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투브 네이버 포스트

통합 검색

인기검색어

HOME > 오늘의 인물

정직하고 성실한 일상의 위대함

On November 22, 2019

브랜드 버벌리스트 민은정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녀가 만든 수많은 브랜드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T.O.P, 카누, 뮤지엄 산, 오피러스, 아난티 같은 브랜드 이름은 물론이고 평창 올림픽 슬로건 ‘Passion Connected’도 그녀의 손에서 탄생했다. 장르를 불문하고 최고의 네이밍을 가능하게 한 힘은 어디서 나온 걸까? 25년간 브랜드 언어 전문가로 활동해온 그녀는 한순간도 거짓말 같은 드라마는 없었다고 한다. 성공의 요건은 생각보다 정직하고 성실한 일상의 축적을 통해 쌓인다는 말이다.

/upload/grazia/article/201911/thumb/43313-391979-sample.jpg

코트 자라(Zara). 니트 풀오버 마시모두띠(Massimo Dutti). 팬츠 파비아나 필리피(Fabiana Filippi). 슈즈, 귀고리, 반지 모두 개인 소장품.

자신을 하나의 브랜드로 가정해보세요.
그렇게 하면 모두가 좋아하는 공통적 속성을 인지하고 노력할 수 있어요.
밝은 에너지와 진솔함, 정직함, 진정성 같은 것들이오.

‘브랜드 버벌리스트’는 정확히 어떤 일을 하나요?
‘브랜드 언어’ 전문가라고 설명할 수 있어요. 브랜드를 개발하고 만드는 데 있어서 필요한 언어적 요소를 총괄하는 일이에요. 우선 브랜드의 콘셉트가 있어야 하고 이를 호칭할 이름이 있어야 해요.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슬로건과 역사를 설명할 수 있는 스토리 등이 브랜드의 언어적 요소죠. 이런 것들과 대구를 이루는 BI, CI, 심벌, 로고, 패키지 등은 시각적 요소라고 보면 돼요. 둘이 합쳐져야 하나의 온전한 브랜드가 탄생하는 거죠.

브랜딩이라는 개념이 사람들에게 인식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는데요. 처음 일을 시작할 무렵엔 더 낯선 개념이었을 듯해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처음 일을 시작한 것이 1994년인데요. 브랜딩에 대한 개념이 전무했던 시절이었어요. 저 역시 그전에는 이런 일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요. 솔직히 말하면 우연히 시작하게 됐어요. 대학 졸업 후 준비하던 시험에 실패하고 대형 로펌의 사무직으로 취직했는데, 취업 재수를 할 형편이 아니었거든요. 제가 모시던 대표 변호사님이 상표 관련 소송을 자주 다뤘어요. 그분이 자신의 일에서 착안해 이런 문제를 미리 예방할 수 있도록 브랜드를 개발하는 회사를 창립했는데, 저도 그곳으로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이 일을 하게 됐죠.

작은 회사의 막내에서부터 시작한 거네요.
맞아요. 자기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룬 사람들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경우는 출발선에서부터 한 가지 목표를 세우고 오직 그것만을 바라보며 노력해서 성공한 경우죠. 전 그런 사례가 아니에요. 우연히 주어진 길을 열심히 가다 보니 25년째 이 일을 하면서 나름의 성과를 이뤘어요. 목표를 향해 질주하면서 난관을 헤쳐 온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낸 평범한 사람 또한 어떤 면에서는 박수 받을 만하지 않나라고 생각해요. 저는 후자에 속하고요.

처음 시작할 때는 주체적인 선택이 아니었는데, 이 일에 빠져들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일 자체가 주는 성취감과 매력이 제일 컸던 거 같아요. 세상에 쉬운 일은 없지만 99%가 작업이 완성되기까지의 고통이라면 1%가 성취를 통해 얻는 기쁨인데 그것이 굉장히 컸어요. 결과물이 세상에 발표되고 살아서 움직이는 과정을 보는 것에서 서서히 매력을 느꼈죠.

당시에 생소했던 분야였을 텐데, 어떤 식으로 준비했나요?
교과서적인 답안이지만, 정말 ‘공부’밖에 답이 없어요.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의지와 공부요. 처음 일을 시작했을 무렵에는 브랜드와 마케팅에 관한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어요. 관련 도서를 사서 다 외울 정도로 공부했거든요. 그냥 정독하는 정도가 아니고요. 책에 나온 인덱스의 A부터 Z까지 짚어서 어떤 질문이 나오더라도 바로 답이 나올 수 있을 정도였죠.

그런 과정을 거쳐 어느 순간 ‘점핑 모먼트’가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예상을 깨서 미안하지만, 그런 순간은 없었어요. 열심히 공부하면서 준비는 했지만, 실무에 투입되기까지는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어요. 처음에는 카피라이터 등의 유관 경력이 있는 선배들의 자료 조사를 돕거나 하면서 배웠죠. 시간이 지났고, 천천히 기회가 주어졌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강점, 즉 경쟁력이 있었다면 뭐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믿고 있는 신념 중 하나인데요. 저는 작은 일을 잘하는 사람이 큰일도 잘한다고 믿어요. 조직에서 리더의 역할을 맡으면서 직원들에게도 종종 강조하는 가치 중 하나가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는 거예요. 쉽고 힘든 일은 분명 차이가 있지만,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어요. 누군가 나를 믿고 그 일을 맡긴 거니까요. 그 점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아이디어가 고갈되어 진척이 없는 날도 있었을 텐데요. 그럴 땐 어떻게 해결해 나갔나요?
마음이 초조하면 아이디어가 더 안 나오는 것 같아요. 그런 순간이 오면 일단 몸을 릴랙스시켜요. 그러면 마음도 같이 긴장이 풀리게 되거든요. 그리고 전혀 다른 분야의 책이나 콘텐츠를 접하는 것도 창의적인 발상에 도움이 돼요. 사람들과 모여서 브레인스토밍 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되고요.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려면 스스로 확신을 가져야 해요.
착실한 준비와 자신의 업무에 대한 확실한 인지가 있어야 가능하죠.
언변과 자신감 있는 태도로 ‘꾸미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최신의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할 때, 책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되나요?
최신 콘텐츠 트렌드를 알기 위해서는 SNS나 유튜브를 모니터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긴 해요. 그에 비하면 책은 아웃데이터가 된 느낌이 들죠. 그럼에도 책이 주는 또 다른 관점을 보는 것은 중요해요. 한 사람이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자신의 관점을 다 쏟아부은 것이니까요. 그래서 주말에는 가급적 책을 읽으려고 노력해요.

주로 관련 분야의 책을 읽는 편인가요?
브랜드나 마케팅에 관한 서적도 읽지만 주로 업무와 관련이 없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요. 예술, 문화와 관련된 인문학은 물론이고 연애소설도 종종 읽어요. 브랜딩을 한다는 것은 결국 연인에게 어필하는 과정과 비슷하거든요.

주말마저 생산적으로 쉬는 방식을 택한 것 같은데요. 평일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아침 6시 반에 일어나서 고등학생인 딸을 학교에 데려다줘요. 이후 한 시간 정도 파워 워킹을 하고 출근해요. 이 시간이 제게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시간이에요. 아침에 머리를 비우고 한강 주변을 보면서 걷는 행위가 제게는 힐링과 충전이거든요. 출근 후에는 ‘투두’(To Do) 리스트를 정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해요. 이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이 정말 중요해요. 하루 일과의 흐름을 파악하고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거든요. 일과 중 다양한 미팅과 실무를 진행하고 나서 저녁 6시 이후부터는 저만의 업무 시간을 가져요. 집중하기 좋은 시간이거든요. 바로 퇴근하지 않고 직접 진행하는 크리에이티브한 업무들을 처리하죠.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워커홀릭이 아닌가 싶을 정도네요.
누군가는 그렇게 판단할지도 모르지만, 저는 스스로를 그렇게 바라보지 않아요. 사람은 저마다 인생의 가장 큰 의미와 기쁨의 기준이 다른데요. 최근에는 많은 사람이 ‘워라밸’을 그 기준으로 꼽죠. 저는 가끔 근무와 휴식 시간의 비율만으로 ‘진정한 워라밸’을 판단할 수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휴식은 분명 중요하지만, 저마다 자신의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다른 법이잖아요. 쉬는 시간이 많다는 단순한 사실이 누구에게나 최상의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닐 수 있어요. 제 경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기쁨은 ‘성장’이거든요.

‘성장’을 추구한다면 평소 체력적인 관리도 소홀할 수 없겠네요.
운이 좋게도 체력적인 부분에서 힘듦을 잘 느끼진 않아요. 덕분에 아직 건강관리까지는 아니어도 비교적 슬림한 몸을 유지할 수 있게 자기 관리에는 신경 쓰는 편이죠.

꾸준한 자기 관리 역시 커리어와 관련된 이유일까요?
맞아요. 브랜드를 만드는 입장에서 기본 조건으로 떠올리는 이미지는 세련되고, 트렌디하고, 고급스러움인 경우가 많아요. 브랜드 언어를 만드는 입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저 역시 그렇게 보여야 진정성이 느껴지리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클라이언트를 만날 때는 단 한 차례도 편안한 복장으로 미팅에 임한 적이 없어요.

그렇다면 주로 어떤 스타일로 미팅에 임하나요?
저는 항상 슈트 차림을 고집해요. 캐주얼한 복장으로 클라이언트를 만나러 간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죠. 제 패션이 곧 내가 이 프로젝트를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지에 대한 태도의 반영이라고 믿거든요. 일종의 메시지 전달이에요. ‘나는 이 프로젝트를 정말 진지하게, 긴장하면서 받아들이고 있다’라는.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 나만의 기술도 있을 거 같아요.
확실한 건 요령은 통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다양한 브랜드와의 미팅을 수없이 진행하면서 느낀 것은 항상 진실이 통한다는 점이죠. 자신감 있는 태도를 꾸민다거나, 언변이 뛰어나다고 해서 설득력이 높아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가장 힘 있는 설득 기술은 나 스스로가 확신을 갖고 있을 때 나와요. 이 프로젝트를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는 자신감에서 오는 확신이오.

막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마음가짐이나 마인드가 있을 거예요. 어떤 것을 당부할 수 있을까요?
자신이라는 사람을 하나의 브랜드라고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나라는 브랜드를 어떤 브랜드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관점을 갖고 시작하는 거예요. 물론 세상에는 다양한 브랜드가 있고 각자의 매력이 있지만 모두가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속성은 갖출 필요가 있겠죠. 일단 밝은 에너지가 중요해요. 대부분의 사람은 조직에서 일을 하며 하나의 결과물을 함께 완성하잖아요.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서 밝은 에너지가 느껴진다면 더 좋겠죠. 여기에 정직함, 진솔함, 진정성이 더해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죠.

국내 최고의 버벌리스트로 손꼽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면서 위기와 권태를 느낀 적도 있나요?
왜 없겠어요. 아직도 매 순간이 그래요. 마치 끝이 없는 장애물 달리기처럼 하나를 넘으면 또 하나가 있어서 계속 넘어야 하는 거 같아요. 25년째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새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어요. 어떨 땐 자신이 없는 날도 있고요. 그래서 항상 일을 만만하게 생각하지 않으려 해요. 늘 겸손함이 필요하죠. 그 감정을 가장 많이 느낀 시기가 재작년이었어요. 그래서 『브랜드 ; 짓다』라는 책을 쓰기 시작했죠.

일에 권태가 와서 책을 썼다고요?
권태의 가장 큰 원인이 스스로의 성장에 대한 의심이었거든요. 제자리걸음하는 기분이 들 때 무력한 기분을 벗어나기 위해 쓰기 시작했어요. 평일에는 일에 집중하면서 책의 내용을 오래 고민하고 주말에는 무조건 글을 썼어요. 쓰면서 돌이켜보니 다행스럽게도 이 일을 일찍 시작한 덕분에 좋은 프로젝트를 많이 했더라고요. 쓰다 보니 이 일을 일찍 시작한 선배의 입장으로서 이런 경험을 나누는 것에 대한 사회적 소명도 느꼈고요. 이 과정에서 권태를 많이 극복했죠. 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모든 면에서 전력을 다한다는 인상을 받는데요. 감탄스러운 한편 ‘이렇게까지 열심히 해야만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가장 좋아하는 말 중 하나가 ‘꽃도 온 힘을 다해서 핀다’는 말이에요. 제가 하는 일은 이름을 만드는 일이라 한 번 만들면 최소 몇십 년간 그 이름을 갖고 가게 되죠. 그 생각을 하면 의무감에 대충 할 수가 없어요. 50년, 100년간 제가 만든 이름이 생명을 갖고 이어지게 되는 거니까요. 그렇다면 ‘이것이 정말 최선인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끄덕일 수 있을 때 그 이름을 붙여주려고 합니다.

민은정 전무의 아이디어 개발 법칙 3

1 몸의 긴장을 풀어줄 것
민은정 전무는 아이디어가 고갈되는 가장 큰 원인을 ‘긴장’으로 꼽았다. 초조함과 긴장 속에서는 크리에이티브한 생각이 나오기 힘들기 때문. 그럴 때마다 그녀는 적당한 운동이나 휴식으로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 효과가 있다고 조언한다.

2 전혀 다른 콘텐츠를 접할 것
“크리에이티브라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의외성에서 나옵니다.” 민은정 전무는 휴일에 자신의 업무와 무관한 분야의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SNS나 유튜브 콘텐츠 역시 마찬가지. 창의성은 새로운 것을 공부함으로써 나온다고 믿는다.

3 다른 사람과 아이디어 회의를 가질 것
“혼자서 오래 생각하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대화하는 것이 짧은 시간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산출할 수 있어요.” 민은정 전무는 브레인스토밍의 힘을 믿는다. 다각도의 지식과 창의성을 취합하여 최선의 결과를 모으는 것이 얼마나 효율적인지 수차례 확인해왔기 때문이다.

/upload/grazia/article/201911/thumb/43313-391978-sample.jpg

귀고리와 의상 모두 본인 소장품.

브랜드 버벌리스트 민은정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녀가 만든 수많은 브랜드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T.O.P, 카누, 뮤지엄 산, 오피러스, 아난티 같은 브랜드 이름은 물론이고 평창 올림픽 슬로건 ‘Passion Connected’도 그녀의 손에서 탄생했다. 장르를 불문하고 최고의 네이밍을 가능하게 한 힘은 어디서 나온 걸까? 25년간 브랜드 언어 전문가로 활동해온 그녀는 한순간도 거짓말 같은 드라마는 없었다고 한다. 성공의 요건은 생각보다 정직하고 성실한 일상의 축적을 통해 쌓인다는 말이다.

Credit Info

2019년 11월

2019년 11월(총권 120호)

이달의 목차
WORDS
남미영
FASHION EDITOR
조윤주
PHOTO
이영학
HAIR & MAKEUP
구현미

2019년 11월

이달의 목차
WORDS
남미영
FASHION EDITOR
조윤주
PHOTO
이영학
HAIR & MAKEUP
구현미