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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안의 용감한 라이프4

어쩌다 '강릉 반 서울 반' 라이프를 시작합니다

On February 1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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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강릉 반 서울 반’ 라이프를 살게 됐다. 작년 이맘때는 생각조차 못했던 일이다. 심지어 <리빙센스>에서의 첫 글은 ‘6시간 30분 동안의 강릉 여행이었다! 지난여름 혼자 즉흥적으로 떠났던 강릉 여행이 준 선물이라고 해야 할까.

세상의 많은 일들은 우연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 같다. 반복되는 일상이 답답했던 지난 여름, 혼자 바다에 가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강릉을 떠올렸고, 기차 안에서 기차역과 가장 가까운 해수욕장을 검색하니 나온 것이 송정해수욕장이었다. 나중에 들은 바에 따르면 동해안의 수많은 해변 중 그나마 한적한 편에 속하는 곳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갔던 곳은 송정해수욕장이 아니었다. 더워서 그랬을까, 다소 무성의했던 택시 운전기사 아저씨는 송정해수욕장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나를 내려줬던 것이다. 바닷가의 소나무를 따라 쭉 가면 된다고 했는데 초행이었던 나는 소나무 길을 따라 송정해수욕장과 반대 방향으로 걷게 되었고 그곳이 바로 요즈음 내가 일출을 보러 나가는 자칭 ‘이름 없는 해변’인 것이다. 구글 지도 같은 것에서 검색해도 정확한 명칭이 나오지 않는 동네 주민들의 산책로 같은 곳 말이다. 택시 운전기사 아저씨가 잘못 내려주었던, 사람도 없고 이름도 없는 해변에 앉아 오후 내도록 바느질을 하고 김밥을 먹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하나였다. ‘이곳을 제2의 거처 삼아 한 번 살아보면 어떨까.’ 그러고 보니 강릉엔 우리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바다가 있고 산이 있으며 강과 호수와 문화재와 심지어 커피까지 있는 보기 드문 도시가 아니던가. 하려고 하던 일은 하나도 안 되는 맥 빠진 여름이었는데 강릉을 떠올리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모처럼 느끼는 설레임이었다. 글로벌한 전염병 때문에 어차피 한동안은 그 어디도 가기 어려울 터였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나는 여행이 아닌, 어떻게 하면 강릉에서 한 번 살아볼까에 대해 궁리하기 시작했다.

이후로 일주일에 한 번씩 당일치기로 강릉에 갔다. 강릉역에서 이름 없는 해변으로 직행하여 한참을 앉아 있다 걸어서 근처 공인중개사사무소를 돌아다니는 식이었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이었다. 제주에서 집을 구해 아이와 한 달 살이도 해보고 나아가 1년 동안 살아보기도 한 경험이 있었기에 자신감도 있었다. 그러나 타지에서 집을 구하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가. 소박하게 시작했던 예산은 집을 보면 볼수록 초과하고 그나마 점찍어 놓았던 집들도 눈앞에서 놓치기를 여러 번. 집은 역시 ‘의지’보다는 ‘운’에 가까운 영역이었다. 강릉과 서울을 오가며 기대와 실망을 반복했던 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낯선 번호로 연락이 왔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강릉의 어느 공인중개사사무소였다. 저렴하게 나온 작은 아파트가 있는데 방금 집을 보고 간 신혼부부가 낡았다며 퇴짜를 놨다는 것이다. 다른 부동산에서 10분 후 그 집을 보러 갈 예정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아파트 동과 호수를 듣자마자 그곳이 어딘지 알 수 있었다. 우연한 첫 방문 이후 수없이 거닐었던 이름 없는 해변 근처의 아파트였기 때문이다. 3초 만에 나는 서울과 강릉을 오가며 살아보는 것으로 앞날을 확정 지었다. 후에 누군가 내게 강릉에 왜 집을 구했는지, 어디가 가장 좋았는지 물었을 때 마땅한 답을 떠올리지 못했다. 가본 것은 이름 없는 해변이 다였으므로. 몇 시간씩 웨이팅이 있다는 카페도, 유명하다는 독채 펜션도, 하다못해 오죽헌 같은 관광 명소도 가본 적이 없었다.

강릉을 이야기하자면, 첫눈에 보자마자 반해서 3일 만에 결혼을 결심했다던 어느 배우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내게 강릉은 ‘이미 사랑에 빠졌으니 애정으로 천천히 알아보고 싶은 상대’와도 같다. 우리네 결혼생활처럼 분명 실망하고 싸우는 날도 있겠지만 더 말해 뭐 하겠는가.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삶의 모양이 우연에 힘입어 실제의 행동으로 옮겨졌을 때의 쾌감이 이렇게 짜릿한 것을.  


글쓴이_이홍안
오랫동안 패브릭 브랜드의 마케터로 일했고, 지금은 마케팅 컴퍼니를 운영하며 현재 잘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하고 있다. 여덟 살짜리 아이의 엄마로 여행과 캠핑을 좋아하는 그녀는 지난해 아이와 단둘이 남미 캠핑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제주에서 1년씩 살아보기도 하면서 용감한 일상을 꾸려나가는 중이다.

CREDIT INFO

기획
심효진 기자
글,사진
이홍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