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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레이디가 직장을 가져도 될까?

전업 퍼스트레이디 VS 직장인 퍼스트레이디

On March 31, 2013

퍼스트레이디가 직장을 가져도 될까?

펑리위안

가수였던 과거는 잊어주세요 펑리위안
펑리위안은 중국판 카를라 브루니라 불린다. 지난 3월 5일, 국가 주석이 된 남편 시진핑보다 더 유명한 국민 가수이기 때문이다. 카를라 브루니와 다른 점은 샹송 대신 공산당 찬양가를 부른다는 것. 10대 때부터 군 소속 가수로 활동해 온 현역 장군이자 인민해방군 예술학원의 총장인 탓이다. 하지만 이제 그녀의 우렁찬 노래는 들을 수 없을 듯하다. 남편이 부주석이 되자 25년간 출연해 온 설날 특집 프로그램도 하차했으니, 주석에 오른 지금 가수 활동을 당연히 접을 거란 전망이다. 사실 중국에서 정치인의 아내는 숨어 지내는 자리다. 심지어 이름조차 검색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마오쩌둥의 아내로 문화대혁명을 주도한 장칭(별명은 마녀)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다. 여자들의 기가 센 중국이지만, 정치판은 예외인 것. 하지만 펑리위안이 퍼스트레이디가 된 이상 이는 불가능하다. 대통령보다 더 유명한 스타를 어떻게 숨길 수 있겠는가. 펑리위안도 그럴 생각이 없는 듯 보인다. 가수 활동은 줄이는 대신, “에이즈 환자들에 대한 관심은 공산당의 사회적 책임이에요”라며 에이즈 예방 캠페인 같은 공익 활동을 강화했다. 또 시진핑과의 러브 스토리(“외모는 별로였지만 그의 순수한 말투에 반했다니까요”로 시작되는)도 미디어에 적절히 풀며 중국에 전례 없는 퍼스트레이디를 보여주고 있다. 펑리위안은 중국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될까? 군가를 부르는 그녀를 떠올리면 못할 일도 없어 보이지만.

미셸 오바마

재취업은 언제든 할 수 있잖아요 미셸 오바마
퍼스트레이디 = 미셸 오바마. 딴죽을 걸 수 없는 등식 아닌가? 하지만 6~7년 전만 해도 그녀는 시카고대학교 병원의 부원장 자리를 지키고 싶어 하던 커리어 우먼이었다. 하버드 로스쿨에서의 너드 생활을 졸업하고 시카고 법률사무소를 거쳐 연봉 27만5천 달러(한화 약 3억원)를 받게 된 여자. 오바마가 상원 의원일 때 그녀는 시카고에서의 커리어를 포기하기 싫어 워싱턴으로 이사하는 것도 거부했다. 하지만 오바마의 첫 번째 대선을 앞두고 ‘가족’(남편이 아닌)을 위해 퇴직한다고 발표했다.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했듯 “어떻게 하면 직업과 가정의 균형을 이룰 수 있을지 고민했다”는 결과로, “(퇴직이) 조금 당황스럽지만 따분하진 않을 거예요”라며 담담해했다. 이후 언론은 미셸이 두 딸과 함께 지내는 모습을 포착하며 ‘어머니 미셸’에 집중했다. 하지만 미셸이 전업주부를 하려고 커리어를 포기했겠는가? 그녀는 적극적으로 남편의 유세장을 돌며 ‘남편 대통령 만들기’에 집중했고, 성공했다. 그리고 변호사일 때는 꿈도 못 꿀 일을 해냈다. 아동 비만 퇴치, 전쟁 유족 돕기 캠페인 등을 이끌었고, 패션 센스로 미국 패션 업계에 연간 27억 달러(한화 약 3조원)의 수익을 선물했다. CNN의 표현대로 ‘만루 홈런’ 퍼스트레이디다. 재선 후 그 액션은 더 커질 전망. 그녀가 취임식 때 입은 톰 브라운의 테일러드 코트를 두고 『미셸 오바마와 스타일의 힘』의 저자인 케이트 베츠는 “다소 남성적인 룩은 미셸의 활동이 더 커질 것임을 예고한다”라고 말했다. 혹시 시카고의 사무실이 그립진 않을까? 미셸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원하면 할 수 있기에 걱정하지 않는다”라며 재취업은 관심 밖의 문제로 일축했다. 퍼스트레이디가 천직인 듯.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

내 아이는 내 돈으로 키울래요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
“프랑스의 첫 번째 모던 퍼스트레이디.” 저널리스트 안나 캐바나가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에게 보내는 찬사다. 그녀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동거녀이자, 워킹맘이며, 퍼스트레이디다. 스캔들 메이커였던 카를라 브루니도 겪은 프랑스지만, 트리에르바일레는 다소 당황스런 케이스다. 우선 그녀는 동거는 OK, 결혼은 NO다. 두 번의 이혼 후 세 명의 자녀를 키우는 그녀에게 결혼은 피하고 싶은 제도인 것. 또 퍼스트레이디와 워킹맘을 병행할 예정이다.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십대가 된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일을 계속할 거예요. 국가의 지원은 받고 싶지 않거든요”라고 밝혔다. 그녀는 주간지 <파리마치>의 24년 차 정치부 기자다. 올랑드와도 2005년 인터뷰를 통해 만났다. 여론 조사 기관인 해리스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 1300명 중 55%가 그녀의 동거 생활은 받아들이지만 기자 활동은 못마땅해한다. “난 공적인 삶을 선택한 적 없어요. 그저 올랑드를 만났을 뿐이에요(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예요).”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을 거부하고 자신의 아파트에 머물 만큼 근성 있는 그녀의 선택은? 퇴사 대신 정치부에서 문화부로 옮겼다. 퍼스트레이디가 된 뒤 쓴 첫 번째 기사는 엘리너 루스벨트(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부인)에 관한 책 서평이다. 기자 출신인 엘리너가 퍼스트레이디가 된 뒤에도 계속 칼럼을 썼다면서 “보세요. 기자 영부인은 새로운 일이 아니랍니다”라고 항변한 것. 트리에르바일레는 한 달에 3~4개의 기사를 지속적으로 쓸 예정이다.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의 기자 레베카 보이트는 그녀를 이렇게 표현한다. “She’s so French.”

서맨사 캐머런

패션과 정치 모두 포기할 수 없죠 서맨사 캐머런
영국 총리 부인, 서맨사 캐머런은 미셸 오바마의 패션 라이벌이다. <베네티 페어>가 레이디 가가와 함께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할 만큼 패셔너블한 그녀의 직업은 스미스슨(Smythson)의 디자이너. 패션지 <글래머>가 선정한 최고의 액세서리 디자이너상을 수상했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서 고문으로 승진했으며, 남편보다 연봉이 세 배 더 높다는 소문도 있다. 서맨사는 퍼스트레이디가 된 뒤에도 퇴직하지 않았다. 달라진 점은 주 2일만 출근한다는 것. 남편의 내조를 위해서가 아니다. 일간지 <텔레그레프>에 밝혔듯이 “세 자녀를 위한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딸 낸시의 이름을 딴 핸드백을 선보이는 등 따뜻한 어머니상을 추구하며, 총리의 전기를 쓴 작가 프랜시스 엘리엇이 “보헤미안 기질이 있는 예술학도”라 칭할 만큼 예술가의 성향도 갖고 있다(발목의 돌고래 문신이 증거다). 이 커리어 우먼이 보수당의 일원인 남편을 덜 고루하게 보이도록 한다는 것이 중론. 총리 선거 당시 ‘비밀 병기’로 불릴 정도였다. 일을 포기하지 않고도 정치인 남편을 지원 사격하는 능력자인 것. 총리 관저의 리모델링 비용으로 6만4천 파운드(한화 약 11억원)를 써서 욕을 먹긴 했지만, 그녀가 누구던가. 이케아에서 D.I.Y. 가구를 구입하는 사진을 찍히며 ‘나도 당신과 다르지 않음’을 어필했다. 패션과 육아와 이미지 메이킹까지 똑똑히 해내는 이 여자. <텔레그레프>의 기자 힐러리 알렉산더는 이렇게 말했다. “서맨사는 거울을 보며 ‘오늘 왜 이 모양이지?’라고 속상해한 적이 없을 것 같아요. 모든 걸 이룬 여자죠.”

EDITOR : 김나랑
PHOTO : Getty Images
PHOTO : Wenn-Multibits
PHOTO : Rex Features

발행 : 2013년 3호

퍼스트레이디가 직장을 가져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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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4월 01호

2013년 04월 01호(총권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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