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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로버트 파우저 교수의 한옥 ‘어락당’

On October 13, 2013

한옥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오순도순 모여 사는 오래된 동네를 좋아하는 외국인이 있다. 좌식 생활도 거뜬하다는 로버트 파우저 교수는 낡고 작은 흔적조차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최근 낡은 한옥을 고쳐 살기 시작한 그를 만나 도시형 한옥의 매력과 좁다란 골목을 사이에 두고 형성되는 마을 공동체의 가치를 물었다.

▲ 하루 종일 햇살이 드는 집은 1960~1970년대의 유리문을 재현했다.

빌딩에 둘러싸인 삶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거나 막연히 무언가 그리워질 때 사람들이 발걸음을 옮기는 동네가 있다. 옛날에 중인들이 주로 살았다는 경복궁 서쪽 지역으로 근대 무렵의 소박한 정취와 현대의 삶이 어우러져 묘한 편안함을 준다. 골목과 빌딩의 조화랄까. 사람들은 그곳을 서촌(西村)이라 부르는데 정확히는 청운동, 효자동, 통인동, 수성동, 체부동 등 15개의 동이 여기에 해당한다. “서촌은 광역적으로 외부에서 붙인 이름이에요. 그보다는 작은 동네의 개념으로 구분하는 게 좋아요.”

서울대 국어교육학과 로버트 파우저 교수가 사는 한옥 ‘어락당’은 서울 사람들에게조차 이름이 낯선 인왕산 아랫동네 체부동에 자리하고 있다. 좁은 골목길을 걸어 들어가면 얼마 전 리모델링을 마친 파우저 교수의 한옥이 뽀얀 얼굴을 드러낸다. 입춘대길이라는 글귀가 붙은 대문을 열면 대지 69.3㎡(21평)에 건평 39.6㎡(12평) 크기의 작고 아담한 한옥이 모습을 드러낸다. 서울대 국어교육학과 최초의 외국인 교수라는 이력도 특이하건만 그가 한국인들도 살기 힘들다며 손사래를 치는 한옥을 선택한 까닭은 뭘까. 파우저 교수는 불편한 점은 해결하면 될 뿐이라고 시원스레 답한다. 그의 명쾌한 대답처럼 어락당에는 한옥에 대한 고민을 풀어줄 아이디어가 가득하다.

1 곰보유리와 서리처럼 뿌연 일명 투명 스리 유리로 장식한 유리문.
2 유창한 한국어로 어락당 리모델링 과정을 설명하는 로버트 파우저 교수.
3 북쪽으로 대문을 내고 외벽은 사괴석을 사용해 차분한 느낌을 살렸다.
4 파우저 교수의 어머니가 구입한 거미줄과 거미 조형물이 한옥 서까래와 잘 어울린다.
5 침실보다 단을 높여 만든 누마루도 한옥의 정취가 풍긴다.

1 튼실한 서까래 아래 소파 대신 널찍한 테이블과 카펫으로 꾸민 좌식 거실.
2 접이식 문을 열면 책장이 드러난다. 문은 한식 소목장이 만들고 창호지로 도배해 밤이 되면 문살이 아름답게 비친다.
3 책장 뒤편은 미니 서재로 주로 한글 학습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공간이다.
4 북쪽으로 높은 창을 달고 수납을 위해 현관 뒤쪽 벽에 붙박이 수납장을 짜 넣었다.
5 주방과 거실, 침실이 좁은 복도를 따라 길게 이어진다.

한옥과 오랜 인연의 시작

파우저 교수가 처음 한옥을 접한 건 1983년, 서울대에 한국어 연수를 왔을 무렵이다. 건축을 공부하는 일본인 학생과 한옥이 남은 동네 답사를 다니면서였다. 일본 교토에서 군인 생활을 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아시아 문화에 친숙하고 교토에서도 오래된 전통 가옥에 살았던 그에게 한옥은 새로운 관심 대상이었다.
“한옥은 마당이 집 가운데 있고 일본의 집들은 마당이 없고 정원이 집의 맨 끝이나 옆에 있다는 게 다르죠. 또 한옥엔 창이 있어 밝고 일본 집은 어둡다고 할 수 있어요.” 고려대 교양 영어 강사였던 1988년 무렵에는 처음으로 옛날식 한옥에 살기 시작했다. 아일랜드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일본 교토에서 교편을 잡다가 다시 한국을 찾았을 때도 그는 한옥살이를 선택했다. 2009년에는 누하동 한옥에 살다가 주변에 빌딩이 들어서 잠시 북촌으로 옮겼고, 마침내 지금의 체부동에 정착했다. 파우저 교수는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단순한 호기심이나 이색적인 경험을 위해 한옥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개인 생활을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부합하고 자연 친화적인 한옥의 특성이 그가 원하는 주거 환경이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다.
“어느 주택이나 다 그렇듯이 위층 소음이 없고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가 있죠. 집을 짓는 재료들이 모두 자연에서 얻은 것이라 공기가 좋고 탁한 느낌이 없어요. 나무, 보이지는 않지만 지붕의 기와 속 흙 같은 재료들이 함께 숨을 쉬니까요. 미학적인 측면에서 봐도 한옥은 저마다의 개성이 있습니다.”
그는 자연과 가깝게 살 수 있다는 점에서 마당의 가치도 높이 산다. 강아지를 키우거나 허브를 가를 수 있는 마당은 외부이면서도 생활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

진화한 도시형 한옥 ‘어락당’

2011년 잠시 북촌에 살 때 다시 서촌으로 오고 싶었던 파우저 교수는 부동산을 통해 지금의 집을 소개받았다. 집 주변이 한옥 지정 구역이라 큰 건물이 들어설 수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대지가 반듯하고 남향이라는 점도 주요했다. “한옥은 햇빛이 들지 않으면 살기가 힘들어요. 천창을 낼 수 있지만 공사가 너무 힘들죠. 북쪽으로는 인왕산이 살짝 보인다는 점도 이 집의 포인트죠.” 파우저 교수의 한옥은 1936년에 지은 집으로 주로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많이 지은 도시형 한옥에 속한다. 많은 수의 가족이 모여 살고 집집마다 수십 수백 포기의 김장을 마당에서 하던 시절에 맞게 지은 옛날식 집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가 급변하면서 사람들의 삶이 달라졌다. 주거 공간은 삶의 패턴에 맞게 달라져야 했지만 미처 변화를 따르지 못했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게 되었다. 파우저 교수는 한옥이 진화하지 못했다고 표현한다. 앞서 얘기했듯 현대 생활에 맞도록 불편한 부분을 개선하는 과정들이 생략되면서 사람들이 ‘깨끗하고 편리한’ 아파트로 눈길을 돌린 셈이다. 그가 체부동 한옥을 구입하고 국가로부터 일정 금액을 지원받아 리모델링을 한 것은 진화를 위한 시도다.

작년 9월부터 시작한 리모델링은 설계와 인테리어, 시공 등 각 분야의 전문가가 분업해서 최고의 시너지 효과를 냈다. ㄱ자 본채와 별채를 이어붙이고 화장실은 집 안으로 옮겼다. 남향이라는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유리문을 선택했다. 한옥 하면 떠오르는 가느다란 문살은 채광을 차단해 싫었다고. 올록볼록한 곰보유리, 우리나라 옛 지도나 사슴, 부엉이 등을 수작업으로 그려 넣은 손맛 나는 유리를 끼운 문을 통해 집 안에 온종일 햇살이 든다. 유리의 문양이 햇빛에 비쳐 벽에 그려지는 건 감탄사를 유발시킬 만큼 아름답다. 파우저 교수는 해의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유리 그림자를 보면 시계를 보지 않아도 될 정도라며 자랑한다.

작은 집이지만 거실, 침실, 주방 등 생활에 필요한 공간들을 명확하게 구분해 제 기능을 하게 했다. 어락당을 찾은 여성들은 널찍한 욕실을 마음에 들어 한다고. 방보다 약간 높게 만드는 마루인 누마루도 독특하다. “이름 없는 다용도 공간이 필요했다고 할까요? 누마루에서는 공부를 하거나 손님을 접대할 수 있죠. 바닥엔 신재를 깔아 다른 공간의 온돌과 차별화시켰죠.” 한옥의 단점이라 여겨지던 부족한 수납은 붙박이장으로 해결했다. 일본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파우저 교수는 오시이래라 부르는 일본의 벽장에서 착안해 수납공간 아이디어를 냈다. 채광을 살리고 내부 구조를 편리하게 만들겠다는 그의 바람들은 잘 이뤄졌다. 각 공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살기 편해졌고, 한옥 특유의 정갈함에 현대적인 감각이 더해져 도시형 한옥의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했다.

1 식탁 창가에서 보이는 누마루와 마당 풍경이 평화롭다. 마당은 물 빠짐이 좋고 여름에 시원하도록 흙을 깔았다.
2 좁은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식탁은 코너에 상판만 고정시킨 형태로 꾸몄다.
3 집의 크기에 비해 좁은 편인 주방은 상부장과 철제 그물망으로 수납을 보충했다.
4 외부 화장실을 안으로 끌어들이고 널찍한 욕조까지 설치한 쾌적한 욕실.
5 서재와 마주한 침실은 콩기름을 입힌 바닥재를 깔고 이불을 사용하는 좌식 스타일로 꾸몄다. 안쪽으로 보이는 문으로 누마루가 이어진다.
6 예전과 달라진 생활 패턴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한옥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파우저 교수.

진화한 도시형 한옥 ‘어락당’

어락당의 상량식이 있던 날, 집 안팎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상량식은 동네에 새로운 집이 생겼음을 주위에 알리고 참여한 사람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자리다. 집의 마지막 뼈대가 올라가는 과정으로, 안전을 기원하면서 집에 복은 들이고 화는 막아낸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가진다. 풍물패가 마당에 들어서고 동네 사람들은 재미난 놀이를 보듯 그 자리를 지킨다.

파우저 교수는 상량식이 생경한 과정이지만 무척 즐거웠다. 그가 한옥을 좋아하고 한옥이 자리한 동네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들이다. 동네 안에 골목이 있고 골목과 집의 높이 등 휴먼 스케일이 있다는 것. 오랜 세월을 통해 형성된 주민 공동체라는 개념도 오래된 동네가 갖는 가치다. 파우저 교수는 서촌 지역에 그런 면이 많이 남아 있다면 지키고 싶다고 말한다. 그 안에는 사라지고 나면 무엇으로도 다시 만들 수 없는 역사가 담겨 있고 사람들의 삶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상의 집터 한옥을 지켜낸 그의 활동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상이 젊은 시절을 보낸 집을 새로 지은 것인데, 실제로 살지 않았음이 밝혀지자 문화재 지정이 취소되면서 집터에 새로운 한옥을 지으려는 걸 그가 반대했다. 파우저 교수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데 보존을 외치면서 쉽게 없애려는 태도가 한옥 재개발이라고 생각한다. 행여나 그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반대 입장인 사람들과 마찰이 생기진 않을지 걱정되진 않는 걸까.

“그런 면에서 외국인이라 유리해요. 서로 악의 있게 싸우거나 그러진 않죠. 다만 누군가 의도적으로 한옥 보존을 위해 나서기보다는 수요가 생기고 시장이 형성되어 자연스럽게 한옥이 지켜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재개발에 대한 욕심도 없어질 거예요.”
최근 한옥이 좋아서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건 희망적인 변화다. 그러나 서울 지역의 한옥은 고가라 젊은 세대들이 접근하기 힘든 면도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파우저 교수는 5, 6억짜리 아파트 전세에 살지만 생활의 질은 낮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서울시에서 어느 정도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저렴한 가격의 전셋집도 있으며, 서울 이외의 지역은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한옥살이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옥을 공론화하자고 주장한다. 자신의 이름에 붙는 한옥지킴이란 단어가 싫듯이, 맹목적으로 한옥을 지키는 게 아니라 한옥이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안을 수 있도록 한옥을 재생하자는 것이다.

봄볕이 따사로운 날, 벽안의 외국인인 그가 툇마루에 앉은 모습이 낯설지 않다. 어락당에 산 지 한 달여가 지났는데 마치 여행지의 호텔에 묵는 느낌이 든단다. 한옥의 분위기는 있지만 100% 한옥은 아닌 듯한 마치 제4국의 느낌이라고. 곧 마당의 담에 타이포그라피스트 안상수의 한글 모티브 조각품을 설치할 예정이다. 화단은 한 살 된 셰퍼드종인 ‘계동(북촌의 종로구 계동에서 본뜬 이름)’이가 있어 어떻게 꾸며야 할지 고민 중이다. 아마도 그의 어락당은 누구라도 살고 싶어지는 한옥으로 달라질 것이다.

로버트 파우저 교수

1961년생, 미국 출신으로 군인이던 아버지가 일본에 살았던 것을 계기로 대학에서 일어일문학을 공부했고, 한국에는 1983년 어학 연수차 처음 방문했다. 미국에서 언어학 석사를 받은 뒤 1988년 고려대와 카이스트에서 영어를 가르치다 아일랜드에서 사회언어학의 전이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일본 교토에 머물다 2008년 서울대학교 국어교육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무엇보다 서촌 지역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고 한옥 보존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최근에는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

어락당 평면도

공간 디자인_박지민(프로젝트 디자인 그룹 Monostik 대표)
시공_도편수 황인범(서울한옥 대표)

한옥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오순도순 모여 사는 오래된 동네를 좋아하는 외국인이 있다. 좌식 생활도 거뜬하다는 로버트 파우저 교수는 낡고 작은 흔적조차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최근 낡은 한옥을 고쳐 살기 시작한 그를 만나 도시형 한옥의 매력과 좁다란 골목을 사이에 두고 형성되는 마을 공동체의 가치를 물었다.

CREDIT INFO

취재
임상범(프리랜서)
사진
성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