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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옹다옹 모자의 행복한 공동 작업

Alexander Mansion

On October 11, 2013

거대한 성벽 같은 담으로 둘러싸인 큰 집들, 이따금 빠르게 지나가는 고급 세단들…. 견고하고 딱딱했던 성북동의 풍경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레게 머리를 한 괴짜 사장이 자신의 사랑하는 어머니와 9개월 동안이나 손수 칠하고 자르고 바느질한 공간, 알렉산더 맨션에 들어서는 순간 일상의 행복한 균열 속에 빠져들게 된다.

성북동 길상사에서 북쪽으로 50m쯤 올라가다 보면 고급 주택가가 시작되는 삼거리에 오도카니 존재감을 발하고 있는 알렉산더 맨션(Alexander Mansion)을 만날 수 있다. 일본에서 공수한 골동품 자전거를 개조한 발코니 펜스, 황금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삽 문고리 등 입구에서부터 독특한 소품과 설치 작품의 향연이 시작되는 곳이다.
알렉산더 맨션은 꽤 근사한 피자와 파스타를 즐길 수 있는 이탤리언 레스토랑이다. 그런데 오픈한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아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것은 사장의 특이한 캐릭터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멋진 인테리어 덕분이다. 뿔테 안경과 레게 머리, 비음이 조금 섞인 목소리로 환하게 손님을 맞는 알렉산더 김 대표. 실패와 좌절을 겪고 난 후 어머니와 함께 이곳을 꾸미며 밤낮없이 뛰어다닌 9개월은 그 자체로 힐링의 과정이었다.

▲ 천창으로 자연광이 내리쬐는 별실은 알렉산더 맨션의 VIP석. 아버지의 오래된 극장 분위기를 떠올리며 김 대표가 직접 디자인한 Gold & Skyblue의 조합이 독특하다.

▲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도트무늬는 일본의 유명 설치미술가,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김 대표는 상단을 강아지 그림으로 채우고 싶었으나 어머니의 만류로 간신히 절제했다고 고백했다.

성북동의 매력,정점을 찍다

현재는 1층만 개방하고 있지만 봄이 되면 2층도 오픈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테이블과 의자, 천장의 나무 무늬, 벨벳 소재 벽면과 범상치 않은 설치작품들…. 알렉산더 맨션을 처음 방문한 손님들은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라도 된 것처럼 연신 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거린다. 테이블마다 놓인 연필꽂이 곁에는 어르신들을 위한 배려인 듯 발광 돋보기까지 마련해두었다. 역시나 개성 있게 생긴 화장실에는 샤넬 향수와 록시땅 핸드크림, 각종 여성 제품까지 구비되어 주인장의 세심함을 엿볼 수 있다.

“거의 살다시피했죠. 제 손이 닿지 않은 구석이 없을 정도예요. 저는 전문적으로 인테리어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에요. 설계도면을 그릴 줄도 모르고 전문 용어도 모르지만 직접 현장에서 지켜보고 제 감각에 맞게 만들어갈 줄 알아요. 수많은 사업을 하면서 내 공간을 만들어가는 과정만큼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10년 넘게 다양한 사업을 성공적으로 해온 경험이 있는 김 대표는 그야말로 완벽주의자다. 덕분에 29세 때부터 이미 서울 요지에 4개의 레스토랑과 카페를 운영했고, 한때 직원 수가 1백 명이 넘을 정도였다고. 그의 표현에 따르면 ‘일에 미친 사람’이었다.

“아침 7시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해요. 얼른 가게에 나가 일을 하고 싶어서요. 알렉산더 맨션 오픈 준비를 하면서 그 두근거림을 오랜만에 느껴봤지요. 천장에 붙인 나무 원목은 모두 인천 물류센터까지 직접 찾아가서 직접 구해온 것들이에요. 저 5.5㎝ 폭을 찾기 위해 무던히도 많은 나무를 잘라보고 붙여봤지요. 목수들이 혀를 내둘러요. 10년 동안 저랑 손발을 맞춰온 베테랑 아니면 같이 일 못합니다.”

그런 그가 무려 3년 동안이나 모든 사업을 접고 실의에 빠진 적이 있다. 5년간 그의 모든 것을 공유했던 사랑하는 여인이 떠난 후였다. 미술적 감각, 사업적인 마인드로 그의 사업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줬던 그녀와의 이별 후, 그는 운영하던 레스토랑 4개를 하나씩 매각하기 시작했다. 매일 울고, 절망하고, 한숨만 쉬는 나날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늙은 부모님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70년대, 안동에서 가장 큰 극장을 운영할 정도로 사업 수완이 좋았던 아버지와 50년 가까이 인테리어 사업을 해온 어머니가 어느덧 일흔이 훌쩍 넘어 홀로 불혹에 접어든 막내아들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었다.

“다시 일어나야지, 싶었어요. 문득 평창동에서 성북동으로 이어지는 그 드라이브 코스가 떠올랐어요. 그리고 이 자리를 발견하게 된 거죠. ”
지금 알렉산더 맨션이 들어선 자리는 5년 전엔 뼈대만 앙상한 부지였다. 그때 사귀던 여자친구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오빠, 저 자리에다 가게 열면 좋겠다’고 했던 게 생각난 것이다.

“참 선견지명이 있는 친구였죠. 그 자리가 애매한 게 뭐냐면, 가게를 하기에는 주택가라 상권이 확실치가 않고, 그렇다고 집을 짓고 살기에는 삼거리라 차가 너무 많이 다녀서 불편해요. 부동산에 알아보니 40년 동안 한 번도 가게가 들어선 적이 없는 자리라더군요.”
마치 계시라도 받은 듯 김 대표는 실의를 떨쳐내고 레스토랑 오픈에 매달렸다. 이미 현업에서 은퇴해 편안하게 노후생활을 하고 있는 부모님을 성북동으로 모셔온 것도 같은 시기였다.

“성북동은 아직 변하지 않은 곳이 많아요. 조용하고 정제된 분위기가 사람을 참 편하게 해주죠. 저희 부모님도 이 동네를 참 마음에 들어 하세요. 그래서 근처에 레스토랑을 오픈하겠다고 했을 때 크게 환영하셨죠.”
내로라하는 부잣집들이 모여 있는 동네지만 김 대표가 관찰한 결과 실상 그들의 삶은 단조롭고 무료하기 그지없었다고. 근처에 괜찮은 식당이나 카페가 없어 옷을 빼입고 차까지 몰고 나서야 하니 웬만하면 집에서 고구마나 구워 먹는 게 일상이라나.

“현재 저희 레스토랑을 찾는 손님 99%는 성북동 주민들입니다. 집에 있다가 편하게 내려와서 기분 좋게 식사나 커피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거죠. 저희 공간을 통해서 이웃들과 눈인사도 나누게 되고요.”
근처에 각국 대사관이 몰려 있어 저녁에는 꽤 분위기 있는 파티가 열리기도 한다. 조금은 딱딱하고 심심했던 성북동이라는 동네에 새로운 활력소이자 아지트가 등장한 셈이다.

1 2층은 아직 오픈 전이지만 1층 레스토랑과는 또 다른 정제되고 세련된 느낌의 인테리어를 자랑한다.
2 어느 공간 하나 허투루 쓰는 법이 없다. 곳곳에 걸린 팝아트 작품들은 김 대표가 알고 지내는 작가에게 직접 아이디어를 주고 주문한 것이다.
3 테이블마다 놓인 연필꽂이와 어르신을 위한 메뉴판용 돋보기. 사소한 부분에서도 깊은 배려가 느껴진다.
4 멋진 손잡이로 변신한 구두 라스트. 의외의 곳에서 멋진 소품을 만날 때 우리는 신선한 기쁨을 느끼게 된다.
5 자르고, 붙이고, 다듬고, 칠하고…. 9개월여의 지난한 공사 기간을 ‘기억’하기 위해, 그는 진짜 삽에 수백만원짜리 도금을 했다.
6 알렉산더 김 자신의 캐릭터를 형상화한 팝아트 작품. 가게 운영이 정상화되면 본격적으로 설치미술 활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아옹다옹 모자의 유쾌한 협업

알렉산더 맨션의 이모저모를 살펴볼수록 감탄이 절로 나오는 이유는 어디서도 보지 못한 특유의 세심함과 감각 때문이다. 김 대표가 ‘exaggerated episode(과장된 추억)’라 이름 붙인 정면의 자전거 조형물의 경우 근처에 사는 모 기업 회장으로부터 ‘내 정원에도 설치해달라’는 의뢰를 받았을 정도다.
“돈만 생각했다면 기꺼이 설치해드렸겠지만 저에게는 나름대로 소중한 의미가 담겨 있는 작품이라 복제되는 게 싫었어요. 잠시 스쳐 지나갔던 과거의 추억들이 생생한 모습으로 불쑥 올라올 때가 있잖아요? 첫사랑을 자전거 뒤에 태우고 달리던 코스모스 길의 그 향기를 아직도 잊지 못하거든요. 과장된 추억들이지만, 그런 저의 감성 때문에 자꾸 이런 작품들을 만들게 되는 것 같아요.”

이토록 섬세하고 감성적인 그의 감각이 알렉산더 맨션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요소를 탄생시켰다면, 50년간 공간을 만들어온 어머니의 감성은 그런 그를 다독이고 절제시키는 역할을 했다. 덕분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로운 느낌은 물론 편안함과 안락함까지 느껴지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모자의 능력이 효과적으로 더해진 놀라운 협업이다.
“저희 어머니도 매일 현장에 나오셨어요. 저는 쉴 새 없이 아이디어를 내요. 가구를 이렇게 저렇게 배열해볼까. 이 컬러가 좋을까, 저 컬러가 좋을까. 어머니의 의견을 수렴해 함께 작업을 하는 거죠. 한번은 벽의 네모 문양 안에 컬러를 넣는데 제가 원하는 로열 퍼플이 아무리 해도 안 나오는 거예요. 그때 어머니가 ‘벨벳으로 덮어버리자’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내기도 하셨죠. 딱 내가 원했던 느낌이었어요.”

이옥자 씨는 아들의 재기를 위해 힘껏 도왔지만 이제는 힘이 없어 아무래도 알렉산더 맨션이 마지막 작업물이 될 것 같다며 웃었다. 매일 현장에 나와 아들과 아옹다옹하고 스태프들을 챙기기가 쉽지만은 않았지만, 오는 사람마다 인테리어 감각을 칭찬하며 감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뿌듯하기도 했다고.
“뭐든 마음에 들 때까지 하는 아이예요. 어디서 구두골(Last)을 미닫이문 손잡이로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를 갖고 와서는 국내에는 마음에 드는 게 없다며 그렇게 설레발을 치더니 결국 영국에서 수입해왔어요. 그래도 저리 해놓으니 예쁘기는 합디다.”

입구의 황금삽 손잡이는 9개월 넘게 어머니와 그, 그리고 수십 명의 인부가 흘린 땀과 노력을 기념하기 위한 작은 상징이다. 평범한 아동용 삽을 사다 도금하고 다듬어서 재창조한 작품이다. 알렉산더 맨션이라는 공간의 매력은 이렇게 작은 소품 하나하나마다 의미와 마음을 담았다는 데 있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도 ‘힐링’되는 느낌을 받는 것은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그가 9개월 동안 먼지를 뒤집어쓰며 밤낮없이 공간을 구상하고 만드는 동안 천천히 치유된 것처럼. 이번 봄, 성북동 가는 재미가 하나 더 늘었다.

거대한 성벽 같은 담으로 둘러싸인 큰 집들, 이따금 빠르게 지나가는 고급 세단들…. 견고하고 딱딱했던 성북동의 풍경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레게 머리를 한 괴짜 사장이 자신의 사랑하는 어머니와 9개월 동안이나 손수 칠하고 자르고 바느질한 공간, 알렉산더 맨션에 들어서는 순간 일상의 행복한 균열 속에 빠져들게 된다.

CREDIT INFO

취재
홍유진(프리랜서)
사진
최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