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확고한 취향이 만들어낸 공간을 구경하는 것처럼 재미있는 일이 또 있을까. 마케터 이홍안 씨의 집에서 만난 단아한 주방의 면면들.
여행자의 주방
이홍안(@hongahn) 씨는 인스타그램에서 유명 인사다. 남다른 감각의 마케터인 그녀가 보여주는 일상은 재미있고 아름답다. 어린 아들과 단둘이 훌쩍 남미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노지 캠핑을 즐기고, 제주와 서울에서 반반씩 살아보는 생활에 도전하는 그녀의 삶은 아름다움을 찾아 떠나는 모험 같기도 하다. 일상 속에 보이는 그녀의 살림살이는 또 얼마나 매력적인지. 그녀가 소장한 아이템들은 공간에 찰떡같이 어우러진다. 그녀가 얼마 전 새로운 공간을 꾸몄고 주방은 특별히 더 공을 들였다. “이왕 고치는 거 제가 해보고 싶은 것들을 실현해보고 싶었어요. 예산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기도 했지만 주방만큼은 타협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좋아하는 레스토랑에서 본 초록 타일을 벽에 두르고, 라왕 합판으로 주방 하부장을 제작하고 무광의 스테인리스를 상판으로 올려 제 스타일의 주방을 완성했어요.”
혼자 식사를 해도 딱 맞는 그릇에 음식을 담고 테이블 매트를 깔고 먹어요. 기분도 좋아질 뿐 아니라 적당한 양을 먹을 수 있게 되거든요. 아무 그릇에나 음식을 담아 먹으면 두 그릇도 먹을 수 있을 거예요. 사는 데 그 정도 격식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SNS에서 봤지만 실제로 보니 더 단아한 매력이 있는 주방이네요. 주방을 리모델링할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어디예요? 작은 아파트다 보니 식탁 자리에서 바로 화장실이 보였거든요. 저는 음식을 먹는 공간에서 화장실이 보이는 게 싫더라고요. 그래서 가벽을 세워 화장실이 보이지 않게 완벽히 차단했어요(웃음). 주방과 세탁실 사이에도 가벽을 세워서 정말 주‘방’처럼 만들었고요, 현관에서 거실로 들어오는 입구에도 가벽을 세워서 다이닝 공간을 구별 지었어요.
이렇게 한 공간에 가벽을 여러 개 세우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요. 제가 부지런한 편은 아니어서 개수대에 설거짓거리를 잘 쌓아두는데, 그런 지저분한 것들이 보이지 않는 주방이길 바랐거든요. 화장실도 안 보였으면 좋겠고. 그런 고민들을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 털어놨는데, 일본 맨션 스타일로 해보는 건 어떠냐고 아이디어를 주셨어요. 너무 좋더라고요. 욕심 같아서는 거실에도 가벽을 세워서 하나의 방처럼 만들고 싶었는데 디자이너가 나중에 집을 팔 때 힘들 거라고 만류해서 지금 수준으로 만족했어요(웃음).
주방에서 거실 쪽 좁은 입구를 통로로 만들지 않고 그 앞에 식탁을 둔 것도 새로운 아이디어 같아요. 저도 만족스런 구조예요. 제 자리는 주방 안쪽이고요. 바깥의 양쪽엔 남편과 아들이 앉아요. 제 양옆으로 싱크대와 선반이 있어서 앉은 채 음식이나 접시를 전해줄 수 있거든요. 꽤 효율적이죠. 그리고 제가 앉은 자리의 가장 좋은 점은, 베란다 창밖의 나무가 잘 보인다는 거예요. 다른 각도에서는 그리 별로 크지 않은 나무처럼 보이는데, 이 자리에 앉으면 창밖이 온통 초록이라 늘 기분이 좋아요.
새로 꾸민 주방의 장점을 꼽는다면요? 저희 집은 거실에 소파가 없고, 다이닝 공간이 거실의 중심이에요. 식탁도 집에 비해서는 큰 편이고요. 그래서 손님이 와도 식탁에 앉고, 가족도 자연스럽게 식탁에 모이게 돼요. 식사를 하는 공간인 것은 물론이고, 세 식구가 앉아서 이야기도 하고, 간식도 먹고, 아이의 어린이집 알림장에 답장도 쓰는 그런 공간이에요. 가족을 한 곳으로 모아주는 역할이 가장 큰 장점이에요.
식기류 취향도 확고해 보여요. 식기류는 대부분 10년 전에 산 것들이에요. 가구를 살 돈이 없었던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 열심히 모았던 것 같아요(웃음). 여행지에서 한두 개씩 사서 모은 것들이 이만큼 모였네요. 주로 아라비아핀란드 제품이 많은데, 살짝 오목해서 국물 있는 한국 음식을 담아내기 좋고요. 차곡차곡 쌓아놓기도 편해서 자주 손이 가요. 옛것만이 가진 투박한 느낌도 좋고요. 색이 너무 중구난방이면 곤란할 것 같아 갈색 위주로 샀고요. 포인트로 초록색이나 유리 소재 아이템을 가끔 구입했어요. 지금도 사고 싶은 게 많은데 저희 세 식구가 사용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아서 자제하는 중이에요. 얼마 전부터 도예 작가들의 그릇에 관심이 생겨서 작년 ‘지승민의 공기’에서 흰색 오벌 접시를 하나 구매했어요.
주방은 나에게 어떤 공간이에요? 밥을 먹어야 힘이 나니까, 주방은 우리 삶의 원천이 되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주방에 벽을 세우고 방처럼 만들었더니 미로처럼 되었는데, 주방에 있다 보면 남편이나 아들이 쓱 들어와서 “뭐 먹을 거 없어?” 하고 물어보거든요. 저는 그런 요구들이 좋더라고요. 배가 고파서, 에너지를 얻고 싶어서 들어오는 가족에게 에너지를 퍼줄 수 있으니까요. 주방은 에너지의 원천이 아닐까요?
한 사람의 확고한 취향이 만들어낸 공간을 구경하는 것처럼 재미있는 일이 또 있을까. 마케터 이홍안 씨의 집에서 만난 단아한 주방의 면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