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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선 천재 아티스트

양준일이 건네는 위로와 진심

On March 03, 2020

탑골 GD, 시간 여행자, 시대를 앞서간 천재…. 모두 양준일을 일컫는 말이다. 과거의 영상이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며 30년 만에 그야말로 신드롬급 인기를 끌고 있는 그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양준일 MAYBE 너와 나의 암호말》로 팬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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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다고 해서 꿈과 이상이
작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의 대사 중에서

 



SEARCHING FOR SUGARMAN

JTBC 예능 프로그램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이하 <슈가맨>)이 방송되면 어김없이 출연자들이 실검 1위에 오르고 그들의 대표곡이 차트를 역주행한다. 대중의 기억에서 잊힌 스타들을 만나 옛 추억을 소환하는 일은 언제나 화제가 되기 충분하다. 지난해 말 이제껏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수많은 슈가맨 중 진정한 ‘슈가맨’이 나타났다. 바로 양준일이 그 주인공이다. <슈가맨>은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을 모티프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이 영화는 2집 앨범을 내고 홀연히 사라진 미국 가수 식스토 디아즈 로드리게즈(Sixto Diaz Rodriguez)를 그의 열성 팬 2명이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밥 딜런을 떠오르게 하는 감미로운 목소리에 제임스 테일러의 달콤함, 마빈 게이의 솔(soul)을 느낄 수 있었던 그의 노래가 수록된 앨범은 큰 히트를 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쫄딱 망한다. 라틴계를 연상시키는 그의 이름 때문에 대중들은 그의 음악을 들어볼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끌어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슈퍼스타가 된다. 그를 찾은 이들은 그가 얼마나 대단한 뮤지션이었는지 알려주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콘서트를 열어주며 다시 꿈을 펼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묻힐 뻔했던 한 사람의 인생을 다시 밝혀주는 〈서칭 포 슈가맨〉 속 스토리는 마치 기적과도 같지만 현실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현재 신드롬급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양준일의 삶은 어찌 보면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그는 1991년에 데뷔하고 92년까지 잠깐 활동한 1990년대 가수다. 이후 V2라는 예명으로 다시 가수에 도전했지만 끝내 꿈이 좌절되고 말았다. 그런 그를 팬들이 소환했다. 유튜브와 SNS를 중심으로 과거 무대 영상이 돌면서 절대 만날 수 없는 ‘1990년대 양준일’에게 환호하는 팬들의 요청에 지상파에서 별도 유튜브 채널을 통해 그의 옛 무대와 예능 출연 영상을 특집으로 편집해 공개하기도 했다. 결국 방송에 출연하고, 팬미팅과 CF 촬영 등을 하며 현재 대한민국에서 최고 핫한 인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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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향한 시대의 편견

1990년대 당시 미국에서 인기를 끌던 뉴잭스윙이라는 장르를 한국적으로 표현한 1집 수록곡 ‘리베카’는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뉴잭스윙의 대표적인 예는 마이클 잭슨의 ‘Dangerous’나 EXO의 ‘으르렁’이다. 정해진 안무 없이 무대를 자유롭게 휘저으며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당시에는 파격이었으나 요즘에는 힙하다고 평가된다. 히피 파마나 헤어밴드, 단추를 풀어헤친 셔츠, 컬러풀한 컬러 매치까지 무대 위 혹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선보인 그의 패션은 현재의 패션 트렌드와 크게 이질적이지 않다. 그에게 ‘시대를 거스른 천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이유다. 시대를 지나치게 앞선 탓일까? 그의 음악과 퍼포먼스는 대중에게 낯설었으며, ‘오렌지족’ 혹은 ‘외국 물 좀 먹은 교포 청년’으로 평가절하됐다. 그 당시 한국 사회의 편견은 20대 청년이 넘기에는 너무나 견고하고 높은 벽과 같았으리라. 요즘 봐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세련되고 트렌디한 노래와 춤, 패션을 선보인 그의 천재성에 방송을 그만두게 된 안타까운 스토리까지 더해져 그를 향한 대중들의 감정은 신기함과 반가움, 미안함, 애틋함, 안타까움 등이 복잡미묘하게 얽혀 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에게 미안해하는 대중을 위로하고, 자신을 향한 환호에 진심으로 감사해한다. 자신을 향한 편견을 원망하고 미워하기보다는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누구나 그렇듯 그도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들을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에세이에서 자신도 상대를 미워했던 적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뀌는 것 없이 스스로만 피곤해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 자체가 뜨거운 냄비를 맨손으로 오래 잡고 있는 것과 같은 아픔을 준다는 것. 그래서 그는 미워한다는 감정 자체를 갖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오히려 그는 편견에 둘러싸인 자신의 삶을 덤덤히 이야기한다. 그를 향한 세상의 편견은 한국에서 가수로 활동할 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이주했을 때,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싸움을 거는 아이들 틈에서 죽을 각오로 싸웠다. 어찌 보면 <슈가맨>을 통해 대중 앞에 소환되기 전까지 그의 삶은 편견과의 싸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는 그 안에서 미워하지 않는 법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그가 훨씬 더 크고 단단해 보인다.



 


내가 아끼는 것이 침해당했다고 느낄 때, 그것을 보호하려고 내는 게 화다. 그것이 시간이든, 애정이나 인정이든, 돈이든. 어떤 사람에게 화가 났을 땐 결국 그 사람이 내 주인이 되고 만다. 어린아이가 거대한 황소를 끌고 갈 수 있는 건 코에 고삐를 끼웠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화가 난다면 이미 그에게 너무 많은 힘을 허락했다는 증거다. 내 코에 걸린 고삐를 빼기만 하면 되는데 말이다.

<화>(《양준일 MAYBE 너와 나의 암호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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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YES’ ‘NO’처럼 분명한 것이 좋고 ‘MAYBE’라는 말이 싫었다. 지금은 ‘MAYBE’가 더 좋다. 언젠가부터 확실한 걸 뒤집을 수 있는 힘을 가진 단어가 ‘MAYBE’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미국 플로리다로 이주해 힘든 나날들을 보내며 현실에 무릎을 꿇기도 했지만 ‘아마도(maybe) 이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내 삶을 받아들인 것처럼. ‘MAYBE’라는 단어엔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보게 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화>(《양준일 MAYBE 너와 나의 암호말》) 중에서

 

  • 그가 꿈꾸는 MAYBE

    공백기 동안 그의 삶이 녹록지 않았다는 것은 각종 언론 보도와 방송을 통해 접한 바 있다. 그는 V2 활동을 끝낸 후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남았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영어 공부방을 차리고 14년 가까이 영어를 가르쳤다. 그사이에 아내를 만났고 결혼 9년 만에 아들이 태어났다. 아들이 태어나자 줄어든 학생 수 때문에 생계를 위해 또다시 미국행을 선택했고, 음식점 서빙부터 창고 정리, 청소까지 안 해본 일 없이 열심히 살았다. 힘겨웠던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지켜준 것은 가족이다. 그리고 그럴수록 겸손해지는 마음과 자존감이 그를 붙들었다. 그에게 자존감이란 스스로가 아닌 다른 존재를 향한 믿음이다. 한참 힘들어하면서 이것이 전부일 수 없다고 생각했던 때, 이게 다가 아니라면 스스로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자신만 의지하면서 했던 일은 아무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음을 알았다. 세상에서 가장 못 믿을 것이 자기 자신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따로 있고 그것을 찾는 삶, 그것이 그가 손꼽는 인생의 목적이다.  

  •   

    사람들은 변한다. 그래서 현재 그에게 열광하는 팬들도 언젠가는 그가 변할까 두렵다. 하지만 그는 인기가 높아졌다고 해서 변하고 싶지 않다고 단언한다. 인기가 떨어지면 또 변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처음 가수를 하려고 한 것도 유명해지거나 인기를 원해서 시작한 것은 아니다. 춤이 좋고 노래하면서 표현하는 무대가 좋았다. 지금의 인기와 관심도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그는 분명히 알고 있다. 그가 처음 가수를 꿈꿨을 때처럼 노래와 춤을 사랑하는 것에 집중하면서 행복한 가수로 남는 일이 그가 현재 꿈꾸는 미래다. 그는 이제 비상을 시작한다. 본격적인 음반 활동을 위해 ‘XBe’라는 1인 기획사를 세우기도 했다. XBe는 그가 지은 이름으로 과거(ex), 미지의 존재, 즉 미래(X)와 현재(Be)라는 의미를 담았다. 곧 유튜브 개인 방송도 시작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보다, 팬들이 원하고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의 또다른 시작을 응원한다.

탑골 GD, 시간 여행자, 시대를 앞서간 천재…. 모두 양준일을 일컫는 말이다. 과거의 영상이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며 30년 만에 그야말로 신드롬급 인기를 끌고 있는 그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양준일 MAYBE 너와 나의 암호말》로 팬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한다.

CREDIT INFO

기획
정미경 기자
진행
한정은(프리랜서)
사진
김보하(더써드마인드)
참고도서
《양준일 MAYBE 너와 나의 암호말》(모비딕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