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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인류' 빈센트가 사는 법 11

빈센트의 자기공간

On November 27, 2019

빈센트는 가끔 자기만의 공간에서 혼자의 시간을 갖는다. 그곳에서 영화〈벤허〉를 보는 날이 있다. 노년의 어느 늦은 밤, 조용히 〈벤허〉를 보면서 ‘나는 여전히 용기와 열정을 가진 인간이냐’를 묻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자기 둥지를 짓고 살아가려는 자의 본능’에 대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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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면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 ‘가회동 집사’로 유명한 빈센트의 책장에는 다양한 요리책과 인테리어 관련 서적, 요가와 정원 일의 즐거움 등을 다룬 책들이 꽂혀 있다.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면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 ‘가회동 집사’로 유명한 빈센트의 책장에는 다양한 요리책과 인테리어 관련 서적, 요가와 정원 일의 즐거움 등을 다룬 책들이 꽂혀 있다.

나의 물건들이 어떤 말을 걸기를 기다린다
미운 네 살이라던가. 요즘 딸아이의 짜증과 반항이 늘었다. 딸에게 “어린이집에 가자”, “갖고 논 장난감들은 정리 좀 하자”, 그렇게 뭔가를 하라고 하면 “엄마 싫어, 아빠 싫어”를 외친다. 엄마도 싫고 아빠도 꼴 보기 싫으니, “싫어, 싫어”를 내뱉은 뒤엔 쪼르르 자기만의 공간으로 숨는다. 고작 네 살의 자기 방이랄까? 아직은 자기의 공간이 따로 있을 리 없다. 부모가 거실에 있으면 침실로 쪼르르 넘어가고, 침실에서 심통이 나면 거실로 넘어가 책상 아래 숨는다. 누군가에게 치이지 않는 장소, 그곳이 바로 자기 공간이다.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한 5분 지나면 쪼르르 달려와 세상모른 척하는 거 보면 그나마 다행이랄까? 애나 어른이나 주변에 치일 땐 자기 공간이 필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어른인 나에겐 특별한 공간이랄 게 없다. 내게 허락된 공간은 베란다 옆의 반 평 남짓한 창고다. 혹시나 화재가 나면 비상 루프를 걸고 탈출해야 하는 비상용 공간에 내 물건들이 처량하게 자리 잡고 있다. 나의 어느 시절을 함께 했던 그런 물건들이다. 예를 들면〈미래소년 코난〉,〈용쟁호투〉,〈웨스트 윙〉,〈카우보이 비밥〉,〈밴드 오브 브라더스〉등의 DVD와 몇 권의 시집, 책과 장식품들이다. 이사를 거듭할수록 내 물건과 공간은 줄었다. 작은 집에 물건이 많으면 너저분하다는 가족의 충고, 집에 물건은 적을수록 낫다는 미니멀리즘의 유행, 추억과 낭만보다는 공간의 효율성이 앞서는 시대 앞에서 나는 가급적 조용히 지낸다. 언젠가 작은 창이 딸린 다락방 형태의 내 공간을 가질 날이 있을까? 과거의 모든 물건들을 정리하지 못한 이유는 내 한때의 어떤 감정마저 다 버려지는 게 아쉬워서인데, 가끔씩 베란다 옆 나의 물건들이 어떤 말을 걸어오기를 기다리는 날이 있다. 경험상으로 나의 공간에 간직한 오래된 물건들이 건네는 말들은 ‘응원’과 ‘위로’가 많았다. 

좁은 공간에 빈센트의 키만 한 공구함이 여러 개다. 공구함에 체계적으로 정리된 다양한 연장들이 빈센트의 말을 대신한다. “탁상공론이라는 말 알지? 직접 손을 쓰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건강한 사회야.”

좁은 공간에 빈센트의 키만 한 공구함이 여러 개다. 공구함에 체계적으로 정리된 다양한 연장들이 빈센트의 말을 대신한다. “탁상공론이라는 말 알지? 직접 손을 쓰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건강한 사회야.”

좁은 공간에 빈센트의 키만 한 공구함이 여러 개다. 공구함에 체계적으로 정리된 다양한 연장들이 빈센트의 말을 대신한다. “탁상공론이라는 말 알지? 직접 손을 쓰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건강한 사회야.”

사랑채 바닥의 작은 문을 들어 올리고 지하의 비밀 공간으로 내려간다. 어쩌면 인간은 자기만의 공간에서 혼자 있을 때, 가장 높은 산을 오르는 상상을 한다.

사랑채 바닥의 작은 문을 들어 올리고 지하의 비밀 공간으로 내려간다. 어쩌면 인간은 자기만의 공간에서 혼자 있을 때, 가장 높은 산을 오르는 상상을 한다.

사랑채 바닥의 작은 문을 들어 올리고 지하의 비밀 공간으로 내려간다. 어쩌면 인간은 자기만의 공간에서 혼자 있을 때, 가장 높은 산을 오르는 상상을 한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 가장 높은 산을 상상한다
빈센트는 지난여름부터 자기 공간을 갖추느라 분주했다. 가회동의 한옥 안채를 지나 작은 중정을 건너면 사랑채가 있다. 6평 남짓한 공간이다. 원래는 게스트 룸을 생각했으나 결국 빈센트의 자기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바닥 아래로 지하실이 있는 특이한 구조다. 남자는(물론 여자도!) 이런 비밀스런 공간을 좋아하지 않을까? 바닥 면과 동일한 평평한 문을 들어 올리면 지하로 연결되는 사다리가 나온다. 거의 80도 경사지는 사다리를 조심조심 내려간다. 지하실의 반은 잘 안 입는 옷들을 보관하는 옷장 역할을 한다. 나머지 반은 오로지 빈센트의 공간이다. 평소 집을 고치거나 뚝딱뚝딱 뭔가 만들기를 좋아하는 빈센트의 공구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마치 철물점의 한 칸을 차지할 만큼 방대한 연장들이 자기 키만 한 공구함에 수납되어 있다. ‘손을 쓰는 인간이 많은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는 빈센트의 수고로움을 한눈에 보여주는 공간이다. 그래도 그렇지, 작은 집 하나 고치는 데 이렇게 많은 연장이 필요한 것일까? 현실적으로는 연장 몇 개면 충분하겠지만, 그 많은 연장들을 품어야 마음이 든든하다니. 뭐랄까, 자기 삶을 챙기려는 ‘수컷의 본능’이라고 읽어봐도 좋지 않을까? 언젠가 나를 잘 아는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둘 무렵이었다. 

“집 뒤편의 나지막한 야산을 보면서 머릿속으로는 늘 에베레스트를 상상했다.”

인간은 자기만의 공간에 홀로 있을 때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을 상상하는 것일까? 에베레스트를 상상하지 않는다면 뒷산을 오를 열정도, 이유도 없을 것이다. 아, 빈센트가 직접 지은 이곳(사랑채)의 이름은 ‘몽블랑’이다. 몽블랑은 만년설로 뒤덮인, 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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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공간에 빈센트의 키만 한 공구함이 여러 개다. 공구함에 체계적으로 정리된 다양한 연장들이 빈센트의 말을 대신한다. “탁상공론이라는 말 알지? 직접 손을 쓰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건강한 사회야.”

좁은 공간에 빈센트의 키만 한 공구함이 여러 개다. 공구함에 체계적으로 정리된 다양한 연장들이 빈센트의 말을 대신한다. “탁상공론이라는 말 알지? 직접 손을 쓰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건강한 사회야.”

빈센트는 가끔 시가를 태운다. 뜨겁고 적당하게 축축한 날이 시가 태우기에 가장 좋은 날이라고 했다. 시가 휴미더에 쿠바산 시가들이 이국적인 자세를 잡고 있다. 어디서건 금연을 권하는 시대라지만, 자기 공간에서 어느 적당한 날 시가를 태우는 누군가의 오랜 취미를 탓해서는 안 된다.

빈센트는 가끔 시가를 태운다. 뜨겁고 적당하게 축축한 날이 시가 태우기에 가장 좋은 날이라고 했다. 시가 휴미더에 쿠바산 시가들이 이국적인 자세를 잡고 있다. 어디서건 금연을 권하는 시대라지만, 자기 공간에서 어느 적당한 날 시가를 태우는 누군가의 오랜 취미를 탓해서는 안 된다.

빈센트는 가끔 시가를 태운다. 뜨겁고 적당하게 축축한 날이 시가 태우기에 가장 좋은 날이라고 했다. 시가 휴미더에 쿠바산 시가들이 이국적인 자세를 잡고 있다. 어디서건 금연을 권하는 시대라지만, 자기 공간에서 어느 적당한 날 시가를 태우는 누군가의 오랜 취미를 탓해서는 안 된다.

자기만의 둥지를 짓고 사는 사람들
사다리를 타고 올라와 방을 구경했다. 1인용 소파 베드 양옆을 책들이 둘러쌌다. 가장 많은 책은 요리 장르다. 프렌치 요리, 스시와 베이커리, 사케, 샴페인의 주류, 테이블 세팅까지 다양했다. ‘요리하는 남자’ 빈센트는 호주의 유명 푸드 스타일리스트 도나 헤이(donna hay)를 가장 좋아한다. 재료나 요리하는 방식이 정직하고, 요리법대로 따라 하면 쉽게 잘된다는 이유다. 이외에 명상이나 요가 관련 서적, 정원 일과 집 짓기, 인테리어와 관련된 책들이 책장을 차지하고 있다. 누군가의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면 그가 누구인가를 짐작할 수 있을까? 책이 알려주는 빈센트는 한마디로 ‘살림꾼’이다. 살림꾼 앞에 능숙하고 세련된, 건강한 등의 필요한 수식어를 갖다 붙일 수 있겠다. 물론 빈센트의 자기 정의는 따로 있다. 버틀러(Butler, 집사)다. 손재주 많고 살림을 능숙하게 처리하는 빈센트의 일상은 ‘가회동 집사’라는 타이틀로 제법 알려졌다. 자기 공간을 지키는 책들이 ‘빈센트는 이런 사람!’이라고 또 말해준다. 빈센트는 이 공간에 혼자 있을 때 영화〈벤허〉를 본다고 했다.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가〈벤허〉였고, 여전히 가장 즐겨 보는 영화라고 한다. 청춘에 만난〈벤허〉와 노년의〈벤허〉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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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는 가끔 시가를 태운다. 뜨겁고 적당하게 축축한 날이 시가 태우기에 가장 좋은 날이라고 했다. 시가 휴미더에 쿠바산 시가들이 이국적인 자세를 잡고 있다. 어디서건 금연을 권하는 시대라지만, 자기 공간에서 어느 적당한 날 시가를 태우는 누군가의 오랜 취미를 탓해서는 안 된다.

빈센트는 가끔 시가를 태운다. 뜨겁고 적당하게 축축한 날이 시가 태우기에 가장 좋은 날이라고 했다. 시가 휴미더에 쿠바산 시가들이 이국적인 자세를 잡고 있다. 어디서건 금연을 권하는 시대라지만, 자기 공간에서 어느 적당한 날 시가를 태우는 누군가의 오랜 취미를 탓해서는 안 된다.

 

“어렸을 때는 영화의 겉모습에 취했지. 

지금은 벤허라는 인간과 삶에 대해 더 들여다보게 돼. 

특히 영화를 보면서 인간으로서의 용기를 절대 잃지 말자고 다짐하는 거야.”

 

빈센트는 매년 연말 즈음의 늦은 밤에 〈벤허〉를 튼다.〈벤허〉를 보며 한 해의 삶을 두고 점수를 매기는 시간을 갖는다. 흘러가는 인생, 중간 점검의 시간이랄까? 항목은 총 4가지. 열정과 용기, 굿 에너지와 건강(nice body)이라고 했다. 3시간짜리 〈벤허〉를 혼자 보며, 나는 여전히 용기 있는 인간인가, 자기 인생을 챙길 열정을 갖고 사는가, 남에게 나눠줄 좋은 기운이 있느냐를 묻는다고 했다. 문득 베란다 옆 나의 비좁은 공간에 잊혀진 듯 놓인 책 한 권이 떠올랐다. 작은 집을 짓는 일본의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가 쓴《집을, 짓다》(사이)의 서문에 이런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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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는 남자 빈센트가 다양한 요리 책을 보고 있다. 그가 자기만의 시간에 갖는 특별한 일이 하나 있다. 빈센트는 매해 연말 즈음 자기만의 공간에서 혼자 영화〈벤허〉를 본다. 학창 시절 극장에서 처음 만난 영화가〈벤허〉였다. 청춘의〈벤허〉와 노년의〈벤허〉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빈센트는〈벤허〉를 보면서 ‘나는 여전히 열정을 가진 인간인가? 남에게 나눠줄 굿 에너지를 갖고 사는가’를 묻는다고 했다.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에 나태해지지 않고 자기 삶을 중간 점검한다.

요리하는 남자 빈센트가 다양한 요리 책을 보고 있다. 그가 자기만의 시간에 갖는 특별한 일이 하나 있다. 빈센트는 매해 연말 즈음 자기만의 공간에서 혼자 영화〈벤허〉를 본다. 학창 시절 극장에서 처음 만난 영화가〈벤허〉였다. 청춘의〈벤허〉와 노년의〈벤허〉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빈센트는〈벤허〉를 보면서 ‘나는 여전히 열정을 가진 인간인가? 남에게 나눠줄 굿 에너지를 갖고 사는가’를 묻는다고 했다.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에 나태해지지 않고 자기 삶을 중간 점검한다.

 

“‘남자아이는 나무 위 오두막을 짓고, 여자아이는 인형의 집을 짓는다.’ 

이 구절을 읽고는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소년이라면(물론 소녀도!) 누구나 나무 위에 자기만의 집을 짓고 싶다는 바람이 있을 겁니다. 

오두막에는 인간이 자칫 잊어버리기 쉬운 ‘둥지를 짓는 본능’이 선명하게, 

직접적으로 투영되어 있었고, 결국 그것이 제 가슴을 그리도 뛰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둥지를 지으며 살고 있을까? 어느덧 가슴 뛰는 날이 줄어든 걸 보면, ‘둥지를 짓는다’는 인간의 소중한 본능을 잊어버리고 사는 건 아닌지. 뜨거운 여름이 언제 가나 했더니 찬바람이 서늘하게 부는 계절이 성큼 다가왔다.

빈센트는 가끔 자기만의 공간에서 혼자의 시간을 갖는다. 그곳에서 영화〈벤허〉를 보는 날이 있다. 노년의 어느 늦은 밤, 조용히 〈벤허〉를 보면서 ‘나는 여전히 용기와 열정을 가진 인간이냐’를 묻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자기 둥지를 짓고 살아가려는 자의 본능’에 대해 생각했다.

CREDIT INFO

기획
정미경 기자
강승민
사진
이지아(스튜디오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