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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PIRING WOMEN

나로서 존재하고 평가받는 것이 절 무한한 세계로 이끌었죠

On February 04, 2020

INSPIRING WOMEN
<그라치아>는 매달 삶에 영감을 주는 젊은 여성 리더들을 만나 이들의 긍정 메시지와 목소리를 전하는 인터뷰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지면과 함께 SNS 채널에서 동시에 공개되는 인터뷰 영상도 눈여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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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스스로를 더 사랑하고 주변 여성들과 계속 연대하면서 서로의 이상한 아름다움을 지지해주면 좋겠어요.

김보라
• 영화 <벌새> 감독
•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 영화학과 졸업

감독님의 첫 장편 영화 <벌새> 는 호평을 받으며 46관왕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어요. 감독님에게 2019년은 특별하게 기억될 것 같은데, 어떤가요?
영화 <벌새>를 끝내고 여성으로서 자각이 되는 순간이 많았어요. 남성 관객도 많이 사랑해줬지만 여성의 시선을 특히나 반가워하는 분위기였거든요. 덕분에 내가 여성으로서 산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된 데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에 대한 고민을 더 하게 되었죠. <벌새>라는 영화의 페미니즘과 여성 서사에 사람들이 폭발적인 반응을 표한 것은 여전히 가부장제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요. 이번 일을 계기로 창작자로서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더 책임감이 생겼어요.

<벌새>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한 여성이 감독이 되기까지 굉장히 복잡한 요소가 작용해요. 일단은 유리 천장이 존재했고 롤 모델의 부재 등 여러 가지 맥락이 있었어요. 대학에서 영화를 잘 찍던 여자 선배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충격이 컸죠. 그렇게 다른 일을 찾아가는 게 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였어요. 다행히 전 대학원에 진학해서 여자 친구들이 영화를 만들고 잘되는 모습들을 보며 영감을 많이 받았죠. 그렇게 대학과 대학원에서 각기 다른 경험을 하면서 꿈을 이어나가게 되었는데, 이번엔 투자가 안 되더라고요.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제가 완벽주의자라 준비를 조금 더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여자들은 일할 때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잖아요.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벌새>에서 은희에게 영지는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죠. 감독님에게도 영지 같은 존재가 있었나요?
제겐 주로 명상 선생님들이 많은 도움을 줬어요. 미국에서 대학원에 다닐 때도 교수님들이 많은 도움을 줬고요. 사실 한국에선 선생님들과 별로 안 친한 편이었거든요. 진짜 언어의 힘을 느낀 게 이름으로 부를 때 그 위계가 사라지는 효과가 있더라고요. 그 외에도 가족이나 친구들도 제게 영감을 많이 주는 존재들이에요. 많은 것을 알려주고 가르쳐주죠. 그들은 늘 제게 선생님이 되는 것 같아요.

최근 몇 년 사이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여성 감독의 작품들이 대거 등장했어요. 개인적으로 무척 반가웠는데 우연이었을까요?
한국이란 나라가 정말 신기한 게 관객들의 적극적인 요구가 통한다는 거예요. 영화 <미쓰백>도 '쓰백러'라고 해서 팬덤이 생기고 응원을 많이 해준 것으로 아는데, <벌새> 역시 '벌새단'이 생기고 여성 서사를 찾는 관객이 '이제 똑같은 영화는 더 이상 보지 못하겠다'고 선언한 거라 보거든요. 그 흐름과 함께 여성 감독들이 힘을 받아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고요. 그와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미투 운동이 끝나고 여성 서사에 대한 필요성, 그리고 영화계가 굉장히 남성 위주였다는 자각이 거대하게 일었죠. 그 결과 이제 영화제에서도 심사위원의 성비와 경쟁, 비경쟁 섹션 영화의 감독 성비를 맞추려는 움직임이 생겼어요. 트라이베카나 베를린영화제 등에서는 LGBT 성비라든가 아시아 및 유색 인종의 비율까지 맞추려고 노력해요. 의식 좀 있다고 하는 영화제에서는 그 비율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위기죠. 부산영화제 역시 2018년부터 성비가 거의 반반이 되었는데, 그 해에 <벌새>가 상영되었거든요. 여러모로 축복이었던 거죠. 그러나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그런 움직임이 점점 더 커지겠죠.

올해 역시 여성 영화가 강세라고 들었어요.
2019 부산영화제에서 화제가 되었던 영화들은 모두 여성 감독 작품이에요. <찬실이는 복도 많지> <남매의 여름밤> <69세> 이 세 작품이 화제작이었는데, 상을 모두 휩쓸었죠. 올해 모두 개봉을 하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아요. 독립 영화판은 변화가 훨씬 큰데 상업 영화판에서도 많은 여성 감독님의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고, 그 물결이 갑작스럽게 폭풍처럼 커졌으면 좋겠어요.

일을 하다 보면 여자라는 이유로, 혹은 한계에 부딪히는 일들이 생겨요. 그럴 때마다 어떻게 헤쳐 나가곤 하나요?
제 스스로 다짐하는 것이 있다면 '억지로 웃지 말자' '맞장구 쳐주는데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자' 그리고 '내 의견을 너무 불신하지 말자'예요. <벌새>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작품에 불필요한 조언도 많이 들었거든요.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냥 제 소신대로, 주저함 없이 밀고 나갈 거예요. 다행히 영화는 잘되었고 모든 것이 다 이유는 있었지만 제가 저를 믿어주지 못했던 시간들이 참 안타까웠어요. 물론 이 과정을 통해 저도 깨닫게 되었지만 다른 분들은 그 과정을 덜 겪었으면 해요.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너무 의심하지 말고 좀 칭찬해주기. 나를 탓해버리면 스스로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니 지나간 일을 탓하기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할까에 대한 고민을 하자는 결론이 들더라고요.

여성들의 목소리가 좀 더 커지기 위해선 어떤 움직임이 일어야 할까요?
일단은 구조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영화제만 하더라도 심사위원의 성비나 인종의 다양성에 따라 선정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거든요. 학교 역시 좀 더 깨어 있는 교수 밑에서 기존 시선과 다른 영화가 나오고요. 이렇듯 사회 구조적인 게 바뀌고 법적으로도 여성에게 훨씬 더 공평해져야 한다고 봐요.

구조적인 변화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요?
우리가 스스로를 더 사랑해주면 좋겠어요. 주변 여성들과 계속 연대하면서요. 때론 여성들 안에서도 자기혐오가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조금 더 자신에게 관대해지고 주변 여성들을 좋아하면 어떨까 싶어요. 정세랑 작가님이 이런 말을 하셨어요. "이상한 취급을 받는 여자들을 더 많이 사랑해야 한다"고. 저는 그 말이 참 좋더라고요. <벌새>도 마찬가지로 영지가 은희한테는 너무 아름답고 좋은 선생님이지만 원장 선생님한테는 이상한 사람이거든요. 우리 주변의 이상하고 별나고 기가 센 여자들에게 너무 큰 잣대를 들이대기보다는 사랑해주는 것, 그런 마음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사실 우리 모두 다 각자 '이상한 아름다움'이 있잖아요. 그 아름다움을 잘 돌봐주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리고 건강하게 잘 화내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살면서 부당한 일들이 많은데 그걸 이해하려고 에너지를 많이 쓰지 않았으면 해요.

감독님은 평소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아요. 언제 처음 자각했나요?
10대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본질로서 사람을 대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10대 후반부터 외모에 대한 코멘트를 많이 들었는데 칭찬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해도 여성을 가두는 프레임이라는 것을 일찍 자각했죠. 여성을 어떤 일이나 능력으로 보는 게 아니라 한 송이 꽃처럼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분위기가 굉장히 불쾌했어요. 그래서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여성의 특질로서 가치를 평가받는 게 아니라 나라는 사람으로서 평가받는 게 무엇인지 느끼게 됐죠. 그 앎이 사람을 정말 자유롭게 한 것 같아요. <벌새> 역시 제가 여성으로서의 자각이 없었다면 만들지 못했을 거예요. 그 자각이 처음 생기고 나서는 정말 괴롭거든요. '내가 개똥 같은 취급을 받아왔음'을 처음 깨달았을 때는 정말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어요. 그래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라 생각해요.

그 개념이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제 자신을 굉장히 확장시켰어요. 예전에 '미란다 줄라이'라는 여성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페미니즘이란 자신을 더 섹시하고 멋있고 아름답게 만드는 무언가라 생각한다." 저 역시 이 말에 동감해요. 페미니스트라는 것은 저를 완전히 확장시켜 무한한 세계를 만나게 해준 어떤 창이었어요.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갑작스런 깨달음을 얻는 것처럼 그 확장된 시선은 페미니즘이란 안경을 통해서 가능했죠. 만약 페미니즘이란 안경을 몰랐다면 저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살았을 거예요.

감독님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창작자로서 늘 장인 정신을 갖고 마스터피스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커요, 진심으로. <벌새> 때도 아쉬웠던 부분이 있었는데 다음 영화에선 연출적으로 연마를 많이 해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고요. 제 영화를 본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매일매일 제가 어떤 기운을 세상에 내뿜는지 자각하길 원하죠. 기왕이면 사람들에게 조금 더 밝은 사랑의 에너지를 나누는 사람이고 싶거든요.

많은 이들이 차기작에 대해 궁금해해요. 어떤 이야기가 될까요?
이제 슬슬 써보려고 해요. 들어온 시나리오도 있는데 미처 읽을 시간이 없었네요. 2월부터는 읽고 쓰고 그런 과정을 거치려고요. 어떤 이야기가 될지에 대해선 아직 말을 아끼고 싶어요. 아마도 운명처럼 다가오지 않을까요(웃음). 다만 <벌새> 만들었던 감독이 갑자기 조폭 영화를 만들진 않잖아요. 앞으로도 인간의 이야기를 저만의 시선으로 다르게 바라보길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만은 변함없어요.

<벌새>보단 빨리 만날 수 있겠죠?
네, 그랬으면 좋겠어요(웃음).

베를린 영화제에 참석한 김보라 감독과 
이승연, 박지후, 김새벽 배우

베를린 영화제에 참석한 김보라 감독과 이승연, 박지후, 김새벽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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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파이어링 우먼'은 플랜코리아와 함께 미래 영 리더들의 재능을 응원하는 푸른나래 장학 사업을 후원합니다. 재능이 있지만 경제적·사회적 여건으로 기회가 부족한 청소년들이 우수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로레알 파리와 함께합니다.

Credit Info

2020년 2월

2020년 2월(총권 123호)

이달의 목차
EDITOR
장정진
PHOTO
이영학
HAIR
안미연
MAKEUP
강석균
STYLIST
엄아름
ASSISTANT
정수아
의상 협찬
재킷 로맨시크, 펌프스 레이첼콕스, 이어링 타티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