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인스타그램 네이버포스트 카카오 스토리 유튜브 네이버TV캐스트 블로그

통합 검색

인기검색어

HOME > HOUSING

1백년 된 적산가옥을 개축한 건축가 조병수의 온그라운드 스튜디오

On October 14, 2013

늙고, 지치고, 그리하여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1백 년 된 적산가옥이 한 건축가의 예술적 감성으로 다시 태어났다. 시간의 켜를 그대로 담은 나무 골조 사이로 눈부신 빛이 비처럼 쏟아져 들어온다. 오래되고 낡은 것의 가치. 버려지지 않아도 되는 존재의 이유. 조병수 소장의 온그라운드 스튜디오에서 아주 특별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 작고 오밀조밀한 구조를 따라가다 보면 하늘의 기운을 오롯이 받고 있는 한 평 남짓한 면적의 중정을 만난다.

▲ 작고 오밀조밀한 구조를 따라가다 보면 하늘의 기운을 오롯이 받고 있는 한 평 남짓한 면적의 중정을 만난다.



최근 들어 서촌 지역의 가치가 주목받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옛날의 정겨웠던 동네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좁은 골목과 이야기를 품은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 적어도 아직까지는 말이다.
최근 오픈한 조병수 소장의 건축 갤러리 온그라운드 스튜디오가 들어선 곳 역시 이러한 서촌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좁고 막다른 골목 안이다. 무겁고 검은 철문을 밀고 들어가면 나무 한 그루가 정갈하게 한편을 지키고 있는 작은 마당이 나온다. 20평이 채 안 되는 내부 공간은 언뜻 갤러리로 활용하기엔 벅차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러나 갤러리로 들어서는 순간 낡은 외관과 대비되는 갤러리 특유의 깔끔함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거기에 얼기설기 천장을 두르고 있는 박공지붕을 통해 들어오는 빛의 향연은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새로운 갤러리의 유형을 선사한다.

작은 데서 시작하는 거장의 건축 실험

조병수 소장이 처음 방문했을 때 이 집의 모습은 그야말로 폐가에 가까웠다. 골조를 지팡이 삼아 간신히 비틀거리며 서 있는 모습. 손만 대면 그대로 바스러져버릴 것 같은 위태함마저 감돌았다.
“누구도 이 집을 살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당연히 싹 밀고 멋진 집으로 지을 거라고 예상했겠죠. 하지만 왜인지 저는 이집을 최대한 그대로 살리고 싶었어요. 그 전제하에 설계와 시공을 시작했죠.”
경복궁 옆 창성동에 자리한 적산가옥의 원래 모습은 67㎡(20.26평)의 작은 면적에 사방이 막혀 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구조였다. 물리적인 시간에 따라 자연스럽게 노화된 건물 외벽 등은 하는 수 없이 허물어야 했다. 마침내 지붕 기와와 널판을 걷어내니 천장 뼈대 사이로 빛이 쏟아져 내려왔다. 뻥 뚫린 하늘과 맞닿은 천장은 그대로 빛을 투과시켜 갑갑해 보였던 집 안에 자연의 그림을 선사했다.

“저는 건축가로서 항상 소통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오래되고 낡은 천장 골조를 통해 하늘과 땅, 외부와 내부가 소통하고 숨 쉬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죠. 이번 작업은 그런 소통의 결과를 보여주는 ‘하이브리드한 실험’이라고 볼 수 있어요.”
조병수 소장은 서울 광화문 트윈트리타워, 강원도 화천의 소설가 이외수 씨 집필실과 문학관, 경기도 파주 헤이리의 황인용 씨 음악 감상실 카메라타 등을 설계한 우리나라의 유명 건축가 중 하나다. 비움의 미학을 담은 수곡리 작업실 ‘ㅁ’자 집, 건물이 땅속으로 파고 들어간 ‘땅집’ 등 그가 보여준 다양한 건축 실험은 우리에게 공간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다.

“우리가 살아온 역사가 있잖아요. 이 땅 위에 켜켜이 쌓인 시간들이 있어요. 일단 이 세상에 한 번 존재했던 것들이라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있을 텐데, 뭐든 새것이 좋다며 송두리째 없애버리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인 것 같아요.”
대표적인 사례로 1995년까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됐던 구중앙청 건축물을 들었다. 1916년 일제가 식민통치의 위엄을 과시하고자 경복궁 근정전 앞에 세워 총독부 청사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일제 침략의 상징적 건물이라는 이유로 완전히 철거하면서 근현대사의 아픈 과거와 눈물이 어렸던 80년 역사는 한 줌 재로 사라졌다.
“우리 선조들이 실제로 겪었던 일이고 역사인 만큼 현재에 남겨놓을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을 텐데 말이죠. 이를 교육에 활용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건축하는 사람들이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사라지고 잊혀버린 소중한 것들

최근 북촌을 중심으로 한옥을 보호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한옥만이 지켜야 할 대상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고 보니 멋스러운 기와지붕에 나무로 정갈하게 지은 한옥이 대부분인 북촌에 비해 서촌은 60~70년대 산업화를 거치면서 지은 허름한 건물들로 가득하다.
“걱정이에요. 개발 바람이 불면서 오래된 단독주택들이 다 헐릴까 봐. 시멘트로 지은 주택들은 왜 보호 대상으로 삼지 않는 걸까요? 우리 부모 세대들이 살아온 흔적들이고, 자세히 보면 그 자체로도 미학적인 아름다움이 담겨 있거든요.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과거 혹은 스스로와 창의적으로 소통하고 개성을 추구할 수도 있을 텐데요.”
신축 공사를 아무렇지 않게 결정하는 우리 건축 문화는 수많은 쓰레기를 양산하고, 시간을 단절시킨다. 그의 작업이 ‘달동네’에서 모티브를 얻어 출발했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지점이다. 조 소장은 달동네야말로 ‘현대’의 토속 건축이라고 주장한다. 깔아뭉개고 철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소중히 여기고 지켜야 할 중요한 문화유산이라는 것이다.
조병수 소장의 표현에 따르면 달동네는 ‘계단, 전봇대 그리고 갇힌 하늘이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공간’이며, ‘저녁이면 밥 짓는 소리와 냄새들이 안에서 바깥으로 새어나오는 공간’이다. 1998년에 그가 설계한 성북동 210번지 스튜디오 주택이 제1회 CRI-ARC AWARD의 수상작으로 선정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 집을 지으면서 가장 자랑스러웠던 것이 뭔지 아세요? 큰 상을 탄 것보다 쓰레기가 한 차도 안 나갔다는 점이에요. 거의 100% 재활용했죠. 예전의 뿌리를 그대로 지켜내면서 공간을 새롭게 구성한 거죠.”
조병수 소장이 이처럼 사라져가는 것들, 과거의 것들에 애착을 보이는 이유는 과거와의 소통, 주변과의 소통을 통해 현대인들이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경복궁, 광화문의 문과 담장을 허물고 새로 지어 올리면서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나갔는지 아세요? 담장만이라도 예전 것을 40㎝ 정도만이라도 남겨서 흔적을 볼 수 있게 했다면 훨씬 의미 있는 장소가 되었을 거예요. 역사의 켜들을 너무 쉽게 없애는 것은 크게 잘못하는 일이죠. 서양 사람들이 좋아하는 한옥만 보존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을 남겨야 합니다. 그렇게 남은 건축물들이 소통의 매개가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돼요.”

▲ 1백 년의 역사를 지닌 오래된 나무 골조와 하얗고 깔끔한 갤러리 외벽의 대비는 시각적으로도 독특하고 기분 좋은 자극을 준다.

건축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다시 온그라운드 스튜디오 이야기로 돌아가자. 조병수 소장은 예전부터 우리나라 유일의 ‘건축 전문 갤러리’를 만들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작게는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신진 건축가들이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고, 크게는 건축계의 크고 작은 담론을 적극적으로 나누고 발전시킬 수 있는 아지트로 삼을 계획이다.
“서촌에 건축가가 참 많이 살아요. 멋들어지게 지은 집보다 내부와 외부가 얼마나 잘 연결되는지, 집의 입지가 얼마나 훌륭한지를 더 중요하게 보기 때문이겠죠. 그러한 관점을 사회 전체가 공유할 수 있도록 건축가들이 먼저 얘기를 꺼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변화는 작은 데서부터 시작되는 거니까요. ”

거대한 권력과 자본으로 이루어지는 커다란 변화보다 작고 낮은 곳에서 시작돼 패턴을 만들고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일궈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조병수 소장. 온그라운드 스튜디오를 아지트 삼아 건축가들이 펼칠 다양한 실험이 주목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 일환으로 지난달 서촌에서는 서승모, 김주원 소장 등 서촌에 사는 건축가들이 주축이 된 ‘오픈하우스 서촌’ 프로젝트가 열리기도 했다. 온그라운드 스튜디오 또한 하루 동안 문을 활짝 열고 도시 속 빛의 향연을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앞으로도 온그라운드 스튜디오는 비영리 공간으로 남게 될 거예요. 다만 수익을 내는 공간은 아니더라도 자립으로 운영이 가능하도록 창의적인 구조를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있어요.”

등을 맞대고 있는 헌책방 ‘가가린’과 벽을 트겠다는 아이디어도 조 소장이 ‘어떻게 하면 색다른 소통의 공간이 만들어질까’ 고심한 결과다. 가가린은 서촌에서 카페와 갤러리, 건축사무소와 디자인스튜디오 등을 운영하는 서촌 주민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헌책방이다. 일종의 협동조합처럼 운영하면서 독립 출판물, 핸드메이드 엽서와 문구류 등을 판매하는데 마니아들이 생길 정도로 인기가 좋다. 거기에서 힌트를 얻은 조 소장은 온그라운드 스튜디오 또한 뜻이 맞는 사람들과 공동으로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다.
“꽤 유명해졌는지 주말에는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더라고요. 벽을 트면 책방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우리 스튜디오로 들어오게 되겠죠. 그렇게 큰길에서 골목 안쪽으로 사람이 소통되기 시작하는 거죠.”

흔히 건축가는 ‘1%’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자금력을 넉넉히 갖춘 클라이언트만이 원하는 집을 지을 수 있기 때문이리라. 이를 외면할 수는 없겠지만, 진정한 건축가는 항상 일상 속에서 힘겹게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조 소장은 이야기한다. 늘 바라보고 손을 내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당부한다. 그 이상향이 온그라운드 스튜디오의 작은 땅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큰 부분을 잘라내고 새것으로 교체하는 것보다 침을 놓듯이 막힌 데만 뚫어줘도 피가 흐르고 건강이 회복될 수 있거든요. 저는 침을 놓는 작업을 하는 거예요. 그렇게 막힌 부분이 하나씩 뚫리기를 바랍니다. 이제부터 시작이죠.”

1 온그라운드 스튜디오를 설계한 조병수 건축가. 그는 늘 새로운 건축 실험을 연구하고 있다.
2 창성동 좁은 골목을 거닐다 보면 막다른 곳에서 온그라운드 스튜디오의 철문을 만나게 된다.
3 건축가의 예술 감성으로 새롭게 태어난 오래된 가옥의 현재는 마땅히 사라져야 했던, 그러나 잊어선 안 될 것들에 대한 경종이 되고 있다.

늙고, 지치고, 그리하여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1백 년 된 적산가옥이 한 건축가의 예술적 감성으로 다시 태어났다. 시간의 켜를 그대로 담은 나무 골조 사이로 눈부신 빛이 비처럼 쏟아져 들어온다. 오래되고 낡은 것의 가치. 버려지지 않아도 되는 존재의 이유. 조병수 소장의 온그라운드 스튜디오에서 아주 특별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CREDIT INFO

진행
홍유진(프리랜서)
사진
이봉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