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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군산 기차 여행

서해금빛열차를 타고 전북 군산으로 떠났다. 아이와 경암동 철길마을, 말랭이마을을 누비며 추억을 남겼다.

UpdatedOn January 2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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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모든 게 신기하다. 처음 전철을 탄 날, 땅 위를 달리는 구간에서 말했다. “전철이 빨라요, 자동차가 빨라요?” 상황마다 다르다 답하니 그 상황이 무엇이냐 물었다. 거리와 속도의 단위, 혹은 러시아워에 대해 설명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저기에 자동차들이 가지? 저기랑 여기랑 어디가 더 빨라 보여?” 아이의 시선이 계속 차창 밖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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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출발을 기준으로 용산역에서 서해금빛열차를 타고 군산역까지 3시간 정도 걸린다. 새마을호와 무궁화호도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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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금빛열차는 서울 용산역과 전북 익산역을 왕복하는 관광 열차다. 온돌마루실을 비롯해 포토 존과 전망 좌석 등으로 구성한 힐링실을 갖춰 기차 여행이 더욱 즐겁다. 문의 1544-7788

서해금빛열차는 서울 용산역과 전북 익산역을 왕복하는 관광 열차다. 온돌마루실을 비롯해 포토 존과 전망 좌석 등으로 구성한 힐링실을 갖춰 기차 여행이 더욱 즐겁다.
문의 1544-7788

온돌방에 앉아 경치 감상을, 서해금빛열차

누가 채워 주는 때가 있고 스스로 쌓아 가는 때가 있을 것이다. 여전히 어른은 알맞은 때가 뭔지 몰라 당황하곤 해도 지금 아이는 안다. 언제는 전철이 빠르며 언제는 자동차가 빠르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그날 어떤 비밀스러운 순간이 작디작은 마음을 스쳤을까. 이후 아이는 종종 기차를 타고 싶다 했다. 눈빛에 호기심이 가득해서, 기차 속도를 직접 알아보고픈 바람을 충분하게 느꼈다. 이번에도 단위 같은 건 잊기로 하고 전철에 탑승해 서울 용산역으로 갔다. 땅 밑에서 올라온 전철이 다리를 건너는 동안 빠르고 느린 자동차들을 함께 바라봤다.

용산역에 내리자마자 아이는 놀랍다는 듯이 소리를 지른다. “와, 전철역이 되게 커요.” “전철도 타고 기차도 타는 곳이어서 그래. 사람이 많이 와서 크게 지은 거야.” 그렇구나, 하는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인파를 따라 걸어 기차 승강장에 닿았다. 잠시 지나 노란색 기관차가 객차 다섯 량을 끌고 역에 들어선다. 객차에도 여러 무늬를 입혀 외관부터 볼거리다. 이게 아이에게 얼마나 환상적인 광경인지는 방방 뛰는 모습만 봐도 알겠다. 기차가 완전히 멈춘 뒤엔 문이 열리는 짧은 시간이 근질근질해 아예 춤을 춘다. 서해금빛열차를 예약하길 잘했네,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을 칭찬했다. 물론 마음속으로.

서해금빛열차는 용산역과 전북 익산역을 왕복하는 관광 열차다. 아산, 홍성, 보령, 서천 등 충남 구석구석과 전북 군산에 정차하는 노선이 여행하기에 좋고, 특히 5호차가 온돌마루실이어서 편히 앉아 풍경을 감상하는 데 맞춤이다. 온돌마루실은 이미 따듯하게 덥혀 있었다. 몸이 사르르 녹아 가슴까지 훈훈해지는 찰나에, 그러든 말든 아이는 차창 앞으로 점프해서 얼굴을 바싹 대고는 재잘거리기 시작한다. 출발하고도 한참 “이거” “저거” 좀 보라면서 손가락을 이리저리 흔드는 통에 오랜만에 제대로 경치를 구경했다. 마침 어제 눈이 내려 산과 들이 하얗다. 궁금하지만 묻지 않았다. 이야기를 듣고 산과 들을 나란히 보기만 했다. 마음을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기에. 함께하는 것만으로 지금은 흘러넘친다. 아이가 문득 묻는다. “근데 있잖아요. 기차가 빨라요, 자동차가 빨라요?” “같이 알아보자.” 자동차를 찾는 우리의 시선이 계속 차창 밖을 향했다.

시속 10킬로미터 속도로 마을을 통과하던 열차는 2008년 운행을 멈췄지만, 경암동 철길마을은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골목 분위기와 상점들로 군산 대표 여행지가 되었다.
문의 063-446-5114

시속 10킬로미터 속도로 마을을 통과하던 열차는 2008년 운행을 멈췄지만, 경암동 철길마을은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골목 분위기와 상점들로 군산 대표 여행지가 되었다. 문의 063-446-5114

시속 10킬로미터 속도로 마을을 통과하던 열차는 2008년 운행을 멈췄지만, 경암동 철길마을은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골목 분위기와 상점들로 군산 대표 여행지가 되었다.
문의 063-446-5114

기차가 오가던 추억의 골목, 경암동 철길마을

군산역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문가로 나가 정차하길 기다린다. 아이에게 곧 미지의 세상이 펼쳐진다. 다시 손을 꼭 잡은 아이가 첫눈처럼 하얗게 웃는다. 그런 표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생각했다. 처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맞이한 게 언제였더라. 너무 들떠 심장이 두근거린 건 또 언제였지. 더해야 어른이 되는 줄 알고 덕지덕지 붙여 왔으나, 정작 무엇이 붙었는지 알려고 하진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오늘 여기는 모두가 맑다. 문이 열리고 군산에 첫발을 내딛는다. “가자!” 외치는 사이에 아무 근심도 없다는 양 벌써 아이는 저만큼. 그래, 그렇게 가자.

먼저 방문한 곳은 경암동 철길마을이다. 군산 여행은 혼자가 아니어서 계획하는 일이 평상시보다 조심스러웠다. 행여 지루해하면 어쩌나 걱정돼 여행지들을 나 홀로 들었다 놨다 했다. 고민 끝에 선택한 곳은 경암동 철길마을과 그다음으로 말랭이마을. ‘경암동 철길마을’ 벽화가 반기는 마을 입구, 아이가 “기차가 다니는 길?!”이라고 질문인지 탄성인지 아리송한 말을 던지고 뛰어간다. 달싹이는 뒷모습이 예뻐 잠깐이나마 천천히 걷기로 한다. 어디든 백지로 만드는 생명의 조화를 뒤따라 철길을 밟고 눈을 만지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 길은 어찌 이리 사랑스러울까. 아이는 모든 게 신기해서 더불어 가는 어른도 어느새 세상이 신기하다. 계획하는 일이 걱정된들 걱정만 하기보다 조금 더 설레어 볼 것을. 달싹이는 저 뒷모습을 다른 여행지와 일상의 풍경에 덧대고 내리 천천히 걷는다. 세상이 새하얀 종이 한 장을 건네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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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대여점에 들렀다. 역시 “이거” “저거” 손가락을 이리저리 흔들지만, 왜 저보다 큰 옷만 가리키는지 아직도 불가사의하다. 마침내 몸에 맞는 옷을 지목했다. 아이는 탈의실 문을 야무지게 닫고 부스럭부스럭 갈아입는다. 도와주겠다 해도 아니란다. 끙끙 소리를 몇 번 내고서야 탈의실에서 나온다. 발그레 웃는 아이. 만족했나 보다. 이제 아이 옆에서 마을을 탐방한다. 장난감 가게, 달고나 만들기 체험 상점, 사진관, 벽화, 알록달록 채색한 철길…. 서두를 이유 따위는 존재할 수 없는 아이의 우주에 경암동 철길마을이 살며시 들어온다. 달고나가 맛있고 벽화가 아기자기한 우주 한편에 기차가 오가면 더 좋겠다. “예전엔 기차가 다녔어. 이 좁은 골목을 기차가 통과한 거야. 근사하지?” “진짜요? 칙칙폭폭 소리가 엄청 컸겠네. 정말 멋지다!” 어른은 근사하다 표현하고 아이는 멋지게 상상한다. 둘의 간격은 별것 아닐 수도, 전부일 수도 있다. 저만치 앞서가는 아이를 쫓아 칙칙폭폭 소리가 멋진 마을을 거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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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때 형성된 신흥동 말랭이마을은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해 쇠락해 갔으나 최근 벽화를 입히고 예술가가 입주하면서 군산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문의 063-454-5813

한국전쟁 때 형성된 신흥동 말랭이마을은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해 쇠락해 갔으나 최근 벽화를 입히고 예술가가 입주하면서 군산의 새로운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문의 063-454-5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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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물어 가는 군산의 기억, 말랭이마을

한국전쟁 즈음 피란민들이 금강 인근 신흥동에 마을을 형성했다. 산비탈 바위 위에 판잣집이 다닥다닥한 마을은 1970년대 주민이 8000명을 웃돌아 활기로 가득했다. 하지만 도시가 확장하고 아파트가 보편화되며 사람들은 하나씩 터전을 뒤로하고 떠났다. 주민이 겨우 100명 남짓으로 줄어 소멸해 가던 2010년대 중반에 기적이 일어난다. 옛일을 품은 마을을 보존하자는 뜻이 모인 어느 날, 군산시가 산비탈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자 결정한 것이다. 철거를 논의한 빈집에 벽화를 그리고 예술가가 입주하고 마을 역사를 알리는 전시관이 들어섰다. “그렇게 된 거래. 산에서 경사가 기울어진 곳이 산비탈인데, 군산에서는 말랭이라고 불러. 참 예쁘다, 그지?” “맞아. 말랭이 귀여워요.” 옹기종기 밥을 나누어 먹는 가족, 만선의 소망을 안고 항해하는 고깃배 벽화가 정다운 날들을 보여 준다. 간직하기 힘든 시대, 땀 흘려 매만지고 공들여 지키는 군산의 시간이 아스라해도 생생하다.

말랭이마을 레지던스 작가 중 김혁수 도예가 공방을 찾았다. 둘러보고 나가자 했다가 아이 표정이 환해서 체험이 가능한지 문의했다. 작가는 흔쾌하게 시간을 내 주었다. 이렇게 해 보자, 저렇게 해 볼까 이르는 대로 아이는 열심히 흙을 다진다. 도자기 모양을 완성하고는 고개를 숙여서 무언가 적는다. 가만 보니 제 이름이다. 또 한 번 발그레 웃는 얼굴을 어루만져 보았다. 철길과 칙칙폭폭 소리와 벽화의 순간들이 얼굴에서 손끝으로, 가슴에서 가슴으로. 여정을 마무리하고 군산역에 돌아와 기차를 기다린다. 깡충깡충 뛰놀던 아이가 벤치에 같이 앉자 한다. “오늘 되게 즐거운 하루였어요.” 고맙다고 대답했지만 충분한 건지 모르겠다. 하긴 영원히 모른대도 어떠한가. 함께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넘쳐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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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김규보
photographer 신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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