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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인류' 빈센트가 사는 법 10

빈센트의 살림도구

On October 29, 2019

옛날, 무사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은 칼을 수집했다. 칼을 꺼내고 손에 맞추며 전장에서의 승리를 다짐했다. 빈센트 역시 여러 종류의 칼을 갖고 있다. 오해는 마시길. 빈센트의 칼은 전장에 쓰이는 물건이 아니라 주방에서 용도대로 쓰이는 도구다. 잊혀간 무사의 이름 대신 ‘요리인류’의 살림 도구를 보며, 새삼 ‘손을 쓰는 즐거움’과 ‘일상의 빈도’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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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인류’ 빈센트가 여러 살림 도구들을 손에 들고 포즈를 취했다.

파스타 면 하나 제대로 못 건지면서
빈센트의 다음 연재 거리를 생각하던 어느 날, 빈센트를 제법 아는 한 지인이 주제 하나를 툭 던져주었다. 이런 말이었다.
“파스타 면 제대로 삶을 줄 알아? 그렇다면 삶은 파스타 면을 여기저기 흘리지 않고 제대로 건져내는 법은? 빈센트는 삶은 파스타 면을 손쉽게 건져내는 도구가 있어서 면을 폼 나게 건져낸다니까. 나도 살림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그런 도구들이 너무 부러운 거야.”
나도 가끔 집에서 파스타 면을 삶는다. 전용 도구는 없다. 적당한 넓이의 냄비에 물을 채우고 소금 간을 하는데, 삶다 보면 긴 파스타 면의 윗부분이 가스 불에 살짝 탈 때가 있다. ‘대략 난감’한 경우다. 또 마땅한 집게가 없다. 손에 잡히는 젓가락을 이용해 삶은 파스타 면을 건진다. 면이 미끄러워 젓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다.
파스타를 만드는 정성은 갸륵하나 영 폼이 나지 않는다. TV에서 보던 ‘마스터 셰프’의 위엄은 온데간데없다. 남은 건 식구들 밥 한 끼 차려주겠다고 삐질삐질 땀을 흘리는 가장의 모습뿐. 저 정도로 서툰 ‘하수’의 손놀림으로 좋은 연장(살림 도구)을 사겠다고 무턱대고 덤빌 일은 아니다. 살림하는 몸 따로, 마음 따로지만 ‘요리하는 사람’의 도구를 탐낼 때가 있다. 삼대(三代)째 성업 중이라는 어느 횟집에는 아버지의 그 아버지가 쓰던 횟감용 오래된 칼이 장식품처럼 액자에 담겨 전시되어 있다. 고스란히 세월을 머금은 두툼한 횟감용 칼을 바라본다. 나는 그 오래되고 묵직한 칼로 수도 없이 횟감을 잘랐을 엄청난 양의 ‘경험’에 대해 생각했다. 살림 도구에 배인 경험의 흔적은 결과적으로 도구를 든 사람의 인생이자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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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부터 채소 다듬는 칼, 육류를 손질하는 칼까지 다양하다. 칼갈이도 3개쯤 있다. 칼은 위험한 도구다. 칼이 안 들어 과도한 힘을 들일 때 사고가 나기 쉽다. 칼이 잘 들도록 때에 맞춰 칼을 간다. 칼을 손에 쥐었을 때 사람 손의 밸런스를 고려한다. 칼은 독일과 일본 브랜드 제품이고, 칼갈이는 독일제다.

과도부터 채소 다듬는 칼, 육류를 손질하는 칼까지 다양하다. 칼갈이도 3개쯤 있다. 칼은 위험한 도구다. 칼이 안 들어 과도한 힘을 들일 때 사고가 나기 쉽다. 칼이 잘 들도록 때에 맞춰 칼을 간다. 칼을 손에 쥐었을 때 사람 손의 밸런스를 고려한다. 칼은 독일과 일본 브랜드 제품이고, 칼갈이는 독일제다.

청소용 솔도 다양하다. 청결까지 완벽한 어느 레스토랑의 위생 상태를 가늠케 한다. 꼼꼼함 역시 살림 실력이다.

청소용 솔도 다양하다. 청결까지 완벽한 어느 레스토랑의 위생 상태를 가늠케 한다. 꼼꼼함 역시 살림 실력이다.

청소용 솔도 다양하다. 청결까지 완벽한 어느 레스토랑의 위생 상태를 가늠케 한다. 꼼꼼함 역시 살림 실력이다.

빈센트는 왜 살림 도구에 집착할까?
빈센트의 살림 도구들을 구경했다. 주방용 칼은 과도용부터 큰 채소를 다듬는 중간 사이즈, 두툼한 고기를 다듬는 대도까지 여러 개였다. 칼은 날이 서야 조리하는 사람이 다치지 않고 편한 법이다. 이에 따라 칼갈이가 곁을 지켰다. 타인의 집에 초대받아 혹시나 그 집에서 요리할 때를 대비한 휴대용 칼갈이도 챙겨두었다. 마치 볼펜 같은 모양새다. 파스타 면을 건지는 집게는 예닐곱 개 됐다. 펜네나 뇨끼를 쉽게 건져내는 국자 모양부터 기다란 스파게티 면을 집는 집게도 다양했다. 빈센트의 부인은 빈센트의 유일한 사치품이자 쇼핑 목록이 조리 도구라고 말했다. ‘하수’인 나는 빈센트가 가진 여러 연장이 부러웠다. 고수는 연장 탓을 안 한다는 익숙한 말이 있는데, 빈센트는 왜 이리 연장에 집착하는 것일까?
“난 내가 하는 일에 핑계를 대고 싶지 않아. 요리도 마찬가지야. 어떤 일이든 ‘결과’가 중요하잖아. 손님을 위해 만드는 요리건 내가 먹을 음식이건 간에, 내가 만드는 요리의 결과를 두고 엄격한 책임감을 갖고 있어. 내가 하는 요리 맛에 핑계를 대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내 손에 맞는 요리 도구를 고르고 또 배웠지.”
빈센트는 제 손에 맞는 살림 도구를 고르는 일이 삶을 대하는 태도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무슨 말일까? 우선 제각각의 특징을 지닌 여러 도구들을 쓰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실패를 맛보고, 그제야 잘 쓰는 법을 터득하게 되니 좋은 일이다. 제 손에 딱 맞는 도구를 찾으면 오래 쓸 수 있으니 비용적으로도 좋은 일이다. 게다가 ‘손을 쓰는 즐거움’을 깨달아 자주 쓰게 되니, 녹슬거나 버릴 일이 없어 환경적으로 좋은 일이다. 빈센트는 좋은 살림 도구를 얻기 위해서는 3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1단계는 유행을 좇는 과정이다. 이거 써보니 괜찮더라, 요즘 이게 주부들에게 핫 아이템이라는 말이 들리면 한 번 써보라는 것. ‘하수’들이 할 수 있는 쉬운 접근법이다. 2단계는 자주 쓰면서 내 손에 맞는지 알아가는 과정이다. ‘중수’의 단계다. 3단계는 내 경험을 타인에게 권할 수 있는 경지다. “이 도구는 내 손에 딱 맞아. 하지만 당신 손에는 어떨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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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 면을 건져내는 집게들. 펜네나 뇨끼를 쉽게 건져내는 국자 모양부터 기다란 스파게티 면을 집는 집게들도 다양했다. 세 발 나무 집게는 수분을 제거하고 접시에 예쁘게 감아 돌릴 때 사용한다. 손에 맞는 도구는 ‘스피드’와 ‘효율’을 높인다.

파스타 면을 건져내는 집게들. 펜네나 뇨끼를 쉽게 건져내는 국자 모양부터 기다란 스파게티 면을 집는 집게들도 다양했다. 세 발 나무 집게는 수분을 제거하고 접시에 예쁘게 감아 돌릴 때 사용한다. 손에 맞는 도구는 ‘스피드’와 ‘효율’을 높인다.

 

사람들은 자주 쓰는 손만큼의 도구를 얻는다
빈센트의 말을 들으며, 손의 감각에 대해 생각했다. 내 손은 게으르다. 게으른 손은 피곤하다. 언젠가 주방 싱크대가 막혔길래 직접 수리에 나선 적이 있다. 인터넷으로 싱크대 배수관을 교체하는 동영상을 확인하고, 동네 철물점에서 필요한 장비들을 구매했다. 좁은 싱크대 구석으로 몸을 구겨 넣어 꾸불꾸불한 하수관을 빼고 새로 산 장비로 조립하는 과정이다. 게으른 손으로 이런 작업을 하려니 어찌나 땀이 나던지. 철물점에 맡겼으면 5분 내외로 뚝딱 마칠 일을 근 30분 넘게 버둥댔다. 이게 다 손을 쓰는 데 게을렀던 자가 겪는 고행이다. 손에 맞는 도구가 없으니 일이 더 힘들었다. 빈센트의 손은 부지런하다. 혼자 집을 고치고 수리하는 날이 많다. 직접 요리를 하며 삼시 세끼의 고단함을 자청한다. 그는 ‘손을 쓰는 인간’의 오래된 습성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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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를 고르는 체. 손으로 툭툭 털거나 돌리면 적당히 공기가 주입되면서 밀가루가 곱게 갈린다. 주로 스펀지케이크를 만들 때 사용한다. 빵이나 케이크의 뭉침을 줄일 수 있다. 밀가루 체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요리의 완성도를 높이는 도구.

밀가루를 고르는 체. 손으로 툭툭 털거나 돌리면 적당히 공기가 주입되면서 밀가루가 곱게 갈린다. 주로 스펀지케이크를 만들 때 사용한다. 빵이나 케이크의 뭉침을 줄일 수 있다. 밀가루 체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요리의 완성도를 높이는 도구.

 

“요즘 사람들을 갈수록 손을 쓰는 즐거움을 잊고 살아. 

손이나 몸을 쓰지 않고 머리로만 생각하니까 스트레스가 늘어나는 거야. 

생활이 편리해질수록 반항적으로 자꾸 손을 써야 해. 흔히 탁상공론이라고 하잖아. 

잔머리만 써서는 제대로 된 물건이 나올 리 없어. 

직접 손을 쓰면서 뇌와 피드백하는 사람이 좋은 발명가가 되는 거야, 

직접 경험했으니까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뭐가 불편한지 제대로 알 수 있잖아. 

손을 쓰는 사람들은 효율적이야. 손을 쓰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건강하고 튼튼한 나라인 거야.”

 

다시, 빈센트의 살림 도구들을 구경했다. 사람들이 알 만한 브랜드도 있고, 디자인도 예뻤다. 잘 고른 물건들이었다. 그의 살림 도구들을 보며 ‘일상의 빈도’와 ‘오래된 경험’에 대해 생각했다. 빈센트 역시 요리 한 번 해보려고 도구들을 하나씩 장만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손에 맞지 않아 상처도 나고 실패도 여러 번 했을 것이다. 그래도 자꾸 손을 썼다. 일상의 빈도가 높아질수록 요리나 살림 실력은 비례한다. 도구를 쥔 손의 오랜 경험은 일상에 배어든다. 내 손을 바라보았다. 나도 빈센트처럼 손에 맞는 좋은 연장들을 챙겨볼까 하다가 멈췄다. ‘일상의 빈도’ 앞에서 게으른 손이 주눅 들었다. 소설가 최인훈은 “사람들은 자신의 키만 한 대통령을 가진다”라는 문장을 썼다. 그렇다면 이런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자주 쓰는 손만큼의 도구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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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량용 스푼들. 빈센트는 주부들이 흔히 말하는 손맛이란 게 정확한 양을 알려주기 싫다는 뜻이라며 웃었다. 한 스푼, 두 스푼 등 정확한 계량은 품질관리의 기본이며, 좋은 음식을 전수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라는 설명이다.

계량용 스푼들. 빈센트는 주부들이 흔히 말하는 손맛이란 게 정확한 양을 알려주기 싫다는 뜻이라며 웃었다. 한 스푼, 두 스푼 등 정확한 계량은 품질관리의 기본이며, 좋은 음식을 전수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라는 설명이다.

  • 계량용 스푼들. 빈센트는 주부들이 흔히 말하는 손맛이란 게 정확한 양을 알려주기 싫다는 뜻이라며 웃었다. 한 스푼, 두 스푼 등 정확한 계량은 품질관리의 기본이며, 좋은 음식을 전수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라는 설명이다. 계량용 스푼들. 빈센트는 주부들이 흔히 말하는 손맛이란 게 정확한 양을 알려주기 싫다는 뜻이라며 웃었다. 한 스푼, 두 스푼 등 정확한 계량은 품질관리의 기본이며, 좋은 음식을 전수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라는 설명이다.
  • 생강을 가루 내거나 껍질을 벗기는 도구도 있다. 굴 같은 조개류의 살을 발라내거나 생선 가시를 바르는 도구도 있다. 빈센트는 살림 도구들을 수집하는 이유에 대해 자신이 만든 요리에 책임을 지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생강을 가루 내거나 껍질을 벗기는 도구도 있다. 굴 같은 조개류의 살을 발라내거나 생선 가시를 바르는 도구도 있다. 빈센트는 살림 도구들을 수집하는 이유에 대해 자신이 만든 요리에 책임을 지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옛날, 무사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은 칼을 수집했다. 칼을 꺼내고 손에 맞추며 전장에서의 승리를 다짐했다. 빈센트 역시 여러 종류의 칼을 갖고 있다. 오해는 마시길. 빈센트의 칼은 전장에 쓰이는 물건이 아니라 주방에서 용도대로 쓰이는 도구다. 잊혀간 무사의 이름 대신 ‘요리인류’의 살림 도구를 보며, 새삼 ‘손을 쓰는 즐거움’과 ‘일상의 빈도’를 생각했다.

Credit Info

기획
정미경 기자
강승민
사진
이지아(스튜디오 다)

2019년 10월호

이달의 목차
기획
정미경 기자
강승민
사진
이지아(스튜디오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