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투브 네이버 포스트

통합 검색

인기검색어

HOME > 오늘의 이슈

Text Me Happy New Year

On January 01, 2020

새로운 한 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가 되는 가운데 11인의 아티스트들이 각자의 소망과 다짐을 적은 편지를 <그라치아> 편집부에 보내왔습니다. 그들이 꿈꾸는 2020년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리고 여러분은 2020년을 어떻게 보내고 싶으신가요?

2020년은 내내 여름이면 좋겠다

_맹지나(여행 작가, 작사가)

여름을 사랑한다, 뜨겁고 격렬하게. 사람보다는 장소와 깊이 공감하고, 편안하고 익숙한 공간보다는 낯설고 새로운 곳에서 부유하는 시간에 위로를 받는 나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정도로 아찔한 더위의 여름 나라들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본능이라고 생각될 만큼 사랑한다. 좋은 곳 터 잡아주신 조상님들께 죄송하지만 학교에서 사계절이 우리나라의 좋은 점이라 배웠던 나는 의아했다. 1년 내내 무덥고 청량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것도 바르지 않고 종일 누워 뒹굴어도 발갛게 달아오르거나 벗겨지지 않고 노릇하게 타는 피부를 보면 이것은 분명 짝사랑이 아니다. ‘이것 봐, 여름도 이리 나를 아껴주는 것’이라고 혼잣말하며, 1년이 채 반이 지나가지 않았을 때, 힘을 내어 남은 해의 희망을 가늠할 수 있는 그 계절에 나는 가장 충만하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이제는 내 이름만큼이나 알려줘야 하는 SNS 주소를 주저 없이 ‘썸머 걸’이라 지은 이유는 확실하다.

어떤 여행자들은 앞으로 몇 번의 여름이 남았나 헤아려보기도 한다는데, 나에게는 모든 여름이 마지막이다. 여태껏 만나온 여름들이 제각각이었듯이, 2019년의 여름 같은 여름은 다시없을 것이다. 2020년의 여름은 오롯이 2020년의 여름일 것이다. 물론 여름마다 거듭하는 일도 있다. 가장 뛰어들고 싶은 바다를 찾아 떠나고, 두 눈을 질끈 감게 만드는 시원하고 새콤한 레몬 맥주를 시계를 보지 않고 아침이든 새벽이든 마신다. 일상에서는 페이지를 접고 펴고 접고 펴며 한 권을 마치는 데 여러 날이 걸리는 책들을 한 아름 안고 가서 실컷 읽는다. 그렇게 반복되는 듯한 새로움에 중독되어 살아가다, 2020년을 맞이하며 나는 사계를 여름으로 보내리라 다짐했다.

버킷 리스트 따위는 만들지 말고 그때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자는 주의지만 소위 말하는 욜로(Yolo)와는 다르게. 즉흥적이지만 앞뒤를 살피고 가쁘지 않게, 긴 호흡으로 바다에 떠 있듯 유영할 것이다. 마음에 드는 파도가 밀려오면 올라타 떠밀려 가볼 것이다. 여행지에 수채화처럼 물들어가는, 관찰하는 여행자의 모습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든 바다로 뛰어들 수 있게 지척에 비키니를 둘 것이다.

2020년은 온통 여름일 것이다. 행여나 모든 순간 여름 한가운데 서 있지 못하더라도, 야자수 아래에서 마음에 드는 한 줄을 쓰고 씩 웃는 마음으로, 여름의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다.


새로운 순환

_김겨울(작가)

어쩌자고 새해는 지치지도 않고 다가오는 것일까. 그렇게 달려와 봤자 달성하지도 못할 새해 결심이나 몇 개 받아먹는 게 다인데. 시간은 성실하게도 흐르고, 우리는 또 한 번의 지겨운 새해 인사를 한다. 지구는 참 쓸데없이 정직하게 운동하고 있다.

이제 지구는 태양을 한 바퀴 돌아 1년 전의 자리로 돌아왔다. 또 한 번의 공전 주기가 시작된다. 언제 시작해 언제 끝날지 알 수도 없는 순환 운동이 우주의 한구석 자리에서 계속되고 있다. 누구였을까, 처음 이 순환 운동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것은. 모든 것이 반복되는 게 아니라 이번 봄이 지난번 봄과 다르다고 말한 이는. 그래서 공전(Revolution)이 혁명(Revolution)된 것은 어떤 이들의 무슨 열망이 투영되었던 덕일까. 다시금(re-) 돌아가는(-volt) 행성에서 모든 것을 엎고 새롭게 시작해보겠다는 인간의 결심은 매해 갱신된다.

실은 지구도 이 결심을 허락하고 있는지 모른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동안 태양 역시 우주 속을 움직인다. 그래서 지구는 원이 아니라 나선형을 그리며 돈다. 우리는 1년 전과 같은 곳이 아니라, 그와는 조금 다른 곳에 와 있다. 그것을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새로운 시작이라는 게 우리에게 허락되는 것이라면, 공전은 한 번도 지겨웠던 적이 없는 모험이라고 말해도 좋겠다.

그러므로 새해가 지치지도 않고 다가오는 것은 열두 달마다 새로운 시작을 허락하는 관대함의 소산이다. 그 어떤 새해도 같은 자리에서 시작했던 적이 없음을 상기하면 새해 인사는 지겨움이나 늙음에 대한 한탄 대신 또 한 번의 기회를 얻은 이들의 잔잔한 다짐이 된다. 인간은 이를 알기 때문에 매해 새해를 기념했던 거라고, 나는 마음대로 생각하고 있다.

2020년, 그 이름조차도 순환하는 해에 우리는 또 한 번의 시작을 허락받는다. 이번 공전은 그 어느 때보다도 흥미진진할 것이라고 말해본다. 모든 것은 다시 시작된다. 모험은 또 한 번 허락된다. 무엇이든 무마할 수 있는 시간이 앞에 놓여 있다. 순환을 시작하자. 조금 다른 곳으로 돌아올 내년을 생각하며.


또다시 잘 버텨낼 새로운 한 해

_박준우(셰프)

일을 하다 금방 지루해져 남들 몰래 도망을 나왔다.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했고, 초콜릿 쿠키도 함께 계산했다. 예전에는 주로 부드러운 케이크를 커피와 함께 먹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딱딱한 쿠키가 더 입맛에 맞다. 언젠가부터 커피잔을 앞에 두고 쿠키를 한 입 베어 문 채, 별생각 없이 소가 여물을 씹듯 먹어대는 것이 꽤 큰 위안이자 휴식이 되었다. 오래전부터 2020년에 은근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비록 그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수준의 기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사람이란 본디 꿈이 허황됨을 알면서도 결코 그 꿈을 꾸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이지 않은가. 내가 기대한 서기 2020년은 종말의 해였다. 자원의 고갈과 환경의 오염으로 인류가 멸망의 시기를 눈앞에 두고,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찾아내 탐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아 떠난 붉은 머리칼의 아이 ‘아이캔’은 납작하고 동그란 비행정을 타고 무시무시한 ‘데몬마왕’과 로봇 병사들에 맞서 세뇌된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을 한 해였다. 나는 얼마 전부터 비로소 그런 공포의 시대를 맞이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허황된 꿈일 뿐이었다. 물론 지구의 자원은 고갈되었고 환경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망가졌지만, 아직까지도 인류는 멸망하지 않은 채로 이 지구별에서 하루 또 하루를 버티며 새로운 해를 맞이하고 있다.

우리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만을 마음에 품은 이 행성은 아마 앞으로 다시 30년 정도는 더 버텨볼 의지를 다진 것으로 보이지만, 그런 지구의 선한 의지에도 행성은 나날이 황량해지고만 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면 그중 가장 황폐하고 쓸쓸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누군가는 홀로 슬퍼하고 또 괴로워하며, 다른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를 미워할 뿐이다. 아마 지구의 의지를 닮은 마음들은 분명 아직도 어딘가 남아 있을 테지만, 그보다 더 많은 곳으로 황량한 마음들이 번져나가고 있다. 그 황량함 속 어느 한편에는 내 두 발도 자리를 잡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돈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은 날이 드물었고, 술을 마시고 후회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자면 챙기지 못한 사람들은 자꾸만 늘어났다. 할리우드 전쟁 영화 속의 “No one leaves behind” 같은 대사를 외쳐대는 치열한 삶과는 거리가 먼 지난 몇 해였다. 참 많은 사람을 그 길에 두고 왔다. 즐겁게 떠들던 술친구도 건강을 핑계로 자주 보지 못하게 되었으며, 어려서부터 가깝게 지내던 친구와는 돈 문제가 얽혀 연락을 주고받기도 불편하게 되었다. 마음이 맞아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던 정겨운 동무와도 어느새 서로를 배신한 채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일을 하고 돈을 벌었지만 통장의 잔액은 늘어나지 않았고, 술은 줄었지만 건강은 나아지지 않았다. 사람들과 멀어지려 하는 것을 스스로 조금 더 잡아두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바쁘게 지냈지만, 전혀 치열하지 못한 시간이었다.

납작하고 딱딱한 초콜릿 쿠키를 집어 베어 물었다. 입안에서 그 쿠키는 내 어금니들에 의해 부서지며 혀 위로 아린 단맛을 뿜어냈다. 납작한 돌덩이를 닮은 접시 위의 쿠키는 다행히 그만큼 딱딱하지 않았고, 비록 반죽이 어금니 사이에서 잠시 모래알처럼 씹히기는 했지만 결국 녹아 목구멍으로 흘러 넘어갈 뿐이었다. 비록 이 순간 내 눈에 비친 지구는 납작하고 딱딱한 쿠키의 모양새처럼 황량하기만 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도 한없이 쓸쓸한 듯 보이지만, 공포로 가득할 것이라 믿었던 이 한 해도 어떻게든 흘러갈 것이다. 또 그 시간을 버텨낼 여럿의 사람도 아린 단맛을 찾아낼 것이다. 적어도 엉망진창 서기 2020년의 지구는 참 열심히도 버텨내고 있다.


2020년, 사실 저는 선거송을 노리고 있어요

_김초연(작사가)

점쟁이가 말했다. “선생님을 보니 음악 소리가 들리네요. 지금 어깨 들썩이는 거 보여요? 우리 신어머니가 반응하는 거예요.” 맞다. 분명 미세하게 어깨가 떨렸다. 생년월일을 말하지 않아도 분명 藝人(예인)이라고 확신에 차 있던 그분의 말처럼, 2019년에 난 마침내 작사가로 데뷔했다. 딸랑 1곡. 첫 정산 109원(동정 마시라. 109원 번 날 자축한답시고 1000배 비싼 밥 사 먹었다). 어디 가서 아직 작사가라고 소개하긴 부끄러운 스코어지만, 시작 전부터 목표는 분명했다. 내 노래가 ‘선거송’으로 개사되어 사람들에게 불리는 것. 마침 2020년엔 총선도 앞두고 있다. 새벽이슬 맞으며 출근하는 이들에게 내가 쓴 곡이 기호 N번의 지지를 호소하는 곡으로 탈바꿈하여 매일 아침을 깨운다면 이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가끔 구질구질하게 서양 수박(멜론)의 상세 정보에 들어가 전날 몇 명이 이 곡을 들었는지를 확인하는 풋내기 신인 작사가는 상상에 젖어 잠들곤 한다. 내가 쓴 곡을 누가, 어디서, 어떤 상황에 듣고 있을까? 내가 사랑했던 (구) 남친도 이 곡을 들을까? 구질구질하게 매달렸던 2019년의 나를 연민으로라도 기억해줄까? 그는 기호 몇 번을 뽑을까…?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분명히 말하건대, 2020년 나의 소원은 헤어진 옛 연인과의 재회가 아니다. 오로지 선거송으로 포장한 나의 유명세일 뿐…. 신이시여, 듣고 있나요? 제 노래 스밍해주실 게 아니라면, 부디 제가, 저만, 유명하게 해주세요! 큰 거 안 원해요. 전 좋은 곡 나쁜 곡 따지지 않고 무조건 주문에 맞춰 다작할 거니까…. 선거송으로 개사되는, 노래방 18번으로 불리는, 고속버스 휴게소에서 기사님들의 믹스 테이프로 발매되는, 수능 금지곡이나 초딩 금지곡으로 선정되는, 나아가… 떠난 그가 저를 눈곱만큼이라도 떠올릴 수 있는… 그런 곡을 쓰길…. 딱 그 정도로만 유명하게 해주시옵소서. 절 보자마자 어깨 들썩이셨으니까, 꼭 약속 지켜주셔야 해요.
뭐… 올 한 해에 다 이뤄주기가 너무 촉박하다면 2024년까지 기다려드릴 용의는 있어요!


사랑을 주고 위로를 건네는 음악가가 되겠습니다

_하현상(뮤지션)

2019년은 저에게 정말 정신없이 지나간 한 해였습니다. 올해 초만 해도 현재 저의 모습에 대해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슈퍼밴드>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지금의 ‘호피폴라’ 멤버들을 만날 수 있었고, 제 음악을 더 많은 분에게 들려줄 수 있는 기회와 함께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저를 도와주는 스태프와 아낌없는 애정을 주는 팬들까지 만나게 되었죠.

제 목소리에 힘을 얻었다는 팬들의 응원 메시지를 들으면 솔직히 다소 부끄럽기도 합니다. 제가 부르는 노래가 누군가에게 큰 의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아직은 조금 어색하고, 그런 책임감이 조금 두렵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 해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행복했던 올해지만, 어떤 분들에게는 정말로 힘든 일이 많았던 한 해였을 것 같아요. 앞으로는 제가 받은 사랑을 나눠주고 위로의 노래를 건네는 음악가가 되고 싶습니다. 더불어 내년에는 모든 분이 평화로운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야기꾼의 2020년

_오기환(영화감독)

2019년 12월 12일. 영화감독 100여 명이 이태원에 모였습니다. 한국영화감독조합 주최 행사인 디컷어워즈 영화제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행사가 끝나고 뒤풀이 자리엔 50여 명의 감독님이 남았습니다. <메기>를 만든 이옥섭 감독님도, <벌새>를 만든 김보라 감독님도, <1987>을 만든 장준환 감독님도 편하게 세상 이야기와 함께 자신들이 준비하는 시나리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제가 있던 테이블에서도 어떤 감독님이 자신의 신작 이야기를 했고, 저와 다른 감독님들은 느낀 바를 전달했습니다. 그때 사실 저도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있는 새 작품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2020년 12월에 우리는 또다시 만날 것입니다. 아마도 똑같이 50여 명의 감독님들이 뒤풀이 자리에서 자신들이 준비하고 있는 시나리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것입니다. 영화감독에게 새해는 그렇게 옵니다. 자신이 준비하는 이야기가 좋으면 멋진 새해를, 나쁘면 구린 새해를 맞습니다. 저는 2020년이 멋진 새해가 될 것 같습니다. 출판 계약한 책 원고도 넘겼고, 드라마 단막극 대본도 넘겼고, 따로 준비하는 영화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가요? 지금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나요? 그것이 분명 좋은 이야기이기를 기원하겠습니다.
Happy New Year~!


2020년은 2020년은

_태재(『애정놀음』 『여전히 연필을 씁니다』의 저자이자 시인)

2020년이라니, 이로써 10년을 세 번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저는 1990년에 태어났다는 말인데, 한국 나이로 31세가 되었지만 10년을 세 번 살았다고 말하면 어물쩍 30세처럼 보일까 싶어서 그랬습니다. 아주 지질한 만 29세 청년이로군요. 음, 생년 이야기를 한 김에 월일 이야기도 마저 해보겠습니다. 저는 7월 7일에 태어났습니다. 사람들에게 제 생일을 밝히면 그중 열에 일곱은 “우와 러키세븐이네!”라고 반응하고 셋은 “칠석이네~. 혹시 견우야?”라고 반응합니다. ‘칠석은 음력이지롱’이라고 대답하기도 귀찮아서 보통 견우가 맞다고, 까마귀를 타고 왔다고 대답합니다. 까악까악. 아무튼 태어난 월과 일이 같아서 제 생일에는 잊을 수가 없는 숫자라며 축하들도 많이 옵니다.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간단해서 까먹기가 어려운 셈이지요. 월과 일은 한 세트라 두 가지를 한 번에 외워야 하는 수고스러운 종목인데, 저처럼 두 가지에 한 숫자가 나란히 있는 경우라면 문제가 너무 편해지지요. 문제 자체를 없앨 수 없다면 접근이라도 편하게 하자는 심산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2020년의 포인트는 ‘나란히’입니다. 2020년에 또 어떤 문제들이 발생할지는 모르겠지만 20과 20이 나란히 붙은 2020년이라면 1년 내내 나란함을 추구할 수 있겠습니다. 오, ‘내내’라는 단어도 아주 나란합니다. 물론 1991년이나 2002년처럼 앞 두 자리와 뒤 두 자리가 마주 보는 귀여운 연도도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만, 2020년처럼 나란한 연도는 처음입니다. 게다가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2121년까지 살아 있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 처음인 동시에 아마 마지막일 것 같습니다. 오오, 또박또박 가야겠습니다.


새해가 유튜버면

_이환천(tvN <플레이어> 작가이자 시인)

새해가 영상들을
가지고 올 때마다

구독과 알람 설정
좋아요 눌렀는데

작년은 콘텐츠가
내용이 그게 뭐니?

올해는 작년보다
더 좋은 콘텐츠로

소중한 내 1년을
언박싱해주겠니?


어제보다 더 나은 하루가 되기를

_손호영(뮤지션)

2019년에는 참 많은 일이 있었네요. 가깝게는 가요계의 멋진 후배들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쳐 자랑스러운 반면에 안타깝게 떠나보내는 일도 있었죠. 늘 이맘때가 되면 ‘다음엔 더 나아지겠지, 더 좋은 세상이 되겠지’ 생각하곤 하는데요. 그러면서도 ‘나는 그동안 얼마큼 열심히 해왔나’ 되돌아보게 되기도 합니다. 기쁘게 열심히 지내는 사람들도 많고, 또 한없이 어두운 친구들도 있을 거예요. 다 나아질 거라고, 괜찮아질 거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그 말이 또 한편으론 너무 쉽고 가볍기도 하다는 생각이 드는 한 해였어요.
2020년에는 모두가 조금 더 마음이 나아졌으면, 서로 돌보고 괜찮았으면 좋겠습니다. 다 좋아질 거니 부디 행복하자고 감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고 또 앞으로 할 일들이 누군가에겐 조금 더 나은 기분을, 더 나은 하루를 선사할 수 있진 않을까? 그런 생각과 작은 바람으로 한 해를 맞이하겠습니다. 2020년은 모두에게 활짝 웃을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아지길 바라봅니다.


지금, 달려가기 좋은 시간

_성립(일러스트레이터)

새벽에 러닝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먼지들이 다 가라앉아 있어 호흡기 건강에 좋지 않다나? 그런데 이 연말연시에는 좀 뛰어도 될 것 같다. 지금 이 시기에는 먼지들도 가라앉을 새 없이 매일매일 분주하게 붕 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모두 들떠 있는 지금, 나는 솔직히 조금 가라앉는다. 작년에도 그랬고, 올해도 그렇다. 이것을 ‘홀리데이 블루스’라고 부르더라. 이렇게 전문 용어까지 있는 것 보면 나뿐만 아니라 꽤나 많은 사람이 겪는 문제인가 보다.
작년 연말에는 불안에서 오는 이 기분 때문에 나는 참으로 심란했다. 사람들을 만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밖을 다니고 술을 마셔도 도무지 풀리지 않는 이 기분 때문에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충동적으로 사주를 보기도 했고 친구들에게 고민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래서 풀렸는가? 아니, 풀리지 않았다.
나는 고민했다. 대체 뭘 원하는 걸까, 나는? 작가 생활을 벌써 5년째 하고 있다 보니 불투명함에서 오는 근본적인 불안감을 아예 없애버릴 수는 없다. 그런데 조금 줄일 수는 있다. 깨달은 방법 중 하나는 그냥 믿고, 밀어붙이고, 부딪치고, 뚫는 것!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래, 지난 3년간 고민의 고민을 하던 새 작업실을 계약하기로 한다. 과연 작업실을 유지할 수 있을까? 나는 계속해서 작업을 할 수 있을까? 절대 모를 일이다. 나를 믿어보는 수밖에. 바로 다음 날 나는 부동산 앱 맨 위에 뜬 매물을 선뜻 작업실로 계약해버렸다. 12월과 1월은 단지 며칠 차이이고 날씨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숫자 몇 개가 만드는 불안함은 나를 움직이기에 충분했나 보다. 자, 그래서 기분이 좀 나아졌는가? 그렇다. 매우 좋아졌다. 역시나 올해 내가 가장 잘한 일은 새 작업실을 계약한 일이다. 막상 실행으로 옮기고 나면 별것 없다. 후에 생길 불안은 나중에 생각할 일이다.
불안은 인간의 생존 본능, 불안에서 오는 우울은 괴리감이 만든 무기력. 세상의 사람 수만큼 연말을 보내는 방법도 다양할 것인데, 나와 같이 ‘홀리데이 블루스’를 겪는 사람이 또 있을까?
어김없이 찾아온 올해의 불안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연말연시, 이 새벽에는 좀 뛰어도 될 것 같다. 믿고, 밀어붙여 볼 때다.


지드래곤이 말했다

_김은정(콘텐츠 크리에이터이자 콘텐츠 브랜드 16P의 디렉터)

“좋은 시간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포토그래퍼 솔네가 말했다.
나는 한 달에 한두 번 작은 모임의 진행자로 선다. 10명 남짓 되는 사람들이 한 명의 아티스트를 만나는 자리다. 에디터로 일하며 얻은 가장 큰 선물은 인터뷰이의 언어이고, 이것이 내가 이 모임을 만든 이유다. 사람들과 그 선물을 나눠 갖고 싶어서. 인터뷰하듯이 나는 아티스트에 대한 질문을 사람들 앞에서 한다. 나의 단어 사이에 긴장이 섞여 있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 눈빛에도 긴장이 보인다. 두 개의 질문과 답이 오가는 동안 긴장은 걷히고, 사람들 눈빛은 동경과 호기심으로 반짝인다. 진짜 이야기는 이때부터다. 사람들은 이야기 중간중간에 질문하기 시작한다.
조심스럽지만 망설이지 않는다. 모임이 마무리될 때 즈음이면, 모두 주저하지 않고 질문하고 대답한다. 지드래곤이 말했다.
“그냥 해.”
당신도 지드래곤에게 이 말을 들었을 거다. 나랑 비슷한 방식으로.
걱정은 행동을 가로막고, 두려움은 상상을 저지한다.
나의 주된 일 중 하나는 인터뷰다. 그날의 인터뷰이는 <디에디트>였다. <디에디트>는 지극히 주관적인 취향을 기반으로 리뷰 콘텐츠를 제작하는 디지털 미디어다. 에디터가 주인공으로 영상에 등장한다. “모든 사람이 우리를 좋아할 수 없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우리와 마음 맞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디에디트>의 이혜민 기자가 말했다. 나를 드러내며 독자와 소통하는 이들이 대단했고, 그런 마음이 부러웠다.
“그냥 해.” “네가 해.”
인터뷰한 지 한 달 정도 지났을까. 바람은 찬데, 햇빛이 예쁜 오후였다. 한적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혜민이가 말했다(<디에디트>의 이혜민 기자와 나는 친구이기도 하다). 내가 한참 고민을 털어놓고 난 직후였다. 그냥 하라는 말은 겁내지 말라는 의미였고, 스스로 하라고 한 것은 내가 한 일을 직접 이야기하고 드러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말이 쉽지… 익숙지 않은 일이다.
겁 많고 걱정도 많아 별명이 ‘김걱정’이고, 늘 다른 사람을 인터뷰하고 글을 써온 나였다.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앞뒤 생각하지 않고, 그냥 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 그냥 해도 괜찮다. 가로막고 있던 장애물을 걷어버리자. 이제, 행동으로 빚은 역동적인 행복의 맛을 보기로 한다. 포토그래퍼 솔네와 그 자리를 채운 사람들이 내게 준 행복처럼.

새로운 한 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가 되는 가운데 11인의 아티스트들이 각자의 소망과 다짐을 적은 편지를 <그라치아> 편집부에 보내왔습니다. 그들이 꿈꾸는 2020년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리고 여러분은 2020년을 어떻게 보내고 싶으신가요?

Credit Info

2020년 1월

2020년 1월(총권 122호)

이달의 목차
EDITOR
장정진, 남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