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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VE MEN

On February 26, 2020

이렇게 다른 얼굴, 다른 몸짓, 다른 매력. 영화 <사냥의 시간> 속 다섯 배우의 순간을 포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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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의 재킷 오디너리피플(Ordinary People). 티셔츠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팬츠 보라미 비귀에 by 아데쿠베(Boramy Viguier by Adekuver). 부츠 후망(Humant). 안재홍의 체크 코트 문수권(Munsoo Kwon). 티셔츠, 레이어링한 셔츠, 데님 팬츠, 슈즈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제훈의 스웨이드 재킷 토즈(Tod’s). 셔츠 르메르(Lemaire). 디스트로이드 데님 팬츠 피어 오브 갓 by 무이(Fear of God by Mue). 부츠, 벨트 모두 생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목걸이 베르사체(Versace). 톱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최우식의 트렌치코트, 블랙 셔츠, 이너 톱 모두 생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데님 팬츠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부츠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박해수의 코트, 팬츠 모두 누메로벤투노(N°21). 셔츠 펜디(Fendi). 슈즈 8 by 육스(8 by Yoox). 벨트 누마레(Nouvmaree). 톱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박정민의 재킷 오디너리피플(Ordinary People). 티셔츠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팬츠 보라미 비귀에 by 아데쿠베(Boramy Viguier by Adekuver). 부츠 후망(Humant). 안재홍의 체크 코트 문수권(Munsoo Kwon). 티셔츠, 레이어링한 셔츠, 데님 팬츠, 슈즈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제훈의 스웨이드 재킷 토즈(Tod’s). 셔츠 르메르(Lemaire). 디스트로이드 데님 팬츠 피어 오브 갓 by 무이(Fear of God by Mue). 부츠, 벨트 모두 생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목걸이 베르사체(Versace). 톱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최우식의 트렌치코트, 블랙 셔츠, 이너 톱 모두 생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데님 팬츠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부츠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박해수의 코트, 팬츠 모두 누메로벤투노(N°21). 셔츠 펜디(Fendi). 슈즈 8 by 육스(8 by Yoox). 벨트 누마레(Nouvmaree). 톱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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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프 재킷 비비안 웨스트우드 (Vivienne Westwood). 패턴 셔츠 스투시 by 미스터포터 (Stussy by Mr. Porter). 티셔츠 아리스 by 에크루(Aries by Ec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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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터링 블루종 벨루티(Berluti). 블랙 데님 팬츠, 벨트 모두 생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실버 링 지방시(Givenchy). 화이트 톱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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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식의 재킷, 팬츠 모두 아미(Ami). 티셔츠 알렉산더 왕(Alexander Wang). 스니커즈 반스(Vans). 목걸이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안재홍의 트렌치코트 골든구스(Golden Goose). 셔츠 프라다(Prada). 팬츠 오디너리피플(Ordinary People). 타이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제훈의 스팽글 톱, 스웨이드 팬츠, 벨트 모두 생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최우식의 재킷, 팬츠 모두 아미(Ami). 티셔츠 알렉산더 왕(Alexander Wang). 스니커즈 반스(Vans). 목걸이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안재홍의 트렌치코트 골든구스(Golden Goose). 셔츠 프라다(Prada). 팬츠 오디너리피플(Ordinary People). 타이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제훈의 스팽글 톱, 스웨이드 팬츠, 벨트 모두 생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 최우식의 재킷, 팬츠 모두 아미(Ami). 티셔츠 알렉산더 왕(Alexander Wang). 스니커즈 반스(Vans). 목걸이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안재홍의 트렌치코트 골든구스(Golden Goose). 셔츠 프라다(Prada). 팬츠 오디너리피플(Ordinary People). 타이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제훈의 스팽글 톱, 스웨이드 팬츠, 벨트 모두 생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최우식의 재킷, 팬츠 모두 아미(Ami). 티셔츠 알렉산더 왕(Alexander Wang). 스니커즈 반스(Vans). 목걸이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안재홍의 트렌치코트 골든구스(Golden Goose). 셔츠 프라다(Prada). 팬츠 오디너리피플(Ordinary People). 타이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제훈의 스팽글 톱, 스웨이드 팬츠, 벨트 모두 생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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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 랜덤 아이덴티티 by 분더샵 (Random Identities by Boon the Shop). 벨트 폴로 랄프로렌(Polo Ralph Lauren). 팬츠, 슈즈, 스카프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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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홍의 코듀로이 재킷, 팬츠 모두 휴고보스(Hugo Boss). 티셔츠, 스카프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최우식의 재킷 프라다(Prada). 체크 셔츠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이너 톱 알렉산더 왕(Alexander Wang). 빈티지 데님 팬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제훈의 핑크 오버사이즈 재킷, 셔츠 모두 지방시(Givenchy). 박정민의 재킷 지방시(Givenc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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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의 라이더 재킷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니트 톱, 팬츠 모두 지방시(Givenchy). 박해수의 데님 재킷 논메인스트리머(Nonmainstreamer). 팬츠 모두 디올 맨(Dior Men). 슈즈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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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브레스트 재킷 프라다(Prada). 셔츠, 팬츠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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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프 풀오버 생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팬츠 구찌(Guc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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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수의 레더 점퍼 8 by 육스(8 by Yoox). 셔츠 코스(Cos). 톱 이자벨마랑 옴므(Isabel Marant Homme). 슈즈 프라다(Prada). 팬츠, 벨트, 양말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안재홍의 레더 코트 오디너리피플(Ordinary People). 셔츠, 팬츠, 벨트, 슈즈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박정민의 아우터 보라미 비귀에 by 아데쿠베(Boramy Viguier by Adekuver). 톱, 팬츠, 앵클부츠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제훈의 블랙 레더 재킷 느와르 라르메스(Noir Larmes). 톱 로에베(Loewe). 데님 팬츠 헬무트 랭 by 10꼬르소꼬모(Helmut Lang by 10 Corso Como). 벨벳 초커, 벨트 모두 생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첼시부츠, 스카프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최우식의 재킷 구찌(Gucci). 데님 팬츠 버버리(Burberry). 스니커즈 반스(Vans).

이 제 훈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1월 2일부터 헬스와 필라테스, 격투기 훈련까지 세 종류의 운동을 하고 있어요. 특히 필라테스에 푹 빠졌는데, 동작이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땀이 많이 나는 운동이더라고요. 하지만 운동을 하고 나면 확실히 바른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격투기 훈련은 몸을 많이 써야 하는 다음 작품을 위해 열심히 배우고 있고요.

개봉을 앞둔 영화 <사냥의 시간> 역시 감정적으로나 체력적으로 힘든 작업이었을 것 같아요.
가끔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촬영이 완전히 끝난 후에는 정말 뉴욕으로 도망갔고요. ‘이렇게 먼 곳으로 떠나왔으니 나를 찾지 말라’고 하면서요(웃음).

작품 속 캐릭터가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편인가요?
네. 저는 캐릭터와 제 자신을 따로 분리하지 않아요. 작품을 촬영할 때는 최대한 캐릭터에 가깝게 생활하는 편이죠. 특히 이번에 맡은 ‘준석’이라는 역할은 윤성현 감독님이 저를 염두에 두고 대본을 쓰셨기 때문에 좀 더 동기화가 잘됐던 것 같아요.

<사냥의 시간>은 이제훈, 안재홍, 최우식, 박정민까지 또래 배우 네 명이 모인 것만으로도 화제가 됐는데요. 네 배우가 모여 만든 시너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영화 촬영을 하다 보면 지치기 마련인데, 그럴 때마다 의지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어요. 시시콜콜한 농담조차 힘이 되더라고요. 극 중에서도 친구 사이이기 때문에 촬영과 촬영 밖의 간극이 크지 않았죠.

그 시너지가 이번 작품에 어떤 장점으로 작용했을까요?
윤성현 감독님과 형, 동생 하며 지내서 영화에 대한 의견이 있을 때는 자유롭게 공유했어요. 감독과 배우들 간의 소통과 교류가 작품을 긍정적인 결과로 이끈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사냥의 시간> 이후의 작품들을 조금 더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됐어요. 너무 스스로를 치열하게 옭아맬 필요가 없다고요. 현장에서 사람들과 시시콜콜하게 나누는 수다도 좋은 윤활유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됐죠.

배우들 중 ‘환상의 짝꿍’을 꼽자면 누구예요?
정민이는 영화 <파수꾼> 이후로도 계속 서로를 응원하며 자주 봐왔어요. 재홍과 우식이는 그야말로 환상의 짝꿍이에요. 그 둘이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현장 분위기를 재미있게 만들어줬죠. 아마 친동생이 있다면 우식이 같은 사람일 거예요. 반대로 재홍이와 함께 있으면 제가 형이라는 걸 잊게 되고요(웃음). 이런저런 어리광을 부려도 다 받아줄 것 같은 푸근한 매력이 있죠. 해수 형은 전 작품들이 굉장히 강렬해서 실제로 만나면 엄청난 아우라가 있을 것 같다고 상상했는데, 가장 순하면서도 선한 배우였어요. 그 매력에 푹 빠졌죠.

최근 이제훈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냉’과 ‘온’을 오가는 반전의 캐릭터들을 맡았더라고요.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무언지 궁금해졌어요.
배우이기 때문에 ‘캐릭터’가 중요하지만, 저는 그 이전에 작품 자체의 끌림을 더 중시하는 것 같아요. 관객들에게 보일 때 어떤 의미 혹은 어떤 재미로 다가갈 수 있을지를 고민해요. 아무리 흥미로운 캐릭터라도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물론 그 이후에 캐릭터에 몰두해 연구하는 것은 당연하고요.

<사냥의 시간>은 어떤 점이 이제훈의 마음을 끌었나요?
보통 감독님이 극본을 쓰고 감독을 맡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왜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려고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요. 하지만 윤성현 감독님과는 영화 <파수꾼> 이후로 10년의 세월을 함께하면서, 어떤 삶의 태도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 가는지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감독님의 지지자로서 출연에 대해 고민하거나 망설일 필요가 없었어요.

처음 <사냥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파수꾼>은 인물 간의 관계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아주 사소한 말과 행동이 관계를 가까워지게도 틀어지게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줬죠. <사냥의 시간>은 쫓고 쫓기는 심리적 압박을 관객도 체험할 수 있게끔 하는 데 집중했어요. 하지만 단순히 시나리오를 읽고는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쉽게 상상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감독님의 연출과 방향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작품이었죠. 감독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촬영을 해나갔어요.

윤성현 감독과 가장 많이 나눈 대화는 무엇이었어요?
‘그 순간에 정말 공포를 느꼈던 것 같아?’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었죠(웃음). 그래서 저를 한계에 몰아넣을 수밖에 없었어요. 쫓기는 자의 심리와 고통을 좀 더 섬세히 표현하기 위해서요.

일상에서도 ‘쫓기는 감정’을 경험해본 적이 있나요?
배우 초년 시절이 떠올라요. 저는 아직 군대에 가지도 않았는데, 주변 친구들은 복학을 하거나 이미 사회생활을 시작했죠. 꿈이라는 이유로 불확실한 미래의 문을 계속해서 두드리고 있다는 게 때로는 두렵기도 했어요. 낙오자가 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했죠. 하지만 그 판단이 잘못됐다는 생각은 그때도 계속했던 것 같아요. 삶의 방식은 무척 다양할뿐더러, 마음의 중심을 잘 잡는다면 자신을 판단하는 기준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요. 내가 생각하는 배우로서의 옳은 길을 잘 밟아나간다면 최소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죠. 이 생각은 지금의 저를 지탱해주는 힘이기도 해요.

이번 ‘준석’ 역에 공감하기 위해 3년 전부터 스트리트 패션을 경험했다고 들었어요.
영화는 가까운 미래,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그리고 있어요. 서브 컬처를 기반으로 박시하거나 루스한 의상들을 입었죠. 지금까지는 전혀 입지 않았던 옷을 이 영화를 준비하며 일상에서도 입게 됐어요(웃음). 스트리트 패션에서 파생된 음악, 예술작품 등 다른 영역의 문화들을 경험해보는 일도 즐거웠고요.

이런 변화가 배우로 살아가는 재미 중 하나일 것 같아요.
그럼요.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이런 영역까지 관심을 가지고 탐구할 수 있었을까 싶어요. 제 행동의 기준은 무엇이든 ‘연기’인 것 같아요. 여행을 제외하고 연기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딱히 흥미가 생기지 않더라고요. 이를 테면, 또래 친구들이 즐기는 골프나 낚시 같은 것들이오. 그런데 그게 제가 맡은 역할과 결부된 일이라고 하면 정말 열심히 즐겨요(웃음). 참 신기한 일이에요.

<사냥의 시간>은 훗날 배우 이제훈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요?
독립 영화에서 만난 윤성현 감독과 박정민 배우를 다시 조우하게 됐다는 것 자체가 흥분되는 일이죠. <사냥의 시간>의 배우들과 꼭 다시 만나 연기하고 싶어요. 물론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요(웃음). 혈기 왕성한 에너지를 마구 뿜어낼 수 있는 영화들이 앞으로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이 영화가 기폭제가 됐으면 하고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최근 <아이리시맨> 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20~30년 전에 <좋은 친구들>이나 <카지노>에서 만났던 배우들과 다시 조우해 만든 작품이거든요. 저도 그런 순간을 꿈꿔요. 물론 20~30년보다는 덜 걸렸으면 좋겠네요.

<그라치아> 3월호의 주제는 그라치아의 어원이기도 한 ‘우아함’이에요. 이제훈에게 우아함이란 무엇인가요?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분명한 가치관을 갖는 것이오.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고 올곧은 삶의 태도를 이어가는 것이 우아함이라고 생각해요.

이제훈은 우아한 삶을 살아가고 있나요?
저는 아직 멀었죠. 수련이 더 필요합니다(웃음).
 

안 재 홍

얼마 전 아르헨티나로 배낭여행을 다녀왔어요. 보름간의 시간은 안재홍에게 어떤 시간으로 기억되나요?
마음의 등대 같은 여행이 된 것 같아요. 어떤 압박감이 오더라도 그때 그곳에서 보았던 감흥을 떠올리면 상쾌해질 수 있는, 제게 어떤 지표가 된 것 같아요.

개봉을 앞둔 영화 <사냥의 시간> 역시 안재홍에게 그런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어요.
이 모든 것이 윤성현 감독님의 설계가 아닌가 싶어요. 젊은 감독님이 젊은 배우들과 시너지를, 폭발력을 내기 위해서 저희를 응집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더 좋았어요.

이런 배우들과의 호흡이 실제 촬영장 분위기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나요?
따로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듣고 보니 그런 편인 것 같아요. 현장에서 어떤 유대감 등이 형성될수록 크게 느껴지는 것 같거든요. 꼭 그게 없어도 연기를 할 수 있고 장면을 만들 순 있겠지만 느낌까지는 유대에서 오는 거라 생각해요. 이번 작품은 누구 하나 친해지는 데 시간을 들여야 하는 사람이 없을 만큼 금세 친해지고 마음이 잘 맞았어요. 친해지기 위해서 따로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죠.

처음 <사냥의 시간>의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어땠어요?
시나리오에서 강렬한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시나리오는 저희 영화의 지도 같은 존재인데 실제 현장에서 느끼는 깊이감은 어마어마했죠. 사실 시나리오만 봤을 때는 이렇게까지 치열할 줄, 그리고 사경을 헤매게 될 줄은 몰랐어요(웃음). 그리고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서 감독님에게 많은 감동을 받았죠. 집념이나 투지가 굉장한 연출가였거든요. 그만큼 존경한다는 이야기예요. 이러한 책임감을 가지고 밀고 나가는 연출가를 믿고 저 역시 똘똘 뭉쳐서 돌파해나가고 싶었죠.

이번에 파격에 가까운 도전을 했어요. ‘장호’는 그동안 안재홍에게서 보지 못한 캐릭터죠.
여기저기 헤매는 들개 같은 인물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했어요. 어린 시절부터 길거리를 배회하고 어떤 폭력에 노출되기도 하면서 막막함을 가지고 있는데 그걸 돌파해나가고 싶어 하는 인물이죠. 그래서 준석이 제안하는 계획이 굉장히 무모하고 위험함을 알면서도 장호에게는 준석과 기훈, 상수밖에 없기에 동참하게 돼요. 위험한 것을 알지만 기꺼이 앞장서죠.

실제 안재홍과 장호 사이에도 닮은 지점이 있을까요?
저와는 많이 달라요. 외로움을 많이 느낀다거나 장호처럼 극한에 몰려 있는 인물이 아니거든요. 화목한 집안에서 사랑받으며 성장한 사람이라 저랑은 많이 다른 지점에 있던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촬영 전부터 윤성현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들었어요. 삭발도 제안했다고요.
지금까지 맡았던 역할과는 상반되는 캐릭터라 거친 모습이라든지 위험한 모습들을 많이 찾아내고 끌어내려고 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삭발을 하고 잿빛 컬러를 내기 위해 세 번 탈색을 하는 등 헤어스타일과 의상으로 변화를 주었죠. 이런 변화들이 오히려 제겐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테이크나 장면이 있나요?
첫 장면부터 아주 기억에 많이 남았던 현장이에요. 실제로 첫 촬영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정민이랑 통화하면서 ‘아, 여행 가고 싶다’ 그랬는데 실제로 떠났어요. 보통 이렇게 이야기하면 가지 못하고 촬영 끝난 뒤 그땐 그랬지 하거든요. 근데 정말로 촬영 끝나고 여행을 갔어요(웃음). 마침 영화 <소공녀>가 뉴욕아시아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어 굳이 따라가기도 했고요. 그래도 그 덕분인지 대상 받았어요.

그동안의 작품을 보면 매번 다양한 모습에 도전했어요.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뭔가요?
결국에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관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해줄 것인가,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어떤 재미를 줄 것인가가 제 나름의 제일 중요한 기준이죠. 그 재미라는 것이 꼭 코미디로서의 재미는 아니에요. 이를테면 <사냥의 시간>은 스릴러 영화로서의 재미가 있잖아요. 우리가 무서운 영화를 볼 때 재미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런 이야기가 주는 재미가 가장 커요.

장호는 정체불명의 추격자에게 계속해서 쫓기죠. 일상에서도 ‘쫓기는’ 감정을 경험해본 적이 있나요?
물론이죠. 연기자를 꿈꾸면서 누구나 그렇듯 어떠한 조급증을 느끼게 되고 막연한 여유로움도 부리는 등 이러한 감정들이 저글링하듯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이제는 자연스러운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그런 감정이 들 때 조금 벗어나서 볼 수 있는 눈이 생겼지만요.

<사냥의 시간>은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되며 한층 더 기대를 모았어요. 어떤 영화로 기억되었으면 하나요?
갈라 섹션에 초청되어 베를린의 제일 큰 극장에서 상영된다고 하더라고요.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며 진짜 쫄깃하다는 기분이 들었으면 해요. <사냥의 시간>은 배우들의 열연은 물론이거니와 화면에 굉장한 공을 들인 만큼 꼭 극장에서 봤으면 하죠. 요즘 감독님이 후반 작업으로 사운드에도 엄청 공을 들이고 있거든요. 제작 보고회에서도 언급했지만 사운드 자체가 어떤 배경처럼 완벽한 공간으로 느껴질 수 있게 입체감을 더하고 있죠. 화면, 영상 그리고 사운드까지 꼭 극장에서 체험해보셨으면 해요.

완성된 작품을 봤어요?
저도 아직 보지 못했는데 고민 중이에요. 기술 시사회가 진행되는데 그때 보고 베를린에 갈지, 아니면 관객들과 함께 베를린에서 첫 관람을 할지. 그런데 지금은 안 보고 갈 마음이 조금 더 앞서고 있어요. 그때 그 영광을 함께 즐기고 싶네요.

<사냥의 시간>은 훗날 배우 안재홍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요?
안재홍이라는 연기자의 챕터 2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촬영 내내 그런 마음으로 치열하게 임했던 작품이거든요. 새로운 장, 어떤 그런 2막처럼 그려졌으면 해요.
 

최 우 식

곧 영화 <사냥의 시간>의 개봉을 앞두고 있어요. 최근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나요?
요즘 영화 <경관의 피>를 촬영하고 있어요. 영화 <기생충> 프로모션 때문에 미국에 다녀오기도 했고요. 무척 바쁘게 지내고 있지만 기쁜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사냥의 시간>은 또래 배우 네 명이 모인 것만으로도 화제가 됐는데, 촬영 현장은 어땠나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연기를 즐기면서 하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이죠. 서로에게 의지하며 영화에 잘 녹아들 수 있었어요. 연기적인 호흡은 모두와 잘 맞았던 것 같고, 아무래도 유머 코드는 재홍 형과 가장 잘 맞지 않았나 생각합니다(웃음).

현장 분위기가 연기를 하는 데 영향을 주나요?
제가 낯을 가리는 성격이거든요. 현장에서 제 자신을 바꾸려고 노력도 하지만, 아무래도 함께하는 배우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뜻하지 않게 더 좋은 감정이나 애드리브가 나오기도 하고, 더 좋은 연기에 대해 편안하게 고민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하고요.

출연한 배우들 중 막내였는데, 선배들의 어떤 점을 흡수하려고 했어요?
너무나 연기를 잘하는 선배들이 모였고, 윤성현 감독님도 최대한 계획된 장면이 나올 때까지 열정적으로 촬영했기 때문에 현장에 있는 자체가 ‘배움’이었어요. 어떤 현장에 가든 제가 막내인 경우가 많아서 동생들을 챙겨줄 일이 별로 없는데, 제훈 형은 현장에서 항상 동생들을 먼저 신경 써줬죠. 제훈 형의 다정한 면을 가장 닮고 싶어요.

그런 ‘배움’이 작품을 선택할 때 기준이 되기도 하나요?
예전에는 이런 질문에 어떤 장르를 해보고 싶다거나 어떤 역할을 하고 싶다는 게 명확히 있었는데, 이제는 달라졌어요. 누군가와 함께하는 작업이 즐겁겠다, 혹은 많은 걸 흡수하고 배울 수 있겠다고 생각되면 무조건 다 도전하고 있죠.

윤성현 감독과는 어떤 이야기를 가장 많이 나눴나요?
사실 감독님이 배우들과 나이 차가 별로 나지 않아서 연기보다는 사적인 대화를 더 많이 나눈 것 같아요(웃음). 그래서 현장에 더 잘 녹아들 수 있었고요.

영화 <파수꾼> 이후 세상에 나온 <사냥의 시간>에는 윤성현 감독의 어떤 장점이 녹아 있다고 생각해요?
감독님의 또 다른 매력을 기대해도 좋아요. 정체불명의 누군가에게 쫓기는 감정선이 잘 드러나기도 하지만, 쫓기는 감정 자체를 관객들이 체험할 수 있는 스릴러가 될 거예요. ‘미래 빈민가’라는 가상공간에 독특한 앵글과 카메라 워크, 조명, 음향이 더해져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톤 앤 매너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훈’을 처음 만났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기훈은 저와 10%쯤 닮고 90%쯤 다른 것 같아요. 겁이 없는 반항아거든요(웃음). 감정을 밖으로 많이 드러내는 인물이에요. 최우식과는 완전히 다르죠. 그런데 친구들을 끔찍이 생각하는 점 하나는 닮았어요.

완전히 다른 캐릭터를 연기할 때 어떤 준비를 해요?
비슷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를 정말 많이 봐요. 그리고 주변 친구들을 관찰하고 연기에 활용하죠. 다행히 제가 친구들이 많은 편이라 저절로 공부가 됐던 것 같아요.

기훈은 정체불명의 추격자에게 계속해서 쫓기죠. ‘쫓기는’ 감정을 경험해본 적이 있나요?
매번 더 잘해야 한다는 감정에 부딪히죠.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고요. 이런 고민들이 좋은 원동력이 돼서 연기에까지 닿았으면 좋겠어요.

최근에 좋은 소식이 많이 들리고 있어요. 이렇게 주목받는 시기에 절대 잊지 않으려는 배우 최우식만의 신념이 있나요?
제 장점은 자기 객관화를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상황이든 평정심을 유지하고, 언제나 열심히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죠. 물론 요즘 놀라운 일들이 많이 생겨서,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하다’는 말을 자주 하고 있어요. 하지만 행복한 감정에 말려 들어가기보다는 이 다음을 위해서 ‘또 다른 초심’을 만들고 있죠.

배우 최우식의 업그레이드된 초심이란 무엇을 뜻하나요?
예전에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무엇이든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직업적인 책임감이 생겼어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일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저를 위해 애써주는 모두와 즐거운 마음으로 일했으면 해요.

건강하고 행복하게 일하기 위해 노력하는 점이 있어요?
배우로 살아가면서 감사하게도 국내외에서 많은 사랑도 받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평소에는 최대한 물 흐르듯이 살아가려고 하죠. 무리하게 무엇을 보태려 하지 않고요. 스트레스는 여행을 하면서 풀어요. 여행 프로그램 작가가 되고 싶을 만큼 여행을 좋아하거든요. 일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서 친구들과 편안하게 보내는 시간은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참, 부모님께는 ‘효자 최우식’이 되려 하고 있습니다(웃음).

훗날 지금을 돌아볼 때, 영화 <사냥의 시간>은 배우 최우식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요?
감독님과 배우 모두 제가 언젠가 꼭 함께 작업해보고 싶었던 분들이라 아마 평생 잊지 못할 작품이 될 것 같아요. 훗날 제 자신에게 몇 번이고 다시 보여주고 싶을 거예요. 관객들에게도 이런 작품이 있다고 자랑하고 싶고요. <사냥의 시간> 덕분에 2020년을 기분 좋게 시작하고 있어요.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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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정 민

이제훈, 안재홍, 최우식, 박해수까지 지금 충무로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모여 만든 시너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여러 가지로 좋은 점들이 많았지만 제가 감히 좋았다고 말하기에는 조심스러워요. 분량 자체도 그렇고 고생을 덜 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현장 나가는 것이 설레었어요. 친구들 만나러 가는 기분이었죠. 이야기할 때도 친구들끼리 작전을 짜고 무언가 수행을 하는 영화였거든요. 굳이 어떤 설정을 잡아서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친구들과 진짜로 그런 걸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현장 분위기가 연기할 때 영향을 미치기도 하나요?
아마 모든 배우가 그럴 거예요. 어떤 배우와 함께하느냐, 그게 나와 친한 배우인지 혹은 처음 보는 배우인지에 따라서요. 선배든 후배든 어떤 점을 조심하며 연기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번 작품은 그런 단계가 없었어요. 금세 친해졌죠.

윤성현 감독, 이제훈 배우와는 영화 <파수꾼> 이후 10년 만에 뭉쳤어요. 처음 <사냥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어요?
<사냥의 시간>은 굉장히 직선적인 영화예요. 누군가에게 쫓고 쫓기면서 발현되는 서스펜스로 영화를 끌고 가거든요.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감독님이 이 문장들을 어떻게 화면으로, 그리고 소리로 구현해낼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이 있었어요.

촬영 전부터 윤성현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들었어요. 이번엔 어떤 가이드를 주던가요?
<파수꾼> 때와는 좀 달랐던 것 같아요. 크게 가이드를 주지 않으셨죠. ‘정민이는 정민이가 할 것을 하면 된다’ 정도였다고 할까요. 물론 상수라는 인물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늘 강조하셨어요. 상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준석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데 있어서 그 감정선에 남아 있는 그의 죄책감, 뭔가 그에게 브레이크를 거는 것 같은 인물로 남아줘야 한다는 것이었죠. 상수는 준석이 지닌 죄책감의 시발점 같은 인물이었어요.

상수는 정체불명의 추격자에게 계속해서 쫓기죠. 일상에서도 ‘쫓기는’ 감정을 경험해본 적이 있나요?
늘 감정에 쫓기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고마운 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언젠가는 이 고마운 마음을 제가 성장을 하고 저의 능력으로 갚아야 하는 것이 이치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타이밍이 안 맞을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 굉장히 속상하죠. 누군가가 저를 필요로 할 때 언제든지 달려가고 싶은데 제 몸은 하나니까. 일을 할수록 그런 부분들이 늘어나고 마음의 빚처럼 조금 시달리게 되더라고요.

박정민이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궁금해요.
매번 다른 것 같아요. 시나리오가 너무 재미있어서, 혹은 제가 너무 좋아하는 선배와 함께할 수 있어서, 혹은 내가 좋아하는 감독님이나 제작자, 꼭 한번 같이 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중요한 결정 요소가 되곤 하죠. 누구와 함께 영화를 만들어갈지, 그게 가장 큰 기준이 되는 것 같아요.

함께 연기하는 상대와의 호흡이 중요한 만큼 어쩌면 당연한 과정일 듯해요.
사실 누군가는 일을 단순한 감정과 사람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건 위험하고 아마추어 같은 생각일 수 있다고 얘기하기도 해요. 저 역시 그 생각에도 동의하고요. 얼마 전에 라디오에서 조진웅 선배님을 만났는데 강력하고 당연하다는 어조로 이런 말씀을 하더라고요. “나는 시나리오를, 영화를 사람으로 선택한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라고. 제가 좋아하는 선배님이 사람을 보고 선택하고 그 영화가 잘되고 안 되고는 나중의 일이라는 말씀을 해주셔서 굉장히 감사했던 기억이 나요.

배우 박정민이 좋아하는 영화적 판타지는 뭔가요?
음… 최근에 과학 관련 책을 많이 보고 있는데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소재가 굉장히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과학자들이 쓴 책이나 과학 관련 도서를 보면 그저 과학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라 일반인들의 삶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래서 그 안에서 소재를 찾아볼 필요가 있겠다, 그런 것들을 구현한 영화를 많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인터스텔라>나 <그래비티> 같은 영화들이오.

이번 영화는 감정적, 체력적으로 힘든 작업이었다고 들었어요. 이러한 감정들이 일상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 같은데 이를 극복하는 방법이 있나요?
딱히 찾지 못했어요. 다만 최대치로 힘들 때까지 힘들어하는 편이에요. 자학을 하든, 몸을 혹사시키든 최대치를 딱 찍으면 그다음부터는 그전보다 덜 아프더라고요. 제가 딱히 무슨 재주나 취미가 있는 게 아니라서 그게 가장 빠른 방법이더라고요.

누구나 끊임없이 자신의 일에 대해 고민해요. 그럼에도 배우의 길을 걷는 것에 확신이 든 적이 있나요?
아직은 아닌 것 같아요. 이런저런 고민들이 많은 상황이라 오히려 이게 잘하는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죠. 좋은 작품이 나오고 많은 분이 좋은 말을 해주실 때는 성취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건 순간적인 감정이고요. 저를 계속 지배하는 감정은 제 자신에게 어울리는 일이 되도록 만들고 싶다는 거예요.

<사냥의 시간>은 훗날 배우 박정민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요?
윤성현 감독님과 이제훈 배우와는 늘 무언가 같이하고 싶은 분들이에요. 그런데 여기에 안재홍, 최우식, 박해수 등 제가 좋아하는 배우들과 재미있게 만든 작품이기도 하죠. 언젠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 영화를 찍은 영화 같은 느낌인데, 언젠가 또 한 번 만나고 싶어요.

<그라치아> 3월호의 주제는 그라치아의 어원이기도 한 ‘우아함’입니다. 박정민에게 우아함이란 무엇인가요?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이 가장 우아한 일이지 않을까 싶어요. 각자의 위치에서 크게 휘둘리지 않고 하는 것들은 그게 무슨 일이든 고급스러움이 묻어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럼 배우 박정민의 신념은 뭔가요?
한눈 안 팔고 영화 열심히 촬영하는 것이 저의 신념이죠. 근데 쉽지 않더라고요. 불안한 직업이다 보니 한눈팔아야 하는 순간이 오기도 하고 어떻게 또 잘 넘어가야 하나에 대한 고민도 생기고요. 그래서 이러한 것들을 잘 지켜나가면서 그 사람만의 고유한 철학이 보이는 행위들이 우아하다고 생각해요.
 

박 해 수

영화 <사냥의 시간> 촬영 후, 무엇을 하며 지냈나요?
여행을 다녀왔어요. 지금은 설경구 선배님과 영화 <야차>를 촬영 중이고요. 드라마 <키마이라>의 촬영도 마쳤습니다.

작년엔 청룡영화제에서 ‘신인남우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아주 당당하게 최고령으로 신인남우상을 받았죠(웃음). 그래서 같이 후보에 오른 동생들에게 미안하기도 했고요. 이름이 불린 순간에는 마냥 기적 같은 일이라 소감을 말할 때도 정신이 없었어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이번 영화에서는 정체불명의 추격자 역할을 맡았는데, ‘한’을 위해 어떤 준비를 했나요?
한은 명암 중 ‘암’이 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캐릭터의 정당성을 찾으려 했어요. 한은 쫓는 존재인 동시에, 네 명의 친구들처럼 살아남아야 하는 인물이기도 했거든요. 일부러 빛을 보지 않고 사람들과 대화도 거의 나누지 않았어요.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고립됐죠. 아마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할 강렬한 체험이라 실제 일상에서도 여파가 컸어요. 이건 네 명의 배우도 똑같이 느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네 명은 네 명이 함께였으니까요(웃음). 보통 다른 배우들과 소통하며 연기하는데, 이번에는 캐릭터상 온전히 혼자 짊어져야 하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네 배우들이 부러웠죠. 부럽고 질투가 나니까, 오히려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었고요.

현장의 분위기가 연기를 하는 데 도움이 되나요?
그럼요. 연기가 ‘도레미파솔라시도’처럼 명확한 음계가 아니라서 ‘도’와 ‘레’ 사이의 미묘한 감정 상태를 캐치하는 일이 필요해요. 순간의 진실을 만들려고 노력하다 보니, 현장의 분위기나 내가 가진 기분 및 기류 같은 것들에 변화가 필요했죠. 감독님이 현장 분위기를 잘 이끌어주셔서 연기하기가 수월했어요.

보통 캐릭터는 감독과 배우의 소통으로 완성되죠. 이번 영화를 위해 어떤 대화를 가장 많이 나눴나요?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의 영화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매드맥스> 등의 레퍼런스 자료를 보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공부했어요. 감독님과는 ‘한’이 어떤 상황에서 만들어졌는지, 어떤 역사를 가진 인물인지 이야기를 나누며 실제적인 인물로 만들려고 노력했고요. 예를 들면 <죠스>에서는 죠스가, <터미네이터>에서는 터미네이터가 추격자의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장르 자체이기도 한데 ‘한’ 역시 장르이면서도 한 인물로서 표현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했죠. ‘한’의 동기나 목적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고요.

‘한’과 배우 박해수의 공통점이 있다면요?
인간이기 때문에 닮은 점은 분명히 있죠. 그중에서도 살아남으려는 의지가 가장 닮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경우의 수나 수단이 다를 뿐이지 욕망은 같을 거예요. 이런 공통점을 생각하며 캐릭터에 다가가기도 했어요.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많은 영화인이 그렇듯, 영화 <파수꾼>의 광팬이었어요(웃음). 처음 대본을 봤을 때는 같은 감독님이 만든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느낌을 받았죠. 그런데 완전히 다른 장르 안에서도 인간의 본성이나 심리가 직선적이고 거침없이 표현돼요.

‘한’은 극 중 추격자인 동시에 살아남아야 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쫓기는’ 감정을 경험해본 적이 있나요?
늘 스스로에게 쫓기고 있죠. 어떤 역할이 주어졌을 때,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면 자책감이 드는 것 같아요. 어떤 날은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하고요.

그런 감정이 들 때마다 극복하는 방법이 있나요?
스스로 칭찬해주려고 해요. ‘넌 최선을 다했다. 어떻게 더 할 수 있겠니’라고 말하면서 주문을 외우죠(웃음).

관객들의 칭찬이 담긴 댓글은 어떤가요?
원래는 댓글을 잘 보지 않았는데, 영화에 대한 반응이 궁금해서 자연스레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양자물리학>이라는 영화를 관객들이 좋아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죠. 제가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봐줘서 좀 더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사냥의 시간>은 관객들이 무엇을 기대하면 좋을까요?
감각적인 비주얼과 탄탄한 스토리, 영화를 위해 새롭게 구축한 세계관 자체가 흥미로울 거예요. 감독님이 생각하는 가상 세계를 영화에 담기 위해 굉장히 오랜 시간을 고민했어요. 공간, 음향, 감독님의 감성과 다섯 배우의 에너지가 시너지를 일으켜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연극 무대에서 연기 생활을 시작했어요. 박해수에게 연극 무대란 어떤 의미인가요?
베이스캠프죠. 관객들에게 직접적인 에너지를 받는 곳이기도 하고요. 다만 혼자서 무대를 책임지다 보면 온몸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듯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어요. 마치 목욕탕 같달까요(웃음). 분명히 어려운 점들이 있지만, 무사히 끝내고 나면 재충전이 되는 기분이 들어요. 시간을 내어 공연장을 찾아준 관객들을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꾸준히 연극 무대에 오를 생각입니다.

관객에 대한 책임감이 연기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나요?
배우에게는 관객이 없어서 안 되니까요. 배우는 아티스트인 동시에 서비스업에 속해 있다고도 생각해요. 영화를 즐기면서 위로와 치유의 감정을 줄 수도 있고, 좀 더 나은 가치관을 갖게 할 수도 있죠. 웃거나 울면서 스트레스도 풀 수 있고요. 관객이 찾아와준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감사하고 힘이 되는 일이죠.

배우 박해수의 다음 스텝은 무엇인가요?
변함없이 주어지는 역할에 성실히 임하는 것, 그리고 배우로서의 그릇을 좀 더 키울 수 있는 작품들을 경험해보고 싶어요. 사실 어떤 역할을 맡고 싶냐는 질문이 저한테는 너무 어려워요. 영화의 장르는 궁금한 게 많아서 도전해보고 싶은 것도 많은데, 역할은 바로 딱 떠오르는 게 없어요.

바꿔 말하면, 어떤 역할이든 해낼 수 있다는 말 아닌가요?
정확합니다. 무엇이든 하고 싶어요(웃음). 이거 꼭 인터뷰 기사에 써주세요.

이렇게 다른 얼굴, 다른 몸짓, 다른 매력. 영화 <사냥의 시간> 속 다섯 배우의 순간을 포착하다.

Credit Info

2020년 3월

2020년 3월(총권 124호)

이달의 목차
EDITOR
김지원, 장정진
PHOTOGRAPHER
박종하
HAIR
김세욱(이제훈), 박상현(안재홍), 문현철(최우식), 박은지(박정민), 공탄(박해수)
MAKEUP
서미연(이제훈), 이상언(안재홍), 오은주(최우식), 이혜진(박정민), 공탄(박해수)
STYLIST
신지혜(이제훈), 박태일(안재홍), 이혜영(최우식), 전진오(박정민), 이명선(박해수)
ASSISTANT
김진수, 정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