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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Issue 새롭게 발효된 경범죄처벌법 시행령 논란

하룻밤, 그녀를 그리워한 대가가 32만원?

On April 16, 2013

@twitter.com/ovniii<br />지극히 당연한 명제를 의심하라! 여자를 둘러싼 세상을 빠르고 예민하게 감지하는 <그라치아>.3월 22일부터 새롭게 시행되는 경범죄처벌법에 관한 논란을 다시 생각해 본다.

  • 새롭게 발효된 경범죄처벌법 시행령

좀 마셨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헤어진 애인의 집 앞. 습관처럼 익숙한 번호를 누른다. 받지 않는다. 아직 알코올 기운도 남아 있겠다, 받을 때까지 걸고 또 건다. 목소리가 듣고 싶은 걸 어쩌란 말인가. 답이 없는 휴대폰을 부여잡고 창문을 바라보다 담배를 꺼내 문다. 밤새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그녀의 집 앞에서 목 놓아 운다. 아 ,그녀가 보고 싶다!
많이 듣던 스토리, 저절로 눈에 보이는 광경이다. 우린 모두 누군가의 ‘구남친’ ‘구여친’이다. 새벽 두 시에 술 마시고 전화한 스토리 하나쯤이야 누구든 간직하고 있는 추억 아니던가. 누가 더 찌질했는지의 미묘한 정도 차이만 존재할 뿐 . 행위 자체가 옳다는게 아니라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선 그럭저럭 넘어가는 분위기였다는 얘기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선 툭 하면 찬란한 청춘의 한 페이지쯤으로 미화되면서. 하지만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구남친, 구여친들은 긴장하시라. 이제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수도 있다. ‘장난 전화’ 8만원, ‘지속적 괴롭힘’ 8만원, ‘음주 소란’ 5만원, 바닥에 ‘담배꽁초 투기’ 3만원, 혹시 담뱃 불이 어딘가 남아있기라 했다면 ‘위험한 불씨 사용 ’ 8만원. 법률적 검토를 배제한 최악의 시나리오이긴 하지만, 지나간 애인을 하룻밤 그리워한 결과가 32만원에 달하는 범칙금 고지서로 날아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 3월 22일부터 새롭게 발효된 경범죄처벌법 시행령에 따르면 말이다. 경범죄처벌법 시행령 가운데 특히 의견이 분분한 건 ‘과다 노출’과 ‘지속적 괴롭힘’ 항목이다. 과다 노출의 처벌 대상은 ‘여러 사람의 눈에 띄는 곳에서 함부로 알몸을 지나치게 내놓거나 가려야 할 곳을 드러내 다른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 들게 하거나 불쾌감을 준 사람’이다 . 대체 ‘가려야 할 곳’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고, ‘함부로’는 누구의 기준에서 정한단 말인가. ‘부끄러운 느낌’은 또 어떻고. 게다가 스토킹은 고작 8만원밖에 안 된다고?

여론이 시끄러워지자 경찰이 직접 보도 자료를 돌리며 진화에 나섰다. 한마디로 모두 오해라는 말씀. 범칙금은 줄고 처벌 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기존 법규의 수위가 완화됐다는 설명이다. 1963년에 만들어진 과다 노출 조항이 현행법처럼 개정된 건 1988년. 기존엔 즉결심판만 하던 것을 오히려 범칙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개정했다는 이야기다. ‘속이 들여다보이는’ 옷은 경범죄 처벌 범위에서 새롭게 제외됐다니 레이스 룩이 유행인 건 알았나도 싶지만. 시행령을 둘러싼 논란 이전에는 대부분 존재하는지도 몰랐을 만큼 사문화된 법이었듯이 이번 개정 또한 마찬가지 일거라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나 등장하던 일들이 설마 2013년에 쉽게 반복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경찰이 자를 들고 미니스커트 길이를 재고 장발을 단속하던 풍경 말이다. 하지만 누가 알겠나. 세수 확장이라는 대의를 위해 또 갑작스레 상황이 바뀌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까.

일단 법적 토대를 통한 가능성은 열어둔 셈이니 말이다. 무엇보다 이런 법이 등장하고 적당히 넘어가는 상황자체야말로 염려스럽다 . 개인의 자유가 점점 더 손쉽게 공권력에 의해 통제되고 억압되어 가는 것. 형평과 분배의 논리에 따른 납세가 아니라 모두가 모두를 감시하는 가운데 벌금만 늘어간다면 한층 서로에게 각박해질 수밖에 없을테니까. 꼼꼼히 따져보니 애인을 그리워한 하룻밤 대가는 벌금 32만원이 전부는 아니다. 범칙금은 아니지만 밤새도록 피워댄 줄담배와 애인 집 근처편의점을 들락거리며 홀짝홀짝 마신 맥주에 포함된 세금은 또 어쩔건가. 아, 그나마 담뱃값도 술값도 모두 오른다고 했던가!

70년대 미니스커트 단속을 재현하는 퍼포먼스. 2012년 10월 광주.

+3 KEYWORDS
새로 바뀌는 경범죄 처벌법 시행령을 둘러싼 논쟁점.

배꼽은 주요 부위가 아니다
어디까지가 과다 노출이냐고? 경찰의 발표에 따르면 ‘주요 부위’를 드러내는 것이 문제라는데, 미니스커트와 배꼽 티셔츠는 괜찮다고 한다. 시스루도 오케이. 즉 배꼽은 되고, 성기나 유방 노출은 안 되는 걸로. 여전히 법을 집행하는 이들의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부분은 논란거리다. ‘바바리맨’은 사실 경범죄처벌법뿐 아니라 공연 음란죄나 성추행죄도 적용 가능하다.

스토킹은 물러가라
8만원이라는 범칙금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 일단 지속적인 괴롭힘, 즉 ‘스토킹’이 경범죄 항목에 포함된 것 자체가 가장 큰 변화다. 참고로 직접적인 폭력이나 이메일 주소 혹은 비밀번호 등을 알아내 사생활을 침해하는 경우는 형법의 폭행 및 비밀 침해죄에 해당된다.

과태료 vs 범칙금
경범죄처벌법 자체를 반대하는 이들은 범칙금을 내는 형사법이 아니라 불법 주차처럼 과태료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태료를 안 내면 압류를 하는 등 재산상의 불이익을 받는 데 그치게 되지만, 범칙금은 즉결심판에 부치고 경우에 따라 형사 처벌도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차이다.

EDITOR : 박소영
PHOTO : 연합뉴스

발행 : 2013년 4호

@twitter.com/ovniii<br />지극히 당연한 명제를 의심하라! 여자를 둘러싼 세상을 빠르고 예민하게 감지하는 <그라치아>.3월 22일부터 새롭게 시행되는 경범죄처벌법에 관한 논란을 다시 생각해 본다.

Credit Info

2013년 04월 02호

2013년 04월 02호(총권 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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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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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