋보이는데요. 판지스튜디오만의 색깔이 있다면요?
상업 공간은 브랜드의 정체성과 클라이언트의 니즈, 저희의 기획을 적절히 맞춰서 잘 풀어내는 게 중요해요. 다행히 저희의 제안을 좋아해주는 클라이언트를 만나서 재미있는 작업을 많이 해왔죠. 저희는 되도록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서 처음 만나는 공간이지만 오래 있고 싶은 곳으로 만들려고 해요. 그래서 가구는 물론 자잘한 손잡이까지 직접 제작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가 직접 디자인해서 제작까지 진행하기 때문에 사무실도 문래동에 구한 거고요. 문래동에는 예전에 탱크까지 만들었을 정도로 기술 있는 장인분들이 많거든요. 그런 분들과 함께 늘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고, 저희 부부의 전공을 살려서 미술적인 시도를 하다 보니 이용자들이 신선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어떤 계기로 이사 오게 되었나요?
5개월 전 이사했는데 첫눈에 반한 집이에요. 원래 다른 집을 봐두었는데 우연히 이 공간을 보고 바로 마음을 바꿨죠. 전셋집이었는데도 모던한 디자인과 색감이 제 눈을 사로잡더라고요. 노란색 주방 가구와 검정색 바닥, 하얀 벽이 만들어내는 이국적인 느낌이 좋았어요. 입주할 때 벽의 도장을 새로 한 것 말고는 손본 곳이 거의 없어요. 지금까지도 만족하면서 지내고 있고요.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거실을 제일 좋아해서 오랜 시간을 보내요. 거실은 온전히 제가 좋아하는 취향으로 꾸민 공간이라서 더욱 애정이 가요. 저희 부부는 서로 선호하는 스타일이 다른 편이어서 한 공간에 녹이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거실은 제가, 안방은 남편이 맡아서 자신의 스타일을 마음껏 펼치기로 했어요(웃음). 제가 갖고 싶어 했고 좋아했던 것들을 거실에 모아두었는데 그냥 있기만 해도 기분 좋은 공간 있잖아요? 바로 그런 곳이 거실이에요. 쉬는 날은 거의 집에만 있는데 거실에서 하루 종일 살아요. 친구들을 초대해도 거실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고요. 그 대신 안방은 남편의 자전거와 안마 의자에 점령당했지만요(웃음).
흔치 않은 디자인의 가구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거실이 인상적이에요. 하나하나 신중하게 고른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요?
예전부터 가구에 관심이 많았어요. 옷이나 장신구는 기본적인 것들만 있으면 되는데 가구는 안 그렇더라고요. 나름 고된 일을 하다 보니 열심히 일한 나에게 보상을 해주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나 자신에게 위시리스트 속 가구를 선물하기로 했죠. 디자인 가구들은 높은 가격 때문에 한꺼번에 많이 살 수 없잖아요. 프로젝트 하나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그때 하나씩 구입했고, 거실의 가구는 대부분 그렇게 차곡차곡 모아온 것들이에요.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보상을 받게 되니 일을 더 열심히 하게 되는 효과도 있더라고요(웃음).
그중 위시리스트 1번은 어떤 가구였나요?
거실 창가에 있는 알루미늄 수납장이요. 네덜란드의 가구 디자이너 피트 하인 이크가 디자인한 제품인데 소재부터 디자인까지 마음에 쏙 들었어요. 하지만 알루미늄은 생각보다 강한 소재가 아니어서 배송이 까다롭고 한국까지 오기 어렵다고 해서 구입할 때 애를 먹었어요. 8개월을 기다린 끝에 받은 까다로운 가구이기도 하고요. 제가 금속 소재를 좋아하긴 하지만 과하게 반짝이는 스테인리스는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이 수납장은 살짝 탁한 색감과 섬세한 디자인이 바로 제 취향을 저격했어요. 알루미늄은 가공하기 어려운 소재인데 이렇게 아름다운 가구를 만날 수 있다는 건 행운이죠.
노란색 주방 외에 다른 공간에서도 과감한 색의 가구들이 보여요. 그중에서도 아이들 방은 알록달록한데도 유치해 보이지 않아 인상적이고요.
공간에 다양한 색감을 들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편인데, 아이들에게도 그런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이 사용하는 가구와 식기는 색을 좀 더 과감하게 고르게 되더라고요. 방을 꾸밀 때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색을 물어보고 어울리는 색의 예쁜 가구를 들였고요. 그 덕분인지 아이들이 색을 자유롭고 자신감 있게 표현하는 게 보여요. 커가면서 자기만의 취향을 발견하게 되겠지만, 어릴 때부터 다양한 색을 경험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스스로의 성향을 정확히 알고 색을 다룰 수 있게 될 거라고 믿어요. 일하면서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색을 선택하는 용기가 없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분명히 자신의 취향이 있을 텐데 스스로 알아채지 못하고 헷갈려 하면 안타깝더라고요.
일로 대하는 인테리어와 일상 속 인테리어는 많이 다른가요?
다른 사람의 삶에 들어가 공간을 대신 스타일링해주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아요. 인테리어 디자인 일을 시작했을 때는 그런 스트레스가 심해서 제가 사는 공간을 스타일링하는 것도 일처럼 느껴지더라고요. 한동안 그 어떤 스타일링도 하지 않고 기본적인 것들만 들이고 산 적도 있었어요(웃음). 이제는 일도 삶도 안정을 찾으면서 좋아하는 것들을 나만의 공간에 들이는 재미를 느끼게 됐고, 그것들을 충분히 즐기고 만끽하고 있어요. 저만의 공간 스타일링 원칙은 아무거나 들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집에 왔는데 눈에 거슬리는 물건이 있으면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으니까요.
집을 잘 꾸미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한다면요?
자신의 취향을 정확히 판단하는 게 가장 우선인 것 같아요. 요즘 SNS에 예쁜 집 사진이 정말 많잖아요. 물론 좋은 레퍼런스들이지만 단편적으로 따라 하기보다는 많은 정보들을 접하면서 안목을 키우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집집마다 있는 ‘국민 가구’들을 볼 때마다 이렇게 비싼 가구들이 정말 이 많은 사람들의 취향일까라는 의구심이 들 때가 많거든요(웃음).
여러 상업 공간의 감각적인 인테리어로 주목받고 있는 판지스튜디오의 강금이 실장이 5개월 전 유엔빌리지의 빌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그런데 전셋집 인테리어가 이렇게 멋질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