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족이 살 집을 남의 손 빌리지 않고 직접 지을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김정희 씨는 자그마한 대지에 두 집이 함께 살 정겨운 주택을 지었다. 건축가답게 다양한 요소를 반영해 지은 네 식구를 위한 낭만 주택을 만나본다.

한가득 햇살을 집 안에 담아내다
공간을 보면 마음이 설레 몸의 고됨은 잊은 채 밤낮없이 설계에 매달리는 일이 다반사였던 건축가 김정희 씨. 1년 반 전 자신과 이웃이 살 주택을 지었다. 그녀의 집은 남프랑스의 정취를 담은 낭만적인 목조 주택. 이국적이고 여성스러운 공간에 반해 전문 건축 업체에 의뢰해 주택을 짓고 살다 이웃의 제안을 받고는 직접 집짓기에 나섰다. 집은 스타코플렉스와 큼직한 벽돌, 분홍빛이 도는 기와로 마감해 친근하면서 푸근한 느낌이다. 네 식구가 사는 김정희 씨 집은 132㎡ 크기의 2층 구조이고, 이웃은 다락방을 둬 외부에서 보면 한집 같아도 두 집의 생김이 다르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쏟아지는 햇살에 봄날 아지랑이처럼 마음이 노곤해진다.
“건축에서 햇살만큼 아름다운 요소는 없어요. 햇살에 따라 디자인을 바꿀 수 있죠. 저는 집은 밝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채광에 신경 썼어요.”그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설계 과정을 짧은 시간에 마무리해야 했던 당시 상황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가족이 살기에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집이라 이제는 그마저도 추억이 됐다.
땅콩보다 커서 호두집
김정희 씨의 친정어머니는 이 집이 땅콩보다는 크다며 호두집이라 부르곤 한다. 공간이 협소해 보이지 않도록 연출한 딸의 의도를 알아챈 모양이다. 1층엔 주방과 거실, 화장실만을 두고 2층에 침실과 욕실을 배치했다. 김정희 씨는 손수 집 안을 스타일링해 집 안팎의 조화와 균형을 잡았다. 그녀는 남다른 손재주로 가구며 커튼, 조각보, 자수 등을 직접 만들어 집을 꾸민다. 반짝반짝 윤기 나는 새것보다 오래되고 낡은 것을 좋아하는 취향이라 내 몸처럼 익숙한 살림들이 목조 주택 안에서 제자리를 지킨다. “집을 만드는 일은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맞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해왔듯 집의 기능적인 면만을 강조하기보다 사람의 감정적인 부족함을 채울 수 있어야 하니까요.”
엄마는 아이의 꿈을 대신 꾸며 공부를 강요하는 선생님이 아니라 엄마여야 한다고 믿기에 그녀는 아무리 바빠도 주방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아이에겐 엄마의 밥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그녀의 생각은 가족이 사는 집이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평수나 평당 가격을 말하기 전 집에 철학을 담아야 한다는 건 그녀가 건축가이자 엄마이고 아내이며 생활인의 한 사람이기에 갖는 깨우침이기도 하다. 김정희 씨는 아이를 키우느라 잠시 미뤄둔 꿈을 조심스레 꺼내고 있다. 그토록 좋아하는 건축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몇 년 사이 친정 부모님의 건강 악화와 지인 가족의 안타까운 죽음을 지켜보며 삶과 건축을 대하는 태도가 한층 깊어졌다. “예전이라면 내가 원하는 집을 지었겠지만 이젠 그 공간에 살 사람들의 만족을 우선순위에 두는 게 건축의 진짜 매력이자 행복임을 알게 됐어요.” 햇살만큼이나 따뜻한 엄마의 마음을 가진 건축가. 그녀가 자신의 가족을 넘어 다른 이들을 위해 만들어줄 집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고 발전할지 궁금하다.
내 가족이 살 집을 남의 손 빌리지 않고 직접 지을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김정희 씨는 자그마한 대지에 두 집이 함께 살 정겨운 주택을 지었다. 건축가답게 다양한 요소를 반영해 지은 네 식구를 위한 낭만 주택을 만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