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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틴만큼 우울한 우리의 현재

나는 '판틴'보다 잘살고 있을까?

On March 24, 2013

앤 헤서웨이에게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안긴 <레미제라블>의 판틴은 폐렴으로 죽는다. 하지만 21세기의 정신 건강학자들이 그녀의 비참한 인생사를 들여다본다면 신경쇠약으로 인한 탈진, 혹은 거듭되는 공황장애로 인한 질식사를 함께 진단했을 게 분명하다. 2013년을 살고 있는 지금의 당신은 어떤가. 판틴과 다른 진단을 받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나?

  • 나는 '판틴'보다 잘살고 있을까?

레미제라블 관람, 판틴과 나는 다를 바 없음
‘드디어 <레미제라블> 관람. 판틴과 내가 다를 게 없는 것 같아 울었다.’ 친구 A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장난삼아 댓글을 달았다. ‘지금 앤 해서웨이가 자기 같다고 말하는 것임?’ 답은 쪽지로 왔다. ‘내가 요즘 그래. 머리털 깎이고, 이 뽑히고 사는 거 같아. 그 여자보다 나을 게 없더라고.’

포털사이트 직원인 2013년을 사는 30대 여성이, 19세기 파리의 뒷골목에 웅크린 여성의 고통에 공감하고 있었다. 극 중의 판틴은 생활고에 쫓기다 머리카락을 팔았고, 어금니도 뽑힌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몸을 파는 신세다.

단지 기구한 여자의 일생에 신파적인 공감을 한 걸까? A는 앤 해서웨이가 ‘I dreamed a dream’을 부를 때, 가사의 한 부분에서 울컥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 곁에서 여름을 보냈어요. 나의 날들을 끝없는 놀라움으로 가득 채우고 나의 어린 시절을 즐기고는 가을이 오자 떠나가 버렸어요.”

판틴의 고통은 단지 생활고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사랑, 일, 육아, 경제, 계급에 이르는 총체적 난국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랑에 다치고, 직장에서 밀린 후로 벌어지는 판틴의 사연은 A에게 ‘공포’로 다가왔다. 내장에서 끓어 넘치는 고통을 토로하는 ‘I dreamed a dream’은 비명으로 들렸을 거다. 슬프고 무서운 노래다.

2013년의 키워드는 ‘소진 사회’
판틴이 살았던 19세기 초반의 파리는 절망의 시대였다. 물가는 치솟았고, 임금은 하락했다. 늘어난 도시 인구에 비해 주택, 수도 시설은 부족해 슬럼가의 빈민들은 떼죽음을 당했다. 여자들은 매음굴로, 아이들은 거리로 버려졌다.

한쪽에서는 ‘피로 사회’를 진단했고, 다른 쪽에서는 ‘힐링’을 키워드로 삼았던 2012년은 어땠을까. 역시 물가는 올랐고, 일자리는 위기에 놓였다. 대출로 구입한 집값은 하락했다. 성과를 강조하는 회사 임원들의 목소리는 거세졌다. 열정을 태워 노동의 동력으로 삼는 것만이 성과를 얻는 길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붙였다.

그리고 이제 2013년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 김난도 교수는 책 『트렌드 코리아 2013』에서 2013년의 키워드 중 하나로 ‘소진 사회’를 꼽는다. “소진 사회란 일이든 공부든 노는 것이든, 끝을 볼 때까지 자신을 탈진시킬 만큼 에너지를 소모시키고 완전한 방전이 되어가는 사회를 가리킨다.

지금 우리 사회에 습관처럼 흔해진 에너지 드링크,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언어 습관, 놀이 문화 등의 저변을 관통하는 공통의 요소를 살펴보면, 모두 자학적인 경지에 이를 만큼 소모적이라는 것이다.” 피로 사회와 소진 사회는 비슷하지만 다른 말처럼 들린다. 피로 사회가 적어도 힐링을 찾는 방어기제가 있는 시절이라면, 소진 사회는 힐링을 찾을 겨를도 없이 스스로를 놓아버리는 지경으로 갈 때까지 가버리는 시대다. 김난도 교수는 지금의 한국 사람들을 “밤낮 없이 업무에 매진하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자기 계발서를 독파하는 완벽주의자들”로 정의했다.

  • 공황장애 발병 증가율2011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
  • OECD 회원국 연평균 근로시간 2010년 기준

사무실 동료 중 한 명은 공황장애
피로 사회에서 소진 사회로 진입한 이유는 쉽게 말해 더 나아진 게 없기 때문이다. 경제도, 정치도, 직장도 더 나아지지 않았다. 힐링마저도 TV 속이나 트위터 속 몇몇 스님들의 말씀 속에만 있었다.

2010년 통계에 따르면, OECD 회원국 중 한국의 연간 근무시간은 2256시간으로 1위를 차지했다(평균은 1749시간). 2006년 글로벌 마켓 리서치 회사인 입서스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스트레스 지수는 100명당 81명이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명히 2010년보다 2013년의 근무시간은 더 늘어날 테고, 스트레스도 더 심해질 거다. 대표적인 스트레스 질환인 공황장애 발병률을 보면 예측 가능하다. 당장 인터넷 검색창에 ‘공황장애’를 쳐보라. 개그우먼 김신영은 피로 누적과 스트레스로 입원했다가 공황장애설에 시달렸다. 과로성 스트레스로 입원한 문희준도 마찬가지다. 2012년에는 가수 김장훈과 개그맨 이경규, 배우 차태현 등 수많은 연예인이 자신의 공황장애 이력을 고백하기도 했다.

공황장애를 대중의 관심에 노출돼 있는 이들에게만 찾아오는 연예인 병으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통계가 전하는 바는 그렇지 않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1년 공황장애 환자는 5만8551명으로 2006년의 3만5195명보다 부쩍 늘어나 지난 5년 사이에 연평균 10.7%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정신 과학계에서 말하는 공황장애의 평생 유병률(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어떤 질환에 걸릴 확률)은 2~4%다. 100명 중 2~4명은 앓을 수 있다는 얘기다. 넓게 보자면 지금 함께 사무실을 쓰는 동료 중 1명은 공황장애 환자가 될 확률이 높다.

EDITOR : 강변진

발행 : 2013년 2호

앤 헤서웨이에게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안긴 &lt;레미제라블&gt;의 판틴은 폐렴으로 죽는다. 하지만 21세기의 정신 건강학자들이 그녀의 비참한 인생사를 들여다본다면 신경쇠약으로 인한 탈진, 혹은 거듭되는 공황장애로 인한 질식사를 함께 진단했을 게 분명하다. 2013년을 살고 있는 지금의 당신은 어떤가. 판틴과 다른 진단을 받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나?

Credit Info

2013년 03월 02호

2013년 03월 02호(총권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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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강변진

2013년 03월 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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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