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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디자인

On October 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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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마이레아의 외관

빌라 마이레아의 외관

 

Finland Design 01
마이레 굴리센, 알바 알토, 빌라 마이레아

마이레 굴리센. ©Mairea Foundation

마이레 굴리센. ©Mairea Foundation

마이레 굴리센. ©Mairea Foundation

핀란드의 현대 시각예술, 디자인, 건축 디자인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단 한 사람을 꼽으라면 알바 알토를 떠올릴 것이다. 그는 천재였고 스타였다. 하지만 눈부신 비상을 가능하게 한 두 날개는 스타의 명성에 가려 이름이 드러나지 않았다. 알바의 아내 아이노 알토(Aino Aalto)를 알고 있다면 알바의 디자인에 애정이 있거나 핀란드의 유명 브랜드 이딸라의 팬일 것이다. 마이레 굴리센(Maire Gullichsen, 1907~1990년)을 알고 있다면 알바 알토 또는 핀란드 아트 & 디자인에 상당히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아이노는 알바의 건축 디자인, 실내 디자인 작업에 동료 디자이너로 참여했지만 서명자가 알바 알토였기에 아이노의 공헌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건축, 인테리어, 가구, 산업디자인 모두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건축 디자이너 아이노가 알바의 한쪽 날개였다는 데 이견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이노 이외에 디자이너로서 알바의 여정에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했고 가장 깊은 우정을 나누었으며 그를 가장 신뢰하고 지지했던 또 다른 한쪽 날개가 있다. 바로 마이레 굴리센이다. 마이레는 알바의 가장 큰 클라이언트, 사업 파트너이자 친구였다. 엄격히 말하자면 마이레는 비단 알바 한 사람의 날개가 아니라 핀란드 근현대 아트 & 디자인을 후원하고 성장시키고 세계와 연결시킨 거대한 날개였다.

알스트롬 제철소 문화유산 구역에 보존되고 있는 바이니올라 하우스 (Vainiola House). 1890년에 지어진 이 목조주택은1942년 알바 알토가 리노베이션 한 후 현재는 호텔로 사용되고 있다.

알스트롬 제철소 문화유산 구역에 보존되고 있는 바이니올라 하우스 (Vainiola House). 1890년에 지어진 이 목조주택은1942년 알바 알토가 리노베이션 한 후 현재는 호텔로 사용되고 있다.

알스트롬 제철소 문화유산 구역에 보존되고 있는 바이니올라 하우스 (Vainiola House). 1890년에 지어진 이 목조주택은1942년 알바 알토가 리노베이션 한 후 현재는 호텔로 사용되고 있다.

1870년대부터 조성된 알스트롬 제철소 문화유산 구역 전경 .

1870년대부터 조성된 알스트롬 제철소 문화유산 구역 전경 .

1870년대부터 조성된 알스트롬 제철소 문화유산 구역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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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라 마이레아 실내 photo by Rauno Träskelin  ©Mairea Foundation

알바 알토가 디자인한 가구들을 판매하기 위해 마이레는 1935년 알바와 아이노 부부, 닐스 구스타프 할(Nils-Gustav Hahl)과 함께 아르텍(Artek)을 공동 설립했다. ‘아트와 테크놀로지’의 합성어인 아르텍은 아트와 디자인, 과학과 기술이 모두 융합된 일종의 ‘디자인아트’ 브랜드로 출발했다. 이를 위해 예술사가인 닐스 구스타프 할을 공동 창립자로 영입하고 그에게 아르텍의 아트 부서(Art Department)를 맡겼다. 1930년대부터 마이레 굴리센의 이니셔티브 아래 아르텍은 단순히 가구를 판매하는 숍 이상의 공간, 즉 유럽과 핀란드를 잇는 인터내셔널 아트 전시를 위한 갤러리로서 활용됐다. 그 뿐 아니라 마이레는 아르텍을 통해 굵직굵직한 유럽의 미술 전시들을 핀란드에서 개최하는 등 전시 기획자이자 수석 큐레이터로서도 큰 역할을 했다. 나아가 보다 전문적으로 예술 전시를 기획, 개최하기 위해 갤러리 아르텍과 핀란드 컨템퍼러리 아트협회를 설립했다. 또한 1935년 자유예술학교(The Free Art School)를 헬싱키에 설립해 제도권의 정형화된 순수예술 훈련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예술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 틀에 박힌 공교육에 대항하는 일종의 대안 예술학교인 셈이었다. 그녀가 자유예술학교를 설립한 더 중요한 이유는 1930년대 핀란드 예술계까지 퍼진 폐쇄적 민족주의 기류 때문이었다. 코스모폴리탄이자 아티스트인 마이레는 유럽 모던아트와의 교류를 기피하는 당시 핀란드 예술계의 기류가 세계 예술계에서 핀란드를 고립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마이레는 스스로 사립 예술학교를 설립해 핀란드가 당시 유럽에서 일고 있던 모더니즘과 추상주의 미술에 개방적인 태도를 가지고 보다 폭넓은 교류를 가질 수 있기를 원했다. 마이레를 통해 핀란드-유럽-미국의 현대미술이 교류를 갖게 됐고, 마티스와 피카소 알렉산더 칼더, 페르낭 레제, 한스 아르프(Hans Arp) 같은 예술가들이 핀란드 예술계 및 알바 알토와 친분을 쌓게 됐다. 예술 후견인이자 컬렉터, 아트스쿨 교수, 막대한 재력가였던 마이레가 아니었다면 북유럽의 고립된 작은 핀란드의 아트 & 디자인은 세계와 연결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그녀는 아르텍 갤러리의 전시회에서 판매되지 않은 작품들을 매입하면서 마티스, 고갱, 피카소, 드가 등 당대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게 됐고, 그녀의 저택 ‘빌라 마이레아’에는 가격을 매길 수도 없는 작품들이 쌓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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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스트롬 본사.

알스트롬 본사.

  • 알스트롬 본사.  알스트롬 본사.
  • 알스트롬 창업자 안티 알스트롬의 저택인 이소탈로. 알스트롬 창업자 안티 알스트롬의 저택인 이소탈로.

마이레 굴리센이 핀란드 현대미술에 이렇게 큰 공헌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예술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뒷받침한 그녀의 친정 집안, 즉 알스트롬(Ahlstrom) 가문이 사업으로 일군 큰 재력이 있다. 마이레의 할아버지 안티 알스트롬은 1870년 헬싱키에서 260km 정도 떨어진 빌리지 노르마르쿠(Noormarkku)에 있던 제철소 (Ironworks)를 인수한 이후 사업을 크게 성장시켰다. 상당한 부를 축적하면서 안티는 제철소 일대에 가족을 위한 대저택을 마련하는데, 1881년 첫 저택인 이소탈로(Isotalo)가 지어졌다. 노르마르쿠 강가에 자리한 이 아름다운 목조저택은 핀란드의 문화유산으로 보호되고 있으며 지금도 알스트롬 패밀리들이 사용하고 있다.
당시 핀란드의 정치·경제와 사회복지는 지방 도시에서 제조 산업을 크게 일군 유력한 가문의 재력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곤 했는데, 알스트롬과 같은 가문은 마을에 학교와 병원을 짓고 구제기금을 마련해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의 기본 생계를 지켜줬다. 근로자들을 위해 집을 지어 주택 문제를 해결해주었으니 일종의 국가 역할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도 알스트롬 제철소 일대는 당시 지어진 작업소와 기숙사, 알스트롬 본사와 알스트롬 가문의 대저택들이 아름답게 보존되어 도시의 문화유적으로 남아 있다. 일부 건물들은 호텔, 연회장, 전시장, 식당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안티 알스트롬의 사망 후 일곱 자녀 중 장남이었던 월터가 아버지의 사업을 계승해 제지, 금속, 유리 산업에 걸쳐 핀란드에서 가장 큰 대기업으로 키웠다. 1900년대 유럽의 산업혁명과 산업화시대에는 제지, 금속, 유리 제조 산업이 가장 큰 장치 산업이었기에 이 분야에서 대기업과 거물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알스트롬은 100여 년간 핀란드의 대표적인 글라스 브랜드 이딸라(Iittala)를 소유했던 기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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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텍 오리지널 빈티지가 가득한 바이니올라 하우스

아르텍 오리지널 빈티지가 가득한 바이니올라 하우스

  •  아르텍 오리지널 빈티지가 가득한 바이니올라 하우스 아르텍 오리지널 빈티지가 가득한 바이니올라 하우스
  • 바이니올라 하우스 내부바이니올라 하우스 내부
  • 바이니올라 하우스  내부바이니올라 하우스 내부

결혼 후 가정을 꾸리기 시작하면서 월터 알스트롬은 자신의 가족을 위해 1901년 이소탈로 근처에 하불린나(Havulinna)로 불리는 대저택을 건축했다. 마이레 굴리센이 자란 곳이다. 아버지 안티의 뒤를 이어 월터 역시 지역 어린이들의 복지를 위한 기금을 만들고 내전으로 파괴된 교회 건물을 재건축하는 등 지역 공동체의 든든한 후견인 역할을 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가문의 문화이자 전통으로 이어갔다.
1931년 월터 알스트롬이 사망하자 그의 딸 마이레의 남편 하리 굴리센(Harry Gullichsen)이 장인의 뒤를 이어 알스트롬의 새 경영자가 됐다. 하리는 집안의 전통을 이어 굴리센 가족의 저택을 인근에 건축하기로 했는데, 이로써 알바와 아이노 알토 부부의 주택 건축 디자인의 최고봉으로 불리는 빌라 마이레아(1938-1939년)가 탄생한다. 1939년 8월 완성된 빌라 마이레아는 굴리센 부부의 의뢰를 받아 알토 부부가 디자인했다. 알바 알토는 사무실과 기숙사, 제조시설 등 알스트롬 기업으로부터 다양한 건축 프로젝트를 받았는데, 기업 프로젝트란 비용, 기능, 시간 등 항상 많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공공 디자인 프로젝트는 더 많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기에 디자이너로서 시도해보고 싶은 실험들을 기업이나 공공 건축 프로젝트에서 해보기란 쉽지 않다. 알바의 가장 큰 후견인이자 친구였던 굴리센 부부는 디자인의 한계에 갈증을 느끼고 있던 알바에게 자신들의 새 저택 건축 디자인을 맡기면서 ‘디자이너로서 실험해보고 적용해보고 싶은 모든 것을 마음껏 시도해보라’고 완전한 자유를 주었다. 이로써 빌라 마이레아는 알바 알토 디자인의 정점을 찍는 랜드마크 건축물이 되었다. 핀란드의 현존 건축가 중 가장 거장이라고 불리는 유하니 팔라스마(Juhani Pallasmaa)는 빌라 마이레아를 20세기 현대 건축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주택 건축물 중 하나로 꼽는다. 빌라 마이레아와 같은 반열에 있는 건축물들은 르 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이(1929년), 루드비히 미스 반 데르 로에의 빌라 투겐다트(Villa Tugendhat, 1930년), 피에르 샤로의 글라스 하우스(1932년), 그리고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의 카우프만 하우스(1939년) 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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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마이레아 코트야드

빌라 마이레아 코트야드

 빌라 마이레아의 거실에 앉아 있는 마이레와  하리 굴리센 부부.   © Mairea Foundation

빌라 마이레아의 거실에 앉아 있는 마이레와 하리 굴리센 부부. © Mairea Foundation

빌라 마이레아의 거실에 앉아 있는 마이레와 하리 굴리센 부부. © Mairea Foundation

알바 알토는 당시 생각할 수도 없던 방식인, 거대한 창문을 수동 개방해 정원과 거실을 하나로 연결시켰고, 거대한 벽체를 움직일 수 있도록 해 공간의 유연성을 극대화했다. 아트 컬렉터인 마이레의 미술 소장품을 보관하고 컬렉션 교체가 용이하도록 작품 수납공간을 벽체의 숨은 공간을 이용해 마련했다. 잦은 리셉션과 VIP 게스트 다이닝을 위해 주방과 다이닝 공간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공간과 가구, 수납과 쿠킹 시설들도 디자인했다. 마이레의 가드닝과 하리의 경영자로서의 필요가 집 안에서 잘 반영되도록 함으로써 사용자의 만족감을 충족시켰다. 이렇듯 사용자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기능성 위에 알바 알토의 디자인 철학과 판타지를 절묘하게 씨실과 날실로 엮어 마치 거대한 태피스트리와 같은 빌라가 탄생한 것이다. 빌라 마이레아 건축 디자인에서 중요한 2가지의 콘셉트는 주변의 숲과 주택, 즉 자연과 사람의 자연스러운 연결과 조화 그리고 사용자의 열정과 욕구를 공간에서 펼칠 수 있도록 하는 ‘desire-driven design’이다. 이는 단순한 편리성을 충족시키는 기능적 디자인과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주택이라는 공간은 편리성뿐 아니라 인간의 갈망과 동경과 열정(desire, aspiration, passion)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어야 진정한 휴식을 제공하는 온전한 공간이 될 수 있다. 빌라 마이레아는 레이 올덴버그(Ray Oldenburg)가 제시한 제1의 공간(집), 제2의 공간(직장), 제3의 공간(공공장소)의 요소를 모두 다 포함하고 있다. 제4의 공간이란 어쩌면 이 3가지의 공간을 모두 품을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올해 80주년을 맞는 빌라 마이레아는 진정 시대를 앞선 공간이다.
홈페이지 www.villamairea.fi/en/villa-mairea

 빌라 마이레아의 다이닝 홀.  photo by Rauno Träskelin © Mairea Foundation

빌라 마이레아의 다이닝 홀. photo by Rauno Träskelin © Mairea Foundation

빌라 마이레아의 다이닝 홀. photo by Rauno Träskelin © Mairea Foundation

빌라 마이레아의 내부.  photo by Rauno Träskelin  © Mairea Foundation

빌라 마이레아의 내부. photo by Rauno Träskelin © Mairea Foundation

빌라 마이레아의 내부. photo by Rauno Träskelin © Mairea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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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마이레아의 내부.  photo by Rauno Träskelin  ©Mairea Foundation

빌라 마이레아의 내부. photo by Rauno Träskelin ©Mairea Foundation

  • 빌라 마이레아의 내부.  photo by Rauno Träskelin  ©Mairea Foundation빌라 마이레아의 내부. photo by Rauno Träskelin ©Mairea Foundation
  • 빌라 마이레아의 내부.  photo by Rauno Träskelin  ©Mairea Foundation빌라 마이레아의 내부. photo by Rauno Träskelin ©Mairea Foundation

 

 

Finland Design 02
명가의 헤리티지를 잇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요한나 굴리센

마이레의 손녀 요한나 굴리센은 디자인과 예술이 편재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났다. 마이레가 직관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신뢰하고 자신의 느낌이 말하는 바를 따르는 성향이었다면, 요한나는 상당히 테크니컬한 편이다. 헬싱키 대학에서 예술사와 문학, 언어를 전공한 요한나는 이후 포르보 크래프트 스쿨(Porvoo Crafts School)에서 직물 직조(weaving) 기술을 배웠다. 텍스타일에서 위빙은 디자인의 다양한 요소 중 매우 테크니컬한 면이 강한 분야다. 텍스타일에 프린팅을 하는 일반 패브릭 디자인이 갖지 않는 기술적인 특성과 제약을 갖고 있기에 전혀 다른 디자인을 필요로 한다. 특수 패브릭을 캔버스 삼아 직조 테크닉으로 패턴 디자인을 하는 요한나의 작업은 패브릭 공예를 추구한다. 1989년 요한나는 자신의 이름과 디자인 철학을 따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요한나 굴리센’을 론칭했다. 올해 30주년을 맞아 9월 말 서울 청담스퀘어에 오픈 예정인 요한나 굴리센 플래그쉽 스토어에서 명가의 패브릭 공예, 요한나 굴리센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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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요한나 굴리센의 창업자이자 디자이너인 요한나 굴리센. Photo by Nico Backström

브랜드 요한나 굴리센의 창업자이자 디자이너인 요한나 굴리센. Photo by Nico Backström

타임리스 디자인을 바라보는 요한나 굴리센의 관점은 디자이너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에게서 출발한다. 디자이너가 만들고 싶다고 해서 타임리스 디자인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들이 오래 사용해야 타임리스 디자인이다. 타임리스 디자인은 대부분 슬로 디자인에서 나온다. 시간에 쫓기거나 또는 단기간에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 일시적인 트렌드에 재빨리 편승하는 디자인이라면 타임리스 디자인이라 할 수 없다. 사용자들이 그러한 디자인에 가치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패브릭 디자인은 첫눈에 반하는 사랑이 아니라 시간이 오래 갈수록 편안해지고 소중해지는 사랑과 같다.”
요한나 굴리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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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나 굴리센의 패브릭 제품들. Photo by Nico Backström

요한나 굴리센의 패브릭 제품들. Photo by Nico Backström

  • 요한나 굴리센의 패브릭 제품들. Photo by Nico Backström요한나 굴리센의 패브릭 제품들. Photo by Nico Backström
  • 요한나 굴리센의 헬싱키 플래그십 스토어. Photo by Nico Backström요한나 굴리센의 헬싱키 플래그십 스토어. Photo by Nico Backström

 

 

Finland Design 03
숨은 보석, 핀란드 글라스 아트와 프라이빗 갤러리 굼보스트란드 콘스트 & 폼

핀란드의 글라스 아티스트 카밀라 모베르그의 개인전은 헬싱키 근교의 숨은 보석과 같은 갤러리에서 개최됐다. 마치 신비한 우주의 빛을 보는 것과 같은 카밀라의 이번 전시는 수천 년 동안 층층이 쌓아 복을 기원하고, 길을 안내하며, 누군가에게 비밀스런 메시지를 전하던 인류의 또 다른 언어, 자연석(natural stones)을 글라스로 표현한다. 글라스를 쌓고 엮어 사람과 자연을 이으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글라스 아티스트 카밀라의 이번 전시는 ‘글라스 메신저(Messengers in Glass)’라는 주제로 멸종위기에 있는 12가지 동물의 색과 패턴을 표현했다. 압도적인 색감과 패턴, 곡선으로 눈을 사로잡는 작품 ‘인클루시브(Inclusive)’는 다양성에 대한 포용과 조화를 강조하는 카밀라의 철학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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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밀라 모베르그의 작품인 ‘인클루시브(Inclusive)’. Photo by W.Zakowski ©갤러리 굼보스트란드 콘스트 & 폼

카밀라 모베르그의 작품인 ‘인클루시브(Inclusive)’. Photo by W.Zakowski ©갤러리 굼보스트란드 콘스트 & 폼

카밀라의 전시가 열린 공간은 1836년 빅토르 하트월(Victor Hartwall)이 창립한 핀란드 최대 음료 제조회사 하트월의 옛 공장을 리노베이션해 2012년 11월 오픈한 갤러리 굼보스트란드 콘스트 & 폼(Gumbostrand Konst & Form). 굼보스트란드 갤러리는 핀란드와 노르딕 컨템퍼러리 아트 전시에 집중하고 있는데, 갤러리와 함께 하이엔드 라이프스타일 디자인과 수공예 작품을 판매하는 숍과 노르딕 디자인의 정수를 보여주는 비스트로 & 카페가 함께 있다. 헬싱키에서 20km 정도 떨어진 조용한 바닷가에 위치해, 여름이면 믿을 수 없을 만큼 맑고 청명한 하늘 아래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헬싱키에서부터 보트를 타고 도착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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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굼보스트란드 콘스트 & 폼 안에 있는 라이프스타일 아트 숍. ©Gumbostrand Konst & Form

갤러리 굼보스트란드 콘스트 & 폼 안에 있는 라이프스타일 아트 숍. ©Gumbostrand Konst & Form

  • 갤러리 굼보스트란드 콘스트 & 폼 안에 있는 라이프스타일 아트 숍. ©Gumbostrand Konst & Form갤러리 굼보스트란드 콘스트 & 폼 안에 있는 라이프스타일 아트 숍. ©Gumbostrand Konst & Form
  •  옛 음료 제조 공장을 개조한  갤러리 굼보스트란드 콘스트 & 폼의 외관.  ©Gumbostrand Konst & Form 옛 음료 제조 공장을 개조한 갤러리 굼보스트란드 콘스트 & 폼의 외관. ©Gumbostrand Konst & Form

Credit Info

기획
정미경 기자
글·사진
김윤미(주한핀란드무역대표부 핀란드전문가, @tonttu_and_lintu)
사진제공
Mairea Foundation

2019년 10월호

이달의 목차
기획
정미경 기자
글·사진
김윤미(주한핀란드무역대표부 핀란드전문가, @tonttu_and_lintu)
사진제공
Mairea Found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