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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조성욱 소장의 땅콩집, 무이동(無二同)

On October 08, 2013

한겨울 오후의 햇빛이 창을 타고 집 안을 가득 채운다. 안마당에는 소록소록 눈이 쌓이고, 위층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행복의 증거가 될 수 있다면, 당신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조성욱 소장이 지은 듀플렉스 하우스에서는 행복에 관한 작은 실험이 시작되고 있었다.

▲ 1층 거실은 그와 가족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단을 올려 주방과 분리하고 미닫이문을 설치해 독립된 공간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무이동(無二同)은 철학을 전공한 그의 친구가 제안한 이름이다. ‘같지도 다르지도 않다’는 의미의 이름이 닮은 듯 다른 두 가족이 함께 사는 집에 더없이 잘 어울린다고 조 소장은 생각했다.
성남시 판교동. 모 대기업 건설사가 분양한 단독주택 단지에는 저마다 개성을 뽐내는 2층짜리 주택이 가득했는데, 그중에서도 무이동은 쉽게 눈에 띄었다. 무이동은 한 필지를 두 가족이 별도의 생활공간으로 쓸 수 있도록 설계한 듀플렉스 하우스, 소위 말하는 땅콩주택이다. 언뜻 보기에는 일반 단독주택과 다른 점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 양쪽이 1m 앞뒤로 엇갈리게 배치한 독특한 설계 덕분인 듯했다. 약간 엇갈린 대칭이 양쪽 집의 독립성을 지켜주면서 동시에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중요한 포인트였다.

▲ (오른쪽) 2층 생활공간에 있는 욕실. 아이들이 나란히 쓸 수 있도록 세면대를 2개 설치했다.

이제 진짜 집에서 살아볼까

건축주이자 설계자이기도 한 건축가 조성욱 소장은 그야말로 우연한 기회에 무이동을 짓게 되었다.
“몇 년 전부터 이현욱 소장의 땅콩주택이 큰 유행이었잖아요. 그렇게도 살 수 있겠구나 싶었지만, 당장 실천에 옮길 만큼의 매력은 못 느꼈던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재작년, 30평대 아파트로 전세를 옮기려고 하니 전세가가 4~5억에 달하더군요. 그 돈 주고 아파트에 살 바엔 차라리 내 집을 짓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어요.”
마침 판교 주택단지에서 땅을 분양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그러나 땅값만 6억이었다. 전세 보증금 4억이 전부인 그로서는 선뜻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때 떠오른 사람이 평소 가깝게 왕래하며 지내던 친구였다.

“문득 ‘같이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소에 항상 ‘내 집을 갖는 것이 꿈’이라고 이야기하던 친구였거든요. 가족끼리 워낙 친하게 지냈고, 가깝게 살아도 재미있겠다 싶더군요. 친구한테 얘기했더니 얼씨구나 좋다며 반기더라고요.”
조 소장은 설계에 들어가기 전 장안의 화제인 땅콩주택을 방문하기도 했다. 답답한 감이 있는 좁은 실내와 소음 문제 등 처음에는 단점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살 집’이라 생각하고 보니 다른 방식으로 재미있게 풀어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수많은 건축물을 설계해왔지만, 조성욱 소장에게 이 작업은 매우 특별했다. 그동안 큰 규모의 빌딩 건축을 전문으로 해온 그에게 주택 설계는 매우 디테일한 작업이었고, 또한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이 살아갈 공간이기에 욕심도 생겼다.

“어렵지만 재미있었어요. 집주인이 건축주니까 시공사는 솔직히 좀 피곤했을 거예요. 아주 디테일하게 주문했거든요. 단 높이, 모서리, 손잡이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써서 했는데 오피스 설계와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죠.”
그렇게 지하 1층과 지상 2층, 그리고 옥상까지 쓸 수 있는 2가구의 집이 완성되었다. 연면적은 총 230㎡로 비용은 각각 6억 정도였다. 약간의 대출이 필요하긴 했지만 아파트 전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두 가족 다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전형적인 도시형 서민들. 단독주택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가족에게 찾아온 변화

무이동이 기존의 땅콩주택과 차별되는 점은 집 사이에 계단과 통로를 두어 벽간 소음을 최소화하고,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내부 구조를 달리했다는 것이다. 반면 2층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길에 ‘옥탑방’이라는 공동 공간을 두고 하나의 옥상을 함께 공유하는 방식은 ‘한 지붕 두 가족’이라는 새로운 공동체를 염두에 둔 것이다.
“듀플렉스 하우스는 어떤 이들과 한 건물에 살 것이냐가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해요. 만에 하나 정말 싫은 이웃을 두게 되면 24시간이 괴로워질걸요. 그래서 처음부터 오래 함께 살 동반자와 지속적인 의사소통을 하며 함께 집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는 아파트가 아닌 주택에 산다는 것, 그리고 같은 건물에 두 가족이 함께 산다는 것이 그렇게 많은 ‘프라이버시 침해’를 야기할 줄 미처 몰랐다고 고백했다. 동시에 프라이버시를 침해받는 것이 즐겁고 유익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깨달음도 얻게 되었다고.
“아침에 일어나 1층 거실로 나오면 통유리 창을 통해 눈을 쓸고 있는 친구와 눈을 맞추게 돼요. 자연스럽게 나도 나가서 같이 빗자루를 들죠. 아이들끼리도 친해요.

▲ 1 조 소장이 집을 지으면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쓴 곳이 바로 아이들이 쓸 공간이다. 두 아이의 방이 복층에서 이어지게 만들어 학습과 놀이, 2가지 요소를 갖출 수 있게 했다.
2 아이들이 무이동에 이사 와서 좋아하는 점 중 하나는 ‘계단이 많다’는 것이다. 오르내리고 숨고 뛰어내릴 수 있는 공간의 매력을 극대화했다.

▲ 2층 생활공간은 하나의 복도로 통하되 2개의 아이들 방과 부부 침실, 드레스룸과 욕실이 나란히 배치된 구조다.

▲ 아이들 방 위에 마련한 복층 공간은 마음껏 어지르고 놀 수 있는 보금자리다. 아직 여덟 살, 네 살인 수민이와 서율이가 이 안에서 꿈을 꾸고 창의력을 키워나가길 바라며 만들었다.

▲ 단독주택에 살면서 가장 좋은 점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다는 점이다. 조 소장은 아예 실내 암벽등반 장치까지 마련했다. 아이들은 수퍼맨처럼, 원숭이처럼 상상력을 키워나가며 신나게 논다.


저희 애들은 아직 어린데, 옆집의 중 1, 초등 3학년 언니들이 잘 돌봐주니까 하루 종일 따라다니면서 함께 뛰놀아요.”
단지 사는 곳만 달라졌을 뿐인데 아이들은 저절로 바뀌었다. 시시때때로 엄마 아빠에게 매달리고, ‘마트 가자, 놀이공원 가자’ 졸라대던 아이들이 이곳에 오고 나서는 옆집 언니들과 뛰노느라 바빠졌다. 함께 피아노도 치고, 두 집을 오가며 숨바꼭질도 한다. 폭설이 내린 어느 날은 갑자기 이글루를 만들겠다며 두 집 아빠들을 소환하기도 했다.
“참 신기해요. 주택에 사니까 애들도, 어른들도 자연스럽게 라이프스타일이 바뀌는 거 있죠. 왜 그런지는 지금도 의문을 풀지 못했어요. 붙임성 좋은 사람도 아파트에서는 옆집이나 윗집에 사는 이웃과 일일이 인사하고 아는 척 안 하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지나가다가 눈이라도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교류를 하게 돼요. 그러다 서로의 집을 방문해 와인 한잔 하기도 하고….”

지어진 대로 들어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수동적으로 살게 되는 반면,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지은 주택에서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게 된다는 게 그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다. 사실 조성욱 소장은 예전부터 아파트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의 주거문화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아파트의 가치를 부정할 생각은 없어요. 건축가로서 아파트가 이 시대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것은 인정하거든요. 하지만 많은 사람이 자기가 사는 공간을 사랑하지 않아요. 유명 브랜드, 금전적 가치, 지리적인 우월성만 따지죠. 왜 치열한 경쟁을 뚫고 분양권에 당첨되면 마치 로또에 당첨이라도 된 것처럼 좋아할까요?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이 살게 될 집의 조망이 어떤지, 남향인지 북향인지, 몇 층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게 참 안타까웠어요.”

▲ 1 지하 1층은 비교적 넓은 편이다. 현재 건축사사무소로 쓰고 있다. 밖으로 통하는 천창이 뚫려 있어 늘 밝은 빛을 받는 쾌적한 공간이다.
2 무이동의 건축 모형. 사랑하는 가족과의 행복을 꿈꾸며 하나하나 지어올린 집이다.

▲ 무이동은 하얗고 깔끔한 외관을 자랑한다. 단열과 채광, 방음에도 신경을 많이 썼지만 디자인 면에서도 만족스럽다고.

행복의 또 다른 이름, 우리 집

무이동은 완공되기도 전에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주목받았다. 소위 ‘땅콩집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소문이 나 기존의 듀플렉스 하우스에 아쉬움을 느꼈던 이들의 눈길을 끈 것이다.
“저는 그래도 전세로 시작했지만 옆집 친구는 단칸방 월세로 시작해 여기까지 온 거거든요. 한 곳에 정착했다는 것만으로도 크게 만족하고 있어요. 그런데 살아보니까 더 좋대요. 뒤늦게 ‘네가 설계하면서 얼마나 공을 들였을지 짐작이 간다’며 감사를 표하더군요. (웃음) 평생 살 거고 자식한테도 물려줄 거라며 애착이 대단해요.”
한 번도 내 집을 가져보지 못한 보통 사람들에게 나만의 마당과 옥상이 있는 2층짜리 단독주택은 그야말로 꿈의 공간이다. 사실 도시의 수많은 사람이 현대판 유목민의 삶을 살고 있다. 열심히 돈을 모아 아파트를 사고, 값이 오르면 팔고 또 다른 곳을 찾는다. 집값이 오르는지 떨어지는지 항상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고, 그에 따라 삶의 질도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인생의 목표가 ‘집 늘리기’뿐이라면 너무 불행하잖아요. 저는 그건 정말 아니라고 봐요. 삶의 핵심이 무엇이냐를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집이 안정되고 가정이 화목하면 거기에 쓰일 에너지를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쓸 수 있거든요. 이번에 무이동을 지으면서 제가 하고 싶은 건축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된 것처럼요.”
어렸을 때 싱가포르와 노르웨이에서 살다 온 경험이 있는 그는 항상 ‘행복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마음에 담고 있었다. 신혼여행으로 스위스를 택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어느 신문에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가 취리히’라는 기사를 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냥 열흘 동안 취리히에서 살았어요. 관광객 입장에서 보긴 했지만 겉보기에도 눈물 날 정도로 부럽더라고요. 공부하는 사람들은 정말 똑똑하고, 복지는 잘되어 있고, 못사는 사람이라 해도 우리나라 서민 정도더라고요. 공해 없고 스트레스 없는 도시. 진심으로 그런 곳에 살고 싶다, 그리고 그런 곳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가 건축가가 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단지 물리적인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공간을 만드느냐에 따라 주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러한 영향이 모여 하나의 문화가 된다고 그는 믿고 있다.

“서울 변두리에서 전세살이만 했던 평범한 서민이 이제 집짓고 호강하면서 잘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게 아니거든요. 저처럼 ‘행복의 중심이 무엇일까’를 진심으로 고민하다 보면 어느새 가까이 가 있을 거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지난해는 무이동을 지으며 하드웨어를 완성시켰다면, 이제부터는 그 안에서의 행복한 라이프스타일로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조성욱 소장. 지금도 수없이 많은 문의전화가 오지만 그는 언제나 기꺼이 집을 공개하며 ‘이렇게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직접 짓는다는 게 그렇게 먼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결국 내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어떤 집에 사느냐가 결정되는 것 같아요. 집값에 행복을 저당 잡히는 삶이 아니라 현재, 내 가족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삶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한겨울 오후의 햇빛이 창을 타고 집 안을 가득 채운다. 안마당에는 소록소록 눈이 쌓이고, 위층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행복의 증거가 될 수 있다면, 당신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조성욱 소장이 지은 듀플렉스 하우스에서는 행복에 관한 작은 실험이 시작되고 있었다.

Credit Info

취재
홍유진(프리랜서)
사진
최재인

2013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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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유진(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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