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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PIRING WOMEN

제가 가진 모든 걸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On January 06, 2020

INSPIRING WOMEN
<그라치아>는 매달 삶에 영감을 주는 젊은 여성 리더들을 만나 이들의 긍정 메시지와 목소리를 전하는 인터뷰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지면과 함께 SNS 채널에서 동시에 공개되는 인터뷰 영상도 눈여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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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령
• 스튜디오 드래곤 2CP 프로듀서
• 연세대 도시공학과 졸업 후 2012년 3월 CJ E&M 입사
• tvN <나인> <고교처세왕> <라이어 게임> OCN <라이프 온 마스> 등 연출

드라마 〈블랙독〉이 첫 방을 앞두고 있어요. 드라마 제작에서 프로듀서의 주요 역할은 뭔가요?
연출자가 작품 내적으로 아티스트 역할을 한다면 프로듀서는 그보다 조금 더 외적인 일들을 한다고 생각하면 돼요. 시간과 비용이라는 한정된 소스 안에서 좋은 드라마를 만드는 게 저의 일이죠. 이를 위해 방송에 나가는 전반적인 것들을 상의하고 조화롭게 진행하는 일을 담당하고요.

8년 차지만, 첫 평가의 순간은 여전히 떨리겠죠?
그럼요. 첫 방송 나가기 보통 한 달 전부터 예민해지는 것 같아요. 시청률도 중요하지만 어떤 드라마로 보일지가 판가름 나는 순간이니까요.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블랙독〉은 어떤 드라마인가요?
기간제 교사인 여주인공이 학교라는 공간에 새로 들어가면서 그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학교를 보여줘요. 정교사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약자인 시선에서 봤을 때 학교라는 조직 사회가 어떤지 장단점이 있을 거고, 본인 생각과 다른 부분도 분명 있을 테죠. 시청자 역시 이 사람의 시선에서 학교가 어떤 곳인지 보게 되는데, 결국 선생님도 그냥 사람이고 우리보다는 조금 더 책임감 있는 꿈을 꿨던 이들이지만 그들도 지치기 마련이고, 어떻게 다시 희망을 찾는지 선생님들의 성장기를 그린 드라마예요.

시청자도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가 많을 것 같아요.
직장 사회와 크게 다를 바 없으니까요. 서열이 있고 그 안에서 자리 다툼도 벌어지고요. 정교사를 꿈꾸며 살아남아야 하는 주인공을 통해 신입 시절의 나를, 인턴 시절의 모습을 떠올리고 공감하면서 보지 않을까요.

본인의 신입 시절은 어땠어요?
그 당시의 저는 지금보다 훨씬 더 레귤러한 사람이었어요. 부모님과 사회가 정해준 규칙에 따르는 게 잘 사는 거라 생각하면서 살았죠. 학교 다닐 땐 공부를 열심히 하고, 졸업 후엔 바로 취직해야하고. 그러다가 이 조직에 들어왔는데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고 제 상식이 무너지는 순간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죠. 동기들 사이에서도 제가 가장 모범생 같은 사람이었어요. 그렇다 보니 트러블도 많았고요. 제 기준에서는 무례하고 상식에 어긋난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드라마 속 주인공을 보며 당시의 제가 생각났어요. 공대 출신이라 작은 실수나 눈치 좀 없는 행동을 하면 “넌 아름이라서 그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사랑만 받고 자라서 눈치 없다고요. 주인공에게도 그런 편견이 존재했겠죠.

그런 모범생이 이렇게 자유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사회에 나오기 전까진 곡언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직언을 많이 해요. 일할 때는 효율적으로 알아들 수 있는 방식이 좋으니까. 현장에서도 어른들에게 싫은 소리를 해야 될 때는 “지금부터 일적으로 얘기를 할 건데 기분 나쁘게 듣지 마세요”라고 한 뒤 얘기를 해요. 그러고는 나중에 혹시 제가 무례했다면 죄송하다고, 저는 일이었다고 말하고 돌아오죠. 그 과정에서 간혹 언성도 높일 줄 알게 됐는데, 그렇게 해야 일이 빨리 되더라고요.

프로듀서로 일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재미는 뭔가요?
제가 드라마의 첫 번째 시청자라 가정했을 때, 가장 냉정해야 하는 사람이거든요. 이 판에서 가장 이성적이라고 한다면 제 예측이 들어맞았을 때, 나도 늘고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재미도 있는 것 같아요.

얼마 전 싱가포르에서 진행된 AACA(아시안 아카데미 크리에이티브 어워즈)에서 <60일, 지정생존자>가 ‘최고의 포맷 각색’ 부문으로 수상했어요. 그만큼 지금 한국 드라마는 세계적인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매해 다르게, 매번 다르게 점점 더 많이 느끼고 있어요. 이번에 싱가포르에 갔을 때만 해도 제가 다니는 회사 이름을 모두가 안다는 사실에 놀랐죠. 현재 미국의 그 어떤 스튜디오도 1년간 30편이 넘는 드라마를 제작하는 스튜디오는 없어요. 물론 제작비는 훨씬 낮은 수준이지만 일단 아시아에서만큼은 톱 수준이라 할 수 있죠.

그만큼 제작 환경도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저희 회사만 봐도 많이 달라진 걸 느껴요. 사내에 아이 있는 엄마 리더들이 많고 심지어 돋보이기까지 하거든요. 초창기에 “엄마면 드라마를 못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면 지금은 “엄마가 일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고 말하는 남자 선배들이 많아졌죠. 게다가 요즘은 현장 분위기도 많이 개선돼가는 편이고요.

예를 들면 어떤 면에서 그런가요?
개인적으로 현장에서 소리 지르는 사람, 욕하는 사람, 음담패설 하는 사람들이 진짜 싫어요. 그래서 “왜 목소리 큰 사람이 이겨요? 왜 욕하면 이기는 거예요?”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지금은 그게 잘못되었다는 시선이 확산되면서 욕하는 사람에게 가서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됐거든요. 그게 참 좋은 변화라고 생각해요. 아직 가야 할 길은 멀지만요.

능력과 상관없이 여자라서 힘든 적도 있겠죠.
제가 커리어를 관리자 역할로 시작했는데 경험이 없는 채로 하다 보니 실제로 많은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현장에는 수십 년 경력의 선배들이 수두룩한데 스튜디오 드래곤에서 나가게 되면 원하든 원치 않든 갑의 입장이 돼버리거든요. 현장은 잘 알지도 못하는데 나이까지 어리고, 게다가 싫은 소리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면 정말 난처하죠. 어떻게든 설득해서 잘 해결하는 게 제 일이니까. 그런데도 ‘어린데 뭘 알아? 여잔데 뭘 알아?’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어요. 그래서 서른 살이 되었을 땐 진심으로 행복했어요. ‘아, 나도 이제 30대구나’ 하고요. 여자가 서른이 되면 우울해진다고 하는데 저는 그날이 정말 기뻤던 기억이 나요.

여성 프로듀서만의 강점을 꼽는다면 뭘까요?
여러모로 여자가 하기에 유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드라마 제작 시엔 경험하지 않은 것을 공감대 있게 그려내는 게 가장 어려운 문제인데, 여자들은 공감력이 뛰어나다 보니 더 섬세하게 챙길 수 있죠. 그리고 드라마라는 콘텐츠를 보는 타깃이 주로 여성이다 보니 그들의 마음을 더 잘 알 수도 있고요. 물론 공감 잘하는 남자도 많지만요.

일을 하면서 지키고자 하는 원칙이나 습관도 있나요?
좋은 사람들이 좋은 드라마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곤 해요. 남들 힘들게 하면서, 혹은 서로를 힘들게 하면서 만들지 말자고 평소에도 많이 말하는 편이라 무례하지 않게 일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이러면서 제가 무례하게 행동하는 건 아니겠죠(웃음)?

여전히 유리 천장은 존재하죠. 여성의 목소리가 조금 더 커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좋은 언니들이 세상 밖으로 많이 나와서 동생들을 이끌어줘야 한다고 봐요. 왜 남자들 세계에선 그런 문화가 흔하잖아요. 이처럼 언니들이 동생들을 끌어주지 않으면 조금 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어요.

멋진 여성 리더란 어떤 사람일까요?
<60일, 지정생존자>의 김태희 작가님은 최근에 만난 여성 중 가장 멋있는 분이었어요. 멋진 어른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시는 분이죠. 드라마는 정치물이자 장르물이었지만 실제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떤 어른이, 어떤 리더가 필요할까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생각하거든요. 작가님은 멋진 어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이었고, 저도 그분 따라 같은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죠.

좋은 언니들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겠죠.
맞아요. 그게 언니들이 해줄 수 있는 역할인 것 같아요. 이런 언니들이 많아졌으면 좋겠고, 저 역시 후배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고 싶죠.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요?
남자들은 40대가 전성기라고 하는데 왜 여자들은 좋은 시절이 다 갔다고 생각할까요? 저는 그런 생각을 깨보려고 해요. 여자에게 40대는 재앙 같은 시기가 아님을 증명하고 싶어요. 제 경우에는 저만이 할 수 있는 드라마를 찾는 게 제 인생의 꿈이에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드라마란 어떤 드라마일까요?
개인적으로 조금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서 좋은 일을 만들어가는 드라마를 좋아하거든요. <60일, 지정생존자> 같은 전작만 보더라도 성장기가 담긴 작품을 좋아하고 잘하기도 해서 커리어 역시 그렇게 쌓고 있어요. 언젠가 제가 잘할 수 있는 대본이 나오면 연출에도 도전해보고 싶긴 한데, 그래도 저는 프로듀서가 적임이라고 생각해요.

지난 12월 싱가포르에서 진행된 2019
AACA에선 수상의 기쁨을 만끽했다.

지난 12월 싱가포르에서 진행된 2019 AACA에선 수상의 기쁨을 만끽했다.

지난 12월 싱가포르에서 진행된 2019 AACA에선 수상의 기쁨을 만끽했다.

드라마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 촬영 현장에서의 정세령 PD.

드라마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 촬영 현장에서의 정세령 PD.

드라마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 촬영 현장에서의 정세령 PD.

Credit Info

2020년 1월

2020년 1월(총권 122호)

이달의 목차
EDITOR
장정진
PHOTO
이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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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IST
최규원
ASSISTANT
박서연
의상 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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