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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가 말하는 어중간할 수밖에 없는 교통수단, 택시.

택시라는 연옥

On March 31, 2013

Insight, Outsight<BR>소설가 김영하가 예민한 촉수로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조금 이상한 현실’을 포착한다.그 나름의 방식으로 날카롭게, 그리고 재미있게.

  • 택시라는 연옥

가정을 해보자. 술을 마시지 않는 나라의 택시는 어떨까.
밤이 늦기 전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아주 바쁜 사람들이거나 급한 일이 있는 사람들만 심야의 택시를 이용할 것이다. 손님들은 모두 제정신이니 얌전할 것이고, 기사들도 취객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일이 없을 것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라의 택시는 어떨까. 승객들은 시트에 밴 담배 냄새가 자기 옷에 밸까 걱정할 일도 없을 것이고 쾌적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대중교통이 완벽한 나라의 택시는 어떨까. 늘 앉아서 이동할 수 있는 버스와 지하철이 그물망처럼 도시를 연결하는 나라의 택시는 부유층이나 이용하는 사치재일 것이다. 범죄 없는 나라의 택시는 또 어떨까. 밤늦게 택시를 타는 여성들이 겁먹을 일이 없을 것이다. 기사를 믿고 잠이나 한숨 푹 자고 나면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택시 기사가 대기업의 정규직만큼 수입을 올리는 나라는 어떨까. 난폭 운전이나 과속은 시켜도 안 할 것이다. 자칫 사고라도 나면 좋은 일자리를 잃을 테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런 나라에 살고 있지 않다. 주류 소비량이 세계 최고 수준인 데다 모여 마시기를 좋아하니 밤늦은 시각의 승객들은 거의 술에 취해 있다. 높은 흡연율로 많은 택시가 담배 냄새에 절어 있고, 대중교통은 자리 잡기 전쟁이고, 잊을 만하면 강도로 돌변한 택시 기사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되고, 기사들의 보수는 최저 생계비를 겨우 넘기는 정도다. 택시는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도, 그것을 이용하는 승객에게도 큰 만족을 주지 못한다. 그런데도 택시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지만 언제나 거기 있는 존재, 그것이 택시다. 천국도 지옥도 아닌 택시는 교통수단 세계의 연옥이라 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운전사 딸린 회사 차를 타고 출근했다가 그 차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회사 임원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은 택시에 큰 관심이 없을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마을버스와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시내 빌딩으로 출근해 하루 종일 청소하고 밤에 집으로 돌아오는 가난한 여성에게도 택시는 도시 풍경의 일부일 뿐,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하는 사물일 것이다. 택시는 엄청나게 부유하지도,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않은 사람들과 관련이 깊다. 애매하다. 택시를 가난한 사람들이 이용하게 하려면 요금을 저렴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요금이 저렴해지면 기사들의 월급을 올려줄 수가 없다. 택시를 쾌적하고 고급스러운 교통수단으로 만들어 꼭 필요한 사람들이 적시에 기쁜 마음으로 이용하게 하려면 요금을 올려야 한다. 그러면 승객들이 피해를 본다. 이 둘 중에서 선택을 하려면 먼저 택시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사회적 합의, 이론적 정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택시는 태생적으로 이런 판단을 거부하고 있다. 왜냐하면 택시는 대중교통으로 커버할 수 없는 부분을 채우는 여집합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집합은 스스로 자신을 규정할 수가 없어 여집합이다. 최근에 택시법 문제가 부상한 데에는 대중교통의 성공이라는 요인이 숨어 있다. 택시는 대중교통이 실패할 때 호황을 누린다(대중교통이 끝나는 자정 이후의 홍대 앞을 상상해 보자). 만약 대중교통이 정시 운행을 하지 않고 환승도 불편하며 하루 종일 콩나물시루로 운행된다면 사람들은 택시로 몰릴 것이다.

한때 서울의 택시들은 합승이 기본이었다. “같은 방향이면 좀 태웁시다.” 기사들은 양해 아닌 양해를 구하며 마을버스처럼 운행했다. 합승이 사라진 것은 단속 때문이 아니라 택시가 흔해졌고 대중교통이 나아졌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의 상대적인 성공으로 위축된 택시 업계는 스스로 대중교통이 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런 논리로 정치권을 압박했고 거의 먹혀들 뻔했다.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한 것이다. 그런데 여론 조사를 보면 택시를 이용하는 대중 다수가 그 법을 반대했다(그 여론을 믿고 MB는 거부권을 행사했고 국회로 돌아간 법안은 재의결되지 못했다). 그 법의 내용을 잘 알아서가 아니라 ‘택시=대중교통’이라는 산법을 대중이 받아들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택시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 답은 여집합인 택시에 있지 않고 대중교통에 있을 것이다. 대중교통이 저변에서 영역을 확대하면 택시는 좀 더 고급스러운 영역으로 이동해 갈 수밖에 없다(정부가 마련한 택시 관련 법안은 이런 방향으로 정책 전환을 암시하고 있다). 택시의 운명은 수동적이다. 정치가들은 대다수의 유권자가 이용하는 대중교통에 사회적 자원을 좀 더 투입할 것이 자명하다. 대중교통이 좀 더 쾌적해지고 빨라지고 유연해지는 것이 정치의 미래일 수밖에 없다.

택시는 그 어떤 사회에서도 우선순위에서 대중교통을 앞지르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영리한 정치가라면 택시 문제에 섣불리 손대지 않을 것이다. 그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기를 기대하거나 다음 임기로 은근슬쩍 넘겨버릴 것이다. 반대로 무능한 정치가라면 택시 문제를 단박에 해결하겠다며 달려들 것이다. 그리고 실패할 것이다. 연옥은 천국과 지옥 중간에 있다. 로마 가톨릭이 연옥을 창조해 낸 것은 천국과 지옥의 이분법만으로 사후 세계를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연옥은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세계다. 지옥처럼 괴롭지도, 천국처럼 행복하지도 않다. 연옥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그곳에 머무는 기간이 얼마가 될지 모른다는 데 있다. 그리고 연옥에 머무는 자는 스스로 그곳을 탈출할 방법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언제까지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하염없이 머무는 곳, 거기가 연옥이다.

우리는 모든 문제를 깔끔하고 본원적으로 해결하기를 원한다. 세상 모든 문제에 단순하고 명쾌한 해결책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그런 깔끔한 해결책이 없는 영역도 있다. 택시가 그렇다. 택시는 교육이나 정치가 그렇듯이 한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를 그대로 반영한다. 택시는 음주 문화, 육체 노동자 천시 풍조, 교통 무질서, 높은 강력 범죄율 같은 문제를 떠안고 있는 우리 사회의 거울이다. 누군가 이걸 간단하고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적어도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EDITOR : 박세회
PHOTO : Getty Images

발행 : 2013년 3호

Insight, Outsight<BR>소설가 김영하가 예민한 촉수로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조금 이상한 현실’을 포착한다.그 나름의 방식으로 날카롭게, 그리고 재미있게.

Credit Info

2013년 04월 01호

2013년 04월 01호(총권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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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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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