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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성과 심미안의 경계

그릇을 빚는 작가들

On September 21, 2020

그릇을 빚는 작가들을 만났다. 그들의 손에서 실용성과 심미안의 경계를 교묘히 넘나드는 고운 그릇들이 빚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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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시그니처인 가시 오브제가 돋보이는 작품들.

가시를 모티프로 한 독창적인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는 권은영 작가.

가시를 모티프로 한 독창적인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는 권은영 작가.

가시를 모티프로 한 독창적인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는 권은영 작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도예 by 권은영 작가

뾰족뾰족한 가시가 유려한 선의 그릇 위에 살포시 앉았다. 가시는 특유의 유니크함을 뽐내면서 도자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이 가시는 권은영 작가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시그니처 오브제. 그는 뾰족하고 작은 가시의 반복적인 형태에 흥미를 느낀다.

“가시를 하나하나 만들고, 이것들을 결합해서 하나의 군을 만들면 또 다른 형태가 되는 것이 재미있어요. 처음에는 지금보다 훨씬 뾰족했지만 작업을 반복하면서 실용성을 고려해 둥글고 부드러운 형태로 변형시키기도 했죠.”

2013년 대학을 졸업하고 작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우연히 본 식물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는 이 가시를 다양한 형태의 그릇과 오브제에 접목해 주목을 받았으며 현재는 조은숙 아트앤라이프스타일 갤러리에서 화병, 접시, 컵, 그릇 등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변주하는 은은한 색상이다. 그는 색감이 주는 편안함을 좋아하는데, 도예를 하기 전 회화를 전공했던 실력을 십분 발휘해 직접 색상을 조합한다. 그만의 감각으로 부드럽게 믹스된 컬러는 매트한 느낌의 결정유약을 만나 빛을 발한다.

“결정유약은 특성이 예민하기 때문에 가마 안에서 흐르거나 색이 변하기도 해요. 이 때문에 결과를 예측할 수 없어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현재도 겪고 있어요.”

그의 작품은 색이 비슷한 듯하지만 제각각 다른 느낌을 주고, 색과 색의 경계가 불규칙해 자세히 볼수록 더 매력적이다. 요즘 그는 조형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작품을 만드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스며드는 작품을 만들고 싶은 것이 그의 바람이다.

“제 작품을 구입한 분들이 SNS에서 올려놓은 사진들에서 다양한 영감을 받는 편이에요. 정해진 용도가 아니라 자유롭게 활용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좀 더 일상에 필요한, 그렇지만 조형미도 놓치지 않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강해졌어요.”

3 / 10
결정유약을 사용해 흐르듯 자연스러운 색감을 더했다. 유약과 불이 만나 예측하지 못한 상태로 완성되기 때문에 같은 디자인이더라도 세상에서 하나뿐인 작품이 탄생한다.

결정유약을 사용해 흐르듯 자연스러운 색감을 더했다. 유약과 불이 만나 예측하지 못한 상태로 완성되기 때문에 같은 디자인이더라도 세상에서 하나뿐인 작품이 탄생한다.

  • 결정유약을 사용해 흐르듯 자연스러운 색감을 더했다. 유약과 불이 만나 예측하지 못한 상태로 완성되기 때문에 같은 디자인이더라도 세상에서 하나뿐인 작품이 탄생한다. 결정유약을 사용해 흐르듯 자연스러운 색감을 더했다. 유약과 불이 만나 예측하지 못한 상태로 완성되기 때문에 같은 디자인이더라도 세상에서 하나뿐인 작품이 탄생한다.
  • 뾰족하고 작은 가시들을 모아 하나의 오브제를 만든다. 이렇게 만든 가시들은 때론 손잡이가, 때론 그릇의 다리가 되기도 한다.뾰족하고 작은 가시들을 모아 하나의 오브제를 만든다. 이렇게 만든 가시들은 때론 손잡이가, 때론 그릇의 다리가 되기도 한다.
  • 작가의 시그니처인 가시 오브제가 돋보이는 작품들. 작가의 시그니처인 가시 오브제가 돋보이는 작품들.
  • 작가의 시그니처인 가시 오브제가 돋보이는 작품들. 작가의 시그니처인 가시 오브제가 돋보이는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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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경 작가는 그릇의 용도와 규격을 제한하지 않으며 다양한 모양의 도자기를 빚고 캔버스로 삼는다.

연호경 작가는 부부 도예가로 남편 민승기 작가와 쇼룸과 작업 공간을 공유한다.

연호경 작가는 부부 도예가로 남편 민승기 작가와 쇼룸과 작업 공간을 공유한다.

연호경 작가는 부부 도예가로 남편 민승기 작가와 쇼룸과 작업 공간을 공유한다.

추억과 위트를 아로새긴 분청사기 by 연호경 작가

‘I HAVE NO IDEA’(나는 생각이 없다)를 그릇에 새기는 작가는 어떤 생각으로 도자기를 만들까? 손으로 주물러가며 만든 분청사기에 볼펜과 형광펜으로 끄적인 듯한 문구와 선. 연호경 작가는 요즘 꾸밈이 없고 자연스러운 ‘낙서’를 작품에 표현한다.

그는 주로 자신의 과거에서 영감을 얻는 편인데 최근엔 중학생 때의 추억이 주된 소재다. 손이 가는 대로 쓴 글씨와 형광펜 낙서, 주방에 마구 쌓여 있던 그릇들. 특히 집에서 혼자 소반을 펴고 라면을 먹던 그 시간!

“별것도 아닌 일에 스트레스를 받고 예민하게 받아들이던 시기였는데, 라면을 먹는 20분 동안은 아무 생각이 안 들어. 그래서 너무 좋았어요. 아하! 어차피 난 몰라, NO답이다! 그냥 밥이나 맛있게 먹을래! 그런 뜻으로 적은 문구예요.”

아담한 디저트 볼에서 작가의 유쾌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이유다. 연호경 작가는 5년 전 도예가로서의 첫 작품으로 ‘땡땡이’ 시리즈를 선보였다. 이전까지 일러스트와 컴퓨터그래픽 작업을 주로 해왔던지라 물방울무늬와 분청의 색감 대비가 유독 선명하다. 같은 물방울무늬를 그려도 붓 터치가 달라서 매번 새로운 작품이 탄생한다.

그사이 어느덧 긴 호흡이 필요한 도자기 작업에 삶을 맞춰가며 도예가로서의 일을 즐기게 되었다. 취미로 민화를 배우며 동물과 꽃잎을 새롭게 표현하고, 다양한 형태와 도자기를 시도하는 등 작품 세계를 자유롭게 확장해나가고 있다.

“분청사기만의 어눌한 느낌을 좋아하는데 여기에 현대적인 감성을 더해가려고 해요.
제 작품들은 더구나 핀칭 기법으로 만들다 보니 물레성형이나 판 작업처럼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고 삐뚤삐뚤하답니다.
그 맛을 살리면서도 과하지 않도록 적정선을 찾아가고 있어요.”

3 / 10
‘낙서’를 주제로 한 연호경 작가의 디저트 볼. 낙서를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표현하는 작업이 어렵지만 즐겁다.

‘낙서’를 주제로 한 연호경 작가의 디저트 볼. 낙서를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표현하는 작업이 어렵지만 즐겁다.

  • ‘낙서’를 주제로 한 연호경 작가의 디저트 볼. 낙서를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표현하는 작업이 어렵지만 즐겁다. ‘낙서’를 주제로 한 연호경 작가의 디저트 볼. 낙서를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표현하는 작업이 어렵지만 즐겁다.
  • 분청사기에 상감기법을 적용해 볼펜처럼 날렵한 선을 표현한다. 물방울무늬는 백자에 주로 사용하는 푸른색을 분청사기에 맞도록 연구한 것. 분청사기에 상감기법을 적용해 볼펜처럼 날렵한 선을 표현한다. 물방울무늬는 백자에 주로 사용하는 푸른색을 분청사기에 맞도록 연구한 것.
  • 작가는 보통 밑그림을 그리지 않고 바로 붓을 대 작업하는 스타일. 낙서 시리즈에 자주 등장하는 문구는 AHA, I HAVE NO IDEA. 작가는 보통 밑그림을 그리지 않고 바로 붓을 대 작업하는 스타일. 낙서 시리즈에 자주 등장하는 문구는 AHA, I HAVE NO ID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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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으로 색을 입히는 분청사기 기법으로 만든 대표작. 2019 메종&오브제에도 출품한 작품들이다.

붓으로 색을 입히는 분청사기 기법으로 만든 대표작. 2019 메종&오브제에도 출품한 작품들이다.

정형화되지 않은 자유로운 형태의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는 강민경 작가.

정형화되지 않은 자유로운 형태의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는 강민경 작가.

정형화되지 않은 자유로운 형태의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는 강민경 작가.

흙에 손맛을 더하다 by 강민경 작가

강민경 작가의 그릇은 자연스럽다. 여느 그릇들처럼 반듯하게 모양 잡지 않은 비정형의 형태라 그야말로 손맛이 느껴진다. 도예는 여러 가지 성형 기법이 있는데 그는 자연스러운 형태가 좋아서 핸드빌딩 기법으로 작업을 한다.

흙을 길게 밀어서 가닥가닥 쌓는 코일링과 꼬집듯 잡아 늘려가며 형태를 만드는 핀칭 등 어릴 적 흙을 이용해 장난하듯 조물조물 만드는 간단한 기법을 활용하지만, 흙을 적당한 세기로 주무르고 두께를 일정하게 빼는 등 그만의 감각이 더해져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

그는 흙을 빚어 모양을 잡은 뒤 캔버스에 색을 칠하듯 붓으로 색을 입힌다. “분청사기의 분장 기법을 응용한 방법이에요. 마치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듯한 기분이 들죠.” 이렇게 작업한 결과물이 2018년 정소영 식기장에서 개인전을 할 때 전시했던 색분장기다.

이 작품들로 공예 트렌드 페어에 나갔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후원을 받아 2019년 2월 파리에서 열린 메종&오브제에도 참가했다. 도예는 하면 할수록 변수가 많고 인내를 요하는 작업이다. 보통 한 작품을 시작하면 2~3주 동안 공을 들여야 한다.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왔을 때는 뿌듯하고, 의도한 대로 되지 않더라도 변수의 재미가 있다. 작품들을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그가 생각하는 도예의 장점이다. 그는 올해 안에 개인전을 열기 위해 한창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처음 도예 작업을 할 때는 장식적인 요소를 많이 활용했는데, 이를 좀 더 발전시키려고 노력 중이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은 재미있는 형태의 오브제로 공간을 구성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그. 앞으로의 작품들이 기대되는 이유다.

“도예는 제 일상이에요. 하루의 시작과 끝이 모두 작업이죠.
틈새 시간에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아 옛날 명화와 유물의 신비로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요.”

3 / 10
초기 작품들에는 장식적인 요소들을 많이 활용했다. 현재도 이 장식들을 발전시켜나가는 중이다.

초기 작품들에는 장식적인 요소들을 많이 활용했다. 현재도 이 장식들을 발전시켜나가는 중이다.

  • 초기 작품들에는 장식적인 요소들을 많이 활용했다. 현재도 이 장식들을 발전시켜나가는 중이다. 초기 작품들에는 장식적인 요소들을 많이 활용했다. 현재도 이 장식들을 발전시켜나가는 중이다.
  • 평면적인 작업들을 접목해보고 싶어 꾸준히 도전하는 평평한 형태의 플레이트들. 평면적인 작업들을 접목해보고 싶어 꾸준히 도전하는 평평한 형태의 플레이트들.
  • 자연스러운 컬러감이 돋보이는 그의 작품들. 자연스러운 컬러감이 돋보이는 그의 작품들.
  • 그의 작품들은 물레질을 하지 않고 흙을 직접 빚어 손맛이 느껴진다. 그의 작품들은 물레질을 하지 않고 흙을 직접 빚어 손맛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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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단의 오브제가 권나리 작가의 신작이다. 어떤 색을 입힐지 요즘 한창 고민하는 중이다.

권나리 작가는 흙 자체에 색을 가미해 자연스러운 색감을 낸다. 흙 작업이 끝난 뒤 몰드에 부어 몸체를 만드는 과정.

권나리 작가는 흙 자체에 색을 가미해 자연스러운 색감을 낸다. 흙 작업이 끝난 뒤 몰드에 부어 몸체를 만드는 과정.

권나리 작가는 흙 자체에 색을 가미해 자연스러운 색감을 낸다. 흙 작업이 끝난 뒤 몰드에 부어 몸체를 만드는 과정.

사소함의 가치를 밝히다 by 권나리 작가

감정, 일상, 경험은 권나리 작가의 작업에 토대가 되어주는 요소다. 작가는 화려하고 특별한 순간보다는 익숙하게 지나온 것들의 가치를 발견하고 싶다. 타투가 늘 몸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릇에 타투 도안을 새겨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야트막한 접시를 만들기도 했다.

최근엔 3년간 꾸준히 취미로 해오던 요가를 새롭게 바라보는 중이다. 요가 동작을 형상화한 인형을 만들고, 산스크리트어를 반영한 대형 작품도 구상 중이다.

“눈으로 지나쳐온 일상이지만 흙을 만지며 기록하는 동안 저의 감정을 한 번 더 깊게 들여다보게 돼요. 그렇게 느낀 것을 어디에나 어울리고, 누구나 쉽게 다룰 수 있는 용기의 형태로 선보이고 싶었어요.”

그중 권나리 작가가 가장 자주 만드는 품목은 머그컵. 2015년 편집숍 챕터원과의 협업으로 탄생한 머그컵 시리즈는 지금까지 수천 개가 팔렸다. 최근 배우 유아인이 권나리 작가의 머그컵을 사용하는 모습이 방송을 탔을 정도.

매끈한 디자인, 경쾌한 촉감, 자연스러운 색감으로 사랑받는 작가의 머그컵은 손잡이가 넉넉하고 가벼워 사용이 편리하다. 많게는 한 달에 500개까지 만드는데 모든 과정을 오로지 혼자서 소화한다.

흙에 색을 내고, 몰드로 몸체를 잡고, 물레 작업으로 입구를 얇게 다듬고, 손잡이를 만들고, 건조하고, 굽고, 유약을 바르는 등 그의 작품엔 성실한 일상의 가치가 담겼다.

“보여주기 위한 물건보다는 경험을 만족시키는 물건을 만드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건강하고 진정성 있는 태도로 기본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가치 있는 삶이 자연스레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3 / 10
작가의 몸에 있는 4가지 타투 도안을 새긴 그릇. 작은 홈에 끈을 연결해 장식용으로 걸어둘 수도 있다.

작가의 몸에 있는 4가지 타투 도안을 새긴 그릇. 작은 홈에 끈을 연결해 장식용으로 걸어둘 수도 있다.

  • 작가의 몸에 있는 4가지 타투 도안을 새긴 그릇. 작은 홈에 끈을 연결해 장식용으로 걸어둘 수도 있다. 작가의 몸에 있는 4가지 타투 도안을 새긴 그릇. 작은 홈에 끈을 연결해 장식용으로 걸어둘 수도 있다.
  • 도자기보다는 스테인리스 스틸에 가까운 촉감. 컵의 두께를 얇게 만들기 위해 물레 성형을 거친다. 도자기보다는 스테인리스 스틸에 가까운 촉감. 컵의 두께를 얇게 만들기 위해 물레 성형을 거친다.
  • 챕터원에서 판매하는 작가의 컵들. 손잡이가 있는 머그컵과 살짝 구겨진 느낌을 의도한 내추럴 컵 시리즈. 챕터원에서 판매하는 작가의 컵들. 손잡이가 있는 머그컵과 살짝 구겨진 느낌을 의도한 내추럴 컵 시리즈.
  • 요가를 하는 수행자와 요가의 업독 자세를 선보이는 강아지 토기. 강아지의 발바닥까지 섬세하게 표현했다. 요가를 하는 수행자와 요가의 업독 자세를 선보이는 강아지 토기. 강아지의 발바닥까지 섬세하게 표현했다.
  • 손잡이가 접합된 채 건조 중인 머그컵. 손잡이가 접합된 채 건조 중인 머그컵.

그릇을 빚는 작가들을 만났다. 그들의 손에서 실용성과 심미안의 경계를 교묘히 넘나드는 고운 그릇들이 빚어지고 있었다.

CREDIT INFO

기획
김의미 기자, 한정은(컨트리뷰팅 에디터)
사진
이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