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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ARTMENT THERAPY #1

대한민국 스타일 아파트 by 건축가 유현준

On September 28, 2020

삭막한 아파트 라이프에 따뜻한 감성과 감각을 더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을 만났다. 사는 이의 라이프스타일을 배려하고 취향의 향유를 독려하면,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공간에도 자기다움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이들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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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흔한 아파트 풍경. 지은 지 오래된 아파트는 나무가 건물과 어우러지며 숲을 이룬다.

대한민국의 흔한 아파트 풍경. 지은 지 오래된 아파트는 나무가 건물과 어우러지며 숲을 이룬다.

외국인들에게 서울의 가장 인상 깊은 풍경을 꼽으라고 하면 한강 변에 줄지어 선 아파트 단지를 가리킨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주거 공간이 아파트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2018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의 아파트 거주 비율이 50.1%를 기록했다. 아파트에 사는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어느새 한국인의 보편적 주거 공간으로 자리 잡은 아파트. 획일적인 건축물이지만 그 안에서의 삶은 좀 더 다양하고 풍요롭게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버드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tvN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등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서 건축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설파해온 건축가, 유현준 홍익대학교 교수를 만나 지금 대한민국에서 아파트에 산다는 것의 의미를 물었다. 아파트를 소통의 공간으로 바꾸자는, 그의 목소리를 그대로 옮겨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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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에서 만난 유현준 건축가. 아파트에서도 자연을 사적으로 누릴 수 있다면 덜 삭막한 생활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아파트는 도시화에 필요한 주택을 효과적으로 공급했다는 순기능을 정확히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함께 거주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주거에 필요한 요소들을 공동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었죠.

대한민국 스타일의 아파트가 태어나다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의 태동은 1970년대 고성장시대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인구가 도시로 이동했는데요, 현재 우리나라의 도시화 비율은 91%이지만, 당시는 5%에 불과한 상황이었고요. 그사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그 인구를 수용할 집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아파트를 짓는 기술이 도입되기 전에는 2층짜리 양옥집을 많이 지었습니다.

<한지붕 세가족>이란 드라마를 기억하실 거예요. 양옥집에 여러 세대가 함께 살기 시작했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아파트를 짓기 시작한 거죠.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주택을 공급하기에 아파트는 가장 적합한 주거 형식이었습니다.

단독주택 여러 채를 짓는 것보다 아파트를 짓는 게 훨씬 빠르고, 쉽고, 효율성도 높았으니까요. 간단히 얘기해서 4면을 만들고 그 안에 여러 세대를 조각조각 나누면 되거든요. 엘리베이터가 도입되면서 더 높은 층의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되었고, 아파트 건설 붐은 가속도를 타게 된 거죠.

1970년대 산업화를 거치면서 얻은 교훈은 이렇습니다. ‘표준화를 통한 대량생산이 가장 빠르고 편하다!’ 그래서 정부는 농지를 수용해 택지로 만들고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만들기 시작했죠.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캠페인을 펼치던 시절로, 4인 가족을 위한 아파트를 많이 지었습니다.

20, 30평대의 방 3개짜리. 부모가 방 하나, 자녀들이 각각 방 하나씩 쓰는 전형적인 구조가 그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1970~80년대 초반 강남에 아파트 단지를 만든 게 정부로서는 성공적인 주택 정책이었고, 그걸 롤 모델로 분당, 일산을 비롯한 지방 도시에 비슷한 단지를 개발하기 시작했고요. 이런 과정을 통해 건설사가 주도하는 주택 정책이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아파트는 도시화에 필요한 주택을 효과적으로 공급했다는 순기능을 정확히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함께 거주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주거에 필요한 요소들을 공동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었죠. 같은 건물, 같은 단지에 사는 사람들끼리 공동으로 비용을 부담해서 건물을 관리하는 건 한 세대가 단독주택에 살면서 챙기는 것보다 훨씬 편리합니다.

또 한 지역에 많은 사람이 거주하게 되자, 이들을 겨냥한 복지 혹은 편의시설, 상업 공간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아파트에 거주하는 것이 도시에서 가장 쉽고 편한 방식이 되었죠. 실제로 이보다 더 편리한 주거 형태는 없을 거예요. 수천 세대 정도 되는 아파트 단지에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교육기관도 마련되어 있으니 선호하지 않을 수 없죠.

폐쇄형의 대단지가 씁쓸한 이유

그렇다고 아파트라는 건축물로 인해 생겨난 문화가 그리 바람직하게 흘러왔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 이면에는 건설사들의 사악한 목표가 숨어 있었습니다. 건설사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최고의 수익을 올리는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싸게 짓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파트라는 건축물이 갖고 있는 전형적인 프로토타입에 변화를 주는 것은 많은 비용과 모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잘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비용이 많이 들지 않고 눈에 잘 보이는 조경에 투자하면서 차별화, 고급화를 내세웠습니다. 1990년대 이후 아파트 단지들은 지하에 주차장을 만들면서 조경에 투자합니다.

당시 아파트 설계사보다 조경 회사가 돈을 더 많이 벌었다는 얘기도 있었죠. 건설사들은 아파트의 차별화, 고급화를 위해 브랜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건설사의 이름이 곧 아파트 이름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아파트만의 브랜드가 생기고 ‘캐슬’, ‘파크’ 같은 단지명이 붙었죠. 브랜드가 성공하려면 독점적이어야 합니다. 누구나 살 수 있으면 브랜드가 아니죠. 아파트는 아무나 살 수 없고, 누구나 들어갈 수 없는 곳, 폐쇄적인 공간을 만들고 우리는 특별한 브랜드라는 것을 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배타적인 아파트 단지가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브랜드 아파트에 사는 것이 나의 정체성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좀 슬픈 일입니다. 톱스타가 광고하는 브랜드 아파트에 살면 내가 그 톱스타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다른 브랜드, 단지에 사는 사람들과 경쟁하게 되는 현실은 씁쓸하게 느껴집니다.

원래 아파트라는 개념은 1920년대 힐버자이머라는 독일 출신 건축가가 생각해냈습니다. 독일 바우하우스시에 도시계획과를 창설한 그는 직장 위에 주택이 있는 세로 2중 도시, 공장과 주택을 가로로 연결하는 수평 도시 개념을 만들어낸 인물이죠. 한 방향으로 서 있는 판상형 아파트의 개념을 창시한 사람입니다. 2차 세계대전 후 도시로 몰려드는 인구를 위해 고안한 거죠.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도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다시 세우기 위한 공동주택을 제안했죠. 지금으로 보면 주상복합아파트와 비슷한 형식입니다. 건축가는 개인의 독립성, 가족 단위의 편의성, 세대의 독립성을 충족하는 건축물을 만들고자 했고, 독신부터 가족이 많은 가구를 위한 다양한 평면의 세대와 서비스 시설을 구축한 아파트를 제안하고 비슷한 건물이 지어지기도 했죠.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같은 유형의 빌딩들이 단지를 이루는 경우는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아마도 서양이 우리나라보다 도시화가 먼저 됐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르 코르뷔지에가 유럽에 공동주택이 필요하다고 얘기한 시기는 20세기 초반 주택 공급이 필요할 때였는데, 당시 파리는 7층짜리 건물이 많았거든요. 이미 상당히 고밀화된 도시였기 때문에 아파트를 대량으로 지을 필요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 지은 아파트 같은 건물들은 중정이 있는 저층의 고밀화된 건축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환경이 아니었고,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많은 집이 필요했기 때문에 ‘단지화’가 되고 이게 ‘브랜드’ 문화를 만들게 된 거죠.

앞에서 언급한 우리나라의 폐쇄형 아파트 주거 문화는 ‘대단지형’ 아파트라는 특징 때문에 생겨났으며 이 문화는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수를 비교하고, 단지와 브랜드끼리 경쟁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죠.

또 세대 구성원 수가 점점 적어지는 변화를 무시하고 계속 4인 가족 기준의 평형만 생산하거나, 자연을 사적으로 만날 수 없는 구조, 층간소음이나 주변 상업지구가 불합리하게 조성되는 것들도 현재 아파트라는 건축물이 갖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이런 문제들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정부와 국민의 결단이 필요하겠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미룰 수만은 없는 문제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미 지어진 아파트고, 공간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 해결해보면 어떨까 해요. 특히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아파트 단지 주변의 동네를 탐험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구석구석에 숨겨진 보석 같은 공간을 못 보고 산다면 너무 아쉽잖아요.

아파트 단지가 정겨운 동네가 된다면

제가 만약에 아파트 단지를 설계한다면 1인 가구부터 다인 가구를 위한 여려 평형의 세대를 만들고, 집집마다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발코니와 창문을 넣을 것 같아요. 단지를 둘러싼 담을 없애고 단지 내 정원은 누구나 들어와서 시간을 보낼 수 있고요. 1, 2층은 상업 공간을 배정하고 그 위를 주거 공간으로 활용하는 겁니다. 누구나 사적으로 자연을 누릴 수 있고, 자연스럽고 화목하게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건강한 아파트 문화가 형성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요, 제가 지금 사는 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려서부터 살았던 동네라서 고향 같은 푸근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아이들과 추억을 쌓아가는 공간이기 때문에 특별하고요. 아파트는 제가 바꿀 수 있는 게 한정적이지만, 집 안에 자연을 들이면서 살 만한 공간으로 꾸리고 있습니다. 확장하지 않은 발코니에 좋아하는 식물 화분과 조명을 들이는 것만으로 집 안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죠.

요즘은 발코니 확장을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반대하는 편이에요. 거실은 넓어질 수 있겠지만 자연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아파트에서의 삶이 자연 속에서 사는 것보다 삭막한 건 당연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미 지어진 아파트고, 공간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 해결해보면 어떨까 해요. 특히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아파트 단지 주변의 동네를 탐험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구석구석에 숨겨진 보석 같은 공간을 못 보고 산다면 너무 아쉽잖아요. 나만의 산책 코스를 개발하는 것도 좋고, 취향이 맞는 멋진 상점 같은 것을 찾아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명의 소비자 입장에서 아파트라는 하드웨어를 바꾸기는 힘드니까 그런 것부터 시작해도 좋을 것 같아요. 우선 아파트 단지에서 마음에 드는 벤치를 찾아보세요. 그 자리에 앉아서 자연을 느끼는 순간 그곳이 바로 나의 마당이 됩니다.

APARTMENT THERAPY 시리즈

APARTMENT THERAPY 시리즈

대한민국 스타일 아파트 by 건축가 유현준
차가운 아파트에 자연의 따뜻함을 들이다 by 샐러드보울디자인 구창민 

삭막한 아파트 라이프에 따뜻한 감성과 감각을 더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을 만났다. 사는 이의 라이프스타일을 배려하고 취향의 향유를 독려하면,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공간에도 자기다움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이들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CREDIT INFO

기획
심효진. 김하양 기자, 한정은(컨트리뷰팅 에디터)
사진
김덕창, 이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