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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테토의 아트스페이스 8탄

빨강으로 그린 노스탤지어, 화가 이세현

On March 23, 2020

한국의 아름다움을 다정한 시선으로 관찰해온 미국인 마크 테토가 <리빙센스>와 한국의 예술가들을 만나 나누는 깊은 이야기. 이번 호에는 빨간색 물감으로만 표현한 ‘붉은 산수’ 시리즈로 강렬한 작품 세계를 펼치고 있는 이세현 작가를 만났다. 한 가지 색으로 그려내는 풍경이 담고있는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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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을 봐도 잊히지 않는 작품이 있다. 이세현 작가의 ‘붉은 산수’가 그렇다. 그의 그림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빨강이라는 색이 우리 역사에서 부여받은 다양한 의미 때문에 빨강 그 자체로 이해받거나, 이해받지 못하기도 한다. 또,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산수화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가가 곳곳에 숨은그림찾기 하듯 숨겨놓은 심벌들이 튀어나온다. 절경의 산수 사이에 미사일이 떨어지고, 폐허가 된 집이 등장하고, 천둥 번개가 친다. 그의 작품을 찬찬히 보다 보면 그림이 말을 거는 것도 같다. 민주화와 산업화, 정보화를 거치며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의 현대사를 아름답고도 슬프게 묘사하는 그의 작품은 관객에게 알 수 없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한국적인 기법과 소재로 구현한 그의 작품은 외국인 마크 테토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 평소 이세현 작가의 팬이었던 마크 테토가 파주에 위치한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붉은 산수'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이세현 작가.

'붉은 산수'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이세현 작가.

'붉은 산수'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이세현 작가.

안녕하세요! 평소 선생님께 궁금한 점이 많았는데 이렇게 뵙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작가님 작품은 아트 페어에서 자주 접했어요. 작품들이 관객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더라고요. 제 작품을 알아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갤러리에서 몇 번 마크 씨를 본 적이 있어요. 워낙 유명인이라 인사도 못 했는데, 이렇게 직접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 한국 예술에 관심을 가져주어서 고마워요.

전문 지식이나 노하우는 없지만 한국 예술을 정말 사랑합니다. 작가님께 여쭤보고 싶은 것도 정말 많고요. 먼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내셨는지 궁금해요. 고향은 어디인가요? 거제도예요. 섬에서 태어났죠. 일곱 살 때까지 거제도에서 살다가 온 가족이 부산으로 이사 왔고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참 아름다운 곳에서 살았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에도 미술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미술에 재능을 가진 분들이 주변에 많았어요. 아버지와 삼촌이 나전칠기 공장을 운영하고, 사촌 형님은 도자기를 구웠고, 또 다른 사촌 형님은 만화를 그렸죠. 그렇게 주변엔 온통 미술을 하는 분들이었고, 나전칠기 공장에서 놀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만화 그리는 형을 따라 만화책을 들고 다니면서 만화도 많이 그렸죠.

주변 환경이 작가님을 예술가로 만들어주었네요! 사실 부모님은 제가 미술 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으셨어요. 예술가적 기질이 많은 주변 분들의 삶이 그리 녹록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어머니는 예술가는 인정도 못 받고 배가 고픈 직업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차라리 기술 배우는 학교로 진학하라고 하셨을 정도예요. 하지만 전 부모님이 원하는 공고 대신 전통 공예인 양성 학교에 지원했어요. 부모님께서 많이 말리셨지만 좀 더 실용적인 디자인을 전공하겠다고 약속하고 학교에 다닐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림 그리는 게 너무 좋아서 회화를 전공할 수밖에 없었고요.

재능을 알고도 반대를 하셨다니 복잡한 사정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삶이 팍팍했던 시절이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아버님의 나전칠기 공장이 망하는 바람에 집안 형편이 안 좋았거든요. 방 한 칸 없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우리 가족에게 예술은 너무나 큰 사치였죠. 주변에 예술 좀 한다는 사람들도 대부분 별 볼일 없이 살았지만 나는 그림이 좋았어요. 돈이 없으니 갈 데가 없어서 학교에 제일 먼저 등교해서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 그림을 그렸습니다. 친구들은 주로 일주일에 한 장 정도 그림을 완성했는데 나는 아침저녁으로 한 장씩 그림을 그렸으니, 나중에는 연습량이 많이 차이 나더라고요. 그 덕분인지 그림 실력이 전교에서 최고라는 칭찬도 많이 들었습니다.

대학교는 미대를 가신 건가요? 사실 고등학교 땐 대학에 큰 미련이 없었어요. 승려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러던 차 고3 여름방학 즈음에 어머니가 건강이 안 좋아져서 거제도 이모님 댁에서 요양하신 적이 있어요. 어머니를 뵈러 오랜만에 거제도에 갔다가 겸사겸사 거제도를 둘러보게 되었는데 그때 뭔가 가슴속에서 열심히 살고 싶다는 열망이 생기더라고요. 여러 사정상 포기했던 대학도 다시 진학하기로 마음먹고 부산으로 돌아왔어요. 미대 입시를 준비하겠다고 했더니 집안에서 또 반대가 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실기에는 자신이 있었거든요. 포기할 수가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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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색 물감으로 표현한 ‘붉은 산수’ 시리즈. 평범한 산수화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양한 이슈와 관련된 심벌들이 숨어 있다.

붉은색 물감으로 표현한 ‘붉은 산수’ 시리즈. 평범한 산수화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양한 이슈와 관련된 심벌들이 숨어 있다.

  •  붉은색 물감으로 표현한 ‘붉은 산수’ 시리즈. 평범한 산수화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양한 이슈와 관련된 심벌들이 숨어 있다. 붉은색 물감으로 표현한 ‘붉은 산수’ 시리즈. 평범한 산수화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양한 이슈와 관련된 심벌들이 숨어 있다.
  • 작업실 옆 전시실에 걸려 있는 이세현 작가의 ‘붉은 산수’ 시리즈. 작가의 고향 풍경 및 전국 각지의 절경을 담고 있다. 작업실 옆 전시실에 걸려 있는 이세현 작가의 ‘붉은 산수’ 시리즈. 작가의 고향 풍경 및 전국 각지의 절경을 담고 있다.
작업실 벽에는 자료 사진들이 빼곡히 걸려있다.

작업실 벽에는 자료 사진들이 빼곡히 걸려있다.

작업실 벽에는 자료 사진들이 빼곡히 걸려있다.

대학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제가 가고 싶다고 다닐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홍익대 서양학과에 합격했는데 등록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입학을 포기하려고 했거든요. 그래도 대학을 못 간 게 아니라 돈이 없어서 안 간 거니까 합격증이라도 받아놓자 하고 학교에 갔는데 제가 장학생이라는 거예요. 당시 등록금이 69만원인데 40만원이 장학금으로 나온다고 해서 갑자기 희망이 생겼죠. 당시 부산에 있던 형님이 친구들에게 십시일반으로 빌린 돈을 들고 밤차 타고 서울 와서 나머지 등록금을 내주셨어요.

결국 꿈을 이루셨군요! 네, 현실은 고됐지만 정말 선물 같던 시절이었어요. 등록금은 간신히 마련했지만 생활비가 항상 부족했죠. 아이들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한 달에 5만원을 받았어요. 방세가 4만5000원이었는데 친구 세 명이 함께 살아서 근근이 생활했어요. 그러다가 친구 한 명이 나가면서 나머지 두 명도 뿔뿔이 흩어지게 됐고, 방세가 없어서 학교 실습실에서 자거나 친구네 집에 가서 잔 적도 많아요. 그래도 행복했던 것 같아요. 미술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학교에 장학생으로 합격한 거잖아요. 돈 없고 가진 게 없어도 비참하거나 슬프지 않았어요.  

이세현 작가의 ‘붉은 산수’ 시리즈는 붉은색 물감 2가지로만 그린다. 사진을 토대로 정확한 스케치 작업 후에 캔버스에 그려나가는데, 그림의 명암은 기름을 묻힌 면봉으로 지워가며 완성한다. 쓱쓱 그리고 쓱쓱 지우는 과정을 통해 표현한 디테일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

이세현 작가의 ‘붉은 산수’ 시리즈는 붉은색 물감 2가지로만 그린다. 사진을 토대로 정확한 스케치 작업 후에 캔버스에 그려나가는데, 그림의 명암은 기름을 묻힌 면봉으로 지워가며 완성한다. 쓱쓱 그리고 쓱쓱 지우는 과정을 통해 표현한 디테일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

이세현 작가의 ‘붉은 산수’ 시리즈는 붉은색 물감 2가지로만 그린다. 사진을 토대로 정확한 스케치 작업 후에 캔버스에 그려나가는데, 그림의 명암은 기름을 묻힌 면봉으로 지워가며 완성한다. 쓱쓱 그리고 쓱쓱 지우는 과정을 통해 표현한 디테일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

학교에서 주로 어떤 공부를 많이 하셨나요? 아쉽게도 수업이 그렇게 재미있진 않았어요. 고등학교 때 배운 내용들이 반복돼서 지루하더라고요. 그래서 수업에 잘 안 들어갔어요. 그 대신 친구, 선배들하고 대화를 많이 했어요. 1980년대 초반이었는데 사회나 정치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어요. 5월쯤엔가 학교에서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려주는 사진전이 열렸는데, 그걸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그때까지 알고 있는 건 사실이 아니었던 거죠. 그렇게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게 되었지만 다음 학기 등록금이 없어서 휴학을 하게 됐고, 부산으로 내려가면서 소위 운동권에서 멀어지게 됐어요. 너무 가난하다 보니 운동권도 될 수 없더라고요.

작가님은 작품에서 사회적인 이슈를 많이 다루시던데 그 영향 덕분인가요?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학교 다니면서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면들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거든요. 3학년때부터는 조각에 관심이 생겨서 기계문명을 비판하는 주제로 조각작품을 만들기도 하고요. 하루는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김에 친구하고 서울 시내에 있는 놀이동산을 처음으로 놀러간 적이 있었거든요. 아주 더운 여름날이었는데 놀이동산 한복판에 커다란 아이스링크가 있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너무나 행복한 한때를 즐기고 있더라고요. 시골 출신인 저에게는 꽤 충격적인 장면이었어요. 나는 기계문명의 폐해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저들은 그런 문명을 즐기면서 한없이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으니까요. 내가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 자연스럽게 미술과도 멀어지게 되더라고요. 병장 시절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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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캔버스 상에서 실수를 줄이기 위해 작가는 섬세한 스케치 후 캔버스에 옮긴다. 3 가난한 어린 시절에 마음대로 물감을 써본 적이 없다는 이세현 작가. 그가 유년 시절 경험한 색은 겨우 무당집이나 상여에서 본 색감이었다. 그 외에 다양한 색을 접할 길이 없었던 그는 다양한 색을 사용하기보다는 색에 담긴 의미를 추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1,2 캔버스 상에서 실수를 줄이기 위해 작가는 섬세한 스케치 후 캔버스에 옮긴다. 3 가난한 어린 시절에 마음대로 물감을 써본 적이 없다는 이세현 작가. 그가 유년 시절 경험한 색은 겨우 무당집이나 상여에서 본 색감이었다. 그 외에 다양한 색을 접할 길이 없었던 그는 다양한 색을 사용하기보다는 색에 담긴 의미를 추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방황하다 다시 미술계로 돌아온 계기가 궁금하네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시신을 화장하는데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너무 슬프고 힘들어서 잠깐 밖으로 나왔어요. 그런데 꽃향기가 너무 향기롭더라고요. 본능적으로 꽃의 향기로움을 느끼고, 동시에 내가 지금 이런 걸 즐기면 안 되는데 하는 죄책감이 들었죠. 그렇게 몇 년이 흐르고 여전히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어요. 지하철역에서 막차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그 꽃향기가 생각 나더라고요. 그게 어머니가 나에게 준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요.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큰 힘이 되어주더라고요. 그때 나도 모르게 맡았던 그 향기가 어머니가 나에게 절망하지 말고 살라고 남겨준 메시지였던 거예요. 그런 걸 그림으로 표현해보고 싶었고, 새로운 스타일의 작업을 시도하게 됐어요. 물론 그렇다고 그 작품들이 큰 인정을 받은 건 아니었지만요.

작가님의 작품이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요? 영국 유학 이후예요. 거의 마흔 살까지 예술고등학교에서 강사로 일하면서 가끔 전시도 하면서 살았거든요. 지인들 사이에서는 그림 좋다는 평을 받기도 했지만 큰 인정을 받는 작가가 된 것도 아니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목표도 아니어서 이도저도 아닌 삶을 살고 있었죠. 그 나이가 되도록 예술가인 척 살고는 있지만 예술가가 아닌 나를 보니 너무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전세금으로 모아놨던 돈을 들고 세계 여행을 떠나기로 했죠. 큰 무대에서 내가 원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러기엔 영어를 너무 못해서 언어부터 배우려고 영국으로 떠났고, 1년 정도 영어를 공부하다 보니 미술 학교도 다니고 싶어지더라고요. 첼시 미술대학에 합격했고, 학교를 다니려면 어학 증명서가 있어야 해서 그림 그릴 시간도 없이 영어 공부만 했죠.

영어 공부가 미술을 하고 싶게 만든 것도 너무 재미있는 에피소드네요. 학교생활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기대가 굉장히 컸지만 마이너 문화권에서 온 가난한 유학생은 자주 좌절을 맛봐야 했어요. 예술이라는 건 그 나라의 역사가 쌓여서 만들어진 산물인데 한국에서 평생 살다가 갑자기 영국에 온 제가 그들의 문화에 대해서 무엇을 알겠어요. 나와 함께 공부하는 영국 친구들은 삶 자체가 영국 문화이고 예술이잖아요. 그들은 무엇을 해도 레퍼런스가 역사 속에 있더라고요. 나는 무엇을 해도 내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영어도 어눌한데 서구 철학의 언어로 내 작품을 설명하려니 잘되지도 않고요. 그러니 내 자신이 창피하고, 소위 짝퉁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죠. 결국 내가 그들과 다르다는 걸 확인하고 다름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길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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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한 사회 현실에 화가 난 마음을 작품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개꿈’이라는 작품명으로 전시한 이 작품은 4.16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그리게 되었다. 이 작품에는 세계 유명인들의 어린 시절 초상화를 그려넣었는데,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아이들도 그 사고만 없었으면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담겨 있다.

부조리한 사회 현실에 화가 난 마음을 작품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개꿈’이라는 작품명으로 전시한 이 작품은 4.16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그리게 되었다. 이 작품에는 세계 유명인들의 어린 시절 초상화를 그려넣었는데,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아이들도 그 사고만 없었으면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담겨 있다.

  • 부조리한 사회 현실에 화가 난 마음을 작품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개꿈’이라는 작품명으로 전시한 이 작품은 4.16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그리게 되었다. 이 작품에는 세계 유명인들의 어린 시절 초상화를 그려넣었는데,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아이들도 그 사고만 없었으면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담겨 있다. 부조리한 사회 현실에 화가 난 마음을 작품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개꿈’이라는 작품명으로 전시한 이 작품은 4.16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그리게 되었다. 이 작품에는 세계 유명인들의 어린 시절 초상화를 그려넣었는데,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아이들도 그 사고만 없었으면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담겨 있다.
  •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가 믹스된 이세현 작가의 작품에서 매력을 느꼈다는 마크 테토.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가 믹스된 이세현 작가의 작품에서 매력을 느꼈다는 마크 테토.
  • 작업실에 꽂혀있는 수많은 붓들이 작가의 노력과 흘린 땀방울을 알게해준다.작업실에 꽂혀있는 수많은 붓들이 작가의 노력과 흘린 땀방울을 알게해준다.
  • 작업실 곳곳에 작가가 아끼는 가구와 소품들이 자리하고 있다.작업실 곳곳에 작가가 아끼는 가구와 소품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게 작가님만의 작품 세계가 탄생한 거군요. 네, 결국 풍경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개인적인 경험이 중요했어요. 나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거제도가 유토피아인 줄 알고 살았는데, 부산과 서울, 런던을 거치며 고향과 한국의 분단 현실이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영국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에게 북한 사람인지 남한 사람인지를 먼저 물었어요.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았죠. 그래서 나는 그림으로 분단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처럼 느껴진 거예요. 내가 자란 아름다운 자연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적 사건들을 작품으로 표현하기 시작했어요. 최전방에서 군복무를 했을 때 야간 투시경을 통해 바라본 북한 전경은 아름답고 슬픈 모습이었죠. 그런 경험들이 내가 한 가지 색, 특히 붉은색으로 우리의 자연과 역사를 표현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요. 내 작품은 얼핏 보면 아름다운 산수화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기쁘고 슬픈 역사적 상징들이 함께 들어가 있어요. 멀리서 보면 산수화고 가까이서 보면 정치적인 그림인 거죠.

그런 작업들을 주변에서 어떻게 알아봐 주던가요? 붉은 산수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그림 그리는 재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수업 시간에 작품을 소개할 때도 내가 겪은 일이니 쉽게 설명할 수 있었고, 친구들은 궁금한 게 많으니 질문도 많이 했어요. 내 작품, 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흥미롭게 다가간다는 것만으로 엄청난 쾌감을 느꼈죠. 그러다 졸업을 두 달 앞둔 주말에 졸업 작품을 그리고 있었는데, 어느 중년 여성이 저에게 오더니 그림이 너무 멋지다며 질문을 하더라고요. 게다가 그림이 완성되면 사고 싶다고도 했고요. 그동안 내 작품이 팔린 적이 없었기 때문에 굉장히 당황스러워서 대충 알았다 하고 헤어졌거든요.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분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컬렉터 모니카 버그였어요. 원래 나와 같이 졸업하는 다른 친구의 작품을 보러 왔다가 우연히 내 그림을 보고 관심을 보인 거죠. 모니카 버그가 내 친구한테 전화해서 내 그림을 사고 싶다고 전했고, 그 친구는 나에게 복권에 당첨된 것과 다름없다고 축하해줬어요. 사실 당시 통장에 잔고가 200만원도 안 남아 있을 때라 걱정이 많았을 때였거든요. 작품을 다 완성하지도 않았는데 모니카 버그가 작품을 사줘서 한고비를 넘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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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벽 곳곳에는 이세현 작가의 스케치가 걸려있다.

작업실 벽 곳곳에는 이세현 작가의 스케치가 걸려있다.

그때부터 새로운 시작이었을 것 같은데요! 네, 맞아요. 모니카 버그가 내 작품을 사고 나서 학교에 소문이 쫙 퍼졌더라고요. 졸업 전시에 내 작품을 보러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왔고요. 총 4점을 그렸는데 모두 다 팔리고 수많은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자고 명함을 주고 가더라고요. 모두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어요. 그때부터 유럽 곳곳에서 전시를 시작했고, 한국 작가가 유럽에서 인기가 있다고 하니까 한국의 갤러리에서도 연락이 오더라고요.

작가는 영국에서 공부했다고 해서 한국에 와서 영국 얘기를 하는 것은 이제 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클릭 한 번으로 모든 정보를 취할 수 있는 요즘 같은 정보화시대에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어디에서든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작가는 강조했다.

작가는 영국에서 공부했다고 해서 한국에 와서 영국 얘기를 하는 것은 이제 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클릭 한 번으로 모든 정보를 취할 수 있는 요즘 같은 정보화시대에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어디에서든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작가는 강조했다.

작가는 영국에서 공부했다고 해서 한국에 와서 영국 얘기를 하는 것은 이제 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클릭 한 번으로 모든 정보를 취할 수 있는 요즘 같은 정보화시대에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어디에서든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작가는 강조했다.

작가의 유년시절 경험담에 매료되었다는 마크 테토.

작가의 유년시절 경험담에 매료되었다는 마크 테토.

작가의 유년시절 경험담에 매료되었다는 마크 테토.

와~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그 노력과 결실에 박수를 보냅니다! 고향의 풍경에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함께 고민하는 것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나는 우리나라에서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자연이 파괴되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그걸 표현하고 싶었고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본인이 가장 행복하게 뛰놀던 통영의 뒷동산에 유해를 뿌려달라고 하셨어요. 영국으로 떠나기 전에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서 그곳에 갔는데 마을이 통째로 사라졌더라고요. 그때 정말 슬펐어요. 그런 경험이 디스토피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내가 추억을 쌓았고 영혼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진다는 건 비극적인 일이죠.

어떻게 자연이라는 주제와 산수화라는 기법을 연결시킬 생각을 하신 거예요? 한국의 자연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서구적인 방식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방식을 사용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나라 산수화의 대가 중에 겸재 정선이라는 분이 있어요. 실경 산수를 최초로 그리신 분이죠. 중국 미술의 영향을 받지 않고 ‘다시점’으로 산수를 그렸어요. 나는 그분의 영향을 받아 한 화면에 여러 공간을 바라보는 방식을 취한 거죠. 내 그림의 레퍼런스는 내 경험이고, 기법은 내 고향 한국의 스타일을 사용하고 싶었어요.

산수화의 기법으로 사회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도 의미가 큰 것 같아요. 내 작품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그런 부분을 주목하는 것 같아요. 정치적인 그림이지만 회화적 아름다움이 있다고요. 나 역시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이데올로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데올로기는 삶에 포함되는 것이고요. 그림이 인간의 삶과 전혀 상관없는 정치적인 논리로 해석되는 것은 싫어요. 정치가 삶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지만요. 그래서 2가지를 다 담고 싶은 게 내 욕심이고, 이게 삶을 정확히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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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에 남아 있는 작업의 흔적들마저 예술처럼 느껴진다.

작업실에 남아 있는 작업의 흔적들마저 예술처럼 느껴진다.

  • 작업실에 남아 있는 작업의 흔적들마저 예술처럼 느껴진다. 작업실에 남아 있는 작업의 흔적들마저 예술처럼 느껴진다.
  • 작업실의 한쪽 공간을 전시실로 꾸몄다. 그의 작품은 물론 이제 활동을 시작하는 후배들의 작품을 전시하도록 마련한 공간이다. 젊은 날을 가난하게 보냈던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후배들을 위해 건물을 임대해 저렴한 공유 작업실을 제공하고 있다. 건물을 통째로 임대하는 게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점을 활용해 후배들이 걱정 없이 작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수익성이 제로인 임대업을 하고 있는 것.  작업실의 한쪽 공간을 전시실로 꾸몄다. 그의 작품은 물론 이제 활동을 시작하는 후배들의 작품을 전시하도록 마련한 공간이다. 젊은 날을 가난하게 보냈던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후배들을 위해 건물을 임대해 저렴한 공유 작업실을 제공하고 있다. 건물을 통째로 임대하는 게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점을 활용해 후배들이 걱정 없이 작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수익성이 제로인 임대업을 하고 있는 것.
  • 작업실의 한쪽 공간을 전시실로 꾸몄다. 그의 작품은 물론 이제 활동을 시작하는 후배들의 작품을 전시하도록 마련한 공간이다. 젊은 날을 가난하게 보냈던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후배들을 위해 건물을 임대해 저렴한 공유 작업실을 제공하고 있다. 건물을 통째로 임대하는 게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점을 활용해 후배들이 걱정 없이 작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수익성이 제로인 임대업을 하고 있는 것.  작업실의 한쪽 공간을 전시실로 꾸몄다. 그의 작품은 물론 이제 활동을 시작하는 후배들의 작품을 전시하도록 마련한 공간이다. 젊은 날을 가난하게 보냈던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후배들을 위해 건물을 임대해 저렴한 공유 작업실을 제공하고 있다. 건물을 통째로 임대하는 게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점을 활용해 후배들이 걱정 없이 작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수익성이 제로인 임대업을 하고 있는 것.

 

사진을 찍는 것처럼 사실적으로 그림을 그리시는데 그 방법도 궁금합니다. 먼저 화폭에 담고 싶은 곳을 사진으로 찍어요. 직접 갈 수 없는 곳은 인터넷에서 자료 사진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걸 보고 스케치를 하고 캔버스에 옮겨 그리는 작업을 해요. 주로 그림은 붉은색 물감 2가지로만 그리고 면봉에 기름을 묻혀서 진한 부분을 지워가면서 디테일을 살립니다.

그림에 상징적인 심벌을 많이 넣는데 주로 어떤 것들을 사용하세요? 내가 보고 겪은 것들을 주로 사용합니다. 산, 들, 밭, 집, 골목길, 밤풍경, 등대 같은 것들이에요. 자연 풍경 중에 구름과 번개, 비 같은 것들은 감정이 있어요. 그리고 사건들도 자주 끌어와요. 탱크, 철조망, 해골 같은 것들이죠. 그렇게 버려졌던 일들이 자연과 섞이면 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죠. 해골은 2014년 4.16 세월호 참사 이후에 그리기 시작했는데 물에 가라앉은 세월호와 진실이 은폐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표현하려고 했고요.

앞으로는 어떤 작품 활동을 구상 중이세요? 우선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계속할 생각이에요.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많거든요. 그리고 궁극적인 바람은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가 되거나, 그림이 엄청난 가치의 상품이 되는 것을 바라는 게 아니에요.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서 내가 그리고 싶은 것들을 행복하게, 마음껏 그리는 거죠. 나는 그저 순수한 예술가가 되고 싶어요!

마크 테토(Mark Tetto)

마크 테토(Mark Tetto)

JTBC 〈비정상회담〉의 훈남 패널로 이름을 알렸다. 한국 생활 10년 차, 북촌의 한옥 마을에 거주하며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매일 누리고 있다. 경복궁 명예 수문장을 역임하고, 한국 공예품과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그는 한국을 가장 사랑하는 외국인 중 한 명. 매달 〈리빙센스〉와 함께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을 만나 그들의 작품 세계를 소개할 예정이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다정한 시선으로 관찰해온 미국인 마크 테토가 <리빙센스>와 한국의 예술가들을 만나 나누는 깊은 이야기. 이번 호에는 빨간색 물감으로만 표현한 ‘붉은 산수’ 시리즈로 강렬한 작품 세계를 펼치고 있는 이세현 작가를 만났다. 한 가지 색으로 그려내는 풍경이 담고있는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어본다.

CREDIT INFO

기획
심효진 기자
사진
김덕창
의상협조
아넬리에 옴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