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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자유가 사라진 세상에서

제2회 이영만연극상 작품상을 수상한 <이런 밤, 들 가운데서> 극본과 연출을 맡은 설유진을 만났다.

UpdatedOn March 25, 2024

ⓒ 박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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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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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준

Q. 연극 <이런 밤, 들 가운데서>가 제2회 이영만연극상 작품상을 수상했습니다. 어떤 극인지 소개해 주세요.
A.
참사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마음과 동시대 공연 예술의 소용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작품입니다. 극 중 인물 소란이 계간지 <자유와 사랑>에 실린 시에서 오자를 발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앵무새 사랑이와 뻐꾸기 자유가 동물원에서 사라진 지 9년. 인물들은 여전히 새를 찾고, 저마다 기억을 털어 놓고, 누군가를 그리워합니다. 고백하자면, 애도할 일이 점차 쌓이면서 사후에 만드는 연극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슨 소용일까 무력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럴 때면 이영만연극상을 기억하려 합니다.

Q. 대사를 자막 처리하고, 배우가 인상착의를 설명하는 등 배리어컨셔스 개념에 기반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의 장벽을 허물려는 노력이 인상적이었어요.
A.
사회 시스템 대부분 비장애인이 기본값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공연 예술도 마찬가지예요. 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박세련 접근성 매니저가 완전히 없애기 힘든 장벽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배리어컨셔스 개념을 제안해 주었습니다. 모두가 공연을 즐길 더 좋은 방법을 계속 찾고 있습니다.

Q.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지운 동그란 형태의 공연장도 돋보였어요.
A.
2018년 연극계의 ‘미투’로 모두가 충격에 휩싸였고, 연극인 150여 명이 한 극단의 연습실에 모였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서로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는 과정에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후 신승렬 무대 디자이너와 신동선 조명 디자이너가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많은 일이 벌어지는 시대에 서로 안부를 묻고 일상을 공유하는 순간을 보여 주고 싶었고, 고민 끝에 지금 형태로 완성했습니다.

Q. 처음부터 연극계에 몸담지는 않으셨다고요.
A.
20대까지는 꿈이 없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필름 프로덕션에 들어가 조감독으로 일하는 동안 연출은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회사를 떠나 동시녹음 작업을 하며 주체성을 발휘하는 환경에 있다 보니 다시 연출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다음 들어간 기획사가 영화 제작에 앞서 연극을 만들면서 저 또한 연극 세계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매체를 통해 예술을 향유하는 시대이니만큼 사람과 사람이 대면하는 연극이 더욱 귀하게 여겨집니다.

Q. 극단 907(구공칠) 대표이기도 한데, 어떻게 극단을 결성하게 됐나요?
A.
2014년 서울연극제 희곡 공모전에 <씨름>이 당선된 후 연극을 해도 되겠다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작품을 함께 무대에 올릴 동료들을 모아 같은 해 9월 7일에 출발했습니다. 극단 907은 오늘을 사는 한 인간이 왜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는지, 또 무엇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연구합니다. 이 시대를 용기 있게 기록해 나갈 생각입니다.

Q.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알려 주세요.
A.
올해 극작과 전문사 과정에 입학했습니다. 학교에서 창작을 배우며 제작을 염두에 두지 않고 글만 치열하게 써 볼까 합니다. 그동안 변화하는 사회의 모습에 따라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이 달라졌습니다. 저마다 고민을 안고 사는 현대인에게 제 연극이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이영만연극상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고 이영만 군의 어머니인 연극배우 이미경 씨가 제정한 상이다. 창작 활동을 통해 안전한 사회와 생명 존중의 가치를 구현하는 연극인과 작품에 수여한다.


ⓒ 두산아트센터

ⓒ 두산아트센터

ⓒ 두산아트센터

설유진

2014년 서울연극제 희곡 공모전에 <씨름>이 당선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 <초인종> <홍평국전> <오아시스> 등을 연출했다. 2021년 제12회 두산연강예술상 공연 부문을, 지난해에는 이영만연극상을 받았다. 그가 이끄는 극단 907 단원과 함께 동시대 이야기를 늘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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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김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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