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소중히 여기고, 취향이 분명한 컬렉터의 집.
북유럽풍의 이상, 앤티크와 현실 사이에서
커피를 참 맛있게 내리는 집주인은 인테리어에도 조예가 깊다. 중국의 전통 가구를 다루고 오브제를 수집한다. 이제는 땅을 좀 밟고 살자며 앞뒤로 정원이 있는 지금의 집으로 이사했다. 정원을 꾸미고 바비큐 파티를 열며 요리를 대접하는 등 손님맞이가 한창인 요즘이다. 안목이 있는 집주인이어도 가보로 내려오는 그릇장과 수집품 때문에 집을 꾸미는 스트레스가 여간 많지 않았다고. 이사 비용도 많이 들지만 ‘데리고 다니는 애들’을 어떻게 놓아야 할지가 매번 난제다. 게다가 본래 취향은 말끔한 스칸디나풍이라고 하니, 오리엔탈 무드의 가구와 미키 마우스를 비롯한 소품을 쥐고 있는 현실과 북유럽 인테리어라는 이상 사이에서 괴로울 수밖에. 인테리어를 담당한 전문가는 집주인의 취향을 익히 알던 위즈인 디자인의 김지성 디자이너다. “상반된 요소들이 어울리도록 소재와 컬러를 고민했어요. 1층이라 상대적으로 어두운 편이니 밝은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층고를 높이고 공용 공간은 페인트로 마감했고요. 창호를 제외한 전체 마감재를 교체하고, 거실 쪽의 방을 개방된 서재로 꾸민 대공사였어요.” 까다로운 조건 속에서 디자이너와 집주인이 감각을 총동원해 현명하게 답을 찾아간 여정을 따라가 봤다.

동서양의 접점이 된 거실
거실 소파를 차지한 빨간 곰돌이 인형에겐 그만한 자격이 있다. 홍콩의 한 백화점에 디스플레이되어 있던 이 아이를 얻기 위해 얼마나 격한 열정을 보였던가. 군데군데 수술이 필요할 만큼 지금껏 꼬마 손님들의 격한 사랑을 받아왔다. 수입산 마루로 마감한 거실에는 오랜 시간 사용해왔던 검정색 소파를 배치하고 어울린 만한 요소들을 신중하게 더해갔다. 창가에 놓인 의자는 중국식 의자를 패브릭으로 리폼한 것. 페르시안 러그는 50년 넘게 사용한 집안의 가보다. 디자이너는 볼륨감 있는 조명, 의자를 배치해 넓은 공간을 풍성하게 연출하는 데 공들였다. 거실은 북유럽풍의 서재, 동양적인 주방을 매끄럽게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게 됐다.
고가구가 숨 쉬는 주방
이 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주방 입구다. 소장하던 중국 산시성 대갓집의 문을 리폼해서 세웠다. 앤티크 목조 장식이 내뿜는 고요한 에너지 때문인지 동작을 멈추고 바라보게 된다. 주방 안쪽의 식탁과 그릇장까지 오래된 목조품이 주방 인테리어의 중심을 잡는다. 마루가 깔린 거실을 제외한 현관, 복도, 주방에 그레이 타일을 시공해 격조를 높였다. 자칫 무거울 수도 있는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건 소품들이다. 플라스틱 소재의 체어, 귀여운 면이 있는 조명과 액자 등. 고가구의 중후함에 압도되지 않도록 가벼운 느낌의 요소들을 믹스 매치했다.
집주인의 감성이 드러나는 지점
침대를 가리는 커튼 위로 스파이더맨이 인사를 건넨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건 미키 마우스 커플의 월 데코. 4년 전에 구매한 한정판 제품을 디스플레이했다. 높이가 있는 침대와 깔끔한 화이트 컬러를 선호하는 취향이 투영된 침실이다. 입구에서 바로 침대가 보이는 게 부담스러워 프레임을 세우고 커튼을 주문 제작했다. 그 덕분에 침실에 포근한 감성이 더해졌다. 침실과 인접한 욕실도 공을 들인 공간이다. 동전 타일은 관리가 어려운 편이라 주거공간에 사용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세면 공간을 건식으로 바꾸고 과감하게 타일 시공을 감행해 특색 있는 욕실을 완성했다.
가격보다 가치, 내가 좋으면 그만!
눈이 번쩍 뜨이도록 비비드한 공간은 주방의 오른편이다. 디자이너와 집주인이 “미친 척하고 한 번 해보자”며 모험을 택했다고. 보라색 등을 놓고 고민하다 함께 매치한 밀레 세탁기의 포인트 컬러인 오렌지색 나는 옐로 컬러로 결정했다. “내가 좋으면 된다”는 집주인의 지론이 집 안 곳곳에서 드러난다. 현관 맞은 편에 놓인 대형 캔버스 액자도 그렇다. 쪽배를 타고 가는 뱃사공의 머리 위에 분홍 꽃잎이 폭죽처럼 터지는 그림은 항상 잘 보이는 곳에 둔다. 특유의 따뜻한 느낌에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이라 어떤 비싼 작품과도 바꾸지 않을 거라고. 취향을 존중할 줄 아는 집주인은 남편의 공간도 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구성했다. 결혼 25년 차인 남편은 방 안에서 모든 것을 원스톱으로 해결하길 원했다. 남편의 침실은 휴식, 운동, TV 시청, 업무를 방 안에서 하도록 꾸몄다. 그리고 선반에 다부진 마징가 제트 피규어를 올려뒀다. 그녀는 언젠가 싱크대 너머로 숲이 보이는 집을 갖고 싶다고 했다. 불을 켤 필요가 없을 정도로 환한 빛이 쏟아지는 주방이 있는 주택. 그녀의 다음 집에도 초대받고 싶다.
추억을 소중히 여기고, 취향이 분명한 컬렉터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